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론자 선배님께 드리는 편지 (3)

박 선배님,

제가 위에서 이야기한 것 이외에도, 제가 고지론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몇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고지론에는 노력과 성공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망가진 세상입니다. 앞에서도 제가 언급하긴 했지만, 성실하게 땀흘려 일한다고 그것에 비례해서 보상이 주어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물론 성실하게 땀흘려 노력하는데에, 보상이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개런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어떤이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시는 이는 하나님 임을 온전히 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낮아지기 위해서 높아져라, 섬기기 위해 고지를 정복하라 라고 이야기할때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성공을 신앙의 양심상, 혹은 하나님의 다른 부르심 때문에 포기해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더 공정할수록, 고지론은 더 맞는 이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악이 궁극적인 심판을 받는 그날이 오기 전, 노력이 성공을 담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지론은, 노력과 성공 사이에 하나님이 자리를 빼앗아 버리는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고지론이 갖는 가장 치명적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다른이들보다 높아지려는 죄악된 본성이 다루어지지 않은채로, 주를위해 높아져라 라고 외치는 것이 무책임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성공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한 이 세대 속에서, 성공과 안정이라는 세상이 주는 신기루에 이미 영혼을 팔아버리고 있는 이들이게… 고지를 점령해서 섬겨라 라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그저… 성공해라 라고만 해석되고 이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지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도가 정당하고 선한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앞에서 노력과 성공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아버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떤 의미에서 고지론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에게 해야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자, 이미 그렇게 고지를 점령했으니, 낮아져서 섬겨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적어도 제가 보고있는 대부분의 청년 학생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대상이 아닙니다.

저같은 resume를 가진 사람도 스스로 고지론이 맞지 않는 옷이라고 느끼는 마당인데, 과연 고지론이 맞아 떨어질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저 기독교를, 기득교로 만들어버리는 부작용을 불러오기 십상입니다.

오히려 고지를 점령하라 라는 형식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혹시 하나님께서 이미 고지로 불러놓으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에 헌신해라 라는 식으로, 즉 영역주권론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