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크리스마스는 늘 기분 좋은 날이었다.
머리 맡에 ‘산타’가 가져다주는 선물도 좋았고,
크리스마스라고 거리에서 나오는 캐롤도 듣기 좋았고,
교회에서 성극 연습하며 노닥거리는 것도 좋았다.
좀더 철이들어 세상을 보니,
사람들은 심하게 어그러져 있고,
그 어그리진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더 심하게 망가져 있다.
젊은 시절에 꿈꾸었던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무기력함도 몰려오고,
싸워야할 대상이 ‘저 나쁜놈’이 아니라,
내 이웃, 내 가족, 내 자신임을 발견하며 어쩔줄 몰라하게 된다.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 ‘다른 소망’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높고,
그 와중에 ‘참 소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그러져 들어가는 듯 하다.
…
첫 성탄 역시 그렇게 슬펐다.
남자를 모르는 틴에이저 여자아이는 임신을 했고,
결국 돌보아주는 사람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총각 남편’밖에 없는 마굿간에서 애를 낳았다.
그 즈음에 당시 독재자는 아이들을 학살했고,
폭력으로 이스라엘을 되찾으려는 시도, 종교적 율법주의로 회복해보려는 시도 등등이 어지럽게 나돌고 있었다.
그때,
하층민 가운데 하층민이었던 목동에게,
새로운 소망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으나,
그것은 아무런 파급효과도 없었다.
30여년 뒤,
그 어린아이는 십자가 처형틀에서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
이것이,
‘하나님의 승리’의 이야기이다.
성탄이 슬프지 않다면,
아마 충분히 세상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성탄이 슬픔에만 머물러 있다면,
복음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한때 나는,
세상을 모른채 복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었고… 정말 내가 복음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걸까 싶을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