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특징

지난 주일에 우리 교회의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중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모든 아시아 사람들만 보면 무조건 중국말로 이야기를 해요. 미국에서도요. 우리는 보통 영어로 먼저 물어보고나서 조심스럽게 당신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본 후에야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데 말이죠.

정말 그렇다. 미국에서도 중국 사람들은 거의 무조건 다짜고짜 중국말을 한다.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미국 사람도 어딜 가든지 무조건 영어로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바로 제국의 특징이지요.

….

내가 편하게 느끼는 것을 상대가 편하게 느낄 것이라고 여기는 것,
어떤 집단의 내부논리가 외부에서도 당연히 통용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
제국의 특징이다.

현대에, 미국과 한국에서 만나는 기독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 내가 하고 싶던 얘기가 바로 그거야!

Richard Hays의 Reading Backward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을 보면 딱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정말 하고싶던 얘기가 바로 이거야!

혼자서 신구약을 연결시키는 나름대로의 해결점을 나는 Hays가 제시하는 방식으로 찾아서 나 혼자 쓰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신약에 일어난 event를 바탕으로 구약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걸 Hays는 reading backwards 라고 표현을 했다.)

나는 흔히 ‘typology’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구약을 읽는것이 사실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그리고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한 것을 보면 상당히 out of context로 인용해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예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건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Richard Hays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식은 이런 어색함들을 상당히 제거해준다.

내가 성실한 블로거라면 이 내용을 좀 상세하게 풀어서 써야 할텐데…
음, 당장은 시간이 없으니…
혹시 이런 성경읽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성경연구를 좀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학교와 놀이터

가만히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그렇게 숨막히는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솔직히 나는 중학교때까지는 숙제하는 것 말고는 공부를 별로 안했다. ^^
예습 복습 그런건 학기초에 3일 정도만 시도하다가 말았다. ㅋㅋ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정말 열심히 놀았고, 그렇게 놀아도 그냥 꽤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공부를 안했으니까.

나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인 연합고사도,
대학 입학시험인 학력고사도 보지 않았다.
연합고사나 학력고사준비를 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대학이후에도 그냥 열심히 하긴 했지만 숨이 막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고.

게다가 나는 과외가 금지된 시대에 학교를 다녔다.
82년에 중학교에 입학해서 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싸그리 과외를 못하는 시대였다.
(그 속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걸 나중에 알게되긴 했지만.)

내가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나는 학교가 숨막힌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녔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학교는 내게 늘 ‘놀이터’였다. 심지어는 일이 술술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나로서는 참 감사한 일이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감사한지 모르고 지냈지만…

민우를 대학교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왔다.
민우는 고등학교시절을 많이 답답해 했다. 숨이 막힌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숨막히는 시절을 보내보지 못한 나는 민우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민우에게 미안하다.

민우가…
새로운 환경에서 정말 잘 놀기를 바란다.
그 캠퍼스가 민우에게 ‘놀이터’가 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트럼프를 보면서 생각하는 것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
미국 대통령에 투표할 자격이 내겐 없지만, 아마 세상이 두쪽이 나도 트럼프에게 내 표를 던지진 않았을 거다.
지금도 트럼프의 말이나 행동이 꼴보기 싫을 때가 정말 많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적어도 트럼프는 정치자금을 누가 더 주느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덜 할테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 사회에 어떤 균열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Wall street에 가장 적게 영향을 받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정말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그래 보인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Wall street을 개무시하고 정치를 하는 것 같다.

한편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살짝 ‘통괘'(?)하게 느껴질때도 있다.
세상에 Wall street을 개무시라니…
아마 Clinton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Wall street을 개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의 시즌을 보면…
진보와 보수 중에서 누가 이기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나은 세상을 만들까라는 차원에서 보게되기 마련인데..
그래서 진보는 보수를 적으로 생각하고 보수는 진보를 적으로 생각하고 싸우게 되는데…
사실 정말 싸워야하는 대상은 보수와 진보싸움의 밖에 존재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과 전 세계를 진정한 의미에서 지배하고 있는 Wall street의 강한 기득권을 건들지 않고,
진보와 보수라는 frame에서 싸우는게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되어버렸는데…
그런데 트럼프는 매우 불쾌한 방식으로 그 기득권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의 국민들은 somehow 그 트럼프를 계속해서 지지하고 있고.)

정치적 진보나 정치적 보수를 광적으로 지지하여 그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일수도 있다는 생각.

잠 못 이루는 밤

지금은 아침 5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뒤척이다가 1시쯤 잠이 들었는데, 4시반쯤 눈이 떠졌다.

오늘 나름대로 내 스케줄이 빡빡해서 좀 더 자야하는데…
배가 고파 그런 걸꺼야.
괜히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어본다.

내 전화에 담겨져 있는 음악을 틀고 그걸 들으며 잠을 청해보는데 다시 잠이 잘 오질 않는다.

민우 방 문을 열고 빼꼼 들어다보니 민우는 정신없이 자고 있다.
늘 그렇듯 이불을 덮는듯 마는듯 그렇게 자고 있다.
나는 민우가 이렇게 자는 모습 보는걸 좋아한다.
벌써 스무살이 다된 딸이지만 이렇게 민우 방에 밤에 들어가 이불도 엎어주고 이마에 뽀뽀도 해주곤 한다.

내일부터는 민우가 여기서 이렇게 자는 모습을 이렇게 밤에 볼수가 없구나…

오늘은 우리가 민우를 데리고 아틀란타행 비행기를 탄다.
민우는 이제 대학생이 된다며 한참 신이 나 있다.
나도 좋은건 맞는데… 그런데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애꿎은 시리얼만 또 먹는다.

(내일부터 주말까지 블로그 잠깐 쉽니다.)

믿음이 좋을 수 있는 성격 –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믿고 살기

나는 진심으로 기독교인이 되기에 좋은 성품/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나는 그런 성품/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격은 정말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된 나로서는,
믿음을 잘 가지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믿어야하는 고역(?)을 계속 해야만하는 거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 나중에 이건 꼭 따져보고 싶다. 왜 이렇게 믿기 어려운 성격을 가지고 믿으라고 하셨는지.

지난 2~3년동안 내가 계속 반복해서 묵상하고 생각하는 중요한 theme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없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 이다.

도무지 그냥 생각하기로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니 혹시 하나님이 어딘가 계시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나와/우리와 함께 하시다고 믿어지질 않는데,
그런데 그분을 믿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믿고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 역시 누군가와 좀 깊게 나누어보면 좋겠다 싶기도 한데…
다들 관심이 없으니 혼자서만 끙끙 하고 있을 뿐이다.

Not so much motivated…

회사에서 최근에 큰 일들이 좀 터지고 있다.
나는 보통 회사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내가 온힘을 다해서 그것들을 해결하고 그 공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스타일로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나의 수고로 인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수고하지 않은 우물의 물을 마시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크다.

그렇다고 내가 회사에서 아주 높은 사람이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
그냥 내가 하는 일들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길 바라는 것 뿐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중에서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지금도 가끔 그렇게 연락하는 사람들중 많은 이들은,
내가 그렇게 했던 것을 기억해주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늘 일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그게 자꾸만 잘 되지를 않는다.

예전에 어떤 회사들에서는,
정말 내가 그렇게 열나게 일하는 유익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져야만 팀이 사는 환경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는… 아니, 내가 그렇게 안해도 이 사람들은 다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든다고나 할까.

조금 더 솔직히 까서 말하면,
뭔가 좀 부족하고 위축된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건 힘이 나는데,
아주 똑똑하고 잘난 (어쩌면 나보다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을 위해서 아니 내가 뭐 그렇게 희생하면서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방식은,
그 존재와 행위가 주변에게 복이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정말 믿는다.
그런데 그 복이 된다는 것이 잘난 사람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것이되어버리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이다.

사실 그런 논리로 생각하면,
나는 ‘잘나가는’ 회사들에서 일할수 없게 된다.
잘나가는 회사일수록 주변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예전에 Apple에 다닐때도 역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잘 생기질 않아서 힘이 들었었다. 잘난 사람들, 잘난 척 하는 사람들, 야망과 탐욕으로 사는 사람들에대한 애정이 정말 잘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애정을 주로 쏟는 대상은 ‘vendor'(하청업체) 사람들이었다.

글쎄,
내가 지금 이 회사에 얼마나 계속 다닐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좀 오래 다니려면, 이런 잘난 사람들도 사랑하는 법을 좀 배워야하는게 아닐까 싶다.

Let Your ‘Yes’ to be ‘Yes’

회사에서 일하면서 제일 많이 피곤한 것은,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반대로,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무엇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내 진의를 전달해야 할때도 있고,
때로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내 진의를 전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내 진의가 전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같이,
‘예’는 ‘예’가 되고, ‘아니오’는 ‘아니오’가 되는 그런 대화를 하면 참 좋은데… 그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참 어려을때가 많다.

그런데…
살면서 더 많이 피곤한 것은,
그렇게 ‘예’ 혹은 ‘아니오’를 이야기해야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의 Yes아닌 Yes를 Yes로 알아듣는 기술도 많이 들었고,
다른 사람의 No아닌 No를 No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바라는 것은,
내가 Yes를 Yes라고 말하고, No를 No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꾸준히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하는건 거의 ‘바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의 politics에서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예수님꼐서 하신 ‘무책임해 보이는’ 이 말씀을 계속 바보같이 붙들고 살고 싶다.

Podcast 하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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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y라는 사람과 Drew라는 두 사람의 대화라는 형태로 10개의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Cory는 기독교인이었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무신론자가 된 사람.
Drew는 목사였는데 신앙에 회의가 생겨서 목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다시 신앙을 찾은 사람.

소위 ‘기독교 변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소개되는 argument들이 다루어 지고 있는데,
사실 기독교인인 Drew의 argument는 내게 이미 다 익숙한 논리들이어서 그냥 그렇게 들었는데,
무신론자인 Cory의 argument는 내게 참 새롭고 흥미로웠다.
기독교인들의 변증의 논리에 대한 무신론자의 촘촘한 반격을 이렇게 잘 들어보는게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Drew보다 Cory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는 순간도 있었다.^^

기독교 신앙, 이성, 믿음, 의심 등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방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에서 무신론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까는 것도 아니고,
아주 좋은 대화가 나누어지는 것이 참 듣기 좋았다.

지난 며칠은 밤에 잠을 줄여가며 이걸 들었다. 그리고 결국 10개를 다 들었다. 정말 흥미로왔다.

공식을 외는 것과 문제를 푸는 것은 다르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우던 시절, 나는 수학을 아주 잘하지 못했다. 뭐 어느정도 하긴 했었고, 좋아하기도 했는데, 정말 수학을 잘하는 애들에 비하면…

반면 그 수학을 활용해야하는 물리는 참 좋아하고 잘했다.
참 신기한게, 그냥 미분방적식을 풀라고 하면 그게 잘 안되는데, 물리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미분방정식을 풀어야하면 그게 잘 풀렸다.

나는 왜 그런지 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똑같은 수학인데 왜 그냥 풀면 안되고 물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풀면 잘 풀리지?

내가 나름대로 찾아낸 설명은 이것이었다.
내가 수학을 풀던 방식은 주로, 공식을 외고, 그 공식 중에서 맞는 것을 수학 문제에 적용해서 푸는 것이었다.
문제를 보고, 내가 아는 공식들을 이것 저것 끼워넣어 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반면,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풀었던 수학은…
문제를 보고, 그 문제를 푸는데 어떤 논리가 필요한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으로부터 필요한 원리나 공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내고, 그것을 적용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설명이 잘 되었나 모르겠네…

좀 쉽게 설명하면,
내가 수학문제를 풀때는, 여러가지 지식을 재료를 널어놓고, 음식을 만드는데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를 찾아가며 음식을 만들었다면,
내가 물리문제를 풀때는, 어떤 음식을 만들겠다고 할때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내고 그걸 모아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수학은 잘 못하고 물리는 잘했다.

나는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을 보면…
분명히 그 사람이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고, 얘기해보면 바른 얘기를 분명히 하는데…
막상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그 사람이 섬기는 방식을 보면 버벅거리면서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늘 모든 바른 신학적 지식을 다 갖추고 있는 것 같지 않아도,
그 사람과 얘기를 해보면 아… 참 맞다… 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그 사람이 섬기는 방식이 정말 건강하다는 생각이 확~ 들게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공식을 다 아는 것 같은데 버벅거리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는 공식을 다 몰라도 쓱쓱 풀어가면서 공식을 찾아내기도 하고 유도하기도 하며 쉽게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신앙은 지식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지혜의 영역이고,
신학은 그 사람의 신앙을 도와주긴 하지만, 신학이 그 사람의 신앙을 define 하지는 못한다.

fancy하지 않더라도 신실한 삶,
유창하지 않더라도 진실된 눈물이 담긴 설교와 가르침,
늘 잘나가지 않더라도 참된 섬김.
그런 것들을 더 갈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