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 울었다.

여기 시간으로 9일 새벽 2시 반쯤에 일어나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인터넷을 뒤져가며 들었다.
여러 글들과 주장들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4시에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나는 울었다.
문재인의 광화문 연설을 들으면서 또 울었다.

솔직히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 부패와 독재와 수구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marginalized되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정권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절망, 그리고 나중에는 냉소에 빠져 있었다.

문재인이 광화문에서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정되고서 만난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이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울었다.
그 세월호 아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이번에 첫번째로 투표할 수 있는 선거였을 게다.

불과 몇달전만해도 꿈도 꿀 수 없었던 모습의 대통령과 청와대의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참 많이 설레었다.
하루만에 나라가 바뀐 느낌.

하지만,
새로운 정권에 과도한 기대와 희망을 걸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중이다.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이 있다는 것을 자꾸만 되새기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하루쯤은 그렇게 울어도 되지 않겠나.

이해가 되지 않는….

두주 전,
잘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 사람은 홍준표를 지지한다고 했다.
나는 그러냐고 부드럽게 대화를 넘겼지만, 정말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좀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정책과 사람을 지지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준표가 20%가 훨씬 넘는 득표율로 2위를 하는 것을 보고,
게다가 대구경북, 경남 지역에서 심지어 1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게다가 경북은 과반! -.-;)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지난 봄에 한국에 출장을 갔을때,
구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이가 좀 든 임원은 여전히 새누리당-박근혜가 상대쪽보다 더 좋다는 입장이었고 그 아래 있는 젊은 부하직원은 아무리 그래도 박근혜나 새누리당을 이 마당에 지지할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그 좁은 지역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는게 어떻게 가능할까…
광주와 같이 어떤 정치적 피해자가 되었던 기억이 있는 지역도 아니고…

그런데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미국도 트럼프를 당선시킨 나라가 아니던가.
영국도 Brexit을 통과시킨 나라가 아니던가.
다행히 프랑스는 좀 이성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커다란 논리적 비약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논리적 비약은 흔히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것으로 부터 비롯된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적폐세력을 강력하게 청산하고, 언론개혁, 검찰개혁, 정부조직 개혁, 재벌개혁, 개헌 등을 통해서 정상적이고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쪽으로 노력하길 바라지만,
반면 그런 비상식적 행동을 할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어떻게든 정상적인 사회적 대화가 좀 열리는 시대가 되면 참 좋겠다.

어쨌든 내가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ㅎㅎ

징크스

내가 어릴때,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 아니었다. ^^
70년대 후반에 되어서야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금메달을 하나 딸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때까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일제시대에 손기정 선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어릴때 흑백 TV를 보면서 축구나 한일전 같은걸 보면서 열심히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에 컬러 TV를 들여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하는데, 한일전 야구 무슨 결승전 같은걸 했었다.
그때 김재박이 신기한 번트를 하고 한대화가 3점 홈런을 쳐서 극적으로 이겼던 경기였다.
나는 스포츠에 빠삭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번씩 중요한 경기를 보면서 ‘우리팀’을 응원했었다.

그런데,
내가 어릴땐 이상한 징크스 같은게 있었다.
내가 보기만 하면 우리편이 지는거다.
그러다가 내가 안보면 우리편이 좀 더 잘하고.
(아마 그런 비슷한 경험 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ㅎㅎ 이게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므로)
그래서 중요한 권투경기가 있다거나 할때 나는 일부러 그 중계방송을 보지 않을때도 있었다.

오늘 밤, 이곳 시간으로 4am 에 출구조사가 발표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일찌감치 잠을 청할 예정이다.
출구조사가 발표되기 전까지 나는 뉴스를 기웃거리거나 그런 짓을 하지 않으려 한다. ㅋㅋ

천재의 두가지 유형

학교 다닐때,
교수님들중 ‘천재’로 소문난 분들이 좀 계셨다.

그렇게 천재로 소문한 교수님들은 대개 두가지 부류 가운데 하나였다.

첫번째 부류는, 자신의 수준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속 터져하는 교수님들이었다.
이런 교수님들에게 걸리면 죽음이다.
완전 주눅들고, 들들 볶임을 당하고, 자존감 땅에 떨어지고, 일은 죽어라고 하고…

두번째 부류는, 자신의 수준에 따라오지 못할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매사에 무지하게 너그러운 교수님들이었다.
이런 교수님들에게 걸리면, 대박이다.
뛰어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천재로부터 배우는 기쁨을 누리게 되고, 좀 덜 뛰어난 학생들도 그 너그러움 속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땐 정말 두번째 부류의 교수님이 정말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러나… 아주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떨어지는 사람도 아니라면…
첫번째 부류의 교수님으로부터 더 뭔가를 배울 수 있게 될 가능성도 높고, 그래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지만,
가끔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거나 누군가를 이끌고 지도하고 키워야할 때 이 생각을 많이 한다. 직장에서건, 기타 다른 세팅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 혹은 내가 뭘해도 안되겠다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마냥 너그럽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내 존재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 싶은 사람들에게는 뭔가 더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가 이런 과정에서 판단을 잘 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
난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거다… 그렇게 위안을 해본다.

정치에 소망을 덜 두기

내가 지지하는 정파가 늘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 실망을 줄여보고자하는 마음에서… 정치에 소망을 덜 두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파라 반대로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내 과도한 기대를 줄여보고자하는 마음에서… 정치에 소망을 덜 두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정치가 정의를 이루는데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정치는 또한 우리의 궁극적 소망이 무엇인지를 잊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독재자가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들기 위해 3S (Sex, Screen, Sports) 정책을 썼다면,
혹시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백성들의 관심을 궁극적 소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정치라를 tool을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존 하워드 요더나 스탠리 하우어워스 같은 사람들의 사상을 다시 곱씹어 보려고 노력한다.
잘 안되긴 하지만. ^^

잘하면… 이번에는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2004년 Red Sox가 World Series를 우승하는 것을 구경하는 기분과 비슷하다.

눈물

나는 국민학교때 전학을 많이 다녔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주에서 서울로 이사가는 바람에 전학을 했다.
4학년을 마치고 다니던 학교가 너무 커서 분교가 되는 바람에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5학년을 마치고 부모님이 국민학교 졸업 전에 조금 더 좋은 학교 한번 다녀보라고 ‘사립’ 국민학교로 전학을 하면서 또 한번 옮겼다.
그렇게 전학을 할때마다 나는 참 많이 울었었다.

국민학교때 담임 선생님이 나보고 ‘남자가 그렇게 눈물이 많으냐’고 뭐라고 하셨던 기억도 난다. -.-;

대개 내 나이쯤 되면 홀몬에 변화가 생겨서 눈물이 더 많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 많던 눈물이 다 없어진 것 같다.

요즘 내가 눈물을 흘릴때는,
마음을 찢으며 기도할때 뿐이다.

대학때만 하더라도,
가요를 듣다가 울기도 하고,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울고, 좋은 글을 읽다가 울고… 한번은 비오는날 기숙사에서 짝퉁 워크맨에 꽃혀있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울었던 기억도 난다.

때론 눈물이 그립다.
지난 주말에, 우연히 youtube에서 다음의 노래를 들었다.
살짝 눈물이 났다. 반가웠다.

한번도 내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었던 것은 92년이었다.
내가 찍은 사람이 안됐다.

그 다음 대통령 선거는 97년 이었다.
내가 지지했던 사람이 되긴 했으나, 나는 미국에서 투표하지 못했다.

2002년, 역시 나는 투표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지지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2007년, 미국에서 투표하는게 가능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투표했더라도 그때 대통령 된 사람을 지지했을리는 만무하다.

2012년, 미국에서 자랑스럽게 투표했다.
그러나 내가 찍은 사람은 떨어졌다.

2017년, 지난 주말 투표했다.
살짝 망설였다.
지금까지 내가 찍은 사람이 된 적이 없었는데….
2번을 찍어야 하는 걸까…

토론

지난 토요일,
우리 동네 아는 형 한분이, 이 동네에 있는 한 사람(A 라고 하자)을 좀 만나보라고 소개를 해 주셔서 만나게 되었다.

A는 미국에서 ‘좋은 대학’ 졸업하고 현재 이 동네에서 ‘잘나가는 직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어릴때 교회에 다녔으나 대학때 이후로 교회에 좀 뜸 했고… 지금은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의 중간쯤 되는 입장에 서 있다.
당연히 아주 똑똑한 사람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나름대로 여러가지 고민과 생각과 독서와 research도 해 보았던 것 같아 보였다.
어쨌든 기독교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그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가지론적 / 무신론적 관점과 좀 제대로 대비시켜보고 싶어했다.

아침 10시반에 만나서 오후 4시 반이 거의 다 될때까지 정말 닥치는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나도 어떤 대화를 기대해야할지 잘 몰랐고, A가 궁금해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무슨 준비를 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적, (신약) 성경의 역사성, 역사의 방법론, 과학적 방법론, 보편적 진리 논쟁, 믿음과 논리의 관계 등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변증적(apologetic) 논리와 수사를 열심히 동원해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A는 내가 최근 이렇게 함께 논쟁하고 대화를 나누어본 상대 가운데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좋은 토론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20대이지만 나름대로 참 열심히 이 문제들을 파고 들었던 흔적이 대화 도중에 보였다.
그래서 말도안되는 논리를 접하면서 그 argument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애써 설명해야하는 수고가 거의 필요 없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서, 이렇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별로 많이 보지 못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A 만큼만이라도 좀 생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기독교가 이렇게까지 엉망은 아닐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나는 그냥 어슬렁 어슬렁 나갔다가 A의 진지함에 화들짝 놀란 case라고 할 수 있겠다. ^^
A가 워낙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니까, 오히려 내가 후다닥 긴장하면서 내 자세를 바로잡아야 했었다.

6시간 가까운 논쟁과 토론을 거치고 나서도 A는 카톡으로 다시 또 만나서 이야기를 이어가자고 이야기했다.
나도 기꺼이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런 좋은 스파아링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참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이 대화가
내게도 소중한 성찰과 자람의 기회가 되고,
A에게는 진리에 한발 더 다가가는 기회가 되면 정말 좋겠다.

(한가지 깨달은 것은, 시간이 길어지니까… 내 집중력도 떨어지고 아무래도 힘이 좀 달렸다. 그건 20대와 깊은 대화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맞닥드리는 내 한계이겠지.)

4차 산업혁명, 진짜로? (9)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 직장을 찾는 엔지니어들은, 얼마나 cool한 기술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직장을 선택하기 보다는…
얼마나 그 리더가 뛰어난 사람인가 하는 것을 가지고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이다.

2. 앞으로 10년 동안… 만일 아주 뛰어난 천재가 어떤 쪽으로 가야 제일 그 뛰어난 재능을 펼치기에 좋겠느냐… 라고 한다면 기술쪽 보다는 경영쪽이 아닐까 싶다. (다만 경영을 하되 기술을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할 듯)

3. 그러나 앞으로 10년 동안… 어느쪽 job이 유망하냐 라고 묻는다면, execution에 강한 엔지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4. 원청과 하청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불합리한 상황은, 점차로 원청업체의 pool이 넓어져야 해결이 되는 것일텐데…
그런 의미에서 뛰어난 원청업체들을 잘 만들어내는 경영자의 능력이 justice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5. 그러나… 지난 두주 내가 여기 쓴 이 모든 이야기는… 그냥 내가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이므로, 완전 틀릴 가능성 완전 높다. ㅋㅋ

4차 산업혁명, 진짜로? (8)

자….
이게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냐 하는 이슈에 대해서 물론 다루어 볼 수 있지만…

지금 이런 기술의 흐름 속에서 상황이 이렇다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원청업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삼성과 Apple 그리고 몇몇개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새로운 회사가 진입을 좀 하려다가 얼마나 실패했는지.

만일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 자체가 이미 짜여진거고, 지금부터는 그 판에서 어떻게 노느냐 하는것이 더 전개되는 것이라면…
누가 원청업체의 자리에 오르게 되느냐 하는게 중요한 key일 것 같다.

그런데,
이 원청업체가 잘 하는 것은…
innovation이 아니다.
execution이다.

innovation은 entrepreneur들에의해서 만들어지는 start-up들에서 이루어 진다. 그리고 그 start-up들은 하청업체가 된다.
원청업체에게 그 만들어지는 기술들을 잘 조합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plus 다양한 기술들을 잘 분별해 내는 능력)

그래서 나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아니 꼭 한국이 아니더라도 미국도 그렇고…
지금 innovation을 더 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레드오션데 뛰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execution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그나마 줄어들고 있는 블루오션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엔지니어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말 하는게 좀 씁쓸하지만…
뛰어난 경영자와 그저그런 기술자그룹을 가진 회사가, 덜 뛰어난 경영자와 뛰어난 기술자 그룹을 가진 회사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