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 선언 (Capetown Comittment)

솔직히 말해서,

지난 얼마동안, 나는 내가 복음주의자가 아닐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복음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게 정말 ‘쪽팔렸다’.

어제 저녁,

시간이 약간 남아서, 인터넷에서 케이프타운 선언문을 읽어 보았다.

(케이프타운 선언은, 지난 2010년에 있었던 제3차 로잔대회에서 채택한 선언문이다.)

아… 그래,

이런 복음주의라면…

나는 복음주의자가 맞는 것 같다.

http://www.lausanne.org/content/ctc/ctcommitment (영어)

http://www.lausanne.org/ko/content-ko/ctc-ko/ctcommitment-ko (한국어)

Answering questions that nobody asks

1.

현대 기독교가 답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을 대답하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라고 이야기하면…

현대인들은 ‘어떤 하나님이요?’ 라고 묻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고 영원하 살아라 라는 식으로 쏟아내고 나면,

음… 이건 내 관심사는 아니네.. 

그렇게 돌아서버리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 서클 밖의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relevant 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시도가… 일반적으로 실패해가는 것 같아 보인다.

2.

가끔…

내가 성경공부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한다거나, 뭐 기타 다른 세팅에서 이런 저런 강의/설교들을 하고나면…

결국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것에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크리스천 서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크리스천들에게도 정말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다루지 못했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이 있다.

3. 

Apple에서는,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단 그것을 갖게 되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기기를 만든다” 고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복음은, 혹은 진리는,

때로는 어떤 사람들이 원하지 않지만,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매우 즐겁게 누리게되는 성격이 있지는 않을까.

4.

그렇지만,

내가…. 때로 ‘청중’과 disconnect 된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내 생각이 깊고 innovative 해서라기 보다는, (뭐 당연히 아니지… -.-; )

그저 relevancy를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ㅈㅇ 간사님의 날카로운 지적

최근,
K 운동 30주년을 맞이하여 앞으로 K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재정비하는 ‘visioning’ 작업을 해왔다.
주로 간사 리더십에서 했고, 나는 그저 이메일이나 좀 받아보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몇주는 weekly conference call에도 좀 더 들어가서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 작업에 일부 참여하였다.

지난주였던가, 그 전주 였던가…
우리 간사들의 ‘문화’랄까… ‘분위기’랄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김ㅈㅇ간사님께서, 전반적으로 간사들이 좀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도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한다고.

그러면서 그 이유로,
일부 선배들의 ‘신화’에 간사들이 전반적으로 압도당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셨다.

나는 선배들처럼 신학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고,
선배들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도 못하고…
그러니 나는 여기에서 뭔가 끼어들기 좀 어렵겠구나… 이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김ㅈㅇ 간사님의 그 지적이 참 아팠다. 그렇지만 정말 잘 보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동대표모임이 끝난 밤에,
김ㅈㅇ간사님께 물었다.

제가 어떻게 다르게 했어야 했었을까요?
무엇을 잘못 했을까요?
어쩌다 사람의 신화가 조직의 문화를 지배하는 스토리로 남게 되었을까요?
(결국은 나도 그런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이므로…)

김ㅈㅇ 간사님은,
웃기만 하고 별로 신통한 대답을 해주시지 않았다.
말씀을 아끼시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뭐 딱이 내가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미국 선거 결과에 별로 많이 upset하지 않는 이유

나는 미국의 양당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민주당’을 택한다.

사실은, 민주당도 좀 충분히 liberal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당연히 공화당이 지난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 못마땅해야 당연하다.

그럼에도,

한국 선거에서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승리를 거두었을 때 보다, 훨씬 덜 upset하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의 정치체제 에서는, 공화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그렇게 많이 ‘후퇴’하지는 않는 다는 생각 때문일까?

(음… 사실 조지 W 부시 때, 미국의 전반적인 민주주의 자체가 획기적으로 후퇴한 것을 생각하면 뭐 그렇게 안심할바도 아닌 건데)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볼수도 있지만, 사실 티파티 중심의 그룹은 정말 scary할 정도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데…. 게다가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 등은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는데…)

나는 미국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보다는 한국에 더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음… 뭐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볼수도 있지만, 미국의 선거 결과가 전 세계에 파급효과를 미치는 것을 감안할때 그렇게 I don’t care 하는 것은 아닌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좀 더 upset 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

선배님의 포옹

지난 여름 휘튼에서 잠깐 황 간사님을 뵙고, 4개월만에 이번에 다시 뵈었다.
이번에 공동대표회의에 참석하면서, 여러가지 기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황 간사님을 뵙는 것이었다.
지난 15년 넘는 시간동안, 내게는 바라보아야할 깃발 같은 역할을 해주신 분이시다.

그런데, 이번에 뵈니…
건강이 많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 보였다.
장시한 계속 앉아 있는 것을 불편해하셨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이 계속 회의를 했지만,
그저 잠깐 말씀을 나누면서는…
삶을 단순화해서라도 한 1년정도 좀 푹 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아…. 참 마음이 싸~ 하게 아팠다.
이렇게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 이거 참석하러 여기 이렇게 오신 거구나…

결국 회의, 회의, 회의….
저녁 9시가 되어서야 겨우 숙소로 돌아왔는데…
황 간사님의 숙소와 내 숙소는 걸어서 3분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황 간사님께서 내리시는 곳에서 나도 함께 내려, 쉬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고 나오는데…
황 간사님께서 특유의 웃음을 지으시면서 함께 나오셨다.

나와, JK, 그리고 김중안 간사님 이렇게 셋이 있는데…
갑자기 와락 나를 안으셨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꽉~ 나를 안으시고는 놓지 않으셨다.
JK와 김중안 간사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셨다.

하루종일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회의에 참석하시고,
그 전날 새벽 3-4시까지 회의 준비 하느라 피곤한 후배들을 보시며…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고 꽉~ 안아주셨다.

나는 황 간사님을 함께 꽉 안아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눈물이 났을까?
고마움의 눈물? 어리광의 눈물? 존경의 눈물?

참 여러가지 일이 많았고, 나름대로 중요한 결정과 논의를 많이했던 공동대표 모임이었는데…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황간사님의 그 포옹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정말…. 건강하셔야 할텐데…

내 딸 자랑

내일은 민우의 생일이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참 여러가지를 누리게 해주셨지만,
민우를 내게 주신것은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다.

정말 철 모르던 어린 시절에, 민우를 갖고,
정말 철 모르는 아빠로서 민우를 키웠다.
민우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민우는 내가 부족한 아빠노릇을 한것에 비해 참 잘 자라 주었다.

민우는 무엇보다도 참 사려깊은 아이이다.
늘 ‘다른사람’의 상태와 감정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민우는 성내기를 더디할줄 아는 아이이다.
사춘기, 십대를 지내면서 짜증내고 화나는 일이 왜 많이 있지 않겠나.
그러나 민우는 자신의 그런 부정적 감정을 더디 표현할줄 아는 아이이다.

또, 민우는 밝음을 이해하는 아이이다.
좋은 분위기를 위해서 때로 자신이 망가질줄도 안다.

섣부른 자기자랑을 하려하지 않고,
‘나’가 아닌 ‘너’가 세상에 존재함을 인식하고 사는 아이인것 같다. ^^

뭐 내가 좋은 아빠가 아님에도
하나님께서 여태껏 키워 주셨으니…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것으로 믿는다.

민우에게,
“아빠랑 엄마가 민우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제일 많이 이야기 했어?” 라고 물으면 민우는
“Loving Person” 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 말대로,
민우가 나이가 더 들어가고 성숙해감에 따라…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사람들과 세상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더 자라나면 좋겠다.

민우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참 많이 감사하다. ^^

적당한 땡땡이?

내가 지난번 A 회사에 다니면서, 그전 H 회사 다닐때 보다 대충 일을 두배쯤 더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직장에 다니면서는 지난번 A 회사 다닐때 보다 1.5배쯤 더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일을 해야하는 특성 상,
아침 일찍에는 유럽이나 동부 사람들과 conference call을 할때가 많고,
밤에는 아시아쪽 사람들과 conference call을 할때가 많다.
그러니 당연히 그 중간에 긴~ 시간동안 일을 할수 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버린 거다. -.-;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그렇게 전력질주를 하는 식으로 일을 하다간 내가 도저히 견디어내지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낮 시간에 약간 ‘땡땡이’를 치고 있다.

대개 시간이 나는 대로 한 30분 운동을 하기도 하고, 한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심지어는 어떤때는 두시간 가까운 시간을) 점심시간으로 할애해서 web surfing을 하면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conference room에 혼자 들어가서 음악을 듣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잠깐 땡땡이 치는 시간을 내는 게… 내가 계획을 한대로 할 수 있는건 아니고, 하다보면 약간 시간이 비게되고 그때 과감하게 땡땡이를 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낮에 뭐 미리 약속을 해서, 식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렵고…
그냥 낮 시간에 시간이 좀 빌때 혼자서 자체 땡땡이를 치는 것만 가능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렇게 하기 시작한 이후로, 내 productivity가 많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내가 일하는 모습이 훨씬 덜 miserable 해졌다. ^^

한편으로는 땡땡이를 치는 것이 좀 찔릴 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sustainable 하지 않다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다보니…
일종의 survival의 한 방편으로서 이렇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금씩 쉬면서,
나름대로 자꾸만 기억하려고 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아니하시면 그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나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호흡하는 사람이다.

평신도 설교

K 컨퍼런스를 한참 디자인하던 시절,
한동안, 전체집회에서 적어도 한 session은 ‘평신도’가 message를 하도록 해보자는 원칙을 정했던 적이 있었다.

어떤 신학적 입장을 가진 분들은 평신도가 ‘설교’를 하는 것을 불편해 하시기 때문에,
‘설교’ 세팅이 아닌 ‘강의’ 세팅의 경우 평신도가 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반복해서 겪었던 어려움은,
평신도 중에서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것이었다.

간혹 평신도들 중에서 집회를 다니는 강사들이 있긴 했지만,
그분들은 대부분 ‘간증’ (그것도 신학적 지향점이 대단히 모호한…)이었지,
말씀을 풀어서 청중의 머리와 가슴에 넣는 설교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설교 가운데 하나가 평신도의 설교였다.
내가 대학교 4학년때, 불과 스무명 정도나 되었을까 싶은 대전의 작은 개척교회에 오셔서,
김인수 교수님께서 설교를 해주셨었다.
결론적으로는 바로 선 평신도가 되라… 뭐 그런 내용이었고, 그러려면 성경을 잘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정규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 분은, 말씀을 풀어서 참 잘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 설교는 내 삶을 바꾼 설교 가운데 하나였다.

K 컨퍼런스를 디자인 하면서,
아…. 김인수 교수님 세대 이후에 평신도 설교가가 거의 맥이 끊겼구나…. 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들었었다.
그나마 50년대생들 가운데에는 제한적으로 조금 있었는데,
60년대생으로 들어와서는 정말… 그나마도 사실상 전멸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뭐 내가 잘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제 저녁에,
교회 ‘운영위원회’를 하면서, 평신도 설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나왔었는데…
이제 어쩌면 70년대생, 80년대생 이후에서 한동안 끊겼던 평신도 설교가들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이왕이면 여성 설교가들도 좀 나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혼자 좀 하게 되었다.

Blue Like Jazz를 다시 읽으며

교회 소그룹에서,
Blue Like Jazz (재즈처럼 하나님은) 책을 읽으며 sharing을 하고 있다.
덕분에, 문고판으로 예쁘게 되어 있는 한글 책을 한권 사서, 보고 있다.

몇년 전, 영어로 책을 읽었는데, 그때 읽으면서
아, 참 오랜만에 전도용으로 사용할 만한 책을 찾았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한국말로 다시 읽으니,
음… 왜 이렇게 새롭지? ㅋㅋ

새로 읽으면서,
이 책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었나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요즘 다시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여기서 그려지고 있는 기독교는,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대화하는 기독교’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쓴 이 책에서,
자신의 신앙을 세상에 선포하고 전하는 입장으로 스스로를 positioning하기 보다는,
세상과 대화하고 호흡하는 입장으로 스스로를 positioning 하고 있다.

그러나,
흔히 ‘종교다원주의자’들이 하는 것 같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식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그 경험이 자신의 신앙에 영향을 미쳐,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다가 빠졌던 trap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게 사랑할줄 아는 기독교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힌트를 좀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씨앗교회의, 흔한 30대 평신도

몇주 전,
ㅇㅈㅇ형제가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설교를 했었다.
나는 그때 out of town 이어서, 그 자리에서 설교를 들을 수 없었지만, 나중에 녹음 file로 들으며
히야… 정말 이런게 teaching 인데… 싶었다.

어제는,
ㄱㅇㄱ형제가, ‘신비’에 대한 설교를 했다.
야…. 나름 노트를 하면서 들으려 노력 했으나, 나는 설교에 빠져들어 노트를 잘 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교인 15명 남짓 한 수준의 정말 작은 개척교회이지만,
이 교회의 그냥 흔한 30대 평신도들은, 참 설교를 잘 한다. ^^

무엇보다도 참 감사한 것은,
이 설교들이 그저 ‘말’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삶의 분투가 거기에 녹아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 여성 평신도 설교도 좀 들어볼 수 없으려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