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학 노선 (4)

지금 현재 내 신학 노선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그 색깔이 남아 있는 것은,
고백주의(confessionalism)적 경건주의(pietism)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조,
그리스도인은, 국가나 사회, 가정에 태어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되는 것이라는 것,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교리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개인 성경연구, 개인 기도, 경건의 시간 등을 갖는 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optional 한 것이 아니라 꼭 요구되는 것이라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강조가 내겐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내 일상 생활과 인격형성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학적 입장이 아닐까 싶다.

무릎꿇어 혹은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시간이 부족하면 마치 운동을 하지 않아 온 몸이 찌뿌드듯하게 굳어버린 것과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말씀 연구와 말씀 묵상을 하지 않으면 심한 갈증 혹은 영적 허기를 느끼기도 한다.

정말 내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나는 캘빈주의자다, 오순절주의자다… 등과 같은 단정적 기술을 할수는 없지만,
고백주의적 경건주의자다 라는 것에는 아마 꽤 자신있게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신학 노선 (3)

또 내 신앙에 깊이 영향을 끼친 신학 노선은,
오순절주의 전통이다.
특히, Azusa Street에서 있었던 부흥의 시기에 나타났던 일들에 참 관심이 많다.
부흥 운동의 결과로 인종의 벽이 무너지고, 성별의 벽이 무너졌던 일들 같은 것에 주목한다.

나 스스로 신비한 은사가 풍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영적 전쟁에 대한 awareness를 늘 가지고 있고,
성령의 능력을 입은 강력한 기도를 눌 꿈꾸고,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가 일어나는 기대를 갖곤 한다.
나 역시도 하나님께서 내게 어떠한 은사를 주실까 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있고,
하나님께서 어떤 공동체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지금도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특히,
한국에 있을때,
대천덕 신부님으로부터 받았던 영향이 컸다.
(비록 그분을 가까이에서 개인적으로 뵐 기회는 한번도 없었지만…)

기도모임을 한다거나,
좀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함께 모인 모임 등에서,
나는 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초자연적 증거를 기대해본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때가 물론 많이 있어도 말이다.

물론 일부 오순절주의자들의 다소 치우친 언행을 경계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현대에 일어날 수 있는 성령의 일하심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신학 노선 (2)

두번째로 내게 영향을 끼친 신학적 전통은 캘빈주의이다.

우선 일차적인 이유로는,
내가 처음 하나님을 이해하면서, ‘크신 하나님’ 이라는 개념이 나를 매우 강하게 흔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제한하거나 축소하는 것과 같아 보이는 어떠한 설명이나 입장도 내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내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중 많은 이들이 캘빈주의자이기 때문일 것 같다.
나는 꽤 오랜시간동안 Francis Schaeffer의 추종자였다.
그 이후에는 또 다시 오랫동안 Martyn Lloyd-Jones가 내 영웅이었고, 그분이 따르는 ‘청교도 신앙’에 깊이 빠졌었다.

15년쯤 전에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는 John Piper같은 사람에게 열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Christian Hedonism에서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갈망하고 누리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후에 점진적으로…
내가 신학적으로 캘빈주의를 바로 내 관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정리를 했지만…
(심지어 지금은 open-theism 조차도 상당히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니.. 정말 많이 변했다. ^^)
그래서 현재로서는, 내가 캘빈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그리 많이 않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가령,
기도를 할때라던가…
어떤 영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내가 여전히 캘빈주의 입장의 영향 아래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내 신학 노선 (1)

몇달 전이었다.
Woodland Hills Church의 Greg Boyd가 자신의 교회가 따르고 있는 신학적 노선에 대해 시리즈로 설교를 한적이 있었다.
경건주의적 노선, 오순절주의적 노선, 재침례파적 노선 등등을 설명을 했다.

그 설교들을 들으면서, 나도 내 신앙/신학의 노선을 지금쯤 한번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몇번의 글을 통해 그것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

내 신앙의 성숙도가 아직은 형편없고, 신학적 노선을 정리할만큼 지식이 풍부하지도 않으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가 coherent 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그래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고 싶다.

우선 첫번째로, 종교개혁의 전통.

내가 복음을 처음 받아들였을 때, 나를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았던 개념은,
“은혜로 얻는 구원” 이었다.
(Sola Gratia)

그리고 또 그 은혜로 이어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도 나를 흥분시켰다.
(Sola Fide)

그리고 바로 이어서, 성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성경에 빠졌었고,
(Sola Scriptura)

그러는 과정에서, 예수라는 분에게 내 마음이 온통 빼앗기게 되었다.
(Solo Christo)

그래서 내 삶의 모든 목표와 방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내용으로 급속히 재편되었다.
(Soli Deo Gloria)

물론,
내가 개신교회 속에서 믿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회심은,
공동체를 통한것이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라기 보다는…
혼자 성경을 읽다가 얻어진 것으므로, 소위 교회에서 일방적으로 이런 내용을 주입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신학적인 노선들을 접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신앙의 여러 과정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신앙의 가장 근본에는 이 종교개혁적 전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10)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flexible display를 개발하는 일이다.
아주 새로운 분야에서 아주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분야의 제품을 개발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eco-system”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flexible display를 만들기 위해서는, 휘어지는 기판(substrate)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substrate를 만드는 사람/회사가 없다.
그래서 포테이토칲 봉지 만드는 회사도 접촉해보고, 장판 만드는 회사도 접촉해 보면서… 그런데서 만드는 플라스틱 sheet가 쓸만한 것인지를 조사해본다.
그런데, 이런데서 플라스틱 sheet (substrate)을 가져다 쓰면 여러가지 defect(결함)가 많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품질의 display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한다.
여러 플라스틱 회사를 접촉해서, 한번 같이 해보지 않을래, 이런거 한번 해보라… 꼬시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고….
비슷한 제품 개발을 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에게, 이 기판을 만드는 일을 어떻게든 되게 함께 힘을 합쳐보자고 제안해보기도 하고…
그게 안되면, 기존에 수퍼마켓 비닐봉지 용 플라스틱을 가져다가 우리가 아예 가공을 해서 쓸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기도한다.

Flexible display를 만드는 일이 제대로 되더라도, 그 기술을 둘러싼 주변 환경 (eco-system)이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몇배 더 힘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flexible display를 만들려면, 주변 환경 / eco-system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KOSTA를 섬기다보면,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한국 교회는 급속히 쇠락해가고 있고,
건강한 목회자 그룹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렵고,
교인 일반 대중은, 바빌론 문화에 젖어, 거룩함을 잃어버렸고,
구 시대의 신학은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생각이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은 너무 지극히 소수이고,
늘 돈이 없어 힘들고,
운동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학생 대중은 지극히 위축되어 피동적이다.

KOSTA를 처음 시작했던 86년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복음주의의 전성기가 열리던 때였다.
다소 허술하긴 했지만, 건강한 eco-system이 있었고,
어두운 시대를 뚫고 돌진해 갈 수 있는 희망으로서의 복음의 빛이 강하게 보이던 때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
…
…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김교신 선생을 많이 생각했다.
외래종교로서 이 땅에 전래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독교인으로서…
그야말로 기독교인이라고 해야 한 줌 밖에 안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시대정신에 투항해버린 상황,
그나마 제대로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일제로부터 각종 탄압을 받고 있었고,
돈도,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이분은,
“조선을 성서 위에” 라는
어찌 보면 황당무계한 모토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 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졌다.

초대 교회는 어떠했던가.
당시 세계 최대, 최강의 제국이 작정하고 이 한줌밖에 안되는 신흥종교를 말살하겠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들은, 예수가 주(Lord)다! 라는 ‘황당무계한’ 신앙을 고집스럽게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졌다.

KOSTA를 둘러싸고 있는 eco-system은 참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더더욱, 어디선가 밝은 빛을 치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둡기 때문에 더 밝게 빛나게 된다.
누군가는 그 밝은 빛을 치켜 들기위해 과감한 희생과 헌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테일러와 휘튼에 모였던 사람들이 말씀에 결단하고, 흥에 겨워 찬양하고, 서로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는 소망의 근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내 헌신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되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9)

B 교수님과 나눈 대화는,

그야말로 청량제와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청량제 라기 보다는… 레드불 같았다고나 할까. ㅎㅎ)

그분을 책과 글, 그리고 아주 제한된 강의/설교 녹음 파일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개인적인’ 세팅에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매우 좋았다.

이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뭐랄까… 

‘도사’ 랄까… 그런 분위기를 많이 풍기셨다. ^^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열정적인 면이 있으셨지만,

그러나 대단히 포용력이 큰 시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꽤 깊이 있는 통찰로… 코스타 내면을 속속들이 파악해 내셨다. (매우 impressive 했다!)

미국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면서 생각하고 느끼신 것을 대충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 오기 전에는, 뭐랄까… 강남 기독교라고나 할까… 뭐 그런 분위기의 집회라고 생각했다. 명망가 목사님들에 의해 움직여 지는. 그런데 와서 보니… 생각했던것과는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

– 나는 큰 규모의 집회는 마음이 불편하다. 참석자들이 대중의 무명성 뒤에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알고 눈을 맞추며 하는 작은 그룹의 집회가 좋다. 그래서 처음에 미국 코스타 오는 것을 주저했었다. 

– 이 학생들이 이 비싼 등록비를 내고 와야하는 상황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한국의 교회나 이민 교회가 어떻게 좀 이 학생들을 support 할 방법이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무슨 교회, 아무개 목사, 무슨 교회, 아무개 목사는 좀 헌금 하느냐… 하는 식으로 꽤 구체적으로 물으셨다. ^^)

– 간사들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이 짐을 다 짊어지기에는 아직 벅찬 나이와 연륜의 사람들인데, 이걸 어떻게 좀 도와줄 방법이 없을지 고민이다. (그러면서, 간사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달라고 하셨다. 그 이름 보며 중보기도 하시겠다고.)

– 한국의 상황에서도, 30-40대에 아무개, 아무개 같은 애들…  참 잘 준비된 좋은 애들인데, 얘네들을 support해주는 구조가 없는게 늘 안타까웠는데, 여기 나와보니 딱 너희들이 그렇다.

뭐랄까…

소년 가장이,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데…

소년 가장 시절을 거쳐 이제 어른이 된 선배가 와서 손을 잡아 주면서… 어휴… 너희들 힘든거 보니 내 마음이 무너진다…이렇게 이야기하는…

뭐 그런 느낌의 대화였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이런 선배님 앞에서 한번 서럽게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나도… 속으로는… 이렇게 계속 섬기는게 힘들긴 힘들었던 거구나… 그런 생각도 문득 들면서.

만남이, 참 감사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8)

이번에 특별히 인상에 많이 남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인디에서의 숙소였다.

일종의 아파트 같은 형식의 숙소였는데,

방이 두개가 있는 unit 이었다.

한 방에는, 황*성, 강*인 두분이 묵었고,

우리 방에는 Shiker 간사님과 내가 묵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묶어 놓았으니… 

매일같이…

4시를 넘겨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

떠나오기 전날에는, 한 강사님께 내 침대를 드리고 내가 숙소를 옮기는 바람에,

일찍 자긴 했지만. ㅎㅎ

40대-50대의 아저씨들이,

여전히 만나면 열정을 가지고…

마음속의 전율과 흥분을 느끼며…

혹은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는 뭉클함도 느끼기도 하고…

날이선 토론에 열을 올리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 참 감사하기도 하다.

나는 이 아저씨들과의 대화 속에서,

부흥회 다~ 했다! ㅋㅋ

무엇보다도 그 바쁘신 와중에도… 내 룸메가 되어 주셔서 고생 많이하신 Shiker님께 특별한 감사를~ ^^

KOSTA/USA-2012 집회 후기 (7)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
작년에 A 선배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저녁집회 시간 하루를 빼먹고 전체집회 장소 바로 밖에서  오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통찰과 도움을 얻었지만, 그분과는 생각이 많이 다른부분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배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그분이 알고 따르는 주님을 나도 더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한편, 그분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다소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A 선배님이라는 큰 인물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분의 생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볼때마다 안타깝게 느끼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 A 선배님께서 올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분의 생각은 계속 많이 진화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진화한 이 분의 생각은 이제 기존에 이분의 생각이 품지 못하던 것까지도 품을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A 선배님과… 그분의 follower들을 보며…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을 했다.
…
또한 나는,
소위 ‘진보적 젊은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약간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이걸로 언제 시리즈의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
복음주의 좌파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할수도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가 바로 진보적 젊은 복음주의자 가운데 한명이고, 내가 복음주의 좌파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자세한 내용은 언제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다루어 보겠지만…
특별히 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불편한 것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복음에서… 복음의 인격성이 많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선언적, 사명적 복음이 강조되지만…
반면 인격적인 복음이 약화되는 것이 다소 불편하였다.
이번에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소위 ‘젊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리더격에 해당하는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야기하고 살아내는 복음은 내가 이분들의 글에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인격적이었다.
문제는 이 리더들을 따르는 follower들이 문제라고 할수 있겠다.
진보적 복음주의 리더들과 그 follower들을 보면서,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을 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6)

이번에는 양쪽 conference를 오갔기 때문에 집회가 주는 message가 어떠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13년만에, 코스타 세미나를 강의실에 들어가서 하나 들었던 것을 빼고는… (인디에서, 안 간사님이랑 함께 들어갔음. ^^)
실제로 집회 중에서 message를 제대로 다 들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체집회를 포함해서.
그렇지만,
비교적 많은 분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을 좀 갖을 수 있었다.
집회 후기에 대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은 것들이 될 것 같다.
우선 Urbana Director인 T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들 
정말, 말이 잘 통했다!
하고 있는 고민도 비슷한 것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했던 고민들 가운데 비슷한 것도 많았다.
아주 젊은 나이에 (나보다 3-4살 더 아래인 것 같은데…)
미국 Inter-varsity의 vice president 이고, 세계 최대의 학생 집회인 Urbana의 총 director이고, 로잔 커미티의 deputy director, Wycliffe Bible Translator의 vice-chair 등등… 그야말로 ‘이 바닥’에서 아주 핵심적인 leadership의 role을 많이 감당하고 있다.
인디와 시카고에서 이야기를 좀 나눌 기회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디에서 시카고로 이동하는 4시간 30분 정도 동안,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시절, 내 아내와도 잠깐동안 같은 교회에도 다녔던 것 같고,
mutual friend도 꽤 많았다.
내가 보스턴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결혼식도 했단다.
그리고 hp에서도 일한 적이 있었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 내 말이 그말이야… 하는 식으로 서로 공감을 할때가 많았다.
미국에서 younger generation을 복음으로 섬기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하는 것에 대해 내가 많이 물었고,
21세기의 선교동원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보았다.
나는 한국 기독교가 decline 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미국내에서 한국인 학생을 섬기는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선교 동원 차원에서는 어떤 impact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T는 그것을 매우 신중하게 들었다.
그리고 또한, 여러가지 신학적 동향, 새로운 신학의 방향과 학생 운동, 학생 사역, 선교 동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다.
참 똑똑한 사람이었고, 사려깊었다. 그리고 절제된 겸손함을 갖추고 있었고, shallow하지 않은 passion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 여러 사안에 대해 통찰도 깊었지만 그것을 쉽게 주장하지 않는 신중함도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의 커리어/삶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경험도 있고,
그것 때문에 그야말로 radical한 삶의 결정을 한 경험도 있었다.
T를 수요일 밤 늦게 보내면서, 그가 정말 신실하게 계속 섬기는 일을 잘 하도록 꼭 기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T를 이어 섬길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우리… 한국 복음주의 학생운동에겐 저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 걸까…
저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한국 복음주의로부터 어떤 support를 받고 있을까…
저런 사람이 우리 한국 복음주의의 토양에서는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앞으로 몇번의 글에서 더 언급될수도 있겠지만,
한국 복음주의가 사람을 제대로 길러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사람을 제대로 support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등이…
정말 아프고도 힘들게 나를 많이 눌렀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5)

학생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현장성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이것은 단순히 소위 ‘코스타 주체 즉’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집회를 통해서만 관찰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집회중 여러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스스로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현실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부류를 정리해 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중/대형교회 목회자

이들의 교회는 대부분 ‘별일 없이 산다, 난 별다른 걱정 없다’ mode이다. (장기하의 노래를 떠올리며 읽어보라. ㅎㅎ)

실제로 자기네 청년부도 보면 어느정도 모이고… 하는데 뭐가 문제냐… 뭐 이런 식으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들 교회의 청년부는 많은 경우, 중소교회의 청년부로부터 수평이동해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교회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 혹은 그 교회 문화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살아남고 있다.

오히려 이들 교회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 청년부는 잘 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위기감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나처럼 하면 청년들이 모이잖아. 그러니까 날 좀 따라해… 

뭐 이런 식의 자세를 많이 가진다.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상황 인식이다.

2. 중/소교회 목회자

이들에게는 대부분… 매우 안타깝게도… 학생/청년이 별로 없다.

(물론 코스타 집회 중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이들 중/소교회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1960-70년대식 신앙/신학을 가진 목회자들도 대단히 많다.)

그러니, 당연히 현장성이 있기 어렵다.

3. 오래된, 잘 섬기는(던) 학생 사역자

목회자일수도 있고, 평신도일수도 있다.

현재 학생사역을 나름대로 현재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과거에 잘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 방법은 먹힌다’는 일종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방법은… 먹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그들의 방법과 패러다임이 먹히는 사람의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그 능력이 뛰어난 리더들에게 더 크다.

왜냐하면, 그런 리더들은 출중한 능력(개인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게 되고, 따라서 현장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들은 1번에서 기술한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4. Exiled Leaders

이들은… 과거에 제도권 속에서 잘 섬기다가…

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말하자면 광야로 나간 사람들이다.

현재 어떤 지역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일이 없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현재의 상태’에 큰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 책을 읽으며, 상황 분석을 해보기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토론/모임등을 갖기도 하지만…

이들은 실제 field에서 학생들과 접하는 일들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이처럼, 학생들의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학생사역에 있어 큰 어려움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대개 나름대로 자신의 solution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대부분 어그러진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울때가 많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네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겸손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장이, 학생들이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현장과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겸손함은 그런 의미에서,

현장성을 갖게 하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싶다.

겸손한, 섬기는 리더가 더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