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친구

여태까지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보다는 예수님께서 조롱당하셨다는 것을 더 많이 주목해서 쓰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이렇게까지 조롱해야만했을까.
여러가지 설명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예수님을 ‘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위에 대드는 반란의 두목 정도로,
유대종교지도자 입장에서는 종교질서를 흔드는 이단의 괴수로,
일반 지나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때 정치적 해방이라는 소망을 준듯 했으나 그것을 실망시킨 사기꾼정도로…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이 외로우셨다. 아무도 그가 십자가에서  온 몸으로 보여주고있는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가장 치욕스럽게,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외롭게…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맞이하고 계신다. 나의 치욕, 나의 고통, 나의 외로움을 대신해서.

내가 예수님을 그저 superhero로 생각했을때는, 그렇게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에게 내가 가서 친구가 되어들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내 구주라는 것을 깨닫고나니, 나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바로 나 같이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을 위해 그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신 거였다!

예수님은 외로우셨지만, 나는 예수님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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