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fully Made Series (7)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다루기전에,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교회가 조금더 강조하면서 깊이 이야기해야하는 문제는 identity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자신의 identity를 자신이 define한다고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강요한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의미에서 그 개인에게 지우지 말아야할 책임과 무게를 개인에게 지우는 부조리를 야기시킨다고 생각한다.

LGBTQ+를 죄라고 생각하든 아니든간에, 적어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할수 있는 것은 자신의 identity를 자신이 define하려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려는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결국 그것은 자신과 세상에게 파괴적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하고, 동성애 이슈는 차라리 좀 open ending으로 남겨두어야하지 않나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Wonderfully Made Series (6)

어제는 Gender, Identity, Sex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Echo Church에서는 그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했지만, Westgate과 Menlo Church에서는 guest speaker가 설교를 했다.

우선 어쩌면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데 guest speaker를 쓴 것은 뭔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자하는 것 같아 보였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거나 사람들의 반응이 불편해보일때, 아… 그건 그 guest speaker 생각이고… 이렇게 도망갈 길을 마련해놓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창조에서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 새로운 연합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창세기 창조기사도 그런 것이다. Biological sex와 Gender identity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것이 아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우선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이 ‘죄’인가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죄하는 방식으로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Echo Church는 조금 달랐다. 거기서는 이번주에 singless를 다루었는데, 여성동성애자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single로 사는 것을 다루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 보수적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그리고 참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잘 보였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설명과 주장이 충분해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수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조심하다 만것 같이 들렸을것 같고,
개방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하려고하는 이야기가 뭔데, 결국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는 거잖아… 이렇게 듣고 말았을 것 같다.

짧은 한번의 설교에서 이 민감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다보니 그랬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좀 아쉬웠다.

Wonderfully Made Series (5)

두주 전, DC area에서 있었던 KOSTA 모임에서도 이야기하긴 했지만,
나는 교회에서 ‘가정사역’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좀 안했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기독교는 Singleness를 정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인정한 최초의 세계관이라고 한다.
예수님도 독신이셨다.

행복한 가정생활 = 기독교인의 모습 이라고 등치시키니,
가정생활이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교회에 올때 가면을 쓰고 나타나게 된다. 마치 행복한 것인양.

한국의 통계와 데이터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점점 결혼이라는 것이 일부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은 정말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는 것.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한 가정생활을 외쳐대는 폭력을 교회가 좀 그쳤으면… 정말 간절히 바란다.

나도 주변에 매우 고통스럽게 이혼을 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정을 조금 더 알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구체적인 사정을 잘 모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복음이 그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아니라면, 최소한 그런 사람들 앞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이 기독교의 최고의 가치인양 흔들어 대는 일이라도 좀 그치면 좋겠다.

Wonderfully Made Series (4)

아직은 두주밖에 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시리즈를 조심스럽게 다루어내는 교회의 자세가 매우 좋다.

설교하면서, 목사님들이 매우 겸손하게 접근한다.
“이게 진리다” 뭐 그런 식이 아니다.
오히려 설교중에 자기마음에 드는 입장이 나온다고 해서 환호하거나 박수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면 생각이 다른 사람이 불편하다고.

공개적으로 매우 명확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는 LGBTQ+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그리고 자신같은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으로 대한 것을 사과하기도 한다.

성에 관련해서 이성애자들의 죄가 차고 넘치는데, 동성애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위선과 폭력에 대해 여러번 강조하고, 사과한다.

그렇지만 교회마다 이야기하는 톤이 조금씩 다르긴 하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엔 내가 다니고 있는 Menlo Church가 제일 조심스럽게 하는것 같고, 다른 교회들은 약간 더 보수적인 입장을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적어도 지난 주 sexuality를 주제로한 설교에서 Menlo Church는 explicit하게 sex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관계에서만 이루어져야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4개의 교회중 가장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Echo Church에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동성애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Wonderfully Made Series (3)

나는 개인적으로,
흔히 한국교회와 미국의 어떤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소위 ‘가정사역’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하나님께서 이땅에 이루시고자하는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것이라는둥,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라는둥,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빨리 결혼하라고 닥달을 하는 것 같은…

사실 매우 많은 사람들은
전혀 이상적이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거나, 현재 이상적이지 않은 부부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역시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 이혼을 했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건, 그저 그 사람들에게 폭력적이 된다.

내가 이곳에서 다니고 있는 Menlo Church도 그렇게 Boston에서 다녔던 Grace Chapel도 미국의 복음주의권에서 매우 건강하다고 여겨지는 교회들이다. 그런데 그런 교회들이 교회에서 가정사역이니 뭐 그런거 하지 않는다.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서 벗어나고 있을 때에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강조가 많이 교회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야말로 인간에 대한 존중.

그렇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며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미 많은 강조를 하고 있고, 교회에서까지 그걸 더 할 필요가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런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대한 관심과 배려가 교회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Wonderfully Made Series (2)

Sex와 Gender에 대한 것은 매우 민감하기도 하고, 특별히 요즘은 이것이 정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Bay area같은 곳에서 이런 이슈를 다루는 것은 특별히 더 어려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Sex와 Gender에대해 매우 강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다른 의견에대한 심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첫주에는 ‘육체’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두번째 주에는 ‘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지난 주일)
세번째 주에는 욕망과 독신에 대한 내용을 다룰 예정이고
네번째 주에는 Gender와 Identity
그리고 마지막주에 사랑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어떠면 가장 sensitive하면서도 hot 한 topic이 네번째주의 Gender / Identity일 것 같은데, 각 교회들이 어떻게 다루는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Wonderfully Made Series (1)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요즘 Wonderfully Made 라는 제목으로 설교 시리즈를 하고 있다.
그 내용은, 주로 육체, 성, 독신, Gender와 identity 등 이다.

완전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매우 controversial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설교는
Menlo Church, Echo Church, Westgate Church, Vintage Faith Church – 이 동네에 있는 이 4개의 교회가 같은 주제로 같은 기간동안 함께 하고 있다. 이 동네에 있는 대표적인 ‘복음주의권’에 있는 교회들.
포스터도 함께 만들어서 쓰고 있고, 이 주제로 교회별로 돌아가면서 별도의 discussion session등도 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이 4 교회가 함께 같은 주제로 이렇게 설교한다는 것이 매우 보기 좋았다.
내가 알기로 몇달전에도 이런식으로 한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 4교회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리고 함께 뭔가 이렇게 하면서 서로의 교회에서 여러가지 미팅도 계획하는 것이 참 좋아보였다.

대개 이런 교회들은,
부활절 직후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만한 주제로 설교 시리즈를 하곤 한다.
왜냐하면 어쩌다가 부활절에만 나온 사람들이, ‘다음 주 부터는 이런 주제로 설교합니다’라고 광고했을때 궁금해서 몇주 더 나오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들을 다루어내는지 궁금해서 내가 다니는 교회 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는 같은 주제로 어떻게 설교하는지도 들어보고 있다.

그런데 들어보니, 아마 목사님들끼리 서로 스터디도 같이 했는지, 비슷한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한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4)

예전에 Tim Keller가 어떤 설교에서 한 예화.

교회에서 전쟁으로 엉망이 된 어떤 나라에 정신과 의사들을 봉사단으로 보냈다고 한다.
아마 전쟁이 있었고,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그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막상 그 정신과 의사들이 갔다가 거의 대부분 그냥 돌아왔다고.
막상 갔더니, 그 사람들의 상황을 끔찍하고 비참했지만, 그 사람들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였단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닌데, 도저히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

나는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사는 매우 중요한 팁을 그곳에서 얻었다.
그것은, 망가진 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서구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뭔가 내게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해내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어떤 사람을 고소하기도 하고, 많은 돈과 자원을 들여서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그것이 가치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무너져있는 어떤 것들을 그저…
그러려니… 이것이 내 삶의 일부이려니…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사는 팁이 아닐까 싶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3)

망가진 세상을 살때 흔히 하는 일은,
그 망가진 것에 눈을 감고 회피하는 것이다.

그게 꽤 잘 먹힌다.
다만, 그렇게 눈을 감고 회피하지 못할만큼 그 망가진 것이 내게 고통으로 다가오기 전 까지는.

갑작스러운 사고,자연재해 등과 같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문제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 심각한 질병, 경제적 문제 등과 같이 내가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닥치면 그것을 감당하기 너무 힘든 문제 등은 결국 어떻게든 나로 하여금 이 ‘깨어진 세상’을 해석하라는 압박을 가한다.
아주 무지막지한 압박이다.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문제를 감싸고 있는 전체 frame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해내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때도 많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면서 그 망가진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참 어렵지만 맞닥드려야하는 숙제인 듯 하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기 (2)

내가 어릴때 생각했던 것 같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늘 현실이 아니라는 깨달으면서 정말 나는 마음이 어려웠다.
대충 대학을 마칠때쯤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방황’도 했었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동안,
나는 연구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

뭐 학과 공부는 그냥 하던대로 수업듣고 시험보면 무리하지 않고 잘 할 수 있었지만,
실제 시간을 들이고 생각을 쏟아야하는 연구에는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았다.

실험실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하긴 하는데,
정말 억지로 하는 일이었고,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적극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연구를 하는 일들은 그렇게 잘 하지 못했다.

망가진 세상을 해석해 낼 수 없었던 나의 유치함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