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2)

이번에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무슨 ‘순서’를 맡았다.
이게 그냥 설렁설렁하는게 아니고 다소 빡쎈 순서를 맡았다.
그리고 가서도 좀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간사들이 하지 않을만한 것들을 했었다.

우선 제일 큰 것은 저녁집회 이후 기도시간 인도였다.
이건 거의 내가 자원한 것에 가까웠다.
이런 순서를 자원해서 하는 것은 사실 내 스타일도 아닐 뿐더러 KOSTA 간사들의 스타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맡았던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 였다.

우선, 코스타를 좀 아는 사람이 여러 강사들의 message를 전체집회에서 coherent하게 묶어주면서도 혹시라도 삑싸리가 나는 강사가 생길 경우 그걸 좀 make-up 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금년에는 강사님들의 message가 주제와 align도 잘 되었고, 서로 연결도 아주 잘 되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두번째로, 전체집회가 마무리되는 방식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생각들과 feedback들이 있어 왔는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분들이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집회 마무리를 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느정도 다양한 의견과 discussion의 context를 아는 사람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구원이나 헌신 초청 등에 대해서는 꽤 첨예한 관점의 대립이 있어왔다. 나는 나름대로 대립하는 관점을 모두 다 어느정도 포용하고 만족시키는 middle ground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번째로, 전체집회 강사님들과 어느정도 접촉점을 찾고, 그분들과 대화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특히 적절한 수준으로 미국 코스타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드리고 그분들의 마음을 얻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 일들을 잘 했느냐…
글쎄…
그런데 분명한건, 이게 내가 얼핏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

그리고 전체집회 강사님들과 일부 살짝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 그리고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분들의 마음을 좀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아주 만족스럽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어느정도 목표는 이룬것이 아닌가 싶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들 (1)

지난주는 참 오랜만에 KOSTA 집회에 참석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쓸 수 있는 내용이 있고, 또 그렇지 못한 것들이 어쩌면 더 많이 있겠지만…

언제나 KOSTA를 참석하면서 스스로 ‘간사’로서 참석했었다.
공동대표를 할때도 결국은 ‘간사’를 대표하는 공동대표로 참석했었고,
공동대표를 그만 둔 후에도 참석하면서는 ‘간사’의 마인드로 참석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내가 ‘간사’로서 참석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KOSTA를 참석할때 내가 불편한 것 가운데 하나는,
‘어르신’들이 가끔은 나를 붙들고 KOSTA에 대한 각종 feedback과 잔소리를 하신다는것이다.
잔소리를 듣는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또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간사들에게 전달해주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욕을 먹는게 있으면 그냥 내가 욕먹고 간사들에게 전달 안해주면 된다. ^^
그러나 실무를 떠난지 10년이 되어가는 내게 실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불편하다.
내가 한 소리 들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있기 때문에 간사들이 진짜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싶어 불편하다.

그래도 그럴때 드는 생각은,
이렇게 땡볕에서 30분씩 서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듣는걸… 간사들 대신 내가 해서 다행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5)

내가 공동체에 대해서 전문가도 아니고,
경험이 풍성한 것도 아니고,
연구를 나름대로 해본것도 아닌데…

정말 단편적인 생각들 몇개를 한번 적어보았다.
당연히 coherent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것이다.

사실 적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어떤 것은 지금 내가 속해있는 교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이야기일수도 있어서 그런 것은 여기 쓰는걸 좀 자제하기로 했다. ^^

이번주까지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써보려고 원래 생각했고, 글도 몇개 더 써두었는데…
아무래도 sensitive한 이야기가 더 나올수도 있고, 오해나 상처를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
일단 이 시리즈는 여기에서 한단락 지어보려고 한다.

나는 이런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다양한 세팅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면 좋겠고,
비전문가들이 뛰어들어서 경험하며 나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비판하는 일들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당장…
내가 속해 있는 교회에서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내가 공동체에 대해서 하고 있는 생각을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해볼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져본다. ^^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3)

나는 Stanley Hauerwas가 했던 이 말을 잊지 못한다.
“죄는 당신 스스로 볼 수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 당신의 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당신의 죄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야기해줄때에만 가능합니다.”

앞 글에서 나는 ‘공동체 됨’과 ‘죄와 싸움’이 대단히 연관이 깊다는 것을 얼핏 언급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기독교) 공동체가 공동체답지 못하게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죄에 대한 문제를 가볍게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죄로부터 우리가 해방된 사람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새기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정말 그렇게 죄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리고 그 죄와 싸우고 싶은 열망이 깊어지게되면,
다른 사람이 나의 죄를 지적해 주는 것을 감사할수 있게 된다.

그리고 또한,
죄가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모두 그 죄의 문제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진지한 사랑의 마음으로 죄를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을 두렵지만 단호하게 할 수 있다.

죄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다루어내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pseduo-community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0)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복음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되는데에, 인격적 만남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인격적 만남’은 강의, 글, 설교 등으로 이루어질 때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정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에서 이루어진다.

복음이 사람의 인격에 얹어졌을때 전파력이 좋은 이유는,
흔히 ‘교리’로 이해하는 복음의 내용이 사람의 인격에 얹어졌을때,
‘스토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스토리가 되면,
마치 운율에 얹혀진 시, 즉 노래가사가 외우기 쉽듯이…

교리가 아닌 스토리로 풀어진 복음은 훨씬 더 종합적이고, 이해하기도 쉽다.

나는 공동체에서 이 일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끊임없이 꿈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이라는 노랫말이,
너와 나 라는 사람의 삶 속에서 운율 위에 얹어질때,
그것은 머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contents가 된다고나 할까.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8)

서로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는 정말 대단히 powerful하다.
죄를 고백하기 때문에 가식적인 피상성이 자리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민감성이 커지는 것이 중요한 판단기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예전에는 죄로 여기지 않던 것들 까지도 신앙의 성숙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뼈아픈 죄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와 싸울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참된 공동체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라고 했을때… 누가 그냥 정말 showcase로 죄를 고백하는 show를 한다고 해서,
서로 죄를 고백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흔히 서로 죄를 고백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리더가 쉽게 범하는 실수이다.
내가 이렇게 죄를 고백하면 뭔가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했다간… 그냥 썰~렁~한 독백으로 끝나고 만다.

서로 죄를 고백하는 일은 성령께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 공동체를 움직이실때 이루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5)

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물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어떤 이들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공동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각 개인이 하나님과 대면하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자신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들이 힘이 드니까 좋은 공동체를 만나서 자신의 burden을 공동체에 지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흔히 대학생 선교단체나 친밀한 교회 대학-청년부를 경험한 사람들중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듣는다.
“예전에는 신앙이 좋았는데, 그 공동체를 떠나고 나서는 기본적인 경건생활도 잘 못하고 있다”

나는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서 좋은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 ‘좋은’ 공동체 안에 있으면 자신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랄 필요를 잃어버리게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말 자신의 신앙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쉽기 때문이다.

그 공동체에서 다 하는대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토론하고, 헌신하고, 고민하고… 했는데,
막상 그 모든 것은 ‘공동체’가 했던 것이지 그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한적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서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공동체를 찾아다닌다.

공동체를, 개인 신앙에 있어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그렇게 안주해서는 안될 일이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4)

아마 Wheaton college의 교수 중 한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서 읽었는지, 들었는지 완전 기억 안남 -.-;)
부흥(Revival)에 대해서 연구했던 분의 분석이었다.

19세기 이후 일어났던 부흥들을 살펴보면 대학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경우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대학교 캠퍼스가 일반적으로 tight-knit community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친밀한 공동체와 부흥과의 관계가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것을 매우 흥미롭게 생각했다.

몇가지 생각.

1. 친밀한 공동체가 부흥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이라는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2. 그러나 친밀한 공동체가 부흥을 만들어내는 매우 유리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 이 사람이 진짜 복음을 접해서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확~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변화는 웬만하면 외부의 어떤 자극으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친밀한 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그런 선한 변화가 옆으로 쉽게 전염(?)되고,
때로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더 증폭되어서 더 강력한 형태로 변화가 나타내게되는게 아닌가 싶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3)

그저께 글에서 썼지만 어떤 사람이 공동체에 대하여 기대하는 수준은 대부분 그 사람이 경험한 공동체에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경험했던 공동체가 그저 그렇다면, 기대하는 공동체 역시 그저 그런 수준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험했던 공동체가 정말 깊은 것이었다면,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공동체는 늘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내가 유학생으로 공부할때,
한국의 내 친구는 이런 얘기를 내게 했었다.
돈 필요하면 얘기해라. 여기서 돈 모아서 보내줄께.

나는 대학때 그 친구가 선교여행을 간다고 했을때, 내 통장에 있는거 다 톨톨 털어서 그 친구에게 주고 한달 거지로 살았었다.

나는 그런 경험 때문에,
공동체가 어떻게 서로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는가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는건 전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내 공동체의 모습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어떤 소그룹 성경공부를 할때,
어떤 친구가, 자기 여자친구에게 일어난 상당히 끔찍한 일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와 여자친구를 위해서 눈물로 함께 기도했다. 그 둘은 그 후에 결혼하고 잘 산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만큼 끔찍하고 아픈 일을 그렇게 나누며 기도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웬만한 나눔으로는 마음에 차질 않는다. –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는건 전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내 공동체의 모습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의 ‘리더그룹’이 경험했던 수준은 그 공동체의 기대수준을 정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2)

어떤 공동체가 되었건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관계’가 그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핵심이다.
사진 동호회는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그 핵심에 있다.
학교라는 공동체는 ‘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그럼,
교회는 그 핵심에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이 얼마나 우스운가? 당연히 예수님 아닌가.

그런데,
실제 교회들에서 하고 있는걸 보면 그게 그렇게 우습지 않다.
교회에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지 않아도 괜찮은 형식을 많이 취한다.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많이 대화하자,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서로 싸우지 말자,
우리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함께 놀러가기도 하고 봉사도 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자…

나는 이런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관계를 build-up 해나가는 것은 공동체 형성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님이 어디있는가 하는 것이 missing되어 있다면?

사진찍는 동호회에서는 궁극의 공통 관심사가 ‘사진’이어야 하듯이,
교회의 궁극의 공통 관심사는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복음, 하나님나라’이어야 한다.
그것 빼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foundation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교회에서 함께 하는 끈끈한 것이 부족하다면,
일차적으로 점검해야하는 것은 관계를 개선시키는 테크닉이 아니라,
복음이 정말 풍성한가 하는 것이어야 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