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P형이 우리 동네를 방문해서, 하나의 씨앗교회 podcast에 대담을 올렸다.
내 아내는 그 녹음 file을 구해서 듣고 나더니 (아직 공식적으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 당시 청년부 회지를 열심히 수배했다.
드디어,
그 당시 회지를 열심히 만들던 형이, 원본을 사진을 찍어 facebook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그 회지를 보는게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왜 그럴까?
아마, 그 당시 복음의 증거가 왕성하게 나타났던 모습이 더 이상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이기도 할게다.
혹은,
그 흐름에 차가운 물을 끼얹어 버린 사람들에대한 원망도 있는 것 같고…
그때 조금만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참 크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참 부끄럽다.
얕은 지식과 통찰로 대단한 것인양 떠벌렸던 모습,
사랑 없는 지식을 추구했던 모습,
너그럽지 못하고, 참을성 없었던 모습.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내 모습은 그저 20년 전의 내 모습만은 아니다.
사실 불과 1-2년 전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더라도, 참 많이 부끄럽다.
최근에는, 내가 K 운동을 섬기면서 미숙했던 것, 잘 못했던 것들에 대한 자각이 한꺼번에 밀려와,
마음이 많이 힘든적도 있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몇년 후에 뒤돌아 보면,
과연 그렇게 부끄럽지 않게 지금을 볼 수 있게 될까?
영.. 자신이 없다.
40대 이후에 드는 생각은 나이먹어가기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몸이 후패해져서 그렇다면 그건 안타까움과 아쉬움이겠지만 두렵다고 할 필요까진 없을테고, 변질되어 가는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영향력에 비해서 그 분들의 삶과 말과 행동이 내 눈에조차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 믿는 삶이 처음 시장은 쉽지만 점점 어려운 것 만큼 (물론 기쁨도 크지만), 나이가 먹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모든 삶의 부분에서 더 신중해야하고 성숙해져야 되는 어려움이 있으니 더욱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이가 한살한살 늘어가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잘 늙어가는 것 참으로 어려운데 아마도 내 이런 생각과 같은 선상에서 나온 글이지 않나?
더불어 토마스 머튼이 말한 것처럼 5년전 자기와의 생각과 신념의 차이가 현재 자신의 성숙의 척도라고 하는 말에 크게 동의가 된다는 의미도 같은 맥락일거고.
연륜, 참 멋있기도 하고 또 추하기도 한 단어이기에 두려움과 후회 등이 나이와 함께 생기는 거겠지. 후회와 두려움이 긴장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멋있게 늙어가는 거고 하나님 보시기에 함당하게 늙어가는 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