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ing modes?

회사에서 일을 할때는 완전 초 집중 상태로 무지막지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죽어라고 일을 하곤 한다.
동시에 몇개의 일을 해야할때도 많고, 식사를 거르기고 하고, 때로는 식사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과 식사를 잡아서 먹으면서 일을 하기도 한다.

최고의 speed로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회사도, 팀도, 나도, 살아남지 못하는 환경이기도 하지만,
그런 환경속에서 계속 살다보니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그렇게 바뀌어버린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속에서 버벅거리고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나 자기에게 맡긴 것을 제때 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 있으면 정말 완전 민폐다.
대개의 경우 그런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회사에서 나가게 (짤리게?) 된다.
그야말로 죽어라고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는 구조다.

회사에서는 정말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tolerance가 거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모두가 공멸하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온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간다면, 정말 얼마나 빡빡한 세상일까?
약자에대한 배려도, 뒤떨어진 사람에대한 공감도 없이, 그저 능력과 결과만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면?

회사에서 그렇게 최고의 효율을 내기위해 죽어라고 일하면서는, 정말 그 회사에서 버벅거리면서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compassion을 갖는 일이 참 어렵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하루 10시간씩을 보내다보면, 나 자신을 포함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을 효율성, 성과를 중심으로 재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왜 이 사람은 이 정도의 일도 못해내는 걸까?
아니, 이 사람은 왜 이 정도의 생각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답답함’만이 가득 쌓여서 내 환경에 대한 불만을 잔뜩 가지고 살게된다.

한동안은,
내가 회사에서는 그렇게 일하더라도, 일단 회사 문밖을 나오면 뭔가 모드 전환을 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았다.
회사에서와 같이 삶을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는 말아야 하겠다고.

그러나 요즘 더 많이 하는 생각은,
회사에서 그렇게 빡빡하게 하는 것 자체에도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회사일을 확 slow down해서 일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compassion, tolerance를 가지고 일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회사문을 나오면서 모드 전환을 하지 않고, 회사 안밖에서 늘 겸손하면서도 너그러운 자세를 유지하는 것.

여러가지로… 은혜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삶의 리듬을 찾기

지난 7월경부터 한달에 한번꼴로 유럽에 다녀왔다.
한번에 가면 짧게는 한주, 길게는 두주조금 안되게 다녀왔다.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
내가 내 전체 시간의 거의 25%를 유럽에서 보낸거다!

그리고, 가서 시차때문에 헤매고, 다녀와서 시차때문에 헤매는 걸 다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내 시간의 거의 40~50%는 시차적응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출장을 가면 대개 새벽에 호텔에서 나가서, 저녁 8~9시에나 돌아오고, 그때부터 다시 california office와 각종 conference call들을 하게 되기 때문에,
거의 극한의 경험을 하게된다.

최근 계속 삶이 이렇다보니 삶의 리듬이 많이 깨져있다.

아침에 말씀묵상하는 것이나 정기적으로 짧게 기도하는 것,
따로 경건서적을 읽는 것등도 완전 엉망이 되었다.

이게 참 신기한게…
이것들이 깨지니, 전반적인 내 영적 컨디션 자체가 영 별로다.
소위 ‘옛사람의 성품’이 자꾸만 나오고 있다. -.-;

내 영혼을 관리하는 일에 잠깐만 소홀하면 이렇게 금방 영혼의 밭에 잡초가 자라고 쭉정이가 생긴다.

나는 유난히 품질이 나쁜 영혼을 관리하면서 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번에 독일에 오면서는 파리 공항에서 layover를 했다.
시간이 좀 충분하면 시간을 내어서 파리 시내에 나갔다 왔으면 좋았겠지만 layover 시간이 애매하게 4시간이어서, 시내로 나갔다 올만한 시간이 되질 않았다.

시내까지 나가는데 1시간, 다시 돌아오는데 1시간, 공항 나가는데 30분, 공항에 2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니까, 4.5시간이 있으면 아무것도 구경하지 않고 나갔다 올 시간이 되는거다.

그러니 그냥 공항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파리 하면 뭔가 예쁘고 화려할 것 같은데,
공항은 정말 꽝이였다. ^^
별로 할것도 없고, 공항에서 뭔가 멋진 음식을 먹을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나는 프랑스에 가본적이 없지만,
당연히 파리 공항만 보고 프랑스가 그런거야 라고 판단하면 안될일이다.

일을 하면서도,
이 분야에 10년, 20년씩 일을 했다는 사람이 detail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완전 황당하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자는 식으로 결심을 하는게 늘 건강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럴땐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회사일도 그렇고 기독교 미니스트리도 그렇고) 내게 축적된 경험이 되도록 일해야하겠다는 결심.
그래서 조금 더 열심해 해야겠다는 결심.

기도의 효용성

어제 출근길에 Tim Keller가 기도에대하여 개인적인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다.
Tim Keller가 O Hallesby의 “기도”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한 것.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재앙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도 없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자신이 얻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기도 없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때 그것을 겸손히 받아들이며 감사할만한 바탕을 가지지 못했다.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오 할레스비의 기도는 내가 대학교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30년쯤 전에 읽은 것인데…
아… 이런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오 할레스비의 기도 책 내용 자체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일부터 또 시작되는 독일 출장을 앞두고,
내 킨들에 O Hallesby의 Prayer를 담았다. 비행기안에서 열심히 읽어야겠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

요즘 한달에 한번, 더 짧게는 3주에 한번 꼴로 유럽에 가고 있다.
대개는 집에서 Lyft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그러면 대개 Lyft driver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된다.

Lyft driver: 어디가니?
나: 프랑크푸르트 간다.
Lyft driver: 놀러가니, 아니면 일하러 가니?
나: 일하러 간다.
Lyft driver: 좋겠다.
나: ……

보통 3명의 한명꼴로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예전에는 속으로 ‘네가 이렇게 출장가는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내가 지금 얼마나 부담되는줄 아니?’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지난달부터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어쨌든 어떤 사람들은 나 처럼 이렇게 하는걸 부러워하는게 사실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멀리 출장가보고 싶어하지 않는가.
혹시 나는 감사해야하는 건데 그냥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툴툴거리고 있는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출장만 그런건 아닐거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그래서 마음 속으로부터 어떤 감사가 사라져버린 것들 중에서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텐데.

이번 주말엔 또 비행기를 탄다.
의지적으로 감사할 계획이다.

문득 살짝 등골이 오싹

요즘 주말엔 거의 완전 쓰러져서 쉬는 수준으로 보내고 있다.
주중에 워낙 시달리고 있기도 하고, 거의 내내 끊임없이 시차적응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런데 주말에 문득,
달란트 비유가 생각이 났다. (왜 그랬을까?)

그러면서 든 생각.
나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던져서 그렇게 살고 있나?

문득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그러면서 등골이 오싹!

내 삶의 우선 순위와 방향을 다시 좀 잘 점검해봐야 할것 같다.
다녀오는 thanksgiving에는 그렇게 좀 많이 생각해봐야 할 듯.

기독교와 복음

가끔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한 ‘지적인 질문’이 많긴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않는다며 주변의 사람들을 내게 소개시켜주곤 한다. 그러면 그 사람과 짧게는 한번, 길게는 몇주씩 만나면서 기독교, 철학, 종교, 과학 등등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거나 그런 경우는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전도의 기초를 놓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기독교에 관심도 없고, 그냥 현실적인 문제들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사람과 한주에 한번씩 만나서 그런 토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내가 요즘은 하도 출장이 많아서 한주에 한번 만나는게 쉽지는 않다.)

원래 기독교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뭔가 좀 깊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그 사람이 흥미를 가질만한, 그리고 nerve를 건드릴만한 몇가지 이슈들을 꺼내니 쉽게 확~ 들어와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아주 반복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잘 소개해주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impression들을 제거하는 일을 아주 많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한참… 아주 한참… 그 사람들이 기독교에대해 쏟아놓는 불만들과 불평들에 많이 공감해주고,
나도 그것들에 많이 동의한다고 이야기를 한 후에야 대화를 시작하는게 가능한 경우도 많다.

정말 현대의 기독교는,
복음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설교에 대한 반응

나는 가능하면 우리 교회에서는 ‘설교’라는 세팅에서 뭔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우리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교회 사정상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나도 출장가서 죽을만큼 바쁜 와중에 설교준비를 해서 설교를 해야했다. 그래서 설교시간에 비해서 설교 준비시간이 무지하게 짧은… ‘가성비 높은’ (다른 말로는 많이 공들이지 못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듣고나서 사람들의 반응이 여러가지로 흥미롭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뜨끔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so what? 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개 교회세팅이나 그런데서 뭐라도 하면,
꼭 와서 말씀 좋았다… 은혜 받았다 하는 사람들은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한편 많이 감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는 좀 강도를 낮추어서 들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 누가 무슨 얘기를 했어도 ‘은혜를 받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뭘 잘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교회에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반응은 그냥 그게 좋았다, 은혜받았다는 식의 반응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더 많이 생각해보려하고, 따져보려고 하는 모습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건 정말 진지한 반응이고, 많이 더 이야기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뭐 이걸 가지고 계속 더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럴 세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것 같긴 하지만…

큰 돈

우리회사는, 기술개발을 해주고 돈을 받아서 운영된다.
그게 우리 회사가 돈을 버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 회사가 돈을 버는 방법중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의 액수가 보통 장난이 아니게 많다.
한번에 100 million dollars (한국돈으로는 천억원쯤 되는 건가) 짜리 계약을 하는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10 million dollars (한국돈 100억원) 정도 이하가 되는 프로젝트는 아예 하지 말라고 약간 자제시키는 분위기다. 그런 수준의 project를 위해서 행정 support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화요일에는 내가 참여해서 새롭게 개발한 기술을 ‘팔기’위해서 출장을 다녀왔다.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대충 50 million dollars 정도 수준의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개발하는데 들어간 사람은 딱 3명의 엔지니어와 1명의 테그니션이다.

그래도 액수가 좀 크다보니 사람들이 그걸 위해서 무리하는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내가 독일에 가 있을때에도 현지시간으로 새벽에 conference call 들어오는걸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아주 last minute에 일정을 비워서 출장을 다녀오는 것도 그렇다.
밤 늦게 text로 내일 아침 10시까지 무엇 무엇을 해야한다고 연락을 받는 일도 많다.

나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 일이 아닌 것도 오지랖 넓게 할때가 많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내게 주어진 일은 책임감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 같아선,
어디까지 성실해야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할때가 참 많다.
그냥 naive하게 성실하게되면 그야말로 일폭탄을 받아 몸이 망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돈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

Sub-culture? Counter-culture?

기독교가 seeker friendly해야한다는 생각때문에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기독교 문화를 세상문화의 subculture로 만드는 시도를 많이 본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밀레니얼 이후의 세대는 그렇게 기독교 subculture를 그냥 ‘싸구려’로 생각해버리는 것 같다.

내 생각엔,
기독교가 추구해야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 서구사회에서는,
기독교 subculture를 만드려는 노력이 아니라,
기독교의 counter cultural한 모습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문제는 기독교 subculture가 지나친 종교성과 결합이되어버리면 그 subculture자체가 대단히 경직되어 버려서 변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나는 그 경직성을 내부에서 개선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리라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 기독교를 보는 시각은 대단히 비관적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