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보다 큰 사람

자신의 학벌, 집안 등 배경을 자랑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배경보다 작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배경을 통해서 자신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반면,
큰 사람은, 자신이 배경을 더 훌륭하게 만든다.

세상의 성공의 기준은, 자신보다 큰 배경을 취득하는 것이지만…
건강한 성공의 기준은, 자신이 배경보다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Silicon Valley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질때

가끔은, Silicone Valley에 있다는 것은,
창기(prostitute)가 되는 것과 같다고 느껴질때가 있다.

더 멋진 옷과 화려한 화장을 하고 더 높은 값을 쳐주는 사람에게 몸을 파는 것이나…
더 많은 교육과 경력을 쌓아 더 많은 돈을 주는 회사에 모든 것을 던져 헌신하는 것이나…

이런 TED talk은 정말 내가 그런 창기와 같은 사람은 아닌가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한다.

부흥의 시기와 침체의 시기 (10) – 마지막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울어야 한다.
그저 맹숭맹숭하게 살아갈 수 없다.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눈물이 있어야 한다.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결코 깊어질 수 없다.
좋은게 좋은거지… 식의 신앙은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독이된다.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냉소적이 되는 것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
외향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패배가 아님을 인식하고,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침체의 시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오래 버텨야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하박국의 기도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다른 누구에게 role model이 될 수 있을까.

내 삶이 다른 어떤 이들에게 “message”가 될 수 있을까.
내 성공과 성취, 승리와 기쁨 뿐 아니라,
내 실패와 좌절, 패배와 슬픔 까지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내 삶의 모든 contents가 다른이들에게 “message”가 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내가 말로, 내 얄팍한 passion으로, 섬긴다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그저 공허한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정과 직장과 내 개인의 삶이 모두 건강하게 integrate되어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내 말이 진실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다.

내 얄팍한 열정이 오히려 다른이들을 파괴하는 무기가 됨을 깨닫는다.
내 신앙의 피상성을 나도 참을 수가 없다!

성급한 자아비판의 오류

나는 자아비판을 즐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매우 성숙한, 자기 성찰을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가 자아비판을 즐기는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음을 본다.

1. 자기 방어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비판함으로써 다른이가 나를 비판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소 치사한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다.

2. 게으름이다.
겸손, 혹은 자기성찰 이라는 건강한 가치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나와 내 주위의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 스스로 건강한 가치를 지킨다는 자긍심도 지키게 되고 스스로의 만족감도 느끼면서 부지런히 나와 내 자신을 살피는 귀찮음도 피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무지이다.
최근 어떤 형과의 대화를 하면서, 내가 그 형에게 내 사역의 열매가 얼마나 거짓이 많은지, 나의 manipulative한 성향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작하여 만들어낸 사역의 열매가 많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자 그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그렇게 맺으셨는데… 과연 네 능력으로 심지어는 아주 얄팍한 수준의 사역의 열매라도 맺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 지나쳐 하나님의 일하심을 덮어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지금 이 글도 그릇된 자아비판은 아닐지…

참… 벅차다.

잠을 설쳤다.
설잠을 자다가, 전화로 뉴스를 확인하다가 하면서 지난 밤을 보냈다.
한국과 미국 뉴스 app에서 ‘속보’ notification이 계속 울려댔다.

밤에 깨어 생방송 동영상을 보다가 울고,
그러다 깜빡 잠이들고…

이 블로그에 뭔가를 더 쓰기에는 워낙 좋은 생각들과 글들을 많으니 내가 여기에 생각을 적는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 늘상 쓰던 글을 쓸 수는 없어서 이렇게.

몇가지 완전 잡생각
오늘의 많은 detail은, 몇년 뒤 대입시험에 괄호 넣기 문제로 나올 것 같다.

또 한가지 재미 있는 것.
온라인에서 JTBC는 다른 모든 매체를 완전 압도한다!
JTBC 시청자는 6만명 수준인데 반해,
KBS가 1만명 조금 넘고,
나머지는 몇천명 수준.

열등한 사람과 함께 지내기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나보다 열등한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사람을 위해서 slow-down 하면서 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합당할까.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해봐라… 하면서 열심히 뛰어가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성취한 유익들을 그 사람과 나누겠다는 마음과 목표로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그것도 그 사람이 스스로가 열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한 열등감에 이미 빠져 있거나,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거나,
막연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면..?

경쟁구조 속에서 살아남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
경쟁구조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때…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쉽지 않지만,
더불어 가고자 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하는 것을 찾는 일은 더 어려운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엄청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버릴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극심한 경쟁구조는,
가진 사람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모두 망가뜨리는 듯 하다.
경쟁구조 속에서도 건강한 영성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 물론, 내가 열등한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은… 이것과는 다른… 또 다른 커다란 묵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두가지 고민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꿈

지난주는 이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뭔가 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독백하는 사람들에게, 큰 소망을 가졌다는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정말 아팠다…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은

부모가 되었건,
선배가 되었건,
목회자가 되었건,
단체의 리더가 되었건,
선생님이 되었건,
직장 상사가 되었건 간에…

누군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boundary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boundary로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게 된다.

그 risk를 감당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이끌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노화는 병일까?

Medical device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면서 일을 하다보면,
‘노화(aging)’와 관련된 여러가지 병들에 대한 치료나 관리에 대한 일들에 연관을 맺게 된다.

그런데 참 흥미롭게 느끼는 것은,
이쪽 industry에 있는 사람들중 아주 많은 사람들은 ‘노화’를 ‘병’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특히 Alphabet/Google 소속의 Calico 라는 회사는 아예 그 회사의 목표 자체가 ‘영원히 사는 것’이다!
노화 자체를 아예 근본적으로 다루어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