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2 집회 후기 (4)

인디에서도, 시카고에서도…

실제로 학생들을 만났던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해준 것은 이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매년 코스타 집회에는,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온 사람도 있고, 

그저 문화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막상 복음을 접하고 나서보니 자신이 복음을 모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혹은 기독교에 대한 관심으로… 제발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매년 참석자의 대략 10% 정도가 복음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였다.

그런데,

최근 2-3년 전부터 그 통계가 맞지 않기 시작했다.

새로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밝히는 사람의 비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열정이 있는 강사들이나 조장들이,

끝가지 복음을 거부하는 학생들을 붙들고, 씨름하고, 기도하고, 토론하면서…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일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런 치열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왜 그럴까?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을 것 같다.

1. 더 이상 교회 혹은 기독 학생 모임 등에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복음을 알지 못하지만 기독교 공동체 안에 남아서 그 복음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이 사실상 거의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제대로 embrace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요즘 기독교의 이미지가 너무 나빠서… 웬만해서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2.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자기 친구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에게 구령의 열정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자신에게 편한 기독교 문화를 즐기며, 자신과 말이 잘 통하는 기독교인 친구들과 지내는 것을 누리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제의 끈 자체가 끊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그냥 끼리끼리만 노는 것이다.

3.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오기엔… 너무 등록비와 교통비가 비싸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이렇게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인당 사용해야 하는 돈이 500불-1000불 수준이다.

이래가지고서야, 그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손을 선뜻 써가면서 올 수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라기로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줄어든 이유가 세번째 것이라면 좋겠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3)

(오늘까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일부터는 내가 관찰하고 깨달은 것들, 다소 객관적인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이번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굳게 결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울지 말자’는 것이다.

내 아내가 너무 많이, 쉽게…

대중 앞에서 울지 말라고 충고를 해 주었고, 

그게 좋은 충고인 것 같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참지 못할 몇번 위기(?)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10명 이상이 모인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눈물을 보인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얼른 구석으로 숨어들어 보는 사람 거의 없는 곳에서 울었다. ^^

그렇게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많은 이들 앞에서 우는 것을 반복하면…

쉽게 내가 내 감정에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내 감정에 취하는 것은,

아주 쉽게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착각하기 쉽다.

내 감정에 취한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착각하면,

내 비뚤어진 생각이나 사려깊지 못한 행동등을 너무 쉽게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사실 이런 것은, 선동가형 설교가나 리더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잘못인 것 같다. including myself)

KOSTA/USA-2012 집회 후기 (2)

작년까지는,

내가 해야할 일이 일주일 동안 꽤 빡빡하게 주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꼭 해야하는 일이 그렇게 빡빡하게 주어지지 않은 첫해였다.

96년 처음 조장으로 참석한 이래, 주어진 일정이 빡빡하지 않았던 첫번째 코스타 집회였다!

(물론, 주어진 일정이 빡빡하지는 않았지만, 한가하지는 않았다. ^^)

원래 생각은, 일이 없어 한가할 시간에는 주로 중보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집회 현장에서는 나름대로 바쁜 일들이 있어 생각만큼 많이 기도하지 못했다.

게다가 처음으로 나는 인디 집회에 전반부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좀더 내게 익숙한 시카고를 떠나, 익숙하지 않은 인디에서, 딱 주어진 일도 없이 있다보니,

내가 예전에 일에 파뭍여 있을때 보지 못하던 새로운 관점에서 여러가지를 뵐 기회가 있었다.

내가 몸써서 일하는걸 정말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하는게 참 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일이 이제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회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매우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매우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들을 몸에 잘 쌓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뭔가 몸으로 하는 것에 뛰어들어 그들을 돕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득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몸쓰는 일로 지난 십수년을 보낸 나로서는,

그렇다면 이제 몸쓰지 않는 (혹은 몸 덜쓰는^^) 일을 찾아야한다.

어쩌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 집회 후반부에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그런 일들을 찾아서 좀 해 보았다.

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던가,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이라던가,

어른들과 일부러 좀 더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 뭐 그런 것들.

이런 것들이 정말 잘한 일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금년을 계기로 나도 뭔가 변신(?)을 해야 코스타에게, 그리고 코스타를 섬기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1)

올해 KOSTA/USA 집회는 여러모로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깨닫고, 뉘우치고, 결심하고, 고민하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것들을 다 이 blog에서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몇번으로 나누어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우선 첫번째로…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것.

나는 꽤 열심히 뛰는 편이다.

일주일에 20마일 정도 뛰는 것을 목표로 해서 뛴다.

그 목표를 맞출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별일 없으면.. 평균 대충 일주일에 20마일 정도는 뛴다.

그런데 한참동안 뛰는 것을 멈추면 몸이 찌뿌듯하고 영 좋지 않다.

그야말로 몸이 무거워지고, 쉽게 피곤해진다.

내겐, 기도가 딱 그렇다.

제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마치 내 영이 찌뿌드드드드드드… 하게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쉽게 영적인 피로를 느낀다.

그렇게되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이번에는, 

내가 테일러와 휘튼에서 그렇게 많이 바쁘게 시간을 보낼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기도실에서 보내겠다고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했던 것 만큼 많은 시간을 기도실에서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더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었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마치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다가 다시 운동을 할때와 같이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웬지 잘 발동이 안 걸리는 것 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도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렇지만 금요일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내 기도생활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깊이, 그리고 오래, 또 intensive하게 기도하는 것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KOSTA 집회에서, 만나고 감격하게 되는 이들 (4)

KOSTA 집회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사람들은 사실 대단히 많다.

소위 ‘자기 잔치’가 아닌데도… 마치 자신의 일인것 처럼 철저하고도 열심히 뛰는…

동역하는 이들.

오히려 정말 뒤에서 드러나지 않고 섬기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자기 돈 내고 와서 애만 보다가 가는 분들도 있고,

기도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일주일 내내 기도만 하는 분들도 있다.

매년 이 분들을 만나면서도…. 나는 도무지 이분들이 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은 이게 ‘내 일’ 이라고 생각하니까 한다고 하지만…

이 분들은 아니 무슨 정성으로 이럻게들 하시는 걸까?

하나님께서 정말 이 귀한 분들에게….

그렇게 섬기는 이들만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을 더 많이 공급해 주시길 기도한다.

아, 이렇게 쓰고보니 강사들이 별로 감사하지 않은 것 같이 되었는데…

물론, self-promotion, 뜨려고 코스타에 오는 강사들도 가끔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은… 자기 돈내고, 시간내고, 그야말로 abuse 당하기위해 오시는 귀한 분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물이 쑥 빠지도록 귀한 코스탄 학생들.

각자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가지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점검해보고 싶은…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싶은,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을 수도 있는 ㅎㅎ

한분 한분… 정말 눈물이 쑥 빠지도록 멋진 분들이다.

KOSTA 집회에서, 만나고 감격하게 되는 이들 (3)

KOSTA 집회에서 나를 감격케 하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정말 내가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간사들이다.

아침에 기도를 할때,

때로는 그저 이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때가 있다.

참 미련한 사람들이다.

조금 뺀질 거려도 될만도 한데…

자기 시간, 돈, 노력, 땀, 눈물을 다 들여가면서…

왕창 쏟아부어 헌신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할 줄 모른다.

별로 자격은 없는데, 

그저 오래 KOSTA에서 얼쩡거렸다고…

나이가 먹어 이제 

‘선배’가 되긴 했는데…

이 귀한 사람들에게 막상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늘 안타깝다.

다음주에도,

테일러과 휘튼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는 이들을 보며…

참 많이 울게 될 것 같다.

KOSTA 집회에서, 만나고 감격하게 되는 이들 (2)

KOSTA 집회에서 나를 감격시키는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리더들’이다.

96년에 처음 이 집회에 참석했을때, 나는 몹시 외롭고 지쳐있는 리더였다.

burn-out 되어 있었고, 이 싸움을 어떻게 계속 싸워야하나… 하는 심정이었다.

KOSTA 집회에 참석해서 나는 거의 통곡에 가깝게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이렇게 함께 한 소망을 품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한 목소리로 찬양을 할때도, 기도를 할때도, 함께 강의를 들을 때에도… 정말 많이 울었다.

결국 나는 KOSTA를 통해서 평생동역자 라고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사람들이 내게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어,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가… 하고 여길만큼 내게 존경하고 아끼고 신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매년 KOSTA 집회에 참석하면서,

나는 96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때론 어떤 이들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이 집회에 함께 데리고 온다.

그들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일수도 있고,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일수도 있고, 삶의 방향을 잡지못해 공허해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 리더들은, 그렇게 데리고온 자신의 친구/후배들에게서 집회 내내 눈을 떼지 못한다.

이 리더들의 눈물과 수고를 알기에…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꾸역꾸역 모여드는 그 마음을 알기에…

한편 짠~ 하면서도,

그들 속에서 소망을 발견하며 감격한다.

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7)

(추신)

제가 글을 써놓고 나서 생각해보니, 한가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아 덧붙입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주장과 생각이 그저 논리적인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사실 많은 경우 그것들은 우리의 경험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위 능력과 실력, 그리고 학력으로서 상당한 고지에 이르러 있지만 사회적 고지에 이르러 있지 않은 제 입장에서 보면,

실력과 능력, 그리고 학력으로서 최고지에 이르지 않았지만 사회적 고지에 이르러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고지론이 때로는 그저 naive 하게 보일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지론에 대한 이야기가 객관적인 주장이기 보다는 주관적인 경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70년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제 선배님 (고지론 원조 목사님을 비롯해서^^)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이제 21세기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저나 제 후배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다른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한 시대나 경험을 지내온 사람들이 다른 시대나 경험을 지내온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틀렸다’고 매도하는 것은 폭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의미에서 고지론자가 반고지론자를 적으로 여기는 것이라던가, 반고지론자가 고지론자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겠지요.

한때, 

제 후배들이 고지론에 열광하기도 하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고,

때로는 고지론에 상처받기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고지론자들에게 많이 분노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에서 고지론을 주장하시는 신실한 분들을 미워했던 제 자신의 잘못된 자세를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고지론자인 선배님께도,

다소 뜬금없지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고지론자는 아닙니다만,

고지론을 주장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은 제 적이 아니라,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라는 생각을… ‘이웃 또 다른 우리’라는 금년의 KOSTA 주제를 묵상하면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길고 지루한 편지글, 그리고 이 사족과 같은 추신까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5)

박 선배님,

그럼 사람들이 제게 많이 묻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삶의 방향은 어떤 것이냐고요.

옛날 같으면 고지를 차지했을 텐데,

나보다 실력 좋지 않은 아무개는 나보다 훨씬 잘 나가는데,

아, 내가 그때 진로를 이렇게 선택했어야 지금쯤 고지에 있는 건데,

이런 ‘찌질이’가 되어야 할까요?

혹은,

이 공정하지 못한 더러운 세상, 확 뒤집어 엎자!

하는 과격 분자가 되어야 할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실력에 비해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향은 다음의 몇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꾸준히 노력해서 나름대로 최상의 고지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고지를 차지하는 것 자체가 가지는 대단히 큰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아지는 것 자체가 죄라던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혀요.

자신의 삶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삶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고지’의 수준에 자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또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뭐랄까… 여전히 ‘고지론적 삶’ 이라고 할수는 있겠지요. 다만 modified 고지론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자족’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높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성실함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높아지는 것은 성실함으로부터 따라올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따라올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이미 고지라고 사람들이 여기고 있는 것을 따라가기 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개척해 가는 것입니다. 소위 ‘미답지론’이라고 이야기하는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황병구 본부장이 이 내용을 복음과 상황 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죠.

저는 처음 미답지론을 주장하는 그 글을 읽었을때, 아 참 좋은 얘기다… 하고 넘겼었는데요, 지금 제 삶을 보면 상당히 미답지론적인 삶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적어도 현재는 말입니다.

이미 고지라고 주어진 것중 하나를 선택하기 보다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영광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제 삶으로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후배들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적극적으로 고지를 거부하며 사는 삶입니다.

Mother Theresa와 같이 말입니다.

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4)

박 선배님,

뵙지 못한 동안, 제가 경험한 고지론의 영향이랄까… 제 경험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부를 꽤 잘 했을 뿐 아니라, 저는 공부를 참 좋아했습니다. 혼자서도 심심하면 전공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풀기도 했고, 이런 저런 새로운 실험을 접하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꽤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던 ‘모태 신자’였던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흔히 하는 이야기를 그냥 대충 받아들이고, 대외적으로 그것이 제가 공부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안정성을 확보하기위한 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지만요.

대학교 3학년때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러나, 제가 가지고 있던, 야망은 처절한(?) 해체를 경험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공부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고, 신앙은 아직 제게 열심히 살아야하는 이유를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관성 때문이었을까요… 공부는 계속 잘 할 수 있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한국에서 석사도 마쳤습니다. 그 이후 직장생활도 했고요.

소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을 공부하면서, 학문과 직업활동의 이유와 동기를 찾기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뭔가 잘 톱니바퀴가 잘 맞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는 시계와 같이 자주 저는 제 자신을 ‘손을 봐줘야’ 했었습니다.

제가 고지론을 처음 접한 것은 휘튼에서 열린 K 수양회였습니다.

저는 당시 동부의 명문 공대 M 학교에서 막 첫번째 퀄리파잉 시험을 합격한 직후였습니다.

정말 교과서에서만 보던 사람들의 손길과 발자취가 실험실마다 배어 있는 곳, 노벨상 수상자를 동네 아저씨 보듯이 볼 수 있었던 곳에서 저는, 아… 정말 여기서 제대로 열심히 해서 빛을 한번 내봐야 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고지론은 큰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정말 저 같은 사람에게 매우 잘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고지를 점령해서 유리한 싸움을 싸우고… 그 당시 ‘고지’를 향해 가는 제게 그야말로 불붙는 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도교수를 여러번 바꾸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 동기에 대해 많이 돌이켜보는 경험을 했고, 학업을 그만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석사학위 2개, 박사학위 1개를 받는동안 제 지도교수가 총 7명이었으니.. 정말 쉽지는 않았죠.

그러면서 제 심장 깊은 곳에 있는, 이기적인 동기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고, 대학교 3학년 이후 풀리지 않던 학문과 직업 할동의 동기에 대한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있음을, 그저 최상의 것을 추구하는 학교의 분위기, 성공을 갈망하는 세상적 욕심이 저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마치 초콜렛 코팅이 상한 케잌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이 고지론이 덮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지도교수는, 저희쪽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대충 5명 안에 드는 대가였습니다. 그래서 학회에서 제가 발표를 하거나 하면, 누구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제 talk에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었죠. 제가 전공한 분야가 소위 ‘오래된’ 분야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학문적 연구가 활발한 분야는 아니지만, 막상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분야, 나노 기술 분야에서 제 분야의 지식이 활용되지만, 막상 체계적으로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래서 제 지도교수는 각종 기업들로부터 많은 기술 자문 등을 요청받았고, 소위 expert witness 라고 해서, high-tech company늘 사이에 특허 분쟁이 붙었을때 전문가 의견을 내는 사람으로 많이 불려다니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자기 비행기도 있었으니까요. 그야말로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같아 보였죠.

그런데, 이런 제 지도교수로부터 제가 아주 반복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심한 ‘열등감’ (혹은 그 이면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우월감’) 이었습니다. 다른 연구 그룹에서 나온 논문을 보면서 그것을 깎아 내리면서 그 헛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아주 빤히 보이는 방식은 아닙니다. 아주 subtle하게… gentle하게… 소위 학문적 비평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 처럼 하면서…) 

말하자면 세계에서 top 5에 있는 사람인데… 자기가 그중 4-5등 쯤이 되면 어쩌나 하는 그런 우려를 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이분에게는 top 5에 있으면서 top 3 까지가 고지인데… 그거 안에 들어야 하는데 뭐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일수도 있겠죠.

아, 제 지도교수는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아주 인격도 좋으시고요, 참 친절하고, 참을성도 많고,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너그럽고… 절대로 소위 ‘괴수’라고 불리는 나쁜 교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졸업을 1년 정도 앞두었을때, 매일 아침 QT/기도를 하는 시간마다 아주 반복해서 제가 병들어 있음을, 세상의 가치에 오염되어 있음을, 특히 M 공대라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됨의 identity보다 M 공대 학생이라는 identity가 저를 지배하고 있음을 자꾸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니 이제 좀 알겠으니 그런 묵상좀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는데도, 자꾸만 그런 묵상만 이루어지는 경험을 몇달동안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차적 목적은,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으로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의 경쟁 자체가 모두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이차적이라는 것이지요.

고지중에서 최고의 고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고지 중에서 최고의 고지에 있는 (혹은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한 것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