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교회 (11)

지난달에 느헤미야서를 묵상하던 교회의 한 친구가
‘느헤미야를 묵상하면 뭔가 공감이 안된다. 느헤미야는 너무 완벽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한편 동의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그렇다면 왜? 라는 질문을 놓을 수 없었다.
이 본문은 왜 그렇게 느헤미야를 ‘넘사벽 영웅’으로 그리고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내가 잠정적으로 머무르게된 생각의 지점은, 결국은 그런 헌신된 리더가 난세를 구해내는 pseudo-messianic story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 물론 뭐 어디 주석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그럴 여유가 있지는 않아서 혼자 한 생각이므로 그런 거 잘 아는 분들이 좀 가르쳐주셔도 좋을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도,
도대체 이렇게 교회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시대에 도대체 어떤 break-through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면…
물론 하나님께서 하셔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그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식은,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더 헌신하고, 더 힘내고, 더 희생해서 이루어지는게 아니겠나 하는 대답에 이르게 된다.

느헤미야도 그렇고, ‘말과 함께 달리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명명하신 예레미야도 그렇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합리해보이는 수준의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들의 불합리해보이는 헌신과 희생이 결국 어떤 break-through를 마들어 내게되고.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헌신하면 더 힘들고 더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헌신과 희생이 더 불합리하고 영양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주어진 삶의 방식이라고 인식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어떤 사람들이 결국은 이 시대에 break-through를 낸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지난 한주동안 열나게 설명했던 교회는,
그렇게 break-through를 내는 교회의 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힘들다, 어렵다, 두렵다 그러지 말고, 정말 똘기 넘치게 그렇게 용기내고 힘내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나름대로의 절박한 마음이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교회로 보면 그렇게 불합리한 헌신을 하기로 결심하는 바보같은 교회들이 좀 있어야 하고,
그런 교회가 되려면 그 속에서 불합리한 헌신을 하기로 결심하는 바보같은 사람들이 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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