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스타 이야기 (5)

KOSTA를 섬기면서 나는 정말 말할 수 없는 blessing을 경험했다.

우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에 편승해서… 거의 최전선에서 그것을 목격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섬기고 있는 사람들, 특히 훌륭한 선배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통찰과 인격, 신앙과 꿈들을 매울 수 있었다.

함께 잠을 자지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때로는 콩크리트 바닥에서 쪽잠을 자면서 그렇게 섬기는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전우들, 동료와 후배 간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한 blessing을 또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KOSTA를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되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renew하고, 생명의 빛을 얻고, 삶의 방향을 정비하는 일들이 있었다.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내가 평생 KOSTA에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나는 KOSTA에 큰 빚을 졌다. 내가 몇년씩, 몇십년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이 KOSTA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이제 내일이면 또 KOSTA 집회를 섬기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지난 10년여간 KOSTA를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신 그 은혜를… 내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KOSTA를 섬기고 집회를 섬기지만… 매년 내게 그 빚은 늘어만 간다.

이제는, 내가 그 빚을 갚을 생각 자체를 포기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예쁘게 보아주셔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것을 뻔뻔스럽게 누리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고전 15:10 a)

나의 코스타 이야기 (4)

함께 같은 교회에 다니던 분중,
지금은 인하대 교수로 가신 송순욱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이분은 DC의 지구촌교회 출신이었고, 당시 워싱턴 지구촌교회는, KOSTA 운동을 주관해서 섬기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던 교회였다.

이분과 연결이 되어서 “Boston 팀”에서 KOSTA VOICE를 맡아서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KOSTA newsletter인 KOSTA VOICE를 만드는 일에 1997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집회 중에 발간되는 KOSTA VOICE와, 집회 전후로 발간되던 KOSTA VOICE update 라는 두종류의 newsltter가 있었다.

99년이었던가… 98년 이었던가에는…
그 KOSTA VOICE update 라는 것을 web에서 띄워서 web에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자고 정하고.. html로 딱 한페이지를 만들어서 web에 띄웠었다. 이것이 지금 eKOSTA (http://www.ekosta.org) 의 시작이다.

98년에는 KOSTA에서 처음으로 ‘지역 리더쉽 훈련 program’이라는 것을 시도한다고 했다.
Boston이 첫 대상이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그 일에 연관이 되었다. (이것이 제 1회 gpKOSTA 이다.)
내가 집에서 가지고 있던 ink-jet printer로, 그당시 전 참석자의 교재를 print하고… 하나씩 바인더로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Boston에서 황지성, 강동인, 지금은 한국에 가신 이동헌… 이런 분들과도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98년에는 그 당시 총무간사로 섬기던 황지성 간사님이 내게 전체집회에서 ‘코스탄의 현장’ 간증을 해 줄것을 요청했었다. 나는 깊이 고민하였는데… 지도교수가 허락을 하지 않아서 결국 그해에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때 딱 한번 빠졌다. ^^)
너무 죄송해서… 그때 황간사님에게 직접 이야기했는지… 내가 속으로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이 한몸 부서지도록 열심히 대신 노가다라도 할께요…” 그랬다…  (뭐 사실 그 ‘결심’은 현실화 되었고… ㅋㅋ)

나의 KOSTA 섬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코스타 이야기 (3)

96년 집회 이후,
내 안에는 정말 ‘불덩어리’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 한시간씩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회복하시도록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도하였고… 정말 지치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시작하고 말씀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도 참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도무지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변화되었고, 모임에 생명력이 급속히 생겨났다.
불과 15명 남짓 되는 모임이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70명 수준의 모임으로 커졌고,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는 표정이 달라졌다.

아침에 학생들이 새벽기도를 하러 모이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새벽기도 밴 운전을 했고, 그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는…
어제 언급한, 한국 제주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면서 외국인 학생들과 학생들을 섬기는, 코스타 강사로 섬기고 있는 팽동국 교수,
KOSTA 찬양인도도 하고… 작곡도 하고… 한 박성호 목사,
“내려놓음”의 저자인 이용규 선교사
등등이 있었다.

모임을 섬기면서, 나의 부족함에 답답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간장종지같이 부족한 내 믿음에…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쏟아지는 은혜에 감당할 수 없어 정말 많이 울었다.

97년에는 몇몇사람들이 바람을 잡아…
내가 섬기던 교회에서만 60명 정도의 사람이 함께 시카고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 후, 섬기던 청년부는 더 생기를 얻었다.

나의 코스타 이야기 (2)

95년 8월20일에 난생처음 미국땅을 밟았다.

나는 스스로 ‘학생사역자’라고 자처하고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참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참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녔던, KOSTA 초기 시작에 연관이 있으셨던 어떤 유학생 출신 선배님이 보스턴에 가면 자신이 섬기던 성경공부인 Gate Bible Study 라는데를 한번 가보고 섬겨봐라, KOSTA에도 가면 좋겠다 는 말씀을 하셨다.

솔직히 나는 KOSTA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어쩌어찌하다가 Gate Bible Study도 그 당시에 바로 join하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보낸 첫 일년, 많은 감사한일들이 많았지만, 영적으로는 참 고갈되는 느낌이 있었다.
뭔가 자꾸 내가 진이 빠지는 것과 같은 교회 청년부 섬김, 나의 얄팍한 신앙의 깊이 등등의 이슈가 내게 있었다. 그리고 참 영적으로 외로웠다. 동역자를 잘 찾지 못한채 많이 지쳤다.

그러던중 96년 여름에 처음 참석한 KOSTA 집회는 내게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96년 집회에 참석하기 전, 당시 내가 많은 신앙의 도움을 주던, 내 믿음의 형이자 동역자인 팽동국 형과 함께 미리 집회를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주제를 미리 묵상하면서 관련된 이야기들도 나누고 그랬다.

일주일간의 집회 내내 거의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울었다.
나의 부족함이 답답해서 울고, 외로움이 서러워서 울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울고, 여전히 나와 이 시대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격해서 울고, 이렇게 많은 동역자들이 있구나 하는 사실에 흥분해서 울었다. 아예 전체집회 장소에는 큰 세수수건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것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이것이 내가 KOSTA를 처음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나의 코스타 이야기 (1)

내가 KOSTA 라는 것을 처음 들은 것은 91년.
당시 한국의 대덕 연구단지에서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대덕 연구단지의 특성상,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분들로 부터 KOSTA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송인규, 서재석, 방선기 같은 분들이 편집위원이었던 계간지 “그리스도인과 학업” 이라는 잡지도 참 흥미롭게 보았다.

92년엔가…
그 당시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에 KOSTA에 대한 기사가 실린 것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해야 그 기사를 몇부 copy해서 몇사람들에는 나누어주기도 했고… 나 자신도 잘 간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그 KOSTA를 섬기게 될 줄이야…

(이번 한주 동안, 내가 경험한 KOSTA 이야기를 5번에 나누어 써보려고 한다.)

살아있는 운동 조직과 죽어 있는 운동 조직

죽어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해도 되나요?” 라고 묻는다.
살아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합시다” 라고 이야기한다.

죽어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해 주세요” 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이렇게 제가 한번 해 볼까요?” 라고 이야기한다.

죽어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하면 안됩니다” 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하면 좋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죽어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니 하지 맙시다” 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운동/조직에서는
“이거 우리가 해야할 일이므로 합시다” 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코스타를 생각하며… 여러 생각들을 해본다.

KOSTA/USA-2008 연차 수양회를 기대하며

그렇다면,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초월해서 영원을 갈망하며 살고, 한편 초월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면서도 이 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비복음적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그 길을 찾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해답을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거시적 관점에서의 헌신은 옛날 얘기?

한 달 남짓 전에 미국 서부의 어느 지역에 사는 한 동역자가 직장일로 필자가 있는 동네를 찾았다. 함께 식사를 나누고 저녁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요즘 젊은 학생 세대에게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서정적인 신앙만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의 추세 속에서 신앙도, 헌신도 모두 개인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함께 그러한 현실에 깊이 동의하며 안타까워했다

그 저녁의 대화 이후 필자의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정말 이제 그러한 세대는 지나갔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대는 함께 부를 노래도, 함께 외칠 구호도, 함께 흔들 깃발도 잃어버린 그런 세대가 되어 버린 것인가. 그리고 이제는 다시 이 세대를 움직일 그 무엇은 개인적, 서정적 신앙 이외에 대안이 없는가.

미래의 꿈은 정규직? 

얼마 전 본 한국의 어느 TV 드라마에서 본, 대학을 가기 싫어하는 어떤 고등학생과 그 학생에게 대학을 가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부모의 대화가 생각난다. 학생이 대학을 왜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모는 대학을 가서 네 꿈을 펼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느닷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째 취업 준비생으로 있는, 옆에 있던 삼촌에게 미래의 원대한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취업 준비생 삼촌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자신의 꿈은 ‘정규직’이라고 답했다. 그 고등학생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더러 대학졸업 후 장래 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대화를 더 극적으로 그리고자 과장을 사용했다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캠퍼스와 지역교회에서 만나는 학생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꿈도 이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좋은 배우자 만나고, 좋은 직장 잡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생활 하는 것.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꿈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결국은 그 꿈이 ‘정규직’인 것이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일,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는 일,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일들은 따지고 보면 장래희망을 정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약간 세련된 표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규직이 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직장을 잡고, 좋은 교회에서 좋은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얻고자 하느냐, 그것을 얻고자 하는 뒤에 숨어 있는 동인(motivation)과 세계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 잃어버릴 수 없는 꿈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이야기할 수 없는 세대가 정말 되었다고 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럼 이제는 그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헌신을 언급하는 일 자체를 포기해야 할까? 하나님과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을 서정적, 개인적 영역에만 제한시킨 채 그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만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자 했을 때 처음 이야기했던 것,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선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 아닌가. 그 핵심가치를 위해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헌신, 희생하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를 붙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삶과 신앙의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학생들에게서, 바로 그들의 삶 전체를 꿰뚫어 통합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목마름을 여전히 볼 수 있지 않은가. 20세기에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인생을 던질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 나라는, 포기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우리 모두의 궁극적 꿈이자 희망이 아닌가. 문제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같은 핵심 가치가 더는 이야기되지 않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KOSTA/USA-2008 집회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KOSTA/USA-2008 집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대해 본다

첫째,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통합하여 살아갈 가치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음을 깊이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이미 가진 삶의 길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심하게 비뚤어져 있는가 하는 내용을 보며 함께 애통해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둘째,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의 길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 안의 거짓되고 어그러진 가치관들이 상대적으로 더 초라하게 드러날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제시된 궁극적 삶의 가치들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목마름이 우리 안에 생길 것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를 통해 제시되는 삶의 길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아직 그 가치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궁극적 삶의 길을 내 것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고, 이미 그 가치를 알고 있으나 삶 속에서 통합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새롭게 정리하고 결단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유일한 삶의 바른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변화가 있기 원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세대에서 유일한 삶의 바른길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들에 많은 이들이 함께 헌신하기 원한다. 세상이 그토록 목말라 보고 싶어 하는 올바른 삶의 길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고, 이제 우리에게 함께 부를 노래가, 함께 외칠 구호가, 함께 흔들 깃발이 있음을 선언하기를 원한다

KOSTA/USA-2008 집회를 통해 큰 감동을 하고, 집회가 성황리에 마쳐지는 것은 분명히 이 집회를 준비하고 참석하는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집회를 통해 부어주실 큰 은혜에 대한 기대 이상으로, KOSTA/USA-2008 집회 이후 하나님께서 미국 내 한인 청년 학생 디아스포라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 그로 말미암아 바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선포되고 확장될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흥분시킨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그 길을 보게 하시고, 그 길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허락하시며, 그 길을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모험의 즐거움

코스타 집회가 불과 한달도 남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집회이다보니 챙겨야 할 일들도 많은데…
코스타를 섬기는 사람들의 조직 자체가 워낙 느슨하다보니 빵꾸가 엄청 많이 난다. ^^

마지막 순간에 정하거나 때워야 하는 일들도 많이 생기고.

처음 코스타 간사로 섬기기 시작했던 10년 전…
이런 일들이 생길때면 나는 panic 했었다.
처음 맡았던 일이 KOSTA VOICE 였는데…. 밤새 신문 기사를 써서 편집하고 복사를 맡겨서 새벽에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때 내가 어쩌다 가끔 꾸었던 악몽은…
깜빡 잠이들었는데 내가 코스타 보이스 복사를 다 못한 것이었다.
아침에 1000여명의 사람들이 코스타 보이스를 찾는데 제대로 못해낸 꿈.
이런 꿈을 코스타 집회 기간뿐 아니고… 시도때도 없이… 꾸었었다.
그만큼 마음의 부담이 컸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을 챙겨야 하고…
훨씬 더 급한 일들을 챙겨야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마음이 훨씬 더 여유롭다.

도저히 잘 안풀릴 것 같은 일들이 어느순간 스스르 풀리는 일들을 너무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빵꾸가 나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이 잘 안풀리면…
묘한 흥분이 마음에 생긴다.

요거봐라…. 흠… 한번 볼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나.

고지론, 코스타의 주홍글씨인가 (권오진)

이제 다음달이면 2008년 코스타 여름수양회의 등록이 시작된다.  매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코스타를 홍보하다 보면, 고지론을 주장하는 코스타에는 참가하기 싫다는 반응을 접하곤 한다. 
년에는 코스타에 강사로 참여했던 어떤 분이 자신의 교회 홈페이지에 코스타 후기를 쓰면서 고지론의 근원지인 코스타에서 그에 반하는
메세지를 전한 것에 대한 감회를 마치 적지에 아군 깃발을 꽂고 온 것처럼 감격스럽게 적어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든다.

 

(1) “, 이 사람 참 공부 안하는구나.  코스타에서 고지론을 이야기했던 것 (그리고 그 폐해를 주장하기까지 했던 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그 이후의 흐름을 전혀 접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예 “코스타=고지론”의 개념도 어디선가 대충 흘려들은 정도가 아닐까”

(2) “이제 고지론은 커녕 그에 대한 비판도 더 이상 회자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질기게 따라다니는 꼬리표구나.  정말 고지론은 코스타의 주홍글씨인 걸까

고지론은 잘못된 성경 해석인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유학생들은 선진학문을 배워서 조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대와 의무를 지고 있었다.  고지론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당시 유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이론 (a theory)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수많은 비판이 제기된 것처럼, 고지론은 그것의 implementation 차원에서 우리들의 죄성과 결합하여 커다란 취약점과 폐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러한 비판이 홍수를 이룬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이제는 아무도 심지어는 고지론을 최초로 주장했던 그 목사님도 더 이상 고지론을 중심으로 신학을 전개해 나가지 않는다.

 

고지론은 성경 해석의 법칙(law)이 아니라 말 그대로 론(theory)이다.  이러한 적용범위와 한계,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한다면, 고지론은 그 현실적인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이론이다.  또한, 고지론이 주장되던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더이상 우리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그 위험성을 모른 채 무비판적으로 고지론을 수용하지 않게 되었으니만큼, 이제는 이 고지론에 대해 무작정 비판만 하는 일은 그 의의도, 효과도 불분명하다.

 

 

고지론, 코스타의 주홍글씨인가?

솔직히, 두 귀를 막고 시대의 흐름과 교계의 움직임에 관심 없이 그저 코스타를 고지론이라는 제목으로 덧입혀 비판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실체가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그저 비판 자체에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자신의 순수성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사실 역사 속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탈냉전시대가 열리고 공산주의가 세계적이로 실패한 운동임이 증명되고 몰락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반공주의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으로 굳게 믿는 사람들처럼

 

나는 코스타가 이러한 대중들에게 설명/해명을 제공하는 일에 노력하되, 코스타=고지론이라는 낙인을 주홍글씨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지론은 이미 성경적/신학적/경험적으로 충분한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코스타는 이 고지론의 위험성과 폐해를 누구 못지 않게 많이 강조하며 지적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코스타는 눈을 들어 조금 더 미래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The Show Must Go On; 코스타, 그래도 계속 이슈를 던져라.

고지론은, 적어도 그 시대에는, 일정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시대를 앞서가는 화두를 던졌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코스타가 1990년대 초반에 고지론이 주장되는 통로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이 시대에 화두를 던지지 못해온 것이다.

 

고지론은 코스타의 중심세력인 청년/학생들로부터 발의된 움직임이 아니라, 코스타 여름수양회에 강사로 오셨던 어느 목사님에 의해서 주장된 이론이다.  그 당시에 코스타는 강사 중심, 집회 중심의 여름 수양회였으나, 2000년대 이후로 코스타는 강사에 의존하는 수양회가 아닌, 청년/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과 생각들이 운동(movement)으로 나타나는 색깔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코스타는 그 책임과 소명을 더 절감해야 한다.  인터넷 문화의 발달과 함께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 Anti-) OO주의식의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라, 진정 앞날을 내다보고 시대를 앞서가는 이슈를 던지고 선점하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코스타에게 요구되고 있다. 

 

만약 코스타가 현대 복음주의의 잘못된 흐름 한 가지를 지적하는 데에 집착한다면,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지론을 주장하며 positioning을 하고 있는 무리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또한 만약 시대를 읽기를 거부하며 예수 잘 믿어라라는 원론적인 목소리만 높인다면, 그 또한 복음주의 학생운동으로서의 역할의 큰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코스타는 2009년의 주제를 정하게 된다.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100년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주제가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안된다면, 1990년대의 고지론처럼, 비록 그 생명은 짧고 단점은 많더라도 적어도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화두라도 나오기를 기도한다.

 

코스타여, 고지론이라도 좋으니 이슈를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