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취적 피동성 vs. 퇴행적 피동성

기독교는 한편 대단히 진취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피동성 속에서만 그 핵심을 맛볼수 있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project를 시작하셨고, 완성하실 것이고, 내가 그 큰 흐름에 포함된다는 것은 나를 대단히 진취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initiative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initiative에 의해 이루어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성이 참된 진리로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피동성을 추구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나를 던져서 가슴 뛰도록 헌신하는 진취성도 있어야 하지만,
나의 뜻을 꺾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게 들어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그것에 순종하는 피동성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피동성을 ‘진취적 피동성’이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주저앉아버리는 결정을 해버린다.
대부분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내포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저 자신을 보고하고자 주저앉아서 피동적이 되어버린다.

이런 것은 ‘퇴행적 피동성’ 이다.

나는 매우 자주,
퇴행적 피동성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진취적 피동성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독이 된다.
퇴행적 피동성을 가진 사람이 진취적 피동성을 갖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던지는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과정을 능동성을 거쳐야 비로서 진취적 피동성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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