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저께였던가… 교회의 몇분들과 이메일을 나누면서,
최근에 묵상을 하고 있는 사도행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최근에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나는,
사도행전을 읽으며… where we are와 where we can be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저 많이 슬퍼하고 있다.

최근에 읽는 성경들이 내겐 계속 그렇긴 한데,
사도행전이 내겐 lamentation과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무슨 성경을 읽어도 다 그렇다. 다 lamentation이다.)

그런데,
이게 lamentation같이 읽힌다고 하더라도 별로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나도 그게 어떤 건지 설명도 잘 못하겠고,
그냥 혼자서 마음 많이 아파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있다.
그래서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혼자서만 아파하는 거다.

이런 내게,
하나님께서 뭔가 좀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하게 다가와주시면 좋으련만…
하나님은 이런 내게 침묵하신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왜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 빡빡하게 하시는 걸까.
왜 남들처럼 그렇게 좀 친절하고 부드러운 하나님이 되어주시진 않는 걸까.
왜 내겐 하나님 믿는게 이렇게도 어려운걸까.

Valentine’s Day, Ash Wednesday

어제는 Valentine’s Day이자 Ash Wednesday 였다.

Valentine’s Day의 상업적 가벼움 속에서,
Ash Wednesday를 흘려버리는 가벼운 죄책감 속에서,

CVS에 진열되어 있는 빨간색 하트를 든 곰인형의 가벼움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역겨움과 싸워야 했다.
사랑과, 결혼과, 십자가에 대해 이런 이야기들을 되새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Hardware engineer의 설움

실리콘 밸리는 정말 software engineer들이 지배하고 있다. ^^
잘 생각해보면 정말 지난 10여년간 세상을 급격히 바꾼 key technology는 주로 software다! (아마 apple의 iphone이 예외가 아닐까 싶은데, 그것도 software가 매우 중요하다.)

1.
어제는 건강검진겸 해서 의사를 찾았다.
Google 안에 있는 의사다.
간단하게 한 30분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이번에 천식 때문에 다 써버린 천식 약도 새로 받고, 피도 뽑고…

나보고 회사일 때문에 stress가 많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좋은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의사는 나보고 hardware engineer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만나는 hardware engineer들이 대체로 stress level이 더 높은것 같다고. 특히 product cycle이 있는 (가령 전화 같은) 개발 관련해서 일하고 있는 hardware engineer들은 더 그런것 같다고 그랬다.

2.
지난 주에 Google 식당에서, 옛날에 Apple에서 함께 일하던 옛 직장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 사람은 Google에 와서 Pixel phone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만났을 때가 저녁 7시쯤 이었는데, 샌드위치 두개를 싸가지고 가면서, 그날 밤에 conference call이 두개가 더 남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Apple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출장다니면서 고생하는건 똑같다고 했다.

3.
그런데 hardware engineer들의 평균 salary는 software engineer들보다 현저하게 낮다. 심지어는 비슷한 정도의 경력과 직급에서 두배이상 차이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hardware engineer들이 일반적으로 stress level이 더 높은데 돈은 덜 번다고.

나는 그래도 내 job에 비교적 만족하는 편이고,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게다가 hardware engineer 치고는 그래도 여러가지 상황이 좋은 편이긴 하다.
그래도 어젠가는 살짝 좀 설움 같은게 느껴졌었다. ^^

Martyn Lloyd-Jones 의 Revival

마틴 로이드-존스는 내 신앙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중 하나이다.
마틴 로이드-존스의 ‘부흥’이라는 책을 읽은 것은 벌써 20년쯤 전인 것 같다.
그 후에도 부흥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이 좀 있었는데 그 책을 다시 열어볼 여유는 없었다.

몇달전에 podcast로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모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subscribe를 했는데 그 후에도 한동안 그걸 열심히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주말에 설교 한두편을 듣기 시작했다.

1.
우선, 대단히 놀란 것은…
내가 마틴 로이드-존스의 언어를 사용할때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설교를 할때라던가, 글을 쓸때, 나는 마틴 로이드-존스가 설명하는 방식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신앙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틴 로이드-존스의 몇개의 quotation을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분의 사상과 신앙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나 마틴 로이드-존스와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꽤 명확했다.
그것은 주로 20세기 초중반의 상황과 21세기 초반의 지금 상황이 차이에 기인한 것이 많았다.
가령, 히스테리는 여성에게만 나타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알기로 20세기 초반에 그렇게 주장을 하는 의사/심리학자들이 있었다. 아마 그렇게 잘못 inform된 것들이 있어 보였다.

3.
1950~1960년대 영국 영어, 혹은 그 시대 설교가의 말투랄까… 그런게 참 생소했다.
들어보면 지금 영국영어와는 참 많이 달랐다.
그런 말투가 어떤땐 살짝 bother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설교의 어투가 상당히 dry 하게 느껴졌다.
지금과 같이 감정을 섞어서 이야기하는 어투가 대단히 절제되어 있고, 그래서 오히려 설교가 때로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때도 있었다.
불과 60년 만해도 설교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구나… 싶었다.

4.
그런데,
그런 dry한 설교를 들으면서,
가슴이 찌릿 해지는 경험을 반복해서 했다.
정말 그랬다.

원래는 한주에 하나정도씩 듣겠다고 작정을 했는데,
요즘 완전히 꽃혀서 어떤땐 거의 하루에 한편씩 듣기도 한다.
출퇴근을 로이드-존스와 함께…

블로그 10주년?

얼마전에 내 옛날 블로그 글을 찾아보다가,
허, 옛날에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네… 싶은 글들이 꽤 있었다. ^^

대충 살펴보니,
내가 뜨문 뜨문 글을 쓰다가 2008년 2월 경 부터 매일 혹은 거의 매일 하나씩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부지런히 글쓰기 시작한지 금년으로 10년이 되는 거다!

뭐든 한 10년 했으면 그래도 좀 잘 해야하는 건데,
10년동안 나름대로 글을 열심히 써 왔지만,
글 솜씨가 늘지도 않았고, 생각이 깊어진것 같지도 않다. ^^

또 10년전에 주로 블로그에서 소통하던 ‘독자’들과,
지금 블로그를 통해 연결되어서 소통하는 ‘독자’들이 이제는 완전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되었다.

10년동안 글을 쓸 소재가 고갈된적은 거의 없었다.
하루에도 아주 긴 글을 몇개씩 쓰고 싶을 만큼 생각은 넘쳐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10년동안이나 매일 이렇게 글을 썼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과연 발전없는 글쓰기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한다.

블로깅이라는게 지금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을 표현수단을 아닐까 하는 고민이 되기도 하고.

한동안은,
그래도 하던 거니까,
그래도 여전히 쓸게 많으니까,
그래도 읽어주는 분들이 계시니까,
등등의 생각으로 어줍잖은 글쓰기를 계속 해 왔는데…

사실 좀 자신이 없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지금 당장 이 블로그에 글쓰기를 중단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10주년을 맞아서 좀 고민이 필요한것 같기는 하다…

2018 직장 고민 (17)

나는 이 블로그에서 외롭다는 이야기를 가끔 쓰곤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외롭다고 쓰는 것을 보고 뭐라고 꾸짖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걱정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제 쓴것과 같이, 이익을 따르지 않고 옳음을 따르는 결정을 하면서 사는 일은 참 쉽지 않다. 정말 무엇이 옳으냐 하는 것에 대하여 아주 깊은 성찰이 필요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내재화시키는 일도 반복해서 오랬동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은 그런 결정을 하는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또 옳음을 따르는 결정을 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도 필요하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겁도 많고, 의심도 많기 때문에…
용기를 갖는 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도 참 쉽지 않다.

그럴때,
이런 고민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함께 그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그렇게 이익을 따르지 않고 옳음을 따르는 결정을 하며 사는 동지들이 참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참 너무 드물어서 외로울때가 많다.

다소 정리되지 않은 이 시리즈의 글을 마무리 하면서,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지금 이런 외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다면,
내가 그 사람에게 companion이 되어주어야 겠다…
그런 사람이 바로 옆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거나 비슷한 환경에 있지 않더라도,
심지어는 나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이렇게 묵묵히 그 사람의 companion이 되어주어야겠다… 그런 소심한 상상과 결심을 해본다.

2018 직장 고민 (16)

과거에 내 커리어와 관련해서 했던 결정들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내가 커리어 관련해서 혹은 직장과 관련해서 했던 큰 결정들은 지금도 잘했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인더스트리쪽으로 가기로 한 결정,
Apple같은 1급의 직장을 포기하고 Lenovo같은 2급의 직장으로 옮겼던 결정,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 쉽게 내 이익을 좇아서 job을 바꾸지 않았던 결정 등등은 모두 내가 믿고있는 신앙과 그 세계관에 깊게 영향을 받은 결정들이었다.

대부분 그냥 세속적으로보면 이상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그 이상한 결정들을 신앙으로부터의 용기를 가지고 했었다.

후에 그 결정들에대해 후회한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결정을 또 했을 그런 결정들이었다.
왜 나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결정을 내릴것이라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그 결정들이 무엇이 내게 더 이득이냐의 기준으로 한 것들이 아니라, 무엇이 옳으냐의 기준으로 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 그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내가 그렇게 내렸던 결정들은 나를 성숙시켰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을 믿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분을 믿고 따르는 나는 누구인지 하는 것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그래서 나는, 무엇이 이득이냐에 따른 결정이 아니라 무엇이 옳으냐에 따른 결정을 계속 하고 싶다.
다소 장황하고 난잡하게 써 왔던 몇번의 글을 통해서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겪고 있는 일종의 갈등들에 대해서 적었다. 원래 계획은 아주 구체적인 상황들까지 시시콜콜이 적어보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건 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처해있는 지금 상황 속에서,
나는 지금 직장과 관련해서 어떤 결정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해본다.
그 결정은 그리고 이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옳음에 근거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출장와서 호텔 방에 있다.
하루종일 출장와서 일하는게 정말 고되어서 어제는 온 삭신이 쑤신다고 생각을 했다. -.-;
정말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게 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한 것 같다.

2018 직장 고민 (15)

서지현 검사가 검사 윗대가리의 성추행을 까발렸다. (완전 멋지다!!)

그리고 또,
안미현 검사는 강원랜드 수사를 하는데 외압이 있었다고 까발렸다. (진짜 멋지다!!)

왜 여성 검사들이 이렇게 완전 용기있는, 그리고 통쾌한 일들을 하고 있는 걸까.
왜 남성 검사들로부터는 이런 속시원한, 그리고 용기있는 기개가 보여지지 않을까?

뭐 물론 두명의 여성 검사들의 폭로를 가지고 전체 남성과 전체 여성을 싸잡아서 치켜올리거나 싸잡아 내리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수 있겠으나…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여성 검사들은, 남성 검사들이 윗대가리 영감님들하고 룸싸롱 가서 희희덕거리는 그 ‘주류문화’에 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윗대가리 깍뜻하게 모시는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검사 동일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
대한민국 최고의 상명하복 문화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는 검사 조직 속에서…
그 단단한 조직 이기주의와 그로인한 왜곡을 드러내는 일은… 그렇게 핵심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crack이 생기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자꾸만 중심부로, 주류로 들어가고자하는 일들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나는 이들 여성검사들의 용기있는 폭로에 박수롤 보내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하는 일들이 이와같은 것들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독교인이라는 핸드캡 때문에 중심부로 가지 못하고,
그래서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깨지 못하는 왜곡에 crack을 만드는 일.

실리콘 밸리와 같은 곳에는…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아주 치열하게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에게도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지겹도록 자꾸만 remind 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주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이 없어 참 많이 외롭다….)

2018 직장 고민 (14)

그리고 내겐 정말 심각한 고질병이 있다.
그것은 공정하지 못한 것을 정말 잘 참지 못한다.

음…이게 내가 정의감에 넘친다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내게 공정하지 못하게 손해나 피해가 오거나, 내가 오해를 받거나, 내 뜻이 곡해되는 것을 정말 잘 참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회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내 나름대로의 선한 뜻이 잘 펼쳐지지 않는 것을 잘 참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나는 유난히 그걸 못 참을까?

이게 내게 워낙 심각한 고질병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러가지로 분석과 생각을 해 보는데…
나는 내 안에 갖혀 있기 때문에 참 보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것은…
내가 내 control 밖에 나가는 상황을 몹시 못견뎌 하는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만큼까지만 일을 하고,
내 의지로 내가 ‘잘나가는 정도’를 잘 정해서 control하면서 살면, 나는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예전에 그렇게 살기도 했고.)

그러나,
나는 내가 100만큼의 실력과 가치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70만큼만 인정을 받는 상황이 되면…
그 상황 자체가 내 통제아래 있지 않게 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불편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하나님의 통제가 아니고, 내 통제다.
나는 하나님의 통제는 못 믿겠고… 내 통제만 믿는 거다. 음….

Me too

“Me too” movement가 미국에서는 peak를 쳤다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최근 한 검사의 폭로로 불이 붙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성들이 하고 있는 Me too 로는 이 운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운동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나도 가해자였다”고 고백하는 Me too 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나는 정말 양심적으로 여성에게 육체적 폭력을 가해서 내 (성적)욕망을 취하려고 한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를 생각해보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저 나는 그것을 당연한 사회적 통념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부적절한 농담을 한다거나, 여성이 불쾌하게 생각할만한 것들을 한 것들이 분명이 있다.

그게 일반적으로 여성이 될수도 있지만,
가깝게는 내 아내나, 내 딸, 내 동생, 내 어머니가 될수도 있다.

나는 여성들의 Me too 운동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 운동에 남성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피해자다 라고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Me too 에 대해서,
나도 가해자다 라고 이야기하는 남성들의 Mee too 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Me 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