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5)

그럼 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내 일을 하느냐…
글쎄,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잘 못하는 것 같다. -.-;
이런 환경 속에서 나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분명하게 내가 할 일을 성실하고도 정직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잘 해내는게 그리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나름대로 해본 몇가지의 생각이 있다.

우선,
갑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vendor/supplier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갑질이 많아지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함께 일하는 vendor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여건이 주어진다면, 내가 하는 일에 관한한 실력이 뛰어나면서 성실한 partner를 찾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렇게하면 그 vendor를 믿고 그쪽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줄 수도 있고, 더 서로 존중하면서 일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런 과정에서 내게 유익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일이 되게하는 것을 추구한다.
사실 세상에는, 하고 있는 일보다 자신의 self-promotion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일이 되는데 필요한 것은 서로 논리적으로 동의해서 일하기가 가능한 반면,
self-promotion을 위해서 data를 더 얻어내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요청을 마치 중요한것인양 포장을 하는 일도 해야하고.

세번째는,
그렇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비대칭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 정보를 안다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내 생각에 동의할 가능성이 많지만…
사정상 그 정보를 다 나누지 못할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쨌든,…. “나를 믿고 좀 같이 가자”고 요청을 해야할수도 있다.
그쪽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살짝 더 밀어붙여야하는 경우도 있다.
일시적으로 욕을 먹는 일을 감수하는 일이 때로는 불가피하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는 회사/사람들에게 credit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그건 이 사람들이 한거야.. 내가 한게 아니야… 라고 이야기를 해야할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나를 낮추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높이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이게 손해인것 같아 보이는데,
그렇게 계속 일을 하면 결국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더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갑질 (4)

이런 환경 속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정말 ‘갑질’을 하게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는 Silicon Valley에서 꽤 오래 일한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러면서 정말 갑질을 무지막지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시아의 회사에,
20대의 젊은 엔지니어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가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회사의 높은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따지는 것도 보았다.
자기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회사 내에서 보여주려고 자기가 담당한 회사 사람들을 마구 쥐어짜서 꼭 필요한 것 이상으로 data을 얻어낸 후에 그걸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안타깝게도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힘있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 회사 직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권력’이 주어지는데…
그 권력을 그 권력의 범위만큼만 행사하는 사람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거의 99%의 사람들은 그 권력을 가지면 자신이 그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낫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 권력을 권력의 범위 이상으로 남용한다.

갑질은
Silicon Valley의 언어인듯 하다.

갑질 (3)

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이나 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은 주문자 위탁 생산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것은
– A라는 회사가 디자인을 하고,
– B라는 회사에게 그 디자인에 맞추어서 생산을 하도록 주문을 해서,
– B 회사가 그것을 생산하면
– A 회사가 그것을 사서 시장에 파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서, 볼펜하나를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내가 볼펜을 디자인을 한다. 플라스틱 봉은 어떤 재질로 할 것인지, 지름과 길이는 얼마인지, 색깔은 어떤지, 안에 들어가는 스프링은 어느정도 세기의 스프링을 쓸 것인지, 잉크는 어느정도의 점도를 가지게 할 것인지, 볼펜 끝의 볼은 어떤 규격으로 할 것인지 등등.
그리고 그렇게 볼펜을 만드는 회사를 찾아서 그것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단순해보인다…
그런데 실상을 그렇지 않다.

볼펜회사에서는 금년 11월에 이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볼펜에 대해 어떤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조건도 가지고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이 개발이 잘 이루어지고, 원하는 규격을 다 맞추기 위해서는 그것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볼펜을 만드는 하청업체 혹은 vender와 부지런히 연락을 하면서 이 과정을 끌고 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요즘 silicon valley의 회사들은 이 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이것을 관장하도록 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vendor가 이것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과정의 자세한 내용까지도 원래의 볼펜회사가 관여를 하게 된다.
그냥 이런이런 볼펜을 만들어 주세요… 하고 그것 나중에 받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주 구체적인 것까지도 미주알고주알 control을 하고 manage를 하는 것이다.
이게 요즘 silicon valley 회사들이 많이 하는 방식이다. 자신은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을 마치 거의 자기 회사인양 다루는 거다.

이쪽에 아주 구체적인 것 까지도 control하기로 악명이 높은 회사는 쿠퍼티노의 사과회사이다. ^^
볼펜의 예로 들자면, 볼펜을 조립하는 회사를 control 한다. 그리고 볼펜 플라스틱 봉을 만드는 회사도 control 한다. 게다가 볼펜 플라스틱 봉을 만들때 사용하는 mold 회사도 control 한다. 볼펜 플라스틱 봉에 사용되는 재료 회사도 control 한다. 구체적으로 몇도에서 이 공정을 하는지 그 공정을 +/- 몇도 이내에서 control하도록 요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봉이 섭씨 50도와 -40도에도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테스트하도록 요구한다… 정말 끝도 없다.

하다못해 볼펜 하나를 예로 들어도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라.
vendor들을 관리하고 control하는 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시장의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영혼까지 탈탈 털리도록 micro manage를 하고 관리를 할때가 많다.

사과회사같은 top tier 회사는, 주요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 아예 십여명 많게는 수십명이 상주를 하면서 계속해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한다.
그 vendor(하청업체)들은 그렇게 와 있는 원청업체의 직원들을 정말 잘 대접한다…

갑질 (2)

갑의 위치에 있을때 갑의 위치를 그냥 방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갑은 을을 대할때, 우리가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꼭 염두에두고 해야 하지만,
갑은 때로 갑으로써 해야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다음의 몇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그렇다.
대개 갑은 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급 정보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갑은 어떤 project를 더 high level에서 조망하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resource allocation이나 schedule등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을에게 다 알려주기 어려울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갑은 그 정보들에 비추어서 을에게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잘 해 줄 필요가 있다.

두번째, 일반적으로 갑과 을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에서 을이 갑에게 기대하는 어떤 것들이 있고, 을이 갑에게 기대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 그것은 대개 시장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일종의 ‘일하는 방식’이다.
물론 그 속에서 나쁜 갑질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해야하겠지만, 갑이 을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그것을 검사하고, 그 모든 것에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구조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시장에서 통용되는 ‘일하는 방식’을 깨는 것이고, 대안적 구조를 만드는 것은 그저 한두사람의 노력으로 후다닥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번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게으름’이라는 함정에 잘 빠지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정말 tricky한 이야기인데…
내가 을의 입장에서 보아도 내 갑이 나를 부지런히 ‘관리’할때 내 productivity가 더 높아지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그것이 너무 극단적이 되어 micromanage를 하는 지경까지 가면 오히려 productivity가 떨어지게 되지만, 절절한 순간에 일이 되었는지를 점검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일들은 일이 그냥 흐지부지 않되지 않도록 막는데 분명히 역할을 한다.

실제로, 내가 ‘갑;의 위치에 서 ‘갑’이 해야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와 함께 일하는 ‘을’과 나는 모두 함께 실패하고 낙오하게 된다.
내가 을의 입장에 있을때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나의 ‘갑’이 (내 manager가 되겠지) manager로서의 역할을 잘 해주어야 내가 정말 일을 제대로 잘 할 수 있다.

나는 아주 원론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현실적으로는 갑과 을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존재를 마치 없는것 처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갑질 (1)

내가 하는 일의 특성 때문에,
‘갑질’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못되게 하는 일을 참 잘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내게 못되게 하는 것을 참 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냥 갑질 안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그게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앞으로 몇번의 글에서 내가 갑질에 대해 생각하는 몇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이번주에는 또 한번 엄청 갑질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서…
한편 불편한 마음이 있고, 한편 잘해야하는 부담도 크다.

흔히 갑질이라고 하면,
갑의 지위를 남용해서 쓸데없이 을을 괴롭히는 짓을 의미하는데,
나는 갑의 위치에 있을때 어떻게 나쁜 짓을 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여기서 한번 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우선 clear하게 이야기할 것은,
갑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을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볼수는 있지만 을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가 매우 중요할 것같다.
그렇기 때문에 갑으로써 잘 해보려고 노력해도 갑은 그 존재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7)

이렇게 해서 일본 회사가 휘청하면 속이 시원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실제로 일본의 그런 재료회사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밥도 먹고, 이메일도 하고, 밤 늦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한 사람들이 꽤 있다.

일본 회사가, 일본 경제가 휘청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당장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밤 늦게까지 함께 일하고 근처 라면집에서 라면 먹으면서 함께 자녀교육 이야기,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 출퇴근하면서 고생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테라타니상이나 타카히로로상, 토모노상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당장 떠오른다.

일본 재료업체들이나 부품업체들에 가보면, 한국말을 잘 하는 일본 사람들을 만날때가 많다. 한국에 3년, 5년씩 살면서 sales를 했다는 사람들이다.
나는 당장 그런 일본에 있는 ‘한국통’들의 job이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뭐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일들에 대해 어떤 깊은 통찰을 가질만한 식견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좁은 경험으로 보면,
이번에 일본 정부가 벌이는 일은, 많이 이해가 안된다.
한국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일본에 있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걱정된다.

뭐 이정도로 정리될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좀 싸우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6)

가령 한국의 삼성에서 플렉시블 스마트폰 갤럭시 폴드를 만드는데, 거기에 일본 Sumitomo의 폴리이미드 필름이 들어간다고 하자.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서는 누가 ‘갑’이 될까?

그건 시나리오에 따라 다르다.

삼성에서 요구하는 폴리이미드를 만드는 회사가 일본의 Sumitomo말고 다른데가 없다면 Sumitomo가 힘을 갖게 된다.
반면, Sumitomo가 만드는 폴리이미드의 대부분을 삼성이 소비하고, 삼성은 Sumitomo 말고도 다른 option이 있다면 이때는 삼성이 갑이다.

지금 일본이 이깃장을 놓고 있는 재료들은 그렇다면 이중 어디에 해당할까?

나는 직접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게 한국의 숨통을 조여서 확 산업이 죽어버리게 할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가령, 내가 얼마전에 이쪽 실리콘 밸리에 있는 엔지니어와 이야기를 하면서, 삼성 Galaxy fold의 겉면의 플라스틱 필름이 어느회사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Sumitomo것을 쓴 것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왜 하필 Sumitomo냐고 물었더니 삼성이 한국 회사와 일하면서 그걸 해보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국 회사로부터도 꽤 괜찮은 물건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한국 회사가 계속 그렇게 안정적으로 물건을 잘 생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삼성에게 없어서 결국 일본 회사를 선택했다고…

대개 재료선택이 그런식이 많다.
이 회사도 있고, 저 회사도 있는데…
어떤 회사를 선택할때 기준이 결국은 stable한 supply가 되느냐 하는 것이.

그런데….
재료회사의 공급이 stable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삼성은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공급처를 바꾸는 거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이렇게 한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왜 이런 자해행위를 하는 걸까?
이거 잘못하면 일본 회사들 휘청하게 만들수 있는 아주 위험한 도박인건데…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5)

트럼프 아저씨가 깽판을 치고 있어서…
지난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국제적 분업체계가 무너져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때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지금의 그런 분업체계의 다른 대안이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는 manufacturing을 하는게 진짜 어렵다. 미국 사람들과 일해보면 그게 무슨 소린지 안다. ㅎㅎ

그런 국제 분업 체제 속에서,
빨리빨리를 잘 하는 한국 기업이 부품이나 완성품을 만들고,
안정적인 일을 잘 하는 일본이 재로나 화학약품, 혹은 일부 부품을 만들어서 공급하고…
그렇게 하는건 꽤 안정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분업체계인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일본의 소니가 한국의 삼성과 같이 스마트폰을 잘 만드는 일이 일어나기는 진짜 어렵다고 본다. 여기에는 빠릿빠릿함의 문화가 아주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화학업체가 일본화학업체가 만들어왔던 어떤 플라스틱 재료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제품관리(quality control)은 어떤 특정한 체제(system)을 잘 적용함으로써 많이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물룬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문화를 잘 enforce할 수 있는 tool들이 이미 시장에서 개발되어 있다고 보는 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성과 SK 하이닉스의 반도체다.
DRAM 반도체는 소위 ‘수율(yield)라는게 아주 중요하다.
처음 시작한 wafer에서 몇개의 살아있는 반도체 소자가 나오느냐 하는 비율이다.
한때 삼성의 수율은 100%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도 그럴게… wafer 가장자리에 그냥 테스트 삼아서 형성해놓은 반도체 소자들도 다 작동이 된다는 거다.

이게 비전문가들에겐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기가막힌 일인거다.

가령 일본 도시바와 한국의 삼성이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 같은 크기의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데, 도시바의 수율이 90%이고, 삼성의 수율이 99%라면, 삼성은 도시바보다 같은 품질의 반도체를 9%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의 제조업은 이런식으로 이미 아주 높은 수준의 quality control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왔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꾸준함을 한국에서 구현해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4)

반면 한국은 스피드가 장난이 아니다!

실리콘 밸리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이건 정말 엄청난 advantage이다.
보통 회사에서 일할때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라는 정도로는 일을 할 수 없다.
아침 10시 일을 아침 11시로 미루지 말라 정도가 회사의 템포이다.
그러니 정말 후다닥 일을 해내는게 진짜 중요하다.

특히 새로운것을 개발할때는 소위 ‘fail fast’라는 개념이 있다.
뭔가를 후다닥 해서 만들어보고, 문제가 있다면 그걸 빨리 발견해서 포기할건 빨리 포기하자는 아이디어이다. – 이건 정말 완전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회사가 일본이랑 일을 하려면…..

한국은 보통 유행에도 아주 민감하다. 한국 출장을 가면 여자들의 옷차림의 트렌드가 진짜 잘 바뀐다.
그런데 일본 여성 사무직의 옷차림은 언제나 그래로이다.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에 묶은 머리.

한국 사람들은 약간 지난 시절의 것을 뒤쳐진 것으로 여기는데 반해,
일본 사람들은 약간 지난 시절의 것을 잘 지켜서 안정적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technology 업계 (3)

일본 회사와 일을 할때는 속터지는 것을 많이 참는 수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

가령, 일본의 어떤 회사에서 10cm 길이의 플라스틱 막대를 만든다고 하자.
그리고 내가 그걸 받아서 쓰려고 한다고 하자.
내 제품이 10cm 길이의 플라스틱 막대를 요구하는 제품이라면, 이건 완전 짱이다.
일본 제품은 10cm에 길이 오차가 완전 적은… 그야말로 아주 믿음직하게 10cm 길이의 플라스틱 막대를 잘 만든다.

그런데 내가 제품을 만들다보니, 이걸 10.5cm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자.
이럴때 일본 회사는 완전 힘들어 한다. -.-;
아니, 그거 10.5cm 짜리 그냥 후다닥 만들면 될 것 같은데, 길이를 5%나 길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쉽게 결정을 할 수 없다며 줄줄이 upper management의 결제를 받는다. 그 결제를 받는 과정도 무지하게 복잡하고 힘들다. 그까짓거 그냥 쪼금 길게 좀 만들어 주면 좋으련만… 그걸 그렇게 힘들어 한다.
게다가 내부적으로 10.5cm짜리를 만들도록 허락이 되었다 하더라도, 10.5cm에 오차가 0.01cm 이하가 될때까지는 외부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불완전한 것을 잘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뭔가를 개발할때 하루가 delay되면 거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생각하는 silicon valley의 생리와는 완전히 잘 맞지 않는거다.

이게 내가 경험한 소위 일본의 ‘장인정신’이다.
이 사람들은 익숙한 것은 정말 잘 만든다.
아주 퀄리티를 믿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익숙한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힘들어하고, 모든 process가 완전히 느려진다.

일본에 가면 때로 한국의 70년대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이 느낄때가 있다.
일본은 그렇게 변화를 잘 수용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우직하게 꾸준히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미덕인 거다.
신속하게 하는건 이사람들 생리에 잘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