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2012 집회 후기 (10)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flexible display를 개발하는 일이다.
아주 새로운 분야에서 아주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분야의 제품을 개발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eco-system”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flexible display를 만들기 위해서는, 휘어지는 기판(substrate)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substrate를 만드는 사람/회사가 없다.
그래서 포테이토칲 봉지 만드는 회사도 접촉해보고, 장판 만드는 회사도 접촉해 보면서… 그런데서 만드는 플라스틱 sheet가 쓸만한 것인지를 조사해본다.
그런데, 이런데서 플라스틱 sheet (substrate)을 가져다 쓰면 여러가지 defect(결함)가 많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품질의 display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한다.
여러 플라스틱 회사를 접촉해서, 한번 같이 해보지 않을래, 이런거 한번 해보라… 꼬시기도 하고, 부탁하기도 하고….
비슷한 제품 개발을 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에게, 이 기판을 만드는 일을 어떻게든 되게 함께 힘을 합쳐보자고 제안해보기도 하고…
그게 안되면, 기존에 수퍼마켓 비닐봉지 용 플라스틱을 가져다가 우리가 아예 가공을 해서 쓸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기도한다.

Flexible display를 만드는 일이 제대로 되더라도, 그 기술을 둘러싼 주변 환경 (eco-system)이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몇배 더 힘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flexible display를 만들려면, 주변 환경 / eco-system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KOSTA를 섬기다보면,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일반적으로… 복음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한국 교회는 급속히 쇠락해가고 있고,
건강한 목회자 그룹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렵고,
교인 일반 대중은, 바빌론 문화에 젖어, 거룩함을 잃어버렸고,
구 시대의 신학은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생각이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은 너무 지극히 소수이고,
늘 돈이 없어 힘들고,
운동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학생 대중은 지극히 위축되어 피동적이다.

KOSTA를 처음 시작했던 86년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복음주의의 전성기가 열리던 때였다.
다소 허술하긴 했지만, 건강한 eco-system이 있었고,
어두운 시대를 뚫고 돌진해 갈 수 있는 희망으로서의 복음의 빛이 강하게 보이던 때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김교신 선생을 많이 생각했다.
외래종교로서 이 땅에 전래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독교인으로서…
그야말로 기독교인이라고 해야 한 줌 밖에 안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시대정신에 투항해버린 상황,
그나마 제대로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일제로부터 각종 탄압을 받고 있었고,
돈도,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이분은,
“조선을 성서 위에” 라는
어찌 보면 황당무계한 모토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 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졌다.

초대 교회는 어떠했던가.
당시 세계 최대, 최강의 제국이 작정하고 이 한줌밖에 안되는 신흥종교를 말살하겠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들은, 예수가 주(Lord)다! 라는 ‘황당무계한’ 신앙을 고집스럽게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졌다.

KOSTA를 둘러싸고 있는 eco-system은 참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더더욱, 어디선가 밝은 빛을 치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둡기 때문에 더 밝게 빛나게 된다.
누군가는 그 밝은 빛을 치켜 들기위해 과감한 희생과 헌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테일러와 휘튼에 모였던 사람들이 말씀에 결단하고, 흥에 겨워 찬양하고, 서로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지는 소망의 근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내 헌신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