I Run on Dunkin

보스턴에는 던킨 도넛이 엄청나게 많다.
보스턴 시내에서 ATM을 찾는것보다 던킨 도넛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쉽다!

미국에 올때 처음 보스턴으로 왔던 탓에 나는 당연히 던킨 도넛 커피를 엄청나게 많이 마시며 대학원시절을 보냈다. 어쩌다 아침에 던킨 도넛의 베이글 샌드위치를 먹는날은 호강하는 날이었다. ^^

서부로 이사온 후에 가장 동부에서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던킨 도넛이었다.
심지어는 한국에 출장을 갈때 던킨 도넛 커피를 마시는게 내 기쁨 가운데 하나였다

재작년부터인가 이곳 Bay area에도 하나둘씩 던킨 도넛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회사에 아주 가까운 곳에 던킨 도넛이 생겼다!

요즘은 한주에 한두번정도 office에 가는데, 갈때마다 던킨 도넛에 들려서 커피를 하나씩 픽업해서 마시는걸 ‘커다란’ 낙으로 여기고 있다.

Thanksgiving 휴가 기간동안 참 잘 쉬었고, 오늘부터 연말까지는 또 한번의 sprint (전력질주)가 있을 예정인데… 휴가후 월요일에 마시는 던킨 도넛 커피가 참 맛있다! 감사한 일이다.

(thanksgiving 기간동안 감사한 것에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고 보낸탓에, 이렇게 소소하게 감사한 것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런건 들어봐야해!

내가 가끔 보는 youtube 방송 채널 중에서.

한국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응시하는 사람의 5% 수준이라면서,
그렇게 준비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낭비되지 않게 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 방송을 하는 분의 이런 창의적 생각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런 창의적 생각을 하는 기본에 깔려있는 그 마음에 더 큰 박수를 보낸다.

때로 창의적 생각이 나오지 않는 큰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기

어떤 이들에게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는 말은 참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정말 한계가 턱 밑까지 차 올라서 조금 더 견디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상황과 예외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지금은 조금 더 참고 견디자는 이야기를 교회가 하는 성숙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에라 모르겠다. 너무 답답하다고… 자꾸 모이고, 만나고, 여행가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더 어렵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꼭 참고 집에서 견뎌보자는 이야기 말이다.

참기, 견디기는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인들이 별로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기독교가 늘 빠르고 효과적인 해답을 주겠다고 달려드는 일들만 많았지…
(그것은 승리주의적인 싸구려 신앙에서 비롯된 것인 경우가 많았고)

참고, 견디고, 조금더 사랑의 마음으로 내 욕구와 욕망을 자제할줄 아는것…
그런 성숙함을 이야기하는 공동체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Still Life

내가 영화를 보는건 대개 출장가는 비행기 속에서 였으니,
금년에는 내가 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몇주전 토요일, 신난다~ 하고 카페인을 엄청 많이 섭취했더니 밤에 잠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아주 뜬금없이 Still Life 라는 영화를 보았다.

고독사한 사람들의 마지막 장례를 치루어주는 일을 하는 공무원인 존 메이에 대한 이야기.

그리 유명한 영화도아니고,
언뜻 보아도 돈을 많이 들인 영화도 아니고,
자극적이거나 빠른 템포의 흐름도 하나도 없다.
게다가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영국 억양이 살짝 이해하기 어려워서 좀 애를 먹기도 했는데,
그래도 보고나서 아… 이건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thanksgiving 기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영화한편 집에서 보고싶은 분들에게 추천!
Coronavirus도 심한데 어디 나다니지 말고 이렇게 집에서 영화보기~

미팅 백그라운드

집에 앉아서 회사 미팅에 참석하다보니 미팅에 뭔가 양념이 좀 더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매주 다른 백그라운드를 사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
언제까지 다른 백그라운드를 계속 creative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중 반응이 특히 좋았던 것은 코스모폴리탄 표지, 매트릭스, 수퍼마리오, Central Perk
제일 반응이 좋았던 것은 맨 마지막에 있는 사진.
그리고 의외로 Teletubbies 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7)

나는 facebook이나 twitter 같은걸 별로 열심히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대통령선거 시즌에 황무지가 되어있는 내 어카운트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좀 보았다. 당연히 내가 facebook이나 twitter connection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데 그곳에는 역시 증오와 조롱이 넘쳐났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상황을 이용하는 나쁜 정치가들/리더들은 그렇게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 정말 죽을 것 같아… 그러니 트럼프라도 좀 지지해야겠어…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증오와 조롱을 쏟아붇기도 하고, 그나마 좀 점잖은 사람들은 거기서 도덕교육을 시전하는 거다.

나는, 현대 기독교가 이런 함정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사람들의 꽤 절실한 절규에대해 도덕적잣대로 판단하며 도덕교사를 자청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트럼프를 그렇게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누군가는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black lives matter, feminism등등의 ageda에 대부분 동의하고, political correctness도 중요하다고 보고 (decency 라고 Biden이 표현하고 있는)
그러나 Biden정부가 그 목소리를 잘 들어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기독교가 이런 속에서 많이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여기서 이야기한 두려움에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필요한것은 도덕교사의 훈계가 아니다.
좌절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공감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정치적 세력화로 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정권을 잡도록 하는 정치운동도 다가 아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절망한 사람들에게, 그래서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기독교가 무슨 얘기를 해줄수 있느냐고 물으면…
혹시 이 글을 읽는 몇 안되는 기독교인들은 나름대로의 답이 있는가?

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6)

두려워서 그 출구로 혐오를 택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와 도덕적 당위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이들이 표현하는 혐오는, 우월감에서 나오는 혐오가 아니라, 나도 죽겠다고 외치는 외침이 아닐까 하는 거다.

적어도 내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논리와 결정을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도덕교육을 시키는 것이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그 외침의 근원에 있는 문제는 도덕교육이 부족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5)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며 나선 백인들중에는 정말 용서하거나 용납하기 어려운 아주 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모든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이 정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트럼프를 지지하는 어떤 사람들은, 정말 벼랑끝까지 밀려서,
소위 자신의 경쟁력이 딸려서 생존이 어렵다고 느껴져서,
많은 두려움과, 이렇게까지 밀려버린 것에 대한 분노가 쌓여서,
그래서 비이성적으로 다른 이들에 대한 혐오, 비과학적 무대뽀 주장 등을 일종의 위안과 위로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두려운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주도의 세상도 두렵고,
밀려드는 빠릿빠릿한 이민자들도 두려운 것이다.
어떻게 생존할수 있을지 길이 보이지도 않고, 아무도 자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지 않는 것 같이 느끼니 그저 두려운 것이다.
그러니 이럴때 증오, 혐오라는 창구라도 찾아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게 칭찬하고 잘한 일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어떤 백인들에게 있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자신의 우월감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두려움의 분출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4)

미국을 여행하면서 백인들이 주로 사는 시골동네는 갈때가 있다.
대개는 평화롭고, 순박해보이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늘 살던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곳에 가면 나 말고는 다른사람들 모두가 다 백인이라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곤 한다….
아, 내가 예전에 보스턴에 살때도 그랬었지.
내가 원래 어릴때 머리속으로 상상하던 모습도 그랬지.
미국은 그렇게 백인의 나라라고.

그런데 당연히 그렇게 random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보통사람들이다.
그러니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전투력 만랩도 아니고, 빠릿빠릿 똑부러지지도 않는다. 그냥 정말 정상적인 보통 사람들.

언젠가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가서 팬케익을 서브해주는 맘좋게 생긴 한 중년의 백인 여자를 보고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 사람은, 실리콘밸리의 빠릿빠릿한 비백인들과 비교해보면 정말 생존력과 전투력이 딸리는 사람이겠구나.

그건 그 사람에대해 얕잡아보거나 그 가치를 결코 부족하게 봤다는 뜻이 아니다.
정말 엄청난 생존경쟁이라는 시스템안으로 이 맘 좋은 백인 아주머니와 건강하고 빠릿빠릿한 실리콘밸리의 인도 이민자가 함께 밀어넣어졌을때, 어쩌면 이 맘좋게생긴 이 아주머니는 살아남지 못할수도 있겠다는 그냥 아주 막연하고 비과학적인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다.

백인들은 두려워하는 걸까? (3)

나는 실리콘밸리에 산다.
여기는 백인의 비율이 절반이 되지 않는다.
우리 민우가 다녔던 학교들을 보더라도, 중학교때는 백인 비율이 20%정도되었던것 같고, 고등학교때는 약간 더 높은 40%정도 되는 학교를 다녔다.

회사에 가더라도 비백인들이 정말 많다.
아주 많은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당연히 여기서 그렇게 만나는 비백인들은 ‘잘난’ 사람들이다.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좋은 스펙과 실력으로,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된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만나는 비백인들과 이야기를할때 이 사람이 백인들보다 실력이 모자를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회사에서 실력중심으로 사람들을 뽑지 않고 인종에 선호를 두어 사람을 뽑는다면 그 회사는 결국 잘 안될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실력가지고만 사람을 뽑으니, 당연한 것이겠다.

내가 주로 만나는 비백인들은 그렇게 똑똑하고, 빠릿빠릿하고, 자기 관리 잘하고, 전투력 좋고, 생존력 만랩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