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

블로그에 글을 계속 쓰다보니,
내 생각을 정리할 곳이 있어서 좋고, 나를 care 하는 사람들이 나에대한 생각을 알 수 있게 되어서 좋고… 참 괜찮다.

나는 늘 생각이 얕고, 철안든 강아지 같이 번잡스러운데, 이렇게 하니까 내 자신을 비추어 보게도 되고,
내가 글을 쓴는 방식이나 말을 하는 방식의 한계도 보게되고,
여러가지로 배우게 된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내 블로그에는 누가 들어오는거야?
하루에 방문자가 50-60명 많으면 70명이 넘기도 하는데…
내가 하루에 2-3번 들어오니까, 그거 빼면 나머지는 누굴까. 흠…

생각을 흔들어 놓기

불과 2년 전 정도까지…
나는 잘못된 신앙의 태도와 노선을, 무지의 결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이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생각을 흔들어 놓는 일을 하려고 참 많이 노력했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하고, 그쪽에서 울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좌절이나 혼란에 빠지게도 되는 일들을 보았다.  장기적으로 그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되어 결국 올바른 가치들을 받아들이는 일들을 내가 목격한 적도 있었고, 그 끝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과의 연락이 끊어지기도 하였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열망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의 기반을 흔들었을때 붙들 수 있는 무엇이 바로 가까이 있지 않은 상태일때에는… 그 사람의 기반을 심하게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대안이 될만한 가치체계가 가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새로운 대안을 취할 능력/여력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원래의 잘못된 기반을 심하게 흔드는 것은 자칫 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잘못된 기반에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 있을 때에는 (정서적, 감정적 뿌리를 포함해서)
그 기반을 차라리 놓아두는 것이 최소한 잠정적으로는 올바른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내 자신을 define 하듯…
“변절한 이상주의자”의 궤변인걸까…

말을 줄이기

나는, 정말 너무 말이 많다. 정말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잘 듣지 못하고, 듣는 일에 둔하다.
그러다보니 말 실수도 많고.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갈길이 멀다.

말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몇가지 생각해 보았다.

1. 나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나 중심적 사고방식
듣는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한다는 desire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생각이다.

2. 다른이들의 말과 생각에 비해 나의말과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교만함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과는 정 반대의 idea 이다. 나의 짧고 얕은 생각의 결과에 흥분한 나머지 다른 이들의 깊고 풍성한 생각, 혹은 더 깊은 실존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3. 다른이들로하여금 나를 accept 하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일종의 열등감과 불안감
가만히 있으면 insignificant 해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나를 드러내어야만
하는 강박관념이 있게 되는 듯 하다.

또 뭐가 있을까.

Being Bossy

내가 어떤 사람을 나의 boss로 인정하지 않는데,
그 사람이 네게 boss로 행동하면, 그 관계는 참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있고…
그리고 물론, 더 큰 문제는… 내가 심하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boss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내게 있지 않나 싶다.
어떤때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그 사람에 대한 친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그 사람의 사사로운 것에 참견을 한다거나 그 사람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한다 못한다 참견을 한더거나… 등의 일들을 벌이게 된다.

이 고통을 가장 심하게 당하는 사람은 물론 내 아내이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Narcissism

나는 매우 자주 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머리 속에 잠깐 스쳐간 ‘멋진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오래 기억하여 내가 마치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반면,
내 머리 속에 늘 남아 있는 ‘추악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 스스로를 지나치게 후하게 평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때 내게 다가오는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을 한번 곱씹어본다.

나는 과연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이러한 ‘narcissism’에 젖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을까?
때로 다른이의 눈을 통해서 본 내가 더 정확할 때가 있을텐데.

신앙의 성숙을 잴 수 있는 여러가지 척도 가운데,
이러한 narcissism으로부터의 탈피도 중요한 척도인 듯 하다.
‘자기 비하’나 ‘열등감’ 혹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낮아짐이 아닌,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경지.

그런 의미에서 바울이 스스로를 ‘죄인의 괴수’라고 한 말에는… 정말…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

마치 바이러스를 옮기듯 복음을 옮기고 다니고,
마치 gossip을 하듯 복음을 소개하고,
마치 독사에 물린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병원으로 뛰는 사람과 같이 절박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마치 공기중의 산소를 호흡하며 살듯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언제 다시 그런 사람들이 이땅을 어지럽게 하는 일들을 보게 될 것인가.
오늘 저녁 Stanford KCF에서 있을 일들을 위해… 내 마음을 찢는다.

당연한 말을 또 한번 하기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연한 말을 또 한번 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참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
나와 대화상대가 이미 공통적으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이야기하는 것 등등…

아마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배운다.

매우 자주, 같은 presupposition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만히 이야기해보면 매우 다른 presupposition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나와 매우 다른 context와 background에서 문제와 상황을 접근하기 때문에 의외로 내가 아주 기초라고 생각하는 것이 함께 공유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모두 감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경우 내 대화 상태가 아주 당연해 보이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니 왜 저런 말을 저렇게 길게 해야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도 되지만,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경과 사랑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배어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다니엘 9:1-19

어제 QT 본분은 다니엘 9장 전반부였다.
지난주 Stanford KCF 모임에서 다니엘 9장 전반부를 나누면서 함께 그렇게 기도하자고 했었는데…

정말 가슴을 후벼파는… 그런 본문이다.
정말….

9: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우스가 1)바빌로니아 나라의 왕이 된 첫 해,

2 곧 그가 통치한 첫 해에, 나 다니엘은 거룩한 책들을 공부하면서, 주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 곧 예루살렘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한 상태로 있을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3 응답을 들으려고, 나는 금식을 하면서, 베옷을 걸치고, 재를 깔고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간구하였다.

4 나는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아뢰었다.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주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언약과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5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며, 반역하며, 주님의 계명과 명령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6 우리는, 주님의 종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7 주님, 주님께서는 언제나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처럼 낯뜨거운 수치를 당합니다. 유다에 사는 사람이나 예루살렘에 사는 주민이나, 가까운 데나 먼 데, 곧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흩어져 사는 사람이, 주님께서 쫓아내신 그 모든 땅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8 주님, 우리와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이 낯뜨거운 수치를 당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용서하여 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율법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11 참으로 온 이스라엘이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율법을 어기고 벗어났으므로,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벌과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2 주님은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셔서, 우리와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내린 것과 같은 재앙은 하늘 아래 그 어느 곳에서도 없던 것입니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14 주님께서 재앙을 간직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미치게 하신 것은, 주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우신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15 강한 손으로 주님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은 명성을 얻으신 주 우리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짓고,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16 주님, 주님께서 지난 날에 우리를 구하여 주셨으니, 이제 주님의 성 예루살렘 곧 주님의 거룩한 산으로부터 주님의 분노를 떠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의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과 주님의 백성이 우리 주위에 있는 민족들에게 멸시를 받습니다.

17 우리의 하나님, 이제 주님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 주십시오. 무너진 주님의 성전을 복구하여 주십시오. 성전을 복구하셔서,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해주십시오.

18 나의 하나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눈을 크게 뜨시고, 우리가 황폐해진 것과 주님의 이름을 빛내던 이 도성의 고통을 굽어보아 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주님께 간구하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고, 주님께서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19 주님, 들어 주십시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만민이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니, 지체하지 마십시오. 이 도성과 이 백성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성숙한 사람들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자신이 미성숙하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교회의 문화에 익숙해서,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많이 미성숙하다…
하는 식의 말을 하지만…

사실 이들과 정말 마음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보면,
자신이 전혀 미성숙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거나…
심지어는 다른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성장 자체가 멈추어버린 상태에서 몇년, 십몇년, 심지어는 수십년씩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성장/성숙에의 자극을 주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들다.

이런 사람들과 만날때마다,
나는 섬뜩하게… 내 자신의 모습을 본다.
신앙의 핵심이 아닌, 문화와 껍데기에 익숙해져 안주해버리는 모습,
피상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구체적이지 못한 삶,
내가 하고 있는 작은 ‘선한 생각’들을 스스로 곱씹으며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나의 미성숙함을 내가 바라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늘 두렵다.

정보와 묵상

(1)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과,
(2)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지 못한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문제일까.

내 생각엔 전자, 즉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을 하는 경우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깊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내리는 편향된 결론에 엄청난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소위 ‘신앙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내 모습을 스스로 이에 비추어 보며…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