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타를 믿느냐?

민우는 작년 크리스마스 까지만해도 싼타를 믿었다!
(거의 내가 본 기록에 가깝다. 9살이 되도록 싼타의 존재를 믿다니)

그런데,
금년에는 그 존재를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다.

민우로 하여금 한해 더 싼타의 존재를 믿게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선물도 세심하게 준비하고,
민우가 선물 포장지를 미리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싼타를 믿는 단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을 무리하게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싼타를 민우로 하여금 믿게끔 하고자 하는 것은,
순진하고 어린 민우의 모습을 한해 더 지켜보고 싶은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민우에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싼타가 아닌 그리스도의 탄생임을 더 진지하게 이야기해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꽤 바쁜 두주

이번주와 다음주는 꽤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아내의 시험이 연말에 있고,
나도 회사에 이럭 저럭 계속 조금씩이라도 나가며 일을 해야 할 사정이고,
여름부터 이곳에서 살게될 지역들을 돌아보며 어느 지역에서 살 것인지를 정해야 하고,
민우와 함께 많이 놀아야 하고. ^^

그나마,
성경공부가 방학이어서… 조금 나을 것 같은데…

바쁘지만,
함께 하기에 좋은 시간…

다람쥐


나는 다람쥐가 참 좋다.
조그마한 것들이 돌아다니는 게 언제봐도 귀엽다.

지금 시각 서부시간 2:30am,
두마리의 다람쥐가 지금 동부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다. ^^
Boston에 눈이 많이 와서, 우여곡절 끝에…
몇시간 더 늦게 출발하여 이곳 공항에 앞으로 1시간 반 후에 도착할 예정이다.

마음이 설렌다…

나를 부끄럽게 한 만남

내게 처음 성경공부 인도를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던 형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한된 어떤 나라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다.

그 형이 지난 몇개월간 LA에 안식년으로 나와 있었는데,
다시 선교지로 복귀하기 전에 그 형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복음이 제한되어 있는데다,
관계 당국이 도청등을 할 위험이 늘 있어서,
전화도 조심해서 하고,
internet으로 기독교 계열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 조차 screen 당할 위험이 있어 자제해야 하는 환경에서 사역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교보고편지에 조차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고… 암호로 되어 있는 이름을 사용하고,
보안을 위해 자신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등도 다른 이들에게 별로 알리지 못하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 형이 내 이메일 주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지금 이 블로그를 비롯해서 관련 자료들이 많이 나오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야… 네가 뭐낙 유명해서…’ 하면서 그 형이 웃었다.
나도 그저 겸연쩍게 웃고 말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형은 그렇게 섬기면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감추면서 살고 있고,
나는 여기 저기 내 이름이 떠 돌아다니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대비가 되었다.

정말 부끄러웠다.

MIT를 용서하다 (final)

내가 쓴 이 글이…
그저 한 패배자의 글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결국 꽤 괜찮은 연구결과를 내며 졸업을 했고,
이제는 꽤 괜찮은 직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MIT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 가져다준 보상이 결코 아니다.

MIT가 내게 준 선물은,
그 과정이 가져다준 열매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품으셨던 하나님이었다.

숲에서 나와 숲을 보는 것 같이…
이미 5년전 졸업을 한 그 학교에 다시 가서…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나를 다시 보며…
이전에 그렇게 선명하게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66동 지하 계단에서 울며 기도할때,
학생회관 컴퓨터실에서 거의 패닉 상태로 정신없이 지도교수를 알아보고 있을때,
내게 fair하게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 맞서 싸우다 지쳐서 터벅 터벅 기숙사로 걸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포근히 감싸고 계셨다.

내가 학위를 받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을때,
내가 성공과 명예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었을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있었들때,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계획으로 나를 묵묵히 붙들고 계셨다.

그저 시간이 좀 남아 오후 시간을 할애해서 잠깐 학교에 들어보았을 뿐인데…
이번 학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큰 선물을 내게 주셨다.

MIT를 용서하다 (6)

MIT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용서했다.
내가 MIT를 다시 걸으며… 경쟁 속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교수들, 학생들, postdoc들을 보았다.
MIT가 영예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며 admission office의 설명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마음 속에 두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
교수들, 동료들, 선배와 후배들…
결국은 그 system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몸부림치던 동료 피해자들이었다.

관용과 사랑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남겨놓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성취와 성공을 향해 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 놓은 피해자들.

물론 어그러진 system 속에서 행하는 타인에대한 가혹함이…
‘나도 피해자다’라는 말 만으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피해를 입으며 힘들게 박사과정을 지낸 나로서는… 그들을 용서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MIT를 용서하다 (5)

나는 내가 MIT에 있는 동안,
내 능력에 비해 내가 저평가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억울했다.

영어때문에 저평가 받는 것이 억울했고,
나를 인정해서 믿고 밀어주는 지도교수가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인정받는 것에 목이 말랐다.
나보다 못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포장을 잘 해서 ‘뜨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멸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열등감과 질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저렇게 떠서 앙갚음을 하리라는 독기로 가득차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졸업을 1년 반정도 앞둔 시기에,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 그렇게 많이 망가져 있는 나를 보게 하셨다.
아침 QT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참 많이 마음이 아팠었다. 그렇게 심하게 망가진 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또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그럼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게 되어 빠져 나왔나.
글쎄… 선뜻 대답에 자신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 어리석음과 탐욕에 매달려 허덕이던 나의 모습을 다시 반추해 볼 수 있었다.
나를 그렇게 몰아넣은 환경, 그리고 그 환경 속에 그저 동화되어버린 나…
나는 그것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MIT를 용서하다 (4)

많이 지치고 힘들면,
나는 게으름이라는 함정에 종종 빠지곤 하였다.

지도교수와의 문제가 힘들때,
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어…
그저 나만의 동굴에 숨으려 한 일이 많았다.

Game 중독에 빠지기도 하였고,
하루에 large coffee를 4-5잔씩 마시다가 위염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리에 힘이 빠져 그저 주저앉아 있던 때가 많았다.

게으름은,
내가 내 부족함으로부터 피해 숨는 나만의 동굴이었다.

내가 그 게으름의 극에 이르렀을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가 보았다.
다소 촌스러운 색의 페인트로 단장을 해서,
내가 살고 있던 시절의 모습과는 꽤 달라 보였다.

그 앞에서…
그 게으름의 늪에서 허덕이는 나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그 게으른 나를 용서했다.

MIT를 용서하다 (3)

나에 대하여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원 생활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잠깐 거친 지도교수를 포함해서..
내가 석박사과정을 통틀어 내 지도교수로 있었던 사람은 총… 7명이었다.
그중 MIT에서 총 5명의 지도교수가 있었다.

처음 입학한 후 7-8개월이 지나서… 처음 함께 일하기로 했던 교수가 있었다.
이분과 일하기로 이야기가 대충 되었고, 이제는 지도교수도 잡았으니 열심히 해서 졸업하면 되겠구나 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는데… 이분이 갑자기 나를 뽑기 어렵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내가 아닌 나보다 늦게 그 교수를 찾아간 다른 학생을 내 대신 뽑은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여러 교수들을 만났고…
어렵게 한 교수와 연결이 되었다.
이 교수는 지금 현재 자기에게 fund가 없지만 3명의 교수가 함께 하는 project에서 fund를 따려고 하니까 3명의 지도교수와 일을 함께 해 보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 project를 따오는 PI (프로젝트 대빵)이 공식적인 내 지도교수가 되었고 처음 접촉했던 교수를 비롯해서 2명이 공동지도교수가 되었다. 그룹미팅만 한주에 3개나 참석했고… 정말 열심히 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실험에 매달렸고.

그런데,
결국은 그 project가 돈을 따는데 실패했다. (아니면 그 교수가..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식으로 나를 짜른 걸까.) 정말 열심히 했는데… 다시한번 나는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었다.

이번엔, 박사과정 oral exam도 볼 기회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나는 석사과정 학생이 되었다.

절망과 좌절 끝에… 그리고 엄청나게 이메일을 돌리면서 알아본 끝에…
한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이분이 내 최종 지도교수가 되었다.
그 교수와 함께 석사논문을 쓰고 (입학한 후 4년만에 두번째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그 후에 박사논문을 4년 반에 걸쳐서 썼다. (입학한 후, 5명의 지도교수를 거치면서 연구 주제를 총 4번 바꾼 끝에, 석사학위 한개, 박사학위 한개를 8년 반만에 받았다.)

학생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과 사무실에서는 이번학기까지 졸업을 못하는 이유를 써서 내라… 는 식의 협박성의 공문을 내게 매 학기 보내왔었다.
매 학기 그걸 받아들고 힘들어 했던 기억들…

지도교수를 잡지 못하며 힘들어 하던 어떤 여름,
MIT 졸업식장을 지나며… 과연 내가 저기에 설수는 있을까…
내가 폐인이 되지 않고 이 과정을 다 마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그 lobby에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MIT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이 느낄때,
아침에 울며 QT를 하고 나서는…
MIT는 나를 망가뜨리지 못해… MIT는 나를 어쩌지 못해… 나는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렇게 마음속으로 고함을 질렀던 66동의 지하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어 보았다.

그렇게 많이 좌절하고 낙망했던 시간들…
도대체 내 뜻대로 되는 거라곤 뭐 하나 없는 것 같이 느껴지던 시간들…

과연 그것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학위도, 영예도, 명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