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이렇게 들들 볶으시는 겁니까!

박사과정 중에…
정말 일이 잘 안풀릴때…
도대체 왜 이렇게도 나를 들들 볶으시는거냐고 하나님께 참 많이 따졌던 것 같다.

이렇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해보는데,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딴지를 거시느냐고.

그러나,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 마음의 깊은 계곡에까지 내려가게 하시고서는…
그곳에서 나를 만나주시는 경험을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어려움, 좌절, 고난, 아픔, 절망, 실망, 안타까움, 두려움등등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데,
그것이 가볍게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설교 시리즈

나는 설교를 전문적으로 하는 설교가는 물론 아니고,
안수를 받은 목사님은 더더욱 아니지만…

가끔 한번씩은…
말씀을 묵상하다가, 책을 읽다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아니면 그저 혼자서 조깅을 하다가…
3주짜리, 6주짜리, 혹은 10주짜리 설교 시리즈 같은 것이 한꺼번에 떠오를때가 있다.
처음 그런 urge를 느꼈던 것은 아마 97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주 가끔은, 그런 inspiration이 너무 몰려들어와서…
나도 주체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처음 그런 urge를 느꼈을때는, 혼자서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혼자 말씀을 정리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말씀을 전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하기도 했고.

사실 지난달 말경에 그런 시기를 지냈었다.

예전같으면 떠오른 생각들을 정신없이 적어두기도 하고,
얼른 책이나 성경을 펴서 내용을 refine하는 일을 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그저 “let it go”를 해보기로 작정 했었다.

그런 강한 ‘urge’를 느낄 때, 그것을 가지고 꼭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겠다고 작정하는 내 모습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것을 그저 let go 할때 내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그 ‘내용’은 머리에 남았는데…
그 ‘뜨거움’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이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갈라디아서 2장 묵상

요즘 갈라디아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2장을 연구하고, 묵상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 있는 장이어서 특별히 마음을 많이 쏟아 본문을 보게 되었는데…

바울이 자신의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그리고 ‘새로운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잘 비교가 되었다.

New Perspective를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는냐를 떠나서,
예수 이전의 바울 자신과 예수 이후의 바울에 대한 명확한 대비가 나타나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강하게 비판을 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옛 모습’에 대한 뼈아픈 고백이기도 한 것이었다.

비판이 힘이 있으려면,
그 비판이 자신의 아픈 고백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자기 자신에 대한 아픈 고백을 바탕으로 터져나온,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고백이 바로
갈라디아서 2:20 이 아닐까 싶다.

갈라디아서 2:20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글 재주가 짧아.. 그 말씀을 읽으면서 다가왔던 충격과 감동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