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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실패

불쌍한 고양이가, 미끌~ 해서 실수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퍼온 짤방.

요즘과 같은 시대,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미끌어지는 것을 감수하며 jump 하는 일을 많이 해야만,

세상도 살고, 교회도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많이 하는데,

때로 신실한 사람들이 jump를 시도했다가 떨어져 심하게 다치는 것을 보거나,

골이 너무나도 깊어 (risk가 너무 커서) 신실한 사람들이 용기를 갖지 못하고 jump를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 시대를 어떻게 구원하려 하시는 걸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부르시면, 정말 나는 그렇게 jump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action’은 기도일까.

잘, 쉬었다~

지난 15년간, 코스타 관련 모든 모임은,

늘 기쁘고 감사한 것이었지만,

한편 늘 무언가 ‘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던 모임들이었다.

지난 주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모임에서,

난, 참 잘 쉬었다!

내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참 감사했다!

40대가 되어서 slow down 하다… (3)

이번에, 시카고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미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면서 내 옛날 모습을 다시 기억해 낼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

코스타 집회를 하면서…

가령, 전체 집회 시간에 강사가 엉뚱한 (말을 많이 순화시켜서 표현한 것임) 말을 하는 일이 생기거나 하면,

나는 정말 집회 장소 맨 뒤에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렸었다.

아니, 이 귀한 학생들을, 이렇게 모아놓고 저따위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그런 생각에서 였다.

일종의 분노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일차적인 이유는, 내가 좀 ‘포용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 싶다. -.-;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그것에 맞추어 세상의 것들을 재단하는 모습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렇지만,

그런 포용력을 얻으면서, 

쏟아야할 눈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성숙이라는 이름아래, 열정을 깎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40대가 되어서 slow down 하다… (2)

어제 글에 이어서 또 쓸 거리가 생각이 나서… 또 이렇게… ^^

40대에 들어서서 또 slow down 한 것 가운데 하나는, 

‘훈련’이다.

30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꽤 치열하게 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결국 어떻게든 사용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일상의 삶 속에서는 그저 그 훈련이 삶의 일부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서는,

훈련을 위한 훈련에 집중할 여유가 줄어들고, 

(혹은 그렇게 계속할 체력이 부족하게 되고 -.-;)

대신 달리면서, 실행하면서, 일하면서 배워나가는 비중이 높아지게 된 것 같다.

말하자면 실전 기술을 익히는 단계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훈련받고 성장하려는 치열함이 삶속에서 많이 없어져,

내가 많이 나태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초반에 훈련을 잠깐 주춤 했던 것에서…

다시 고삐를 죄어야 할 때인가.

40대가 되어서 slow down 하다…

40대가 된지 벌써 몇년이 지났다. 

40대가 되면서, 내 삶의 자세랄까, 그런 것을 다소 변경했다는 것을 최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계획적으로 그렇게 변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내 전공분야 이외에 다른 영역은, 내가 새로운 것을 찾아서 공부/연구하는 일을 많이 줄였다.

그것은, 신학적인 영역을 포함한다.

30대, 특히 30대 후반에는, 참 열심히 공부했었다. 전공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공부했던 것 같다. 그중에는, 어줍잖게 신학적인 것도 많이 공부하려 노력했던 것도 포함한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는…

우선, 내 전공과 관련해서 공부할 것이 참 많다. -.-;

대학교때 한 학기 배울 과목의 내용을 어떤땐 2주 만에 후다닥 이해하며 익혀나가야 하기도 하고…

여러 세팅에서,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과 어느정도 말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많다.

그리고 또 내가 하고 있는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따라가며 봐야 하고, 이쪽 industry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trend도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있지 않더라도, 앞으로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들도 열심히 보면서 공부해야 하고.

그리고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신학 전공자도 아니고, 전문 목회자도 아닌데…

목회와 신학에 관한 동향이랄까 그런걸 최첨단에서 따라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뭐 예전이라고 해서 최첨단에서 따라간건 아니었지만. ^^)

그래서,

40대에 들어서는… 사실,

신학서적을 읽는 양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 같다.

꼭 따라가며 익혀야하는 내용은, 그 책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듣거나, 그 저자가 대중강연을 한 것으로부터 digested version을 듣는 형식으로 취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띄엄띄엄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신앙/신학책도 무지 많이 읽고 그쪽 연구도 많이 하는줄 아는데…

사실 난 아는게 별로 없다. -.-;

그런데… 최근…

정말 내가 아는게 많지 않기 때문에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다시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이웃, 또 다른 우리 – 못다한 이야기들?

아직 양쪽 conference의 message들을 다 review해볼 시간이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주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좀 더 다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다.

1. 사랑없이 진리를 이야기하려 했던 것에 대한 반성

극단적이고 호전적인 근본주의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사랑으로 이야기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을 발생할 수 없음을 이야기했더라면…

이것은 지난번에 내가 일종의 선언문 형식으로 이루어 지면 좋겠다고 이 블로그에 썼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2. 연대성에 대한 강조

내가 소위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내가 ‘하나’임을 인식하고, 그 사람과 연대성을 깊이 깨닫고 인식하는 것이 이웃사랑에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이야기가 많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3. 실천적 결심

이웃사랑의 실천적 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기도 하고, 그런 단체들과 연결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한 실제적인 행동방안과 기도제목을 제시해주어 당장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이웃사랑을 제시해 주었더라면…

4. 복음이 이야기하는 자기 중심성으로부터의 탈피

나르시즘에 심취하는 세대에게, 복음이 자기 중심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요구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진로, 내 결혼 등의 기도를 이웃을 위한 기도로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등을 덧붙였더라면…

기타 몇가지가 더 있긴 한데…

이정도가 major한 point들이 아니었을까.

우리 동네 조장, 코디, 간사들 모임

지난 토요일,

우리 집에서, 이번에 수고한 조장, 코디, 간사들이 모였다.

여러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았고, 왔지만 이 사진에 찍히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가 모일 수 있었다.

4시 반에 모여서, 10시가 다 되기까지 먹고, 이야기하고, 웃고 놀았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10)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flexible display를 개발하는 일이다.
아주 새로운 분야에서 아주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분야의 제품을 개발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eco-system”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flexible display를 만들기 위해서는, 휘어지는 기판(substrate)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substrate를 만드는 사람/회사가 없다.
그래서 포테이토칲 봉지 만드는 회사도 접촉해보고, 장판 만드는 회사도 접촉해 보면서… 그런데서 만드는 플라스틱 sheet가 쓸만한 것인지를 조사해본다.
그런데, 이런데서 플라스틱 sheet (substrate)을 가져다 쓰면 여러가지 defect(결함)가 많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품질의 display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한다.
여러 플라스틱 회사를 접촉해서, 한번 같이 해보지 않을래, 이런거 한번 해보라… 꼬시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고….
비슷한 제품 개발을 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에게, 이 기판을 만드는 일을 어떻게든 되게 함께 힘을 합쳐보자고 제안해보기도 하고…
그게 안되면, 기존에 수퍼마켓 비닐봉지 용 플라스틱을 가져다가 우리가 아예 가공을 해서 쓸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기도한다.

Flexible display를 만드는 일이 제대로 되더라도, 그 기술을 둘러싼 주변 환경 (eco-system)이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몇배 더 힘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flexible display를 만들려면, 주변 환경 / eco-system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KOSTA를 섬기다보면,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한국 교회는 급속히 쇠락해가고 있고,
건강한 목회자 그룹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렵고,
교인 일반 대중은, 바빌론 문화에 젖어, 거룩함을 잃어버렸고,
구 시대의 신학은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생각이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은 너무 지극히 소수이고,
늘 돈이 없어 힘들고,
운동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학생 대중은 지극히 위축되어 피동적이다.

KOSTA를 처음 시작했던 86년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복음주의의 전성기가 열리던 때였다.
다소 허술하긴 했지만, 건강한 eco-system이 있었고,
어두운 시대를 뚫고 돌진해 갈 수 있는 희망으로서의 복음의 빛이 강하게 보이던 때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김교신 선생을 많이 생각했다.
외래종교로서 이 땅에 전래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독교인으로서…
그야말로 기독교인이라고 해야 한 줌 밖에 안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시대정신에 투항해버린 상황,
그나마 제대로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일제로부터 각종 탄압을 받고 있었고,
돈도,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이분은,
“조선을 성서 위에” 라는
어찌 보면 황당무계한 모토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 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졌다.

초대 교회는 어떠했던가.
당시 세계 최대, 최강의 제국이 작정하고 이 한줌밖에 안되는 신흥종교를 말살하겠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들은, 예수가 주(Lord)다! 라는 ‘황당무계한’ 신앙을 고집스럽게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졌다.

KOSTA를 둘러싸고 있는 eco-system은 참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더더욱, 어디선가 밝은 빛을 치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둡기 때문에 더 밝게 빛나게 된다.
누군가는 그 밝은 빛을 치켜 들기위해 과감한 희생과 헌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테일러와 휘튼에 모였던 사람들이 말씀에 결단하고, 흥에 겨워 찬양하고, 서로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는 소망의 근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내 헌신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되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9)

B 교수님과 나눈 대화는,

그야말로 청량제와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청량제 라기 보다는… 레드불 같았다고나 할까. ㅎㅎ)

그분을 책과 글, 그리고 아주 제한된 강의/설교 녹음 파일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개인적인’ 세팅에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매우 좋았다.

이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뭐랄까… 

‘도사’ 랄까… 그런 분위기를 많이 풍기셨다. ^^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열정적인 면이 있으셨지만,

그러나 대단히 포용력이 큰 시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꽤 깊이 있는 통찰로… 코스타 내면을 속속들이 파악해 내셨다. (매우 impressive 했다!)

미국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면서 생각하고 느끼신 것을 대충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 오기 전에는, 뭐랄까… 강남 기독교라고나 할까… 뭐 그런 분위기의 집회라고 생각했다. 명망가 목사님들에 의해 움직여 지는. 그런데 와서 보니… 생각했던것과는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

– 나는 큰 규모의 집회는 마음이 불편하다. 참석자들이 대중의 무명성 뒤에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알고 눈을 맞추며 하는 작은 그룹의 집회가 좋다. 그래서 처음에 미국 코스타 오는 것을 주저했었다. 

– 이 학생들이 이 비싼 등록비를 내고 와야하는 상황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한국의 교회나 이민 교회가 어떻게 좀 이 학생들을 support 할 방법이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무슨 교회, 아무개 목사, 무슨 교회, 아무개 목사는 좀 헌금 하느냐… 하는 식으로 꽤 구체적으로 물으셨다. ^^)

– 간사들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이 짐을 다 짊어지기에는 아직 벅찬 나이와 연륜의 사람들인데, 이걸 어떻게 좀 도와줄 방법이 없을지 고민이다. (그러면서, 간사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달라고 하셨다. 그 이름 보며 중보기도 하시겠다고.)

– 한국의 상황에서도, 30-40대에 아무개, 아무개 같은 애들…  참 잘 준비된 좋은 애들인데, 얘네들을 support해주는 구조가 없는게 늘 안타까웠는데, 여기 나와보니 딱 너희들이 그렇다.

뭐랄까…

소년 가장이,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데…

소년 가장 시절을 거쳐 이제 어른이 된 선배가 와서 손을 잡아 주면서… 어휴… 너희들 힘든거 보니 내 마음이 무너진다…이렇게 이야기하는…

뭐 그런 느낌의 대화였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이런 선배님 앞에서 한번 서럽게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나도… 속으로는… 이렇게 계속 섬기는게 힘들긴 힘들었던 거구나… 그런 생각도 문득 들면서.

만남이, 참 감사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8)

이번에 특별히 인상에 많이 남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인디에서의 숙소였다.

일종의 아파트 같은 형식의 숙소였는데,

방이 두개가 있는 unit 이었다.

한 방에는, 황*성, 강*인 두분이 묵었고,

우리 방에는 Shiker 간사님과 내가 묵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묶어 놓았으니… 

매일같이…

4시를 넘겨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

떠나오기 전날에는, 한 강사님께 내 침대를 드리고 내가 숙소를 옮기는 바람에,

일찍 자긴 했지만. ㅎㅎ

40대-50대의 아저씨들이,

여전히 만나면 열정을 가지고…

마음속의 전율과 흥분을 느끼며…

혹은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는 뭉클함도 느끼기도 하고…

날이선 토론에 열을 올리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 참 감사하기도 하다.

나는 이 아저씨들과의 대화 속에서,

부흥회 다~ 했다! ㅋㅋ

무엇보다도 그 바쁘신 와중에도… 내 룸메가 되어 주셔서 고생 많이하신 Shiker님께 특별한 감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