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2 집회 후기 (7)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
작년에 A 선배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저녁집회 시간 하루를 빼먹고 전체집회 장소 바로 밖에서  오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통찰과 도움을 얻었지만, 그분과는 생각이 많이 다른부분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배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그분이 알고 따르는 주님을 나도 더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한편, 그분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다소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A 선배님이라는 큰 인물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분의 생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볼때마다 안타깝게 느끼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 A 선배님께서 올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분의 생각은 계속 많이 진화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진화한 이 분의 생각은 이제 기존에 이분의 생각이 품지 못하던 것까지도 품을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A 선배님과… 그분의 follower들을 보며…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나는,
소위 ‘진보적 젊은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약간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이걸로 언제 시리즈의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
복음주의 좌파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할수도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가 바로 진보적 젊은 복음주의자 가운데 한명이고, 내가 복음주의 좌파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자세한 내용은 언제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다루어 보겠지만…
특별히 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불편한 것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복음에서… 복음의 인격성이 많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선언적, 사명적 복음이 강조되지만…
반면 인격적인 복음이 약화되는 것이 다소 불편하였다.
이번에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소위 ‘젊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리더격에 해당하는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야기하고 살아내는 복음은 내가 이분들의 글에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인격적이었다.
문제는 이 리더들을 따르는 follower들이 문제라고 할수 있겠다.
진보적 복음주의 리더들과 그 follower들을 보면서,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을 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6)

이번에는 양쪽 conference를 오갔기 때문에 집회가 주는 message가 어떠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13년만에, 코스타 세미나를 강의실에 들어가서 하나 들었던 것을 빼고는… (인디에서, 안 간사님이랑 함께 들어갔음. ^^)
실제로 집회 중에서 message를 제대로 다 들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체집회를 포함해서.
그렇지만,
비교적 많은 분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을 좀 갖을 수 있었다.
집회 후기에 대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은 것들이 될 것 같다.
우선 Urbana Director인 T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들 
정말, 말이 잘 통했다!
하고 있는 고민도 비슷한 것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했던 고민들 가운데 비슷한 것도 많았다.
아주 젊은 나이에 (나보다 3-4살 더 아래인 것 같은데…)
미국 Inter-varsity의 vice president 이고, 세계 최대의 학생 집회인 Urbana의 총 director이고, 로잔 커미티의 deputy director, Wycliffe Bible Translator의 vice-chair 등등… 그야말로 ‘이 바닥’에서 아주 핵심적인 leadership의 role을 많이 감당하고 있다.
인디와 시카고에서 이야기를 좀 나눌 기회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인디에서 시카고로 이동하는 4시간 30분 정도 동안,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시절, 내 아내와도 잠깐동안 같은 교회에도 다녔던 것 같고,
mutual friend도 꽤 많았다.
내가 보스턴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결혼식도 했단다.
그리고 hp에서도 일한 적이 있었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 내 말이 그말이야… 하는 식으로 서로 공감을 할때가 많았다.
미국에서 younger generation을 복음으로 섬기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하는 것에 대해 내가 많이 물었고,
21세기의 선교동원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보았다.
나는 한국 기독교가 decline 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미국내에서 한국인 학생을 섬기는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선교 동원 차원에서는 어떤 impact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T는 그것을 매우 신중하게 들었다.
그리고 또한, 여러가지 신학적 동향, 새로운 신학의 방향과 학생 운동, 학생 사역, 선교 동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다.
참 똑똑한 사람이었고, 사려깊었다. 그리고 절제된 겸손함을 갖추고 있었고, shallow하지 않은 passion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 여러 사안에 대해 통찰도 깊었지만 그것을 쉽게 주장하지 않는 신중함도 있었다.
나름대로 자신의 커리어/삶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경험도 있고,
그것 때문에 그야말로 radical한 삶의 결정을 한 경험도 있었다.
T를 수요일 밤 늦게 보내면서, 그가 정말 신실하게 계속 섬기는 일을 잘 하도록 꼭 기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T를 이어 섬길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기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우리… 한국 복음주의 학생운동에겐 저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 걸까…
저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한국 복음주의로부터 어떤 support를 받고 있을까…
저런 사람이 우리 한국 복음주의의 토양에서는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앞으로 몇번의 글에서 더 언급될수도 있겠지만,
한국 복음주의가 사람을 제대로 길러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사람을 제대로 support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등이…
정말 아프고도 힘들게 나를 많이 눌렀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5)

학생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현장성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이것은 단순히 소위 ‘코스타 주체 즉’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집회를 통해서만 관찰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집회중 여러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스스로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현실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부류를 정리해 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1. 중/대형교회 목회자

이들의 교회는 대부분 ‘별일 없이 산다, 난 별다른 걱정 없다’ mode이다. (장기하의 노래를 떠올리며 읽어보라. ㅎㅎ)

실제로 자기네 청년부도 보면 어느정도 모이고… 하는데 뭐가 문제냐… 뭐 이런 식으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들 교회의 청년부는 많은 경우, 중소교회의 청년부로부터 수평이동해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교회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 혹은 그 교회 문화를 그냥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살아남고 있다.

오히려 이들 교회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 청년부는 잘 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위기감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나처럼 하면 청년들이 모이잖아. 그러니까 날 좀 따라해… 

뭐 이런 식의 자세를 많이 가진다.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상황 인식이다.

2. 중/소교회 목회자

이들에게는 대부분… 매우 안타깝게도… 학생/청년이 별로 없다.

(물론 코스타 집회 중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이들 중/소교회 목회자들 가운데에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1960-70년대식 신앙/신학을 가진 목회자들도 대단히 많다.)

그러니, 당연히 현장성이 있기 어렵다.

3. 오래된, 잘 섬기는(던) 학생 사역자

목회자일수도 있고, 평신도일수도 있다.

현재 학생사역을 나름대로 현재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과거에 잘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 방법은 먹힌다’는 일종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방법은… 먹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그들의 방법과 패러다임이 먹히는 사람의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그 능력이 뛰어난 리더들에게 더 크다.

왜냐하면, 그런 리더들은 출중한 능력(개인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게 되고, 따라서 현장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들은 1번에서 기술한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4. Exiled Leaders

이들은… 과거에 제도권 속에서 잘 섬기다가…

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말하자면 광야로 나간 사람들이다.

현재 어떤 지역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일이 없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현재의 상태’에 큰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 책을 읽으며, 상황 분석을 해보기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토론/모임등을 갖기도 하지만…

이들은 실제 field에서 학생들과 접하는 일들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현실 인식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학생들의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학생사역에 있어 큰 어려움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대개 나름대로 자신의 solution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대부분 어그러진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울때가 많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네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겸손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장이, 학생들이 자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려 하기 보다는,

현장과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겸손함은 그런 의미에서,

현장성을 갖게 하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싶다.

겸손한, 섬기는 리더가 더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4)

인디에서도, 시카고에서도…

실제로 학생들을 만났던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해준 것은 이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매년 코스타 집회에는,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온 사람도 있고, 

그저 문화적으로 기독교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막상 복음을 접하고 나서보니 자신이 복음을 모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

혹은 기독교에 대한 관심으로… 제발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매년 참석자의 대략 10% 정도가 복음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였다.

그런데,

최근 2-3년 전부터 그 통계가 맞지 않기 시작했다.

새로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밝히는 사람의 비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열정이 있는 강사들이나 조장들이,

끝가지 복음을 거부하는 학생들을 붙들고, 씨름하고, 기도하고, 토론하면서…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일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런 치열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왜 그럴까?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을 것 같다.

1. 더 이상 교회 혹은 기독 학생 모임 등에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복음을 알지 못하지만 기독교 공동체 안에 남아서 그 복음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이 사실상 거의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제대로 embrace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요즘 기독교의 이미지가 너무 나빠서… 웬만해서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2.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자기 친구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에게 구령의 열정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자신에게 편한 기독교 문화를 즐기며, 자신과 말이 잘 통하는 기독교인 친구들과 지내는 것을 누리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제의 끈 자체가 끊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그냥 끼리끼리만 노는 것이다.

3.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오기엔… 너무 등록비와 교통비가 비싸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이렇게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인당 사용해야 하는 돈이 500불-1000불 수준이다.

이래가지고서야, 그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손을 선뜻 써가면서 올 수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라기로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줄어든 이유가 세번째 것이라면 좋겠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3)

(오늘까지는 내 주관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일부터는 내가 관찰하고 깨달은 것들, 다소 객관적인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이번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굳게 결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울지 말자’는 것이다.

내 아내가 너무 많이, 쉽게…

대중 앞에서 울지 말라고 충고를 해 주었고, 

그게 좋은 충고인 것 같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을 참지 못할 몇번 위기(?)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10명 이상이 모인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눈물을 보인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얼른 구석으로 숨어들어 보는 사람 거의 없는 곳에서 울었다. ^^

그렇게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많은 이들 앞에서 우는 것을 반복하면…

쉽게 내가 내 감정에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내 감정에 취하는 것은,

아주 쉽게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착각하기 쉽다.

내 감정에 취한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착각하면,

내 비뚤어진 생각이나 사려깊지 못한 행동등을 너무 쉽게 정당화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사실 이런 것은, 선동가형 설교가나 리더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잘못인 것 같다. including myself)

KOSTA/USA-2012 집회 후기 (2)

작년까지는,

내가 해야할 일이 일주일 동안 꽤 빡빡하게 주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꼭 해야하는 일이 그렇게 빡빡하게 주어지지 않은 첫해였다.

96년 처음 조장으로 참석한 이래, 주어진 일정이 빡빡하지 않았던 첫번째 코스타 집회였다!

(물론, 주어진 일정이 빡빡하지는 않았지만, 한가하지는 않았다. ^^)

원래 생각은, 일이 없어 한가할 시간에는 주로 중보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집회 현장에서는 나름대로 바쁜 일들이 있어 생각만큼 많이 기도하지 못했다.

게다가 처음으로 나는 인디 집회에 전반부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좀더 내게 익숙한 시카고를 떠나, 익숙하지 않은 인디에서, 딱 주어진 일도 없이 있다보니,

내가 예전에 일에 파뭍여 있을때 보지 못하던 새로운 관점에서 여러가지를 뵐 기회가 있었다.

내가 몸써서 일하는걸 정말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하는게 참 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일이 이제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회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매우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매우 기쁨으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들을 몸에 잘 쌓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뭔가 몸으로 하는 것에 뛰어들어 그들을 돕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득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몸쓰는 일로 지난 십수년을 보낸 나로서는,

그렇다면 이제 몸쓰지 않는 (혹은 몸 덜쓰는^^) 일을 찾아야한다.

어쩌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카고 집회 후반부에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그런 일들을 찾아서 좀 해 보았다.

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던가,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이라던가,

어른들과 일부러 좀 더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 뭐 그런 것들.

이런 것들이 정말 잘한 일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금년을 계기로 나도 뭔가 변신(?)을 해야 코스타에게, 그리고 코스타를 섬기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KOSTA/USA-2012 집회 후기 (1)

올해 KOSTA/USA 집회는 여러모로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깨닫고, 뉘우치고, 결심하고, 고민하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것들을 다 이 blog에서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몇번으로 나누어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우선 첫번째로…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것.

나는 꽤 열심히 뛰는 편이다.

일주일에 20마일 정도 뛰는 것을 목표로 해서 뛴다.

그 목표를 맞출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별일 없으면.. 평균 대충 일주일에 20마일 정도는 뛴다.

그런데 한참동안 뛰는 것을 멈추면 몸이 찌뿌듯하고 영 좋지 않다.

그야말로 몸이 무거워지고, 쉽게 피곤해진다.

내겐, 기도가 딱 그렇다.

제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마치 내 영이 찌뿌드드드드드드… 하게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쉽게 영적인 피로를 느낀다.

그렇게되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이번에는, 

내가 테일러와 휘튼에서 그렇게 많이 바쁘게 시간을 보낼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기도실에서 보내겠다고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했던 것 만큼 많은 시간을 기도실에서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더 많은 기도를 할 수 있었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마치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다가 다시 운동을 할때와 같이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웬지 잘 발동이 안 걸리는 것 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도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렇지만 금요일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내 기도생활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깊이, 그리고 오래, 또 intensive하게 기도하는 것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