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
작년에 A 선배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저녁집회 시간 하루를 빼먹고 전체집회 장소 바로 밖에서 오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통찰과 도움을 얻었지만, 그분과는 생각이 많이 다른부분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배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그분이 알고 따르는 주님을 나도 더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한편, 그분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다소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A 선배님이라는 큰 인물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분의 생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볼때마다 안타깝게 느끼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 A 선배님께서 올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분의 생각은 계속 많이 진화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진화한 이 분의 생각은 이제 기존에 이분의 생각이 품지 못하던 것까지도 품을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A 선배님과… 그분의 follower들을 보며…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을 했다.
…
또한 나는,
소위 ‘진보적 젊은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약간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이걸로 언제 시리즈의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
복음주의 좌파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있다고 할수도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가 바로 진보적 젊은 복음주의자 가운데 한명이고, 내가 복음주의 좌파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자세한 내용은 언제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다루어 보겠지만…
특별히 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에게서 불편한 것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복음에서… 복음의 인격성이 많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선언적, 사명적 복음이 강조되지만…
반면 인격적인 복음이 약화되는 것이 다소 불편하였다.
이번에 한국 복음주의권에서 소위 ‘젊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리더격에 해당하는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야기하고 살아내는 복음은 내가 이분들의 글에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인격적이었다.
문제는 이 리더들을 따르는 follower들이 문제라고 할수 있겠다.
진보적 복음주의 리더들과 그 follower들을 보면서, 오야붕과 꼬붕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