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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ra Mundum이라는 라틴어는, 세상에 대항하여라는 뜻이다.
대학생때 처음 Francis Schaeffer 책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접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렇게 세상에 대항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 대학생이던 시절로부터 30년 이상 지난 지금,
Contra Mundum이라는 모토는 여전히 내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세상에 저항하며, 세상에 대항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 그런데 이 Contra Mundum이라는 말은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라는 분이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이 Contra Mundum이라는 말을 했던 상황은,
그 당시 예수님이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을 했던 아리우스(Arius)의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이라는 삼위일체적 주장을 했던 아타나시우스가 부딛혔던 것이었다.
그 당시 아리우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수였고, 아타나시우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소수였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에 대항하여’를 위치며 그 소수의견을 계속 지켜냈던 사람이다.
- 대학생때 내가 읽었던 Francis Schaeffer나, 4세기의 아타나이수스나 모두 Contra Mundum이라는 표현을 할때는 세상의 다수의견, 세상의 대세에 저항해서 기독교의 교리를 지켜내는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 20년, 30년 전의 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그때의 내게 ‘진리를 수호하는 전사’로서 Contra Mundum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했다.
그러니 내가 처음 Contra Mundum이라는 구절을 접했을때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세상에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 지금 나는, 그렇게 진리가 수호되지도 않고, 그렇게 진리를 수호하려는 시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진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세가 Contra Mundum을 이야기하는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월터 브루그만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소비주의, 물질만능주의, 자기 중심주의 등등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것이 지금 기독교인들이 해야하는 훨씬 더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20대에 생각했던 Contra Mundum과, 50대에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Contra Mundum은 꽤 다른것 같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동안 Contra Mundum이라는 모토는 계속 내 삶을 지탱해내고 있어왔고,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동안 내가 저항하며사는 그 자세로의 Contra Mundum의 내용이 많이 바뀌어 있는 것 같다.
-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세상에 대항해서 살아가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