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를 위한 희생

오늘 아침에는 마가복음 14:53-72.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모욕을 당하시고, 억울한 판결을 받으시는 장면.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

여기서 또, 성경은 집요하게 베드로, 제자의 대표인 베드로의 뻘짓을 그리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뻘짓을 하는 제자를 그리고 있을까.
이 마가복음을 읽었을 fist hand reader들이 보기엔 그 제자들이 따라야할 모범이었을텐데.

초대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아마 이것이 늘 사람들에게 해주는 주된 레파토리였을 것 같다.

그때 내가 우리 주님을 배신했었어. 그때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고, 그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고, 그때 비겁하게 숨었어. 그렇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지. 부활하셨고, 승리하셨고.
나 같은 사람은 정말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스토리텔링은, 제자들 뿐 아니라 그 스토리를 들었던 초대교회 교인들, 그리고 그 스토리를 읽고있는 우리들에게도… 우리가 바로 베드로이고, 우리가 바로 그렇게 배신했던 제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연인인 나는, 예수님을 잘 따르는 사람이 아닌데, 오히려 예수님을 이용하려하고, 예수님을 배신하는 사람인건데… 그걸 다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묵묵하게 그 배신을 다 몸으로 받으시며 치욕과 고난을 받으시는 거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게 아니고, 그분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거다.

아, 현대기독교는… 얼마나 자기자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나도, 얼마나 자기자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인걸 다 아시면서, 어쩌면 내가 뒤에서 배신하고 도망가는 소리를 한편 다 들으시면서 묵묵히 ‘내가 그다’라고 하시면서 그 치욕을 다 받으시는 거다.

정말 이 본문은, 베드로뿐 아니라, 나를 그 배신자의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내가 배신자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보아야만 예수님의 고난이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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