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2019

나는 1987년에 대학생이었다.
나는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녔으니 뭐 그렇게 대단하진 않았는데,
내가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때나,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닐때 서울에 올라올때면,
심한 최류탄 냄새를 경험할때가 많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1987년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독재정권이 일반 시민의 힘에 무너지고,
역사의 흐름이 크게 바뀐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해였다.

어리버리한 공돌이인 나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도 부족하나마 그때 불의에 많이 분노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시위를 한다거나 그런거 자체가 없어서 나는 그 흔한 시위한번 해본적이 없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불의와 싸우는 역사를 경험한 것은 참으로 큰 blessing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보는 눈이 생기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모습에 너무 많이 화가 난다.

그렇지만,
생각이 있는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이것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눈이 생기도록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80년대에는 대학 진학률이 20%정도나 되었나…
그때는 대학생이라는 사실 자체가 사회의 엘리트임을 의미했다.
게다가 소위 ‘명문대’라면 더더군다나 더.
그런데 그런 엘리트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저버리고 공공의 정의를 선택했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했던 거짓말,
광주에 폭도들이 나타났다고 했던 거짓말 등은,
그때의 젊은이들이 결국 더더욱 옳음에 목마르게 만들었다.

지금의 상황이 1987년의 상황만큼 절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입만열면 빨갱이 어쩌고 하는 거짓말을 하는 정치 집단,
사실을 왜곡해서 거짓말을 돌리는 정치집단의 행태를 보면서…
이 사람들 때문에 ‘옳음’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이 잘하면 생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1980년대의 기독청년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도를 해야하나 화염병을 들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토론했었다.
그리고 그런 토론은 그 사람들이 이해해왔던 복음이 세상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없음을 깨닫게 했고, 복음과 세상에 대해 더 균형잡히고 건강한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택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 속에서,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기독교는 참으로 답답하다.
그리고 참 쪽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