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이야기 (5)

이번에 한국에 가서 여러사람들을 만나면서, 대단히 환대를 받았다.
미국의 casual한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다소 불편할만큼 친절함을 제공받기도 하였다.
특히, 나와 처음 contact을 한 사람이 높은 사람일수록, 나에대한 대접의 수준이 더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러한 환대를 받으며 처음엔 다소 신기해했다.
그러나, 그 환대가 무엇에게 베풀어지고 있는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 졌다.

그분들이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내 성품이나 성격, 내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대한 동경… 뭐 그런 것으로 나에게 환대를 베풀었겠는가.

결국은,
내가 어디에서 공부하고, 어느 회사에서 어떤 내용의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들, 나라는 사람.. 이런 것들이 아닌 내 껍질이 그들에게는 나의 전부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 또한 생각해보면…
내가 숭고한 정신으로 고귀한 가치로 학업에 열중하여 그것을 성취했다기 보다는…
그저 내게 이미 주어진 재능으로(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약간 노력을 하여서… 그리고 소위 ‘줄을 잘 서서’ 좋은 연구하게 된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 껍질은 그런 의미에서 내것이라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것에 가깝지 않던가.

이런 당연한…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초적인 생각들이…
정말 뼈속 깊~숙~히~ 다가오며 온몸이 오싹해졌다.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다… 나의 공로가 아니다…
이러한 명제가 얼마나 정말 귀하게 느껴지는지…

한국 방문 이야기 (4)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은, 싱가폴 항공이었다. (제일 싼 것이어서 선택했다.!)
처음 타보는 것이었는데, 매우 서비스가 좋았다.

한국인 승무원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한국인 승무원이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이야기하다가 내게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사람 같이 생기지 않았다고 말을 하므로… 뭐 상처가 된다던가 전혀 그렇진 않았다. 이곳에서도 한국 수퍼마켓에 가더라도 보통 점원이 한국말로 내게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내 외모 이외에, 다른 행동이나 모습에서 나를 ‘한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어떤 것이 있을까?

유난히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였다.
한국 공항에 도착해서도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내게 다짜고짜 영어로 말을 붙이고,
공항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을 때에나, cell phone을 rent 하기 위해 줄을 섰을때 모두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없었다. -.-;

한국에 가서,
거의 15년만에 technical talk을 한국말로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내가 영어를 한국어보다 훨씬 더 잘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지만, technical talk은 모두 영어로만 준비해서 해왔으므로 한국어로 하는 것이 매우 어색하고 힘들었다.

어느 연구소에서 처음 한국어로 talk을 하면서…
이야… 이렇게 말을 더듬거리고 단어를 모두 영어로 써도 사람들이 그래도 이해해줄까 하는 마음에 참 조심스러웠다.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든지 미리 한국말로 talk을 잘 하지 못함을 양해를 구하고 좀더 당당하게 버벅거렸다. 어디에선 아예 영어로 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젠 한국이 내게 그렇게 ‘어머니의 품’같은 곳이 아님을 좀 더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내게 그렇게 편한 곳인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영어는 힘들고, 다른 문화에대한 두려움도 있다.

미국도 한국도 편하지 않은…
정말 어중간한 나그네가 된 것이다.

Diaspora…
내 스스로의 identity이자 내가 섬기고 있는 이들의 identity
짧은 한국 방문중 좀 더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한국 방문 이야기 (3)

한국에서 맞이한 두번째 주일은 내 동생이 출석하는 제자들교회에서 예배 드렸다.
오랜만에 화종부 목사님께 인사도 드리고 식사후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날 설교에서 화목사님은 한국은 상위 3%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 상위 3%의 삶을 부러워하며 꿈꾸며 좌절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상위 3%의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
사람들이 그 위치는 동경하면서도 그 사람들은 혐오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복음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이겠는가…

이런 류의 설명과 질문을 던지셨다.

나는, 한국에 있을때 상위 3%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최소한 그 상위 3%에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무척이나 당연하게 여겼고, 내가 가진 이 지위를 이용해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에 헌신할 것인가 하는 고민만을 하였다.
막상 내게 주어진 그 상위 3%의 지위 자체가 깨어진 피조세계의 사회질서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학, 연구소, 기업의 비교적 ‘높은’ 분들과 만날 기회도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받는 대접도 참 달라졌다.

그리고 만난 분들은 모두 내게 매우 환대를 해 주셨다.
많은 경우엔, 한국에 올 생각이 없느냐는 직간접적인 권유와 초청을 하기도 하였다.

속으로 참 뿌듯하였다. 아 그래도 이렇게 내가 대접을 받는구나.
그러면서 한국에서 내가 그렇게 대접받는 사람이 될것에 대한 기대로 열심히 공부했던 모습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난 참 열심히 공부했었다. 학과목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은 분량을 공부했고,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매우 좋았다. 공부는 참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를 하면서 평생 살수 있다면, 게다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경제적인 안정성까지 확보될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야심이 내 안에 가득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일하겠노라고.

내 야심은, 하나님 나라에의 소망과 교묘하게 어긋난 형태로 결합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더디지만 조금씩 성숙해 가면서 그러한 왜곡들을 많이 바로잡아나갈 수 있었다.

특별히 내가 상위 3%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런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코 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
상위 3%이든, 하위 3%이든 관계 없이 연대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특별히 하나님 나라라는 관점에서 보았을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등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깨달음을 얻게하는 데 있어서 KOSTA가 그 중심에 있었다.

한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어그러진 생각들이 flashback으로 나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내가 아직도 그 어그러진 옛 생각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한국 방문 이야기 (2)

한국에 도착한지 하루가 좀 지나자 내게는 참 익숙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식이었다.

나는 알레르기성 천식(asthma)이 있다.
천식은 외부의 자극등에 의해서 숨을 쉬는 기도가 좁아지는 질병이다.
하루가 지나자 약간 가슴이 답답해지기시작하더니 이틀째부터 약한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한참 심하게 천식 증상으로 고생할때엔 기침을 하다가 피가나오기도 할만큼 심한적도 있었다.

미국에 와서, 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특히 California로 이사오면서 점차 이 천식증상이 내게서 떠나있었다. 그런데 다시 이 반갑지 않은 친구가 나를 찾은 것이었다.

도착한지 4일째 되던 날이었던가…
대전으로 운전해서 가는 길에… 기도가 좁아지면서 가슴이 답답한 느낌을 본격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야, 너 참 오랜만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만인것은 천식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살면서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한국사회속에서 비쳐지고 있었던 권오승의 모습도 오랜만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자랑스럽거나 기쁘거나 감사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비뚤어진 그런 모습이었다.

미국이라는 상황 속에서 드러나지 않던 나의 나쁜 모습들도 짧은 기간이지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5년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미국에서 성장해오면서 이제는 많이 잊어버린,
내 옛모습의 기억들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국 방문 이야기 (1)

지난 두주동안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회사일로 출장을 가게되어 학회발표를 겸해서 다녀왔는데,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몇번에 나누어서 한국에 다녀오며 한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여러가지로 기쁘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고, 한편 마음이 무겁기도했던 한국 방문이었다.

한국에 방문한것이 약 2년만이긴 하지만,
거의 10년가까이만에 처음으로 ‘서울’을 가보았다.

짧은 기간동안에 만난 사람들이 좁게 범위를 잡으면 50여명 수준, 좀더 넓게 범위를 잡으면 100명에 가까웠다. 몹시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가지 우리회사의 일에관한 내용을 소개하기도 하고 함께 일할수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던 한국

나는,
내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어떤 면을 더 잘 보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많이 갖게 된다.

나는, 한국을 정말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미국에 살고있는 한국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정체성과
내가 조국에 대하여, 조국 교회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것들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내가 내 조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에 대한 깊은 회의(?)가 몰려오고 있다.

저 한국 왔다가… 그냥… 많은 분들 못만나고 갑니다~ -.-;

제가 한국에 지금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 출장관계로 와 있어… 회사일로 짜여진 일들을 하다보니 한국에서 만나고 싶은 많은 분들을 만나지 못하고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 연락조차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한국에 계신 제 동지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건 절대로 아닌데….

갑자기 글들이 뜬구름 잡는 것 같아졌다?

갑자기 내 블로그의 글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신다.
사실 그렇다.

내가 내 내면의 생각들을 깊이 정리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풀어낼 용기와 힘이 좀 달리는 느낌이다.

아마 다음주, 혹은 그 다음주 쯤 되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20대의 나, 40대의 나

20대에
내가 꿈꾸었던 나의 모습,
내가 꿈꾸었던 한국교회의 모습,
내가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

40대가되어 이제 바라보면서…
한편 20대의 꿈이 얼마나 shallow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20대의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되기도 한다.

건너온 다리를 의지적으로 끊기

때로는,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내가 이미 내린 결정을 다시 곱씹으며…

만일 내가 그때 그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좋을수도 있다.

말하자면,
내가 건너온 다리를 의지적으로 끊어버리고,
앞으로 갈 길을 성실하고도 부지런히 가는 것이다.

나도…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what if…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건강하지 못한 뒤돌아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