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피타고라스 정리를 달달 외운다고하자.
a제곱 + b제곱 = c제곱,
여기에서 c는 직각삼각형의 빗변.
이걸 가지고 강의도 한다고 하자.
피타고라스가 어떤 사람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그 정리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 공식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여져 왔는지,
그리고 그 피타고라스 정리를 100번씩 노트에 써 오라는 숙제도 시켜가면서…
그래서 그 강의를 들은 사람중, 특별히 피타고라스 정리를 더 좋은 목소리로 외고,
노트에도 잘 쓰는 사람들이 다시 피타고라스정리 강의를 하는 그 다음 세대의 강사가 된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묻는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지금 여기 제가 땅에서 거리를 측정하는데, 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어떻게 사용해볼 수 있나요?
음…
피타고라스 정리를 강의하던 강사는 흠찟 놀란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 하나가,
나름대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지고 세상 나가서 적용도 해보고,
실제 문제들도 풀어보았더니…
아… 피타고라스 정리라는건 이런거구나….
정말 피타고라스 정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자신이 피타고라스 정리에 대해서 깨달은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옆에 있던 피타고라스 정리 강사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이미 피타고라스는 매주 열심히 설명도 다 했고, 여러가지 측면에서 여러번 반복을 했으니,
너는 피타고라스 정리의 응용에 대한 것만 좀 설명을 해주면 된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 피타고라스 정리를 적용하면서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피타고라스 정리는 실제로 사용을 해 보고 적용을 해 보아야 이것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타고라스가 어떤 사람인지, 공식을 얼마나 많이 노트에 썼는지, 얼마나 멋진 목소리로 그 공식을 외울 수 있는지 하는 것은 본질과는 오히려 동떨어진 것이라는 거다.
…..
내가 보기엔, 이건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