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종교 (5)

나는 결국 각자가 자신을 책임져야한다는 원론적 우파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은혜’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사회,문화,시대,상황,제도의 탓이라고 이야기하는 주장에도 동의할수는 없다.

기독교를 약자의 종교로 이해하는 어떤 사람들은,
상황이 힘든걸 어떻게 하느냐, 시대가 어려운데 어떻게 하느냐,
심지어는 나는 기질이 그런걸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단기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두려움등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산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몇년이 지나도 조금도 그분의 성품을 닮은 일에 그 사람에게 진보가 없다면 그 안에 정말 생명이 있는냐는 질문을 해보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네가 예수를 믿었으니 세상을 바꾸어라라는 차원에서 힘을내라고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네가 예수를 믿었으니 네 자신이 바뀌어야한다는 차원에서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점에서는 어떤 진보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약함이 괜찮다는 약함에 대한 긍정만으로는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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