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뭐 대단히 냉정한 사람도 아니지만, 대단히 compassion이 넘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소위 ‘공감 능력’도 많이 떨어지고,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한다.
이번주 어느날 새벽 4시가 좀 넘었을 때였다.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는데, 내 전화기가 울렸다.
아니 이 시간에 무슨… 하면서 그냥 무시하고 잠을 청했는데, 또 다시 전화가 울리는 거다.
주섬주섬 전화를 받았더니,
옛~날~에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친구로부터 전화였다.
지금은 한국에서 꽤 ‘잘 나가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부러워할만한 자리에 올라가 있고, 뭐 아마 돈도 잘 벌겠지.
그런데,
전화 반대편에서는 그 친구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힘들다고… 사는게 너무 힘들다고… 그러면서 내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얘기하고 있었다.
이 친구도 내가 그 전화를 자다가 받아야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터인데,
그렇게 내 잠을 깨워서라도 그 순간에 나와 전화를 하고 싶어… 자기 cell phone으로 국제전화를 한 것이다.
15분 남짓 전화했을까.
전화를 끊고나서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나도 그 친구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우리 함께 밥 사먹으면서 신앙과 학문과 삶과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도 생각났고.
그러면서도… 또 한편 이런생각도 들었다.
아니, 얘도 내가 별로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라는거 알텐데…
이 시간에, 나 같은 사람에게 전화해서 흐느끼며 이야기를 할만큼 절박했던 것이었던 것이네…
나처럼 공감능력 떨어지고, judgmental하고 . 이런 사람에게도…
전화하고, 이메일하고, text 보내고, 그리고 찾아오고…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도무지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나는 따뜻한 위로 그런것도 잘 못해주고, 맨날 아픈 얘기 잘하고… 그러는데.
아… 정말….
세상에서 살아가는게 힘들어서,
심지어는 나 같은 사람에게서라도 위로를 받아야 할만큼 내 fellow Christian들이 절박한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생각해 보면 요새 워낙에 ‘인스탄트 따뜻’, ‘가짜 따뜻’이 많은 것같아요.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 처럼요.
제가 함께 참석하는 한 대학생 모임에서 형제자매들이 웃으며 농담처럼 “이곳 저곳 설교에서 위로가 넘치는데요, 말씀시간에 위로는 이제그만~~” 이라고 하더라구요.
아픈 이야기, 정곡을 찔러주는 이야기가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어쩌면 그게 진짜 위로 일지도 모르겠네요.)
성냥파는 소녀의 성냥불이 주는 순간적인 온기와 그 속의 아름다운 환상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산다는 처절하고 힘들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그래서 전화들을 하시는게 아닐까요?
저도 “따뜻한”이 아닌 “따끔한” 위로가 필요한데, 혹시 전화번호가..? ㅋㅋㅋ
ㅎㅎ
저는… 뭐 따뜻하건 따끔하건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요…
도대체 그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참 잘 못해주는 것 같아요. -.-;
그나저나,
이번 여름엔 한번 뵐 수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