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3)

박 선배님,

제가 위에서 이야기한 것 이외에도, 제가 고지론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몇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고지론에는 노력과 성공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망가진 세상입니다. 앞에서도 제가 언급하긴 했지만, 성실하게 땀흘려 일한다고 그것에 비례해서 보상이 주어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물론 성실하게 땀흘려 노력하는데에, 보상이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개런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어떤이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시는 이는 하나님 임을 온전히 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낮아지기 위해서 높아져라, 섬기기 위해 고지를 정복하라 라고 이야기할때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성공을 신앙의 양심상, 혹은 하나님의 다른 부르심 때문에 포기해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더 공정할수록, 고지론은 더 맞는 이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악이 궁극적인 심판을 받는 그날이 오기 전, 노력이 성공을 담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지론은, 노력과 성공 사이에 하나님이 자리를 빼앗아 버리는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고지론이 갖는 가장 치명적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다른이들보다 높아지려는 죄악된 본성이 다루어지지 않은채로, 주를위해 높아져라 라고 외치는 것이 무책임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성공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한 이 세대 속에서, 성공과 안정이라는 세상이 주는 신기루에 이미 영혼을 팔아버리고 있는 이들이게… 고지를 점령해서 섬겨라 라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그저… 성공해라 라고만 해석되고 이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지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도가 정당하고 선한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앞에서 노력과 성공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아버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떤 의미에서 고지론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에게 해야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자, 이미 그렇게 고지를 점령했으니, 낮아져서 섬겨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제가 보고있는 대부분의 청년 학생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대상이 아닙니다.

저같은 resume를 가진 사람도 스스로 고지론이 맞지 않는 옷이라고 느끼는 마당인데, 과연 고지론이 맞아 떨어질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저 기독교를, 기득교로 만들어버리는 부작용을 불러오기 십상입니다.

오히려 고지를 점령하라 라는 형식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혹시 하나님께서 이미 고지로 불러놓으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에 헌신해라 라는 식으로, 즉 영역주권론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2)

박 선배님,

저 정도의 실력과 학력이면 한국에서 몇 퍼센트 안에 드는 사람일까요? 혹은 미국에서는요? 전 세계로 보면요?

저는 그게 소숫점 이하로 표현될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고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뭔가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물론, 소위 제 ‘눈’이 높아져서, 혹은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해서, 괜한 peer들과의 경쟁의식 때문에 이미 고지에 올랐음에도 고지에 오르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제가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소위 커리어 관리를 함에 있어 고지에 오르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할수도 있겠고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일정부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제 아버지 세대에 지금 저와 같은 resume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도 저처럼 느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아 이정도면 정말 꽤 안정된 고지구나 하고 느꼈을 가능성이 꽤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저는 그 이유를 다음의 두가지로 설명합니다.

첫번째는,

이 신자유주의적 흐름 속에서, 성공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비해서 성공이 주는 보상(reward)는 대단히 큽니다. 일단 대박이 터지만 정말 크게 터지죠.

그렇지만 그렇게 안정된 보상을 받는 그룹의 비율은 과거에 비해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다수는 소위 성공하지 못한 loser로 살게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의 reward가 크기 때문에 성공을 향한 다수의 갈망은 예전보다 더 크지만, 실제로 성공에 이르는 사람은 적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은, 거의 대대로 회생이 어려울 정도로 떨어지기도 하고요.

두번째는,

어차피 성공 혹은 고지의 개념은 대단히 상대적입니다. 

연봉 1억/10만불 이상은 고지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고지라는 것이 그저 그 주변보다 더 높은 지대가 고지 이듯이, 성공의 고지 역시 주변보다 더 높아진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 기준이 대단히 상대적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하바드 출신이 가지는/느끼는 고지의 기준은, 중졸학력의 사람이 가지는 고지의 기준과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지는 ‘지금보다 조금 더 높아진 위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성 때문이 그렇다고 할수도 있겠지요.

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1)

박 선배님,

오랜만에 연락을 드립니다. 안녕하신지요?

벌써 뵙지 못한지도 몇년이 지났습니다. 선배님께서 쓰시는 글들을 그저 인터넷에서 읽는 수준으로 선배님께서 여전하시구나 하는 것을 알고 지냈습니다. 여전히 선배님께서 열정적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최근,

선배님께서 인터넷에 고지론을 옹호하는 글들을 쓰신 것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 훌륭한 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지론적인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시는 선배님이시기에, 생각과 삶을 일치해서 살아가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선배님,

그렇지만 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뭔가 선뜻 선배님의 생각에 깊이 동의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을 또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님의 삶과 생각과 신앙과 도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제게 분명함에도 말입니다.

해서, 이 지면을 빌어 (screen 면이라고 해야하나요) 선배님에 대한 제 생각 몇가지를 말씀드려보려고 합니다.

우선, 제가 읽기에도 손이 좀 오그라드는… 읽은 사람 입장에서는 역겨울만한… 그런 내용들을 좀 한번 나열해보겠습니다 

저는, 모 특목고를 2년만에 마치고, 고3을 건너뛰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것도 입학 성적이 꽤 좋았습니다. 

그 명문대를 과수석으로 졸업했고, 대학때엔 전공과목에서 A0 받으면 실망, A- 받으면 절망하는 수준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그 후에는 저희 분야에서 소위 학교 순위로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미 동부의 모 공대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보통 저희 실험실에서 졸업하면서 논문 하나 낼까말까 수준인데, 저는 논문도 5개나 쓰고 나왔고, 그나마 그것도 지도교수 도움 없이 혼자 써서 낸 것들입니다.

고등학교때 IQ test를 했을때 나온 IQ는 155 였습니다.

지금은 소위 ‘최첨단’에 해당하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데, 제가 속한 팀은 이쪽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앞서가는 leading group입니다. 저는 그 속에서 소위 ‘핵심 멤버’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그냥 괜히 소위 resume만 번드르르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적어도 제 전문분야에 관한한, 저만큼 잘 훈련되고 갖추어진 사람을 사실 그리 많이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실력으로는 왠만한 상황에서 누구와 겨루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아… 제가 써놓고도 참 어이가 없습니다.-.-;  선배님은 저를 아시니까, 이해하실겁니다. 제가 무슨 어줍잖은 자랑하려고 이렇게 나열한게 아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황하게 제 resume를 다시 풀어서 쓴 이유는, 제가, 어찌보면 대단히 고지론적 위치에 있음을 설명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이런 내용을 거짓 없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렇다면… 과연 제가 ‘고지’에 선 사람일까요?

소위 resume 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저는 제가 ‘고지’에 선 사람이라고 별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안하는 것이 아니고 못하는 겁니다.)

그 이유를 두가지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제 socioeconomic class가 결코 ‘고지’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job security에 대한 걱정이 크고요, 10년후 뭐하고 사나 이런 고민도 많습니다. 공부를 오래하느라, 지금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데 아직 ‘내집’도 없습니다. 딸아이 하나 있는데, 그거 대학은 어찌 보내나 걱정도 크고요. 그저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고민을 그냥 하면서 삽니다. 회사에서 파는 점심 사먹는게 아까워서 싸구려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가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사회적 지위로 보더라도, 저는 그저 ‘회사원’ 혹은 ‘연구원’일 뿐입니다. 대단히 많은 이들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제 개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결코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제 신앙적 신념을 가지고 지금 제가 가는 길을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둘째, 저보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 역시 찌질이의 푸념이 아닙니다. 그냥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소위 ‘고지’에 가까운 환경에 가면 갈수록 그런 일종의 소외감은 더 큽니다. 왜냐하면 제가 접하는 사람들은 역시 또 peer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바드를 졸업하면, 동창이 모두 하바드 졸업생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비교대상은 하바드 졸업생이지요. 아니, 그러니까 하바드 간것 만으로도 이미 고지라고 생각해야하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신다면, 제가 위에 첫번째 이유로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

게다가, 저보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저보다 꼭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 이게 찌질하게 들리지 말아야 할텐데요… 저는 그 사람들을 결코 제 선망의 대상으로 두지 않습니다. 대학원때 제 officemate이었던 유태인 친구는 지금 최소 연봉 25만불을 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저는 그 친구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더 높은 고지에 올라선 친구들을 보면 소위 ‘운’이 좋거나, (실제로 첨단 학문쪽을 하다보면 ‘운’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이건 이쪽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면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아, 물론 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아니면 이미 가진 줄/빽이 좋거나, 이미 가진 자산(금전, 인맥 등)이 압도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잘나가는 기준을 보면… 그렇게 ‘공정하지'(fair)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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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4번에 걸쳐, 편지글 양식으로 고지론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편지글 양식으로 한 것은, 그래야 딱딱한 비판이 아니라 부드러운 대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였습니다. 

고지론 비판의 글이 아니라, 제 관점에서 바라본 고지론의 위치에 대한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바라기로는, 고지론 비판자들에게는 고지론을 ‘동지’로 여기게 되고, 고지론자들에게 역시 반고지론자들을 이해하는 tool을 제시하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이 댓글로 생각을 좀 나누어주시면 저도 제 생각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나와 회사 일 (6) – not-so-general-case

어떤 이들은 이 글을 읽으며 좀 disturb 될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실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하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잘 해낼 자신이 있다.

내가 모든 면에서 대단히 뛰어난 사람은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필요한 일들을 해 내는 것을 여러해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던 것 같다.

소위 ‘resume’ 상으로도 꽤 괜찮은 profile을 가지고 있고, 그 내용을 확신을 가지고 present할 자신도 있다.

많은 경우, 요즘 학생들을 보면 (뭐 학생만의 성향은 물론 아니지만서두….)

‘안정성'(security)에 완전히 목매는 것 같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 나라에의 헌신도,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도… 안정성의 우상 앞에 모두 포기해버리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소위 실력과 학벌이라는 무기를 바탕으로 일정의 ‘안정성’을 확보한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일까?

하나는, 나 스스로 안정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는 선택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하나는, 나름대로 확보된 안정성의 바운더리를 뛰어넘어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치를 추구하는 선택이다.

나는 두번째 선택을 한 것이다.

나는 이 선택이 결코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나 자신도, 지금 이 phase가 지나 어떤 시기에는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내게 주어진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을까?

당연히 No Way~ 이다. ^^

나는, 개인적 선택을 하면서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확신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실 수도 있지만, 어떤 선택을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 다른 길은 ‘잘못된 길’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것은 자주 매우 폭력적이 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은, 결코 일반적인 해답을 주는 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살아내는 한가지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정말 그야말로 하나의 case 일 뿐이다. ^^

나와 회사 일 (5) – 만약 이 일이 잘 안되면?

두어해 전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던졌던 적이 있었다.

여러가지 생각 끝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 삶이 의미 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한때는, 

내가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이 실패였던 적도 있었다. 한때는 다른이들의 인정인 적도 있었고, 어떤때는 만족없음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은 가장 내게 중요한 것은 ‘의미’ 혹은 ‘가치’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참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이 블로그에서 간간히 썼지만,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이 배웠고, 전문적인 지식도 많이 늘었고, 하다못해 영어도 늘었다!

나는 지금 내 위치에 있으면서 사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는 셈이다.

월급도 적은 편이고, 직위도 낮은 편이고…

지금 받는 보상도 낮지만, 기회비용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내가 우리 회사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가치’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일에 참 ‘가치’를 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때로는 타협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받아들일때도 있다.

하지면 여전히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직장이라는 세계에서 가치로 구현해낼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 만약 이 일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하나?

다음 직장을 잡거나 하는 건… 뭐 어떻게 될 것이다. 약간 복잡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silicon valley에서 이래저래 job을 잡을 수는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오신 것에대한 신뢰가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열심히 해온 것이 그냥 무너진다면…

그래도 내가 그걸 기꺼이 그냥 받아들이게 될까?

최근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 그래도 결국… 그것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한…

그분이 길을 열어주시지 않는 것을 내가 어떻게 불평하겠는가.

Well, it’s too bad that didn’t work out. But I’m sure He will lead me to the next chapter of my life.

아, 물론 우리회사 망하지 않았다! ^^

끝까지 되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가치를 위해서 싸워볼 생각이다!

혹시 지쳐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가면서, 

(이 싸움, 생각하면 전투의지가 불끈불끈솟구친다! ㅎㅎ)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balance를 가지면서 말이다.

나와 회사 일 (4)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나는 성경공부를 참 좋아한다.

개인 성경공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에게 성경을 풀어서 가르쳐주는 일이 참 좋다.

이런 저런 형태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 일이 참 소중하긴 하지만,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것을 제대로 시도하면서 살기 시작한 것은, 내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부터이니까, 불과 6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실리콘 밸리에서, 한국인인 내가, 엔지니어로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해서, 지난 몇년동안 참 많은 생각과 경험이 쌓여져왔다. 

함께 일하는 사람중 그리스도인이라고는, 내 고등학교 동창 ㄱㅎㅈ 군 한 사람 밖에 없지만, 이 직장은 이런 속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해나가고 그 가치를 발전시키는 아주 훌륭한 훈련의 장이 되어주었다.

정말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 그것을 누리는 것도 배웠다. 올바르지 못한 것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소중한 그러나 손상되기 쉬운 가치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고, 건강하지 못한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등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 때문에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많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경공부가 매우 중요하고, 나 역시 그것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역시 나 같은 평신도가 해야하는 중요한 일은, 역시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내는 일인 것 같다.

최근 출애굽기 후반부 말씀이 내 QT 본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여러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성소를 만드는 것이 기술되어 있다.

참 감동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자원해서 자신의 재능과 시간과 재물을 드리는 것이 나와 있는데… 그 자세한 내용/과정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지루할만큼 길게 기술되어 있다.

요 며칠 아침에 그 지루한(!) 본문을 묵상하느라 상당히 힘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들이 ‘아, 하나님을 위해서 멋지게 예배할 수 있는 facility를 만들자’라고 헌신하는 것은 잠깐이었겠지만… 정말 그 모든 것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길고 지루하고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보면서, 아…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곳에서 정말 제대로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고 기도하고 주먹 불끈 쥐고… 이것은 사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테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안되는 실험 몇번씩 다시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똑같은 내용 다시 설명하고, 이메일 몇십통씩 쓰고, 말 안통하는 사람과 몇십분씩 토론하여 그 사람을 설득하고 하는 지루한 일들은 정말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들이다.

지난 6년여의 우리 직장에서의 생활은, 

내가 진정한 의미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나와 회사 일 (3) – non-positional leadership

지금 내 회사에서의 직함은, Senior R&D Engineer 이다.

말하자면… 뭐 박사 막 받고나서 받는 거의 말단의 직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하는 일은,

회사 방향에 대한 결정, 기술개발, 대외관계 등과 같이 task가 주어진 일 뿐 아니라,

회사 내에서 사람들 관계를 이어주는 일, 격려하는 일 등과 같은 따로 task가 주어지지 않은 일까지도 하고 있다.

물론 실험실에서 장비 청소, 각종 sample 정리 등과 같은 완전히 노가다도 무지 많이 한다. ^^

내 공식적인 포지션으로만 보면, 뭐 그냥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실제로는 뭐랄까… 뭐 닥치는대로 회사에서 이일 저일을 다 한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물론 우리 함께 하는 사람들이 ‘title’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인 이유가 크지만,

나도 역시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내 ‘직함’을 높게 갖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우 애매한 상황도 많다.

사람들이 회사의 방향 등에 대해 내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공식적’으로 대답해줄 만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괜히 숨긴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그리고, 또 내 커리어 development 라는 차원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만일 내가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할 경우가 생기게 된다면… 나는 지금의 직함이 마지막 position이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받을 수 있는 직급보다 더 낮은 직급을 받게될 수도 있다. 

회사 내에서, 공식적으로 어떤 position을 갖지 않고 leadership을 행사하는 일은 여러가지로 쉽지 않다. 나는 그런 직함이 아니니까… 하고 그냥 내버려 두면 그 function에 구멍이 생기게 되고, 그렇다고 권위적으로 뭔가 일을 할수도 없고, 너무 나대거나 하면 사람들의 거부감을 사게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들을 늘 띄워주고, 내 업적을 내가 띄우는 일을 하지 않고, 함께 일한 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일을 반복해서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는 일을 많이 해야 하고, 때로 나는 invisible하게 만들어야 하기도 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늘 즐거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나같이 이기적이고 사리판단이 빠른 사람에게 있어, 내 이익 찾아먹는 것을 뒷전에 두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을 매일 해야하는 상황은, 그리 편하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런 상황에 두시고,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체득하도록.. 그래서 정말 내 second nature가 되도록 (N.T.Wright의 표현에 따르면) 훈련시키시는 것 같다.

혹시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내가 가진 functional leadership보다, 내 positional leadership이 더 높은 위치에 가게되는 일은 계속해서 없었으면 한다. 말하자면 내 자격이 안되는데 높은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회사 일 (2) – Security

Start-up company는 본질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지 못하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start-up company들은 ‘성공’을 맛보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아주 극소수만 소위 ‘exit’을 하게 된다.

나는 어릴때부터 아주 극단적으로 안정성(security)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까놓고 얘기하면… 참 겁이 많다. ^^

그나마 우리 삼남매 중에서 좀 더 용감한(?) 내 여동생이 세발자전거를 탈때, 나는 그거 타는게 무서워서 그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탈만큼 어려서부터 겁이 많았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내게 security를 가져다주는 가장 강력한 tool 이었다.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정서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렇게 계속 잘 해야하는 이유는, 그래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내게 계속 노력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러고 있다!

아마 내가 가진 신앙이 아니었다면 도무지 불가능했을 결정이고, 삶이다.

박사과정을 하는 중에는,

정말 너무 일이 안풀려서 우울증 초기증상을 보이기도 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피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장래에대한 불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위염, 천식등 여러 건강하지 못한 증상들이 심했었다.

포스트닥 기간중에,

너무 경제적으로 여려워서, 복권 기계 앞에서 울면서 기도해본 적도 있었다. ^^

이렇게 불안정해서야 도대체 어떻게…. 하는 생각에 정말 가슴을 찢어 기도했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차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서… 노심초사하는 나를 정말 소중하게 지켜주고 계셨던 것이 이제는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 내 재능을 신뢰하지 않는 법, 내 꿈을 접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법, 내 삶의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법 등을 참 깊이 배우게 되었다.

내가 미국에 와서 보냈던 이런 기간들은… 지금 내가 start-up company를 ‘누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앞으로 두어주 후에… job search를 다시 해야하는 상황이 될수도 있다.

아마 10년전의 나였다면… 지금 매일 잠도 못자고 힘들어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열심히, 아주 열심히 회사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passion과 peace를 가지게 되었다.

참…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사람 하나 사람 만드시려고 정말 노력 많이 하신 거다. ^^

지금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가끔 (솔직히 말하면 자주) 마음의 평안을 잃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본질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더 깊어만 간다.

겁이 많아서 세발 자전거도 못타던 소년을, 그래도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시지 않았나!

정말, 이렇게 해볼만 하다!!!

내가 정말 아끼는 후배들에게, 안정성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도록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나와 회사 일 (1) – introduction

Start-up company의 일원이 되어 일을 한다는 것이 뭐 당연히 그렇겠지만,

회사일이 참 많고 힘들다. ^^

뭐 세상에 나보다 힘들게 먹고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므로, 내 일이 힘들다고 요란을 떨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렇지만, 많은경우 몇달 후의 월급이 나올 수 있을지 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채고 일을 하는 때가 많고, 아 이렇게 회사가 그만 두게 되겠구나 싶을때도 겪게되고 하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꽤 critical한 point를 지내고 있는 중이다.

(뭐 늘 그래왔으므로… 지금이 더 그렇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양치기 소년 같이 들리겠지만… 뭐 하여간 그렇다.)

앞으로 두어주 남짓한 기간동안에, 어떤 결과를 내지 못하면 아마도 회사가 문을 닫게 될 지도 모르고, 만일 그 기간에 어떤 결과를 내면, 큰 돌파구를 내게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에 대해 몇번에 걸쳐 정리한 적이 있었다.

start-up company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찌보면 내 적성에 잘 맞지도 않고, 내가 꿈도 꾸어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그 일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매우 보람있게 느끼고 있고, 참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말도 다 할 수 없을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깨닫고 있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숙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회사로서 꽤 pivotal한 moment를 지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 현재 내가 그 가치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내가 어떻게 보면서 지내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 같이 생각이 된다.

앞으로 몇번의 글을 통해서, 내가 중간보고 (어쩌면 회사일이 잘 안되면 최종보고가 될지도 모르는 ㅋㅋ)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회사일에 대해 정리를 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내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말 stress 만빵 받고 있고, 많이 바쁘고, 어깨 무지 무겁고.. 몸은 지치고… 뭐 그렇지만, 이런 속에서 내가 꾸어보는 소망은 무엇인지, 내가 가지는 기쁨은 무엇인지 등등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참고로, 예전에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라는 시리즈의 글들은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woodykos.tistory.com/252

http://woodykos.tistory.com/253

http://woodykos.tistory.com/254

http://woodykos.tistory.com/255

http://woodykos.tistory.com/256

http://woodykos.tistory.com/260

http://woodykos.tistory.com/257

Control Freak (3)

Control Freak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의 근원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이다.

Typical한 예를 들자면 이런것이다.

운전을 10여년 잘 해오던 어떤 사람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차선을 바꾸기 전에 깜빡이를 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하자. 예전에는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지 않을때도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매번 매우 철저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이것 자체로는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practice를 생활화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control freak이라면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한다.

일단 깜빡이를 켜는 것이 차선을 바꿀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된다. 심지어는 사이드미러등을 동원해서 옆 차선을 미리 살피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쩌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면 죄책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다음에 차선을 바꿀 때에는 깜빡이를 켜는 것에 더 많이 집착한다.

뿐만 아니라,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사람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예전엔 신경도 안썼는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저렇게 깜빡이도 안켜는 족속들이 있다니… 정죄하기 시작하고, 그런 사람들이 미워진다. 

어쩌다 친구중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다시 평가한다.

깜빡이를 켜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다. 세상에는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는 좋은 사람과,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나쁜 사람의 두 부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

뭐 좀 과장을 하긴 했지만 이 과정 속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우월감’이다. 깜빡이를 켜는 것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그 사람을 바꾸거나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도 하다.

나는…. 전형적으로 이런 종류의 control freak인 것 같다. -.-;

내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내 안에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소중한 것일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이차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어떤 사람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옆 차선의 상태를 잘 살피느라 미처 깜빡이를 켜는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옆 차선을 잘 살피는 것과 깜빡이를 켜는 두가지의 ‘가치’ 사이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반드시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재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물론…

늘 그렇지만…

비뚤어진 우월감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은혜’ 이다.

내게 주어진 것이… 내게 값없이… 주어진 것이라면…

내가 deserve 하지 않은데 주어진 것이라면…

나는 내가 정죄하는 어떤 사람보다 결코 더 우월할 수 없다. 너무나 자명한 논리적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