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4)

박 선배님,

뵙지 못한 동안, 제가 경험한 고지론의 영향이랄까… 제 경험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부를 꽤 잘 했을 뿐 아니라, 저는 공부를 참 좋아했습니다. 혼자서도 심심하면 전공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풀기도 했고, 이런 저런 새로운 실험을 접하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꽤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던 ‘모태 신자’였던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흔히 하는 이야기를 그냥 대충 받아들이고, 대외적으로 그것이 제가 공부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안정성을 확보하기위한 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지만요.

대학교 3학년때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러나, 제가 가지고 있던, 야망은 처절한(?) 해체를 경험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공부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고, 신앙은 아직 제게 열심히 살아야하는 이유를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관성 때문이었을까요… 공부는 계속 잘 할 수 있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한국에서 석사도 마쳤습니다. 그 이후 직장생활도 했고요.

소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을 공부하면서, 학문과 직업활동의 이유와 동기를 찾기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뭔가 잘 톱니바퀴가 잘 맞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는 시계와 같이 자주 저는 제 자신을 ‘손을 봐줘야’ 했었습니다.

제가 고지론을 처음 접한 것은 휘튼에서 열린 K 수양회였습니다.

저는 당시 동부의 명문 공대 M 학교에서 막 첫번째 퀄리파잉 시험을 합격한 직후였습니다.

정말 교과서에서만 보던 사람들의 손길과 발자취가 실험실마다 배어 있는 곳, 노벨상 수상자를 동네 아저씨 보듯이 볼 수 있었던 곳에서 저는, 아… 정말 여기서 제대로 열심히 해서 빛을 한번 내봐야 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고지론은 큰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정말 저 같은 사람에게 매우 잘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고지를 점령해서 유리한 싸움을 싸우고… 그 당시 ‘고지’를 향해 가는 제게 그야말로 불붙는 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도교수를 여러번 바꾸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 동기에 대해 많이 돌이켜보는 경험을 했고, 학업을 그만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석사학위 2개, 박사학위 1개를 받는동안 제 지도교수가 총 7명이었으니.. 정말 쉽지는 않았죠.

그러면서 제 심장 깊은 곳에 있는, 이기적인 동기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고, 대학교 3학년 이후 풀리지 않던 학문과 직업 할동의 동기에 대한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있음을, 그저 최상의 것을 추구하는 학교의 분위기, 성공을 갈망하는 세상적 욕심이 저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마치 초콜렛 코팅이 상한 케잌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이 고지론이 덮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지도교수는, 저희쪽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대충 5명 안에 드는 대가였습니다. 그래서 학회에서 제가 발표를 하거나 하면, 누구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제 talk에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었죠. 제가 전공한 분야가 소위 ‘오래된’ 분야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학문적 연구가 활발한 분야는 아니지만, 막상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반도체 제조분야, 나노 기술 분야에서 제 분야의 지식이 활용되지만, 막상 체계적으로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래서 제 지도교수는 각종 기업들로부터 많은 기술 자문 등을 요청받았고, 소위 expert witness 라고 해서, high-tech company늘 사이에 특허 분쟁이 붙었을때 전문가 의견을 내는 사람으로 많이 불려다니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자기 비행기도 있었으니까요. 그야말로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같아 보였죠.

그런데, 이런 제 지도교수로부터 제가 아주 반복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심한 ‘열등감’ (혹은 그 이면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우월감’) 이었습니다. 다른 연구 그룹에서 나온 논문을 보면서 그것을 깎아 내리면서 그 헛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아주 빤히 보이는 방식은 아닙니다. 아주 subtle하게… gentle하게… 소위 학문적 비평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 처럼 하면서…) 

말하자면 세계에서 top 5에 있는 사람인데… 자기가 그중 4-5등 쯤이 되면 어쩌나 하는 그런 우려를 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이분에게는 top 5에 있으면서 top 3 까지가 고지인데… 그거 안에 들어야 하는데 뭐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일수도 있겠죠.

아, 제 지도교수는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 아주 인격도 좋으시고요, 참 친절하고, 참을성도 많고,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너그럽고… 절대로 소위 ‘괴수’라고 불리는 나쁜 교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졸업을 1년 정도 앞두었을때, 매일 아침 QT/기도를 하는 시간마다 아주 반복해서 제가 병들어 있음을, 세상의 가치에 오염되어 있음을, 특히 M 공대라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됨의 identity보다 M 공대 학생이라는 identity가 저를 지배하고 있음을 자꾸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니 이제 좀 알겠으니 그런 묵상좀 그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는데도, 자꾸만 그런 묵상만 이루어지는 경험을 몇달동안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차적 목적은,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으로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의 경쟁 자체가 모두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이차적이라는 것이지요.

고지중에서 최고의 고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고지 중에서 최고의 고지에 있는 (혹은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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