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사람

나는, 천성적으로(?) 걱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ㅎㅎ

게다가, 어릴 때부터 소위 ‘공부 잘 하는 아이’였으므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사실 그렇게 사는 것이 네게 주어진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뭐랄까… 어릴때부터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일도 적었고, 그렇게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것은 나와 관계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나서 보니,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세상에서 제공하는 안정성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이 그 중요한 부분임을 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공하는 안정성을 무조건 거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안정성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때, 나는 이것이 참 힘들었다.

나는 세상에서의 안정성을 가지고 살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인데…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남들 놀때 공부해가면서 그걸 이루려고 했는데… 

(난, 정말… 정말…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었다!)

그것이 모두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라니…

복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 후,

지난 20년간 내 삶 속에서 싸워야 했던 가장 큰 싸움은 내 재능에 근거해서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내 안정성의 기초를 두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Start-up company를 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심하게 불안해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데…

예전의 나 같으면 지금쯤 나도 역시 많이 힘들어야 당연한 것을,

그래도 지금과 같이 이렇게 힘도 내고, 다른 사람들 격려도 해 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깊은 곳으로부터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지난 2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때론 뼈가 부스러지는 것처럼 힘들게 받았던 훈련들이,

참 값진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이 노력이 성공을 거두게 될지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아직 말과 경주해도 이길만큼 잘 다듬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와중에 평안을 잃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내게 뭔가 상을 하나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서,

어제 저녁에는 혼자 떡볶이를 거하게 차려 먹었다!! ^^

20대의 기도, 40대의 기도

20대 초중반,

아직 대학생일때…

기숙사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한국 교회를 책임져야 한다’며 결의를 다졌던 것이 기억난다.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을수도 있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

그래도, 그때는…

앞으로 20년 후면, 우리가 한국 교회를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인데, 그 준비를 지금부터 부지런히 해야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40대 초중반,

이제는 그로부터 정말 20년이 지난 나이가 된 지금,

내 기도는 내가 혹은 우리가 한국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떻게하면 지금 20-30대가 한국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니,

무언가 중간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물론 지금 20-30대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그것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저 공허한 외침이 된다는 자각이 훅~ 하고 스쳐지나간다.

잘, 쉬었다~

지난 15년간, 코스타 관련 모든 모임은,

늘 기쁘고 감사한 것이었지만,

한편 늘 무언가 ‘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던 모임들이었다.

지난 주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모임에서,

난, 참 잘 쉬었다!

내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참 감사했다!

40대가 되어서 slow down 하다… (3)

이번에, 시카고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미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면서 내 옛날 모습을 다시 기억해 낼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

코스타 집회를 하면서…

가령, 전체 집회 시간에 강사가 엉뚱한 (말을 많이 순화시켜서 표현한 것임) 말을 하는 일이 생기거나 하면,

나는 정말 집회 장소 맨 뒤에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렸었다.

아니, 이 귀한 학생들을, 이렇게 모아놓고 저따위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그런 생각에서 였다.

일종의 분노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일차적인 이유는, 내가 좀 ‘포용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싶다. -.-;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그것에 맞추어 세상의 것들을 재단하는 모습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렇지만,

그런 포용력을 얻으면서, 

쏟아야할 눈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성숙이라는 이름아래, 열정을 깎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40대가 되어서 slow down 하다… (2)

어제 글에 이어서 또 쓸 거리가 생각이 나서… 또 이렇게… ^^

40대에 들어서서 또 slow down 한 것 가운데 하나는, 

‘훈련’이다.

30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꽤 치열하게 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결국 어떻게든 사용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일상의 삶 속에서는 그저 그 훈련이 삶의 일부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서는,

훈련을 위한 훈련에 집중할 여유가 줄어들고, 

(혹은 그렇게 계속할 체력이 부족하게 되고 -.-;)

대신 달리면서, 실행하면서, 일하면서 배워나가는 비중이 높아지게 된 것 같다.

말하자면 실전 기술을 익히는 단계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훈련받고 성장하려는 치열함이 삶속에서 많이 없어져,

내가 많이 나태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초반에 훈련을 잠깐 주춤 했던 것에서…

다시 고삐를 죄어야 할 때인가.

40대가 되어서 slow down 하다…

40대가 된지 벌써 몇년이 지났다. 

40대가 되면서, 내 삶의 자세랄까, 그런 것을 다소 변경했다는 것을 최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계획적으로 그렇게 변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내 전공분야 이외에 다른 영역은,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아서 공부/연구하는 일을 많이 줄였다.

그것은, 신학적인 영역을 포함한다.

30대, 특히 30대 후반에는, 참 열심히 공부했었다. 전공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공부했던 것 같다. 그중에는, 어줍잖게 신학적인 것도 많이 공부하려 노력했던 것도 포함한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는…

우선, 내 전공과 관련해서 공부할 것이 참 많다. -.-;

대학교때 한 학기 배울 과목의 내용을 어떤땐 2주 만에 후다닥 이해하며 익혀나가야 하기도 하고…

여러 세팅에서,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과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많다.

그리고 또 내가 하고 있는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따라가며 봐야 하고, 이쪽 industry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trend도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있지 않더라도, 앞으로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도 열심히 보면서 공부해야 하고.

그리고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신학 전공자도 아니고, 전문 목회자도 아닌데…

목회와 신학에 관한 동향이랄까 그런걸 최첨단에서 따라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뭐 예전이라고 해서 최첨단에서 따라간건 아니었지만. ^^)

그래서,

40대에 들어서는… 사실,

신학서적을 읽는 양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같다.

꼭 따라가며 익혀야하는 내용은, 그 책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듣거나, 그 저자가 대중강연을 한 것으로부터 digested version을 듣는 형식으로 취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띄엄띄엄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신앙/신학책도 무지 많이 읽고 그쪽 연구도 많이 하는줄 아는데…

사실 난 아는게 별로 없다. -.-;

그런데… 최근…

정말 내가 아는게 많지 않기 때문에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다시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이웃, 또 다른 우리 – 못다한 이야기들?

아직 양쪽 conference의 message들을 다 review해볼 시간이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주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좀 더 다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다.

1. 사랑없이 진리를 이야기하려 했던 것에 대한 반성

극단적이고 호전적인 근본주의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사랑으로 이야기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을 발생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더라면…

이것은 지난번에 내가 일종의 선언문 형식으로 이루어 지면 좋겠다고 이 블로그에 썼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2. 연대성에 대한 강조

내가 소위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내가 ‘하나’임을 인식하고, 그 사람과 연대성을 깊이 깨닫고 인식하는 것이 이웃사랑에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이야기가 많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3. 실천적 결심

이웃사랑의 실천적 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기도 하고, 그런 단체들과 연결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한 실제적인 행동방안과 기도제목을 제시해주어 당장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이웃사랑을 제시해 주었더라면…

4. 복음이 이야기하는 자기 중심성으로부터의 탈피

나르시즘에 심취하는 세대에게, 복음이 자기 중심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요구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진로, 내 결혼 등의 기도를 이웃을 위한 기도로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등을 덧붙였더라면…

기타 몇가지가 더 있긴 한데…

이정도가 major한 point들이 아니었을까.

이제, 내일 또 출발이다!

금년에는 

전반부에는 인디애나의 테일러에,

후반부에는 일리노이의 휘튼에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테일러과 휘튼에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이제 내일 새벽이면 비행기를 탄다.

땀과 눈물로 얼굴을 또 범벅이 될테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기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

ㅎ 선배님이,

그저 우표 붙이는 일이어도 좋으니…

뭐라도 좀 돕게 해 주십시오…

라고 KOSTA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는 전설이 있다.

나도,

그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은혜의 잔치에서 얼쩡거릴 수 있게 허락된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권이자 blessing임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그저 감사한다.

KOSTA 집회에서, 만나고 감격하게 되는 이들 (1)

96년부터 KOSTA 집회에 참석해 왔으니, 

한두해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그냥 내가 휘딱 눈이 뒤집혀서 열심히 하는 거라면 충분히 지치고도 남을 때가 되었는데…

한해 한해 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큰 기대가 된다.

왜 그럴까?

그 집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물론 그런 것이겠지만,

또한 그 집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나를 제일 감격시키는 사람은,

이 집회에서 복음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대형 집회에서 회심 초청에 반응해서 소위 ‘영접 기도’를 한 사람들 중에서,

5년후에 여전히 그 신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10%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정말 다를까?

그렇게 결단한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KOSTA에서는 여러가지 노력을 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결단한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남게 되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다.

만일 그 비율이 10%라면, 30% 라면, 혹은 50% 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그렇게 엉터리가 어디있나.

결단을 한 사람들중 다수는 여전히 “가짜”란 말 아닌가?

글쎄… 그것이 가짜이냐 아니냐 하는 논의는 좀 제켜두더라도,

나는 그 10%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한 사람은 그렇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지난 4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여 결국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분명히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오래 잃어버렸던 신앙을 다시 되찾는 사람들도 있고,

문화적으로만 그저 명목상 기독교인이었다가 진정한 생명의 빛을 찾게되는 사람들도 있다.

저녁집회 시간에,

소위 분위기 잡고 조명 깔고… 그렇게 영접하는 사람들 말고도,

조별 모임에서, 세미나 강의실에서, 식당에서, 상담실에서, 기숙사 방에서…

집회 기간 내내 그런 일들은 많이 일어난다.

왜 그런지는 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데,

이 KOSTA 집회 기간 중에는 유난히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나는 바로 그렇게 새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사람들을 KOSTA 집회에서 매년 만났고, 

그 사람들이 나를 가장 감격시키고 흥분시킨다.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몸이 부서져라 잠을 못자며 그렇게 뛰어도 그것이 고되지 않다!

숙소 check-in을 위해서 공항 셔틀을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집회 시간에 앉아 강사의 설교/강의를 경청하는 사람들을 보며,

조별로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삼삼 오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강사와 캠퍼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 사람들중 또 다시 이렇게 새롭게 생명의 비밀을 알게되는 그 사람이 나오길…

그렇게 기도하게 된다.

Transition

몇년전부터 내가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화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보수화 되어간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더 복잡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일부의 내 생각은 좀더 과감해지기도 했고, 내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20대의 내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최근 고지론을 용서한다는 글을 쓰고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든 생각이다.

이번 코스타 집회 전에, 꼭 한번 쓰고 싶은 시리즈 글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 코스타 집회가 한주 남았으므로 그 글은 한참 후에나 쓰게 될 것 같다. -.-;

글을 써가며 정리하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은데…

도무지 시간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