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찾아 다니시나요

코스타 온라인 스토어가 열려서,

나도 이제 비로소 지난 코스타 설교/강의들을 듣고 있다.

하루에 하나씩 듣는 것이 목표인데,

영 쉽지는 않다.

그중,

시카고 화요일 구원초청 전에 했던 ‘무지개를 찾아 다니시나요’ 노래가 유난히 내게 많이 마음에 남는다.

음…

솔직히 말하면,

이게 80년대 생들에게 먹힐 노래는 아니다. -.-;

그런 의미에서, 강사가 선곡을 잘 못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내가 예수를 믿고 얼마되지 않아서 배웠던 노래였다.

그리고 그때 이 노래를 혼자서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기타를 치며 부르고, 친구들과 만나면 함께 기타치면서 또 부르고… 흥얼 거리고, 휘파람 불고, ‘워크맨’에 테잎을 끼워서 반복해가며 또 듣고… 뭐 하여간 그랬던 노래다.

깨진 꿈, 상한 맘, 지친 몸을 모두 주님께 드리면 슬픈 마음 기쁨으로 변한다는 단순한 가사가 그때는 정말 내게 그렇게 살아있는 고백이 되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면서, 내 그 순수한 고백의 열정이 점점 약해지고, 내 깨진 꿈, 상한 맘, 지친 몸을 드리고 있지 않게 되어버린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설교를 들으며,

그리고 이 노래를 혼자서 따라하며,

울었다…

드려요, 모두다, 주님께 드려요… 

지난 설교를 들으며 든 반항심

며칠 전에도 쓰긴 했지만,

나는 사실 요즈음…

하나님께 좀 못마땅한 점들이 많다.

아는 몇몇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서,

그리고 쉽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좀 볼멘 소리를 많이 하고 싶어진다.

지난 주일 설교 시간에,

주님께서 정말 선하신 분이신가,  trustworthy한 분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설교하시는 들었는데,

나는 이렇게 좀 항변하고 싶었다.

네,

그 논리로는 알겠는데요,

당장 이렇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신건가요.

그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선하시고 trustworthy하다는 것은 알겠는데요,

그 하나님이 어떤 개인에게 ‘실존적으로’ 선하시고 trustworthy하게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장 저도,

요즘은 그 하나님이 그렇게 선하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답답하고 무겁고 힘듭니다.

….

같은 설교자께서,

지난 9월에, 하셨던 설교 내용 하나가 생각났다.

라브리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어 고민하는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는 프란시스 쉐퍼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프란시스 쉐퍼의 여러 논리가 매우 convincing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그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쉐퍼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그렇게 하나님을 믿기 어렵다면, 그 하나님을 믿는 내 믿음에라도 좀 의지해라.” 

그 설교자는 그 예화를 드시면서,

때로 믿음의 여정에서 다른 이에게 의지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디모데전서 설교하시면서…

….

그래,

그런 사람들이…

그래서 함께 모여야 하는 거구나.

서로의 믿음에 때로는 의지해가며,

이 땅을 resident alien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수퍼크리스찬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시는 것이라…

사랑의 소중함

사랑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소중하게 간직하고,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마치 소중한 화초와 같이 잘 가꾸어야 하는 것 같다.

가령, 화초에 물을 주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햇빛을 잘 받도록 하고… 하는 등의 일이,

때로는 tedious하게 생각될수도 있지만, 

그리고 아이 뭐 그따위 맨날 하는거… 뭐가 그렇게 대단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초가 말라버린다.

사랑도 그렇다.

당연하게 여길만한 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랑을 assume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내 가족, 내 친구… 등등을 사랑하는 것 모두,

작은 것들을 꾸준히, 열심히, 그리고 즐기면서… 하는 것이 사랑을 잘 가꾸어내는 중요한 key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그런걸까?

그리고, 하나님도 나를 향해 그런 사랑을 하고 계시는 걸까?

음… 그부분은 아직 잘 모르겠다.

글로 정리하고 싶은 주제들

다음의 주제들은, 내가 좀 더 시간을 내어서 정리하고 써보고 싶은 것들이다.

그런데 영.. 생각을 가다듬어 글로 써내려갈 여유가 안나는군… -.-;
– 자의식과 죄와의 관계
자의식 자체가 인간의 죄성으로 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최소한 자의식의 일부는 죄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자의식 자체는 원래 괜찮은 것인데, 죄성으로 얼룩지게 된 것일까?
자신을 표현한다든지, 자아를 실현하는 것등은 과연 기독교적으로 얼마나 지지받을 수 있는 개념일까?
– 하나님의 선하심, 침묵, 기다리심, 인간의 깨어짐
어떤 인간의 고통을 보면서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다고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선하시고, 그분이 여전히 다스리고 계신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Open theism과 같은 관점으로 이것을 풀어내는 일에는 어떤 위험과 유익이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전지전능 하시지만, 인간의 깨어짐이 모든 것을 mess-up하고 있다는 관점은 위험한 것일까?
– 내 start-up company 실패기
오랫동안, 꽤 열정적으로 했던 start-up company가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은, 나는 아직도 그것을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쓰리고 힘이 든다.
그렇지만, 여러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내가 그 과정 속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이 실패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무엇이 실패의 원인이었는지… 등등을 정리해보고 싶다.
– 진보적 복음주의자들과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 가지는 모순들
대부분의 경우, 보수주의자들은 context보다 text를 강조하고,
진보주의자들은 text보다 context를 강조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요즘 한국과 미국의 진보적,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을 보면 그것이 뒤집힌 것 같아 보일때가 있다.
text를 강조하다가 오히려 지나친 강조 때문에 text를 잃어버린 보수주의자들,
context를 강조하다가 오히려 지나친 강조 때문에 context를 잃어버린 진보주의자들.
– Christian Mysticism
요즘 Christian Mysticism이라고나 할까… 그런 쪽에 관심이 많다.
‘교리’로서 자신을 define 하는 복음주의는, 그 경계를 긋는 방법론의 한계 때문에 자신의 바운더리 밖의 문제를 제대로 address 못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복음주의가 답답할때가 많다.
그 복음주의의 대안으로서 소개되는 ‘젊은 복음주의자’들… 혹은 복음주의와 그 밖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 역시 많은 경우 복음주의가 바운더리를 만드는 방법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때가 있다. 그래서 이들 역시 (old) 복음주의를 비판하지만, 그  (old)복음주의가 빠지는 함정에 쉽게 빠져버리고 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좀 위험한 접근 같이 생각될수도 있지만, 소위 ‘mystic’들이 가졌던 관심에 조금 주목을 해보면, 그 대안을 일부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좀 많이 해보고 있다.
예전에 ‘초월적 세계관’이라는 내용으로 일부 그것을 좀 풀어보기도 했는데…
이 외에도 3-4개 정도 더 주제들이 있는데…
아… 정말 시간이 없다… 쩝.
주님께서 내게 에너지를 주셔서 이 와중에 이것들을 글로 좀 정리할 수 있게 해주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의지적으로 이를 악물고 한번 해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좀 여유가 어떻게든 생기거나…
그래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사

지난 주말, 이사를 했다.

결혼을 하고 학생부부로 살면서 참 많이 이사를 했었는데,

어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8번째 이사였다. -.-;

우리가 한 가정을 꾸미고나서,

처음 살았던 집은, 130년쯤 된 집이었는데, 창문이 낡아 잘 열리거나 닫히지 않았고, 거실 바닥이 살짝 기운 곳이었다. 게다가 집 주인이 바로 옆에 살았었는데, 우리가 작은 소리만 내더라도 뭐라고 하는 아주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다.

이사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을때, 우리는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걸 알았었다.

당시 영어도 뭐 그리 잘하지 못했고, 주변머리도 별로 없는 나는, 집 나올 날짜는 정해놓고 막상 이사 나갈 집을 잘 찾지 못했었다.

학교에서 좀 떨어진 Malden이라는 곳에 아파트를 하나 찾았는데, 그 앞에서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이 아파트에는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도 난다. 정말 그 아파트가 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

8번 이사하는 중 한번은, 

도와주는 사람 한 사람도 없이, 우리 둘이 모든 짐을 다 옮겨 이사한 적도 있었다.

우울한 이사들도 있었고, 기대에 찼던 이사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우리는 늘 ‘가난한’ 이사를 했었다.

이번 이사는,

정식으로 mover도 불러서 하는 이사였고,

나름대로 꽤 여유있게 하는 이사였다. 

8번 이사 끝에 결국 콘도 하나를 ‘구입해서’ 가는 이사이기도 했다.

에너지 넘치고, 시간 많던 학생때와는 달리,

이제 힘도 많이 달리고, 시간도 많이 부족해서 예전과 같이 이사가 그리 쉽지는 않다.

정말 온 삭신이… -.-;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 잘 지켜주셨다.

엄마 뱃속에서 처음 이사를 했던 민우는, 이제 자기 방을 자기가 정리한다고 손도 못대게 한다. ^^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심을 더 깊이 느끼며 누리며 감사하며 살면 좋겠다.

두주 쉬는 동안

자그마치 두주동안이나 블로그 글을 쓰지 않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두주 후면 많은 복잡한 생각들이 더 많이 정리되어 잘 정돈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더 많아지고, 고민은 더 깊어지고…

게다가 이사까지 하는 바람에 정리된 글 쓰기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글쓰기 시동을 걸어야 할 것 같아 새 집에 인터넷이 개통되자마자 이렇게 한자락 올려 봅니다. 

글 투를 바꾸어서 글을 써 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한번 올려봅니다. 

이사 때문에 온 삭신이 쑤십니다. 🙂

이번 한주, 블로그 더 쉽니다.

지난주,

KOSTA 집회가 잘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14년만에 결석을 하면서, 내내 마음은 테일러와 휘튼에 가 있었습니다.

한편 함께 가 있지 못한 것이 대단히 고통스러웠지만,

이렇게 인도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더 생각을 가다듬고, 기도를 하기위해,

이번 한주 블로그를 더 쉽니다.

이렇게 오래 블로그를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허접한 글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한주, 혹은 두주 동안 블로그를 쉽니다.

다음 한주,

KOSTA 집회를 두고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블로그를 쉽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까지도 쉬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하지 못하지만,

2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마음을 쏟아, 눈물을 쏟아, 무릎꿇어 기도하고자 합니다.

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지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한주동안 여러분의 땀과 눈물에 젖은 조끼가 정말 많이 생각날겁니다.

14년만에 처음으로…

96년에 처음,

나는 KOSTA 집회에 참석했었다.

하루종일 하도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기뻐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안타까워서 울고, 답답해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소망에 감격해서 울었다.

그후 99년, 지도교수가 여름에 short-course를 하면서 나를 ‘조교’로 쓰고 싶다고 해서,

나는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후 작년까지,

매년 나는 7월 첫째주를 시카고 혹은 인디애나에서 보냈다.

금년에…

14년만에 처음으로,

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마음의 상태로는, 어쩌면…

주님의 은혜를 깊이 더 경험하고 싶은 목마름이 간절한데…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다음 한주,

시카고와 테일러에서는 또 한번의 잔치가 열린다.

내일 부터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빨간조끼들이 많이 고생하기 위해 집회 장소에 모여들것이다.

다음 한주,

나는 이곳에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많이 울게 될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모인 소중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꼭 만나주시길 기도한다.

난감한…

내가 이전 직장에 있을때,

아… 저런 사람하고 함께 일하면 정말 피곤하겠구나…. 하고 매일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도 함께 일할 기회가 없어, 그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사람이 회사에서 lay-off를 당했다.

음… 뭐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그 사람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요즘 계속 내 linked-in을 통해서,

내 network에 있는 누구를 소개시켜달라, 누구를 소개시켜달라는 식으로 요청을 한다.

그렇게 내 network에 있는 사람과 연결을 해서 그를 통해 job을 얻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벌써 몇번이나 내게 그런 부탁을 하고 있는데,

부탁이 올때마다 점점 더 표현이 간절해진다.

음… 좀 난감하긴 한데…

왜냐하면,

나는 이 사람을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참 고통스럽게 느껴질정도로…

참 이기적이고, 잘난체 많이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뭐 그런 사람인데…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내 양심상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 민우랑 동갑인 그 사람의 딸이 생각난다.

그 아이도 이제 고등학교를 들어가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내가 나서서 좀 소개도 시켜주고 해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