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 상황 (1)

지난 2년반 정도간 나는 회사 내에서 어떤 프로젝트 하나를 해 왔었다.
나름 꽤 공을 많이 들여왔다. 그것을 위해서 다녔던 나라가 미국을 빼고 다섯개나 된다.
자세히 말을 할수는 없지만, 이게 잘 되기만 한다면 이쪽 업계에 꽤 큰 impact가 있는 project 였다.
회사에 내 contribution으로 벌어오는 돈의 액수도, 내가 얼추 계산해 봤을때 내 연봉의 몇백배 수준이 될 수 있을만한 큰 것이었다.

KOSTA 다녀오기 거의 바로 전에 나는 출장을 다녀왔다.
일본에 출장을 가 있을때 나는 갑자가 home office와 video call을 하자고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일본 새벽 시간에 들어갔더니 (아마 4am 이었던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business deal이 잘 되지 않아서 이 project를 hold 한다는 거다.
허걱.

나는 그 문제 좀 더 해결해보려고 비행기타고 여기 와 있는데…

이것 역시 아주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에 쓸수는 없지만, 나로선 꽤 황당한 일이었다.
두주 출장 일정이 잡혀 있는데… 여기서도 줄줄히 사람들 만나서 discuss할 것들이 많은데… 이게 후다닥~ 날라가 버린거다.

게다가,
이게 날라가면서 어찌보면 회사에서 내 입지가 불안해지게 되었다.
그 project가 확~ 날라가 버렸으니, 어찌보면 회사에서 나를 쓸만한 다른 project가 없다면 나를 그냥 짤라버릴수도 있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출장을 가 있는 도중에,
project가 갑자기 없어진 황당함,
내 job security에 대한 불안감,
열심히 하던게 날라가 버린것에 대한 일종의 분노랄까 그런 것도 있었고….
하여간 난 매우 복잡한 마음 상태가 되었다.

job search를 시작해야하나.
이거 어쩌나…

2019년 KOSTA 후기 (10)

이번 컨퍼런스를 마치고나서는, 나는 매우 희망적이 되었다.
곳곳에서 엄청난 저력이 느껴졌다.
그 저력은 한편으로는 execution을 감당한 간사들의 힘이고,
한편으로는 presentation을 담당한 강사들의 힘일테지만…
그리고 leadership/공동대표 그룹의 힘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결국 그 저력이 내게 희망이 된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컨퍼런스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리더십과 집행부와 강사그룹이 이렇게 coherent하게 되었던 시기가 지난 코스타 역사기간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나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나를 만나서 흔히 하는 인사 가운데 하나가
“아직도 코스타 하세요?” 이다.
나는 ‘코스타 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이 나를 여기는 것 같다.

지난 수년동안, (거의 10년동안)
나는 그 label을 벗어버리려고 많이 노력했다.
내가 그 label을 가지고 있는한, 간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코스타라는 딱지가 붙은 어떤 일이 있으면 나는 일단 많이 움츠려들고 조심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했다.
간사들이 뭔가를 부탁하면, ‘그거 안한다’는 대답부터 하고 시작했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 코스타에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년과 금년 집회를 지내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더 열심히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겠다는 결심을 한건 아니다. ^^
내가 많이 조심해야 우리 간사들을 잘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코스타 세팅에서 player가 되기 보다는… player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운동장을 정리하고 락커룸을 청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 더 하게 되었다.
이렇게 뭔가가 이루어지는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나를 조금 더 내어주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우리 간사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예전에 내가 어질러놓은 쓰레기도 좀 열심히 치우고,
간사들이 뭐 요청하면 예전보다는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뒤에서 돕는 일들을 해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지난 2~3년동안 만들어지고 있는 어떤 ‘모멘텀’에 대한 확신 때문에, (그리고 그 모멘텀 뒤에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안전하게’ 뭔가를 돕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코스타라는 세팅 안에 있는 내 모습이 두려웠다.
나의 존재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거나 부담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그 두려움이 조금 극복되는 것 같다.

이게 내 version의 “Fear to Faith”였다.

그렇지만 나는 워낙 겁이 많으니까…
이게 그리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온전한 사람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말씀이 내게 잘 작동하기를 바랄뿐이다.

2019년 KOSTA 후기 (9)

코스타 집회를 참석할때나, 기타 다른 코스타 관련된 뭔가를 접할때 가끔 섬뜩해질때가 있다.
그리고 무지하게 미안해질때가 있다.
그럴때는, 거의 15+년 전에 내가 많은 고려를 하지 않고 setup 해 놓은 어떤 것이 여태까지 계속 남아 간사들에게 많은 부담으로 남아있는 것을 볼 때이다.

그럼 정말 무지막지하게 미안해진다.
내가 그때 그걸 그렇게 setup해 놓은 건, 그때 상황이 그런 것이었고, 지금은 그거 그대로 안해도 되는데… 그걸 잘 설명을 못해준거구나 싶어서.

그래서 나름대로 뛰어들어 간사들이 짊어지고 있는 비효율성을 좀 개선해주려는 노력을 살짝 하고 있는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내가 지금 뭔가 앞에 나서서 확~ 뭘 하기도 애매하고, 그 일들을 간사들에게 맡기자니 간사들 일만 더 늘어나게 되는 것 같고…

내가 어질러놓은 쓰레기는 내가 치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뭔가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긴 하다.

나는 왜 이렇게 계속 간사들에게 미안할까.
늘 옆에서 보면 왜 계속 미안하기만할까…

2019년 KOSTA 후기 (8)

나는 한국교회가 부흥기에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열매가 지금 70년대생의 훈련된 평신도들이라고 본다. (약간 stretch해서 보면 80년대생 일부까지)

코스타를 하면서 어느순간 까지는 한국에서 유학을 오거나 이민을 온 사람들이 계속 코스타에 유입이되고, 그중 일부가 리더의 역할을 하는 공급이 계속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한국교회로부터 오는 인적 자원의 유입이 아주 급격히 끊기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그 trend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생 부터였던 것 같고, 결국 70년대 후반생이나 80년대 전반생에 이르러서는 거의 인적자원 유입이 중단되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람들이 40대가 되었다.

40대는 지금 코스타 간사 리더십의 핵심이기도 하고,
코스타 강사들의 주축이기도 하다.
특히 멘토그룹과 LGS 인도자들이 대부분 40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40대 그룹이 가지고 있는 어떤 그 무엇이 지금의 20~30대에 전달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소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불씨가 완전히 꺼지게하지 말고, 뭔가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인거다.

지금 20~30대가, 지금의 40~50대가 누렸던 한국교회 부흥기를 누릴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40~50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소중한 경험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어떤 열매들이 좀 그 아래세대로 전달되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나는 KOSTA가 그 역할을 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피동적으로 사용되는 자원인 강사들이 어떻게든 잘 activate되어서 지금의 코스타 참석자들과 연결되는 일들이 나타나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름대로 좀 생각이 있긴 한데, 그걸 여기에 풀어놓기엔 좀 장황한 듯 하여…
그건 봐서 나중에 따른 글타래에서 한번 정리해 봐야겠다.

2019년 KOSTA 후기 (7)

내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한 부류는 value-driven (혹은 agenda-driven) group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기독교의 ‘가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 가치를 더 고양시키고 발전시키고 그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또 다른 부류는 people-driven group 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다.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여기고 거기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너무 나누어져 있다는것이다.

value-driven group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약하다.
people-drive group은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래서 사랑 없는 가치가 되거나, 가치 없는 사랑이 되는 두 가지 선택만 남는 것 같이 느껴지곤 한다.

당장 코스타 강사들을 떠올려보더라도 누가 가치 지향적인지, 누가 사랑/사람 지향적인지 금방 구분해낼 수 있을 거다.
속한 지역교회의 리더들이나 목회자들, 신앙의 선배들을 보더라도 이게 확~ 갈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 두가지를 잘 통합해내는 사람이나 집단이나 운동이 진정한 생명력을 갖는다.
가치 없는 사랑은 근시안적이고, 사랑없는 가치는 너무 차갑다.
눈물 가득한 선지자적 외침, 냉철한 분석을 담은 낮아지는 섬김이 갖는 힘이 정말 시대를 바꾼다고 본다.

나는 개개인이 그것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어떤 운동이나 단체가 그것을 해 낼 수 있다면 그건 참 대단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나는 코스타는 그것을 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 그걸 제대로 하고 있느냐?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코스타의 리더십이나 execution body를 보면 이게 가능한 그리 많지 않는 entity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그런 가능성을 조금 더 볼 수 있었으면 했으나…
적어도 나는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것을 잘 확인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건 뭐 그냥 내가 잘 못본 것일수도 있겠지…

2019년 KOSTA 후기 (6)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건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에 이익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긴 하겠지만,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KOSTA에서 뭔가를 하고싶다는 바람도, 해야한다는 압박도 없다.
나는 내가 KOSTA 언저리에서 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정말 내가 KOSTA에 필요가 없게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도 하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KOSTA 언저리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지 않다.

내가 예전에 실무를 할때 아주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나는 KOSTA에 중요한 사람이다’를 강조하며 들이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
그때야 한국교회가 더 힘이 있었고, KOSTA name value를 가지고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
그 모습들을 많이 보면서.. 아… 정말 추하다… 는 생각 참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KOSTA를 대하면서 늘 그게 조심스럽다. 혹시 내가 그렇게 남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일 염려되는 것이다.

이번 봄부터 나는 ‘금년 KOSTA 컨퍼런스에는 꼭 빠져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지난 두해동안 이래저래 좀 눈에 뜨일만한 일을 맡아서 했기 때문이었다. – 저녁집회 기도
나는 그게 마음에 큰 부담이었다.
어떻게든 ‘내 스타일’이 ‘코스타 스타일’로 굳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컨퍼런스를 빠져야 혹시라도 저녁 집회 기도인도가 나중에 빵꾸가 나더라도 또 내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KOSTA 세팅에서 잔치를 host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그렇게 뭔가 앞에서 하는게 내 옷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이 느껴진다.

두번째 이유는, 금년초에 내가 간사수양회에서 3번이나 message를 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KOSTA의 execution을 담당하고 있는 간사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내가 그들에게 꽤 강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간사들에게 내가 영향을 줄만한 일을 벌써 했는데, 집회에 참석해서 또 간사들에게 내가 영향을 주는 일을 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내가 했던 message 때문에 간사들이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사실 얼마나 받았겠나… 그런 허접한 message를 듣고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집회에 참석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 execution은 간사들이 own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간사들이 정말 자유롭게 이 사역을 own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2019년 KOSTA 후기 (5)

Execution을 보더라도 아주 impressive 했다.
나는 코스타에서 늘 잔치를 ‘host’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 있었다.
내가 늘 그렇게 hosting하는데 직접적으로 참여했느냐 하면 그건 꼭 아닌데…
솔직히 내가 실무간사를 그만둔지는 10년이 되었고, 그 이후 공동대표를 한동안 했으나 그것도 그만둔지 벌써 몇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코스타와 관련해서는 늘 ‘host’하는 입장에 섰다고 생각해 왔던 큰 이유는, 내가 우리 간사들과 나를 제일 많이 identify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간사들중에서는 나를 그냥 겨우 얼굴과 이름만 아는 은퇴간사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간사들을 보면서 정말 그 사람들이 ‘나’라고 자꾸 동일시하는 것 같다. ^^
그래서 그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나도 마음이 많이 힘들고, 그 사람들이 잘하면 나도 마음이 많이 뿌듯해왔다.

그런데…
금년에 간사들이 execution을 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혹시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가서…
저 일을 다시 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 사람들만큼 잘 할수는 없겠구나.

옆에서 보니 간사들이 정말 잘했다. 아주 많이 많이 훌륭하게 잘했다.
execution을 정말 간사들이 제대로 ‘own’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물론 우리 간사들 늘 힘든거 잘 안다. 그거 생각하면 늘 내 마음 한 구석이 싸~ 하다.
그러나, 그 어려운 속에서도 진짜 이 사람들이 잘하는 거다!

이렇게 훌륭하게 execution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내가 이 사람들을 execution을 차원에서 함께 동일시하기에는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아주 묘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우선, 정말 뿌듯하고 감사했다. 자랑스러웠고, 정말 기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내게서 짐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게 느껴졌다.
내가 질 필요가 없는 짐을 내가 괜히 전전긍긍하며 도움도 못되면서 마음 속으로 그렇게 짐을 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확~ 자유로와졌다.

당연히 그래야지.

정말 많이, 아주 많이, 진짜 많이 감사했다.

2019년 KOSTA 후기 (4)

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더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폭력에 가까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압도적 상황 속에서 주눅이 들어 있는데, 그래서 한발자국 뗄 힘 조차도 얻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힘을 내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장 한 발자국 뗄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필요하다.
그 사람들이 함몰되어있는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초월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으로 세상을 바꾸라던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라던가, 기독교적 세계관 같은 이야기들이 전혀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지금의 20-30대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현실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지금 다독여주고 초월만을 강조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다다라야할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그 대중 가운데 ‘리더’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더 혹독한(?) 헌신을 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릎에 힘이 풀려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가 많이 함께 울어주고, 그 현실로부터 눈을 떼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집회가 시작하면서…
이 두려움에 빠져있는 이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강사들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오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었다.

너희들 뭐가 힘들다고 그래, 힘내. 믿음을 가져.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아니고,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 옆에 함께 주저앉아 줄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랬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에 오신 강사들께서 정말 그렇게 많이 해 주셨다.
전체집회 강사들의 설교에서도 그런게 많이 느껴졌다.

나는 그분들이 눈물을 담아 이야기하는 그 메시지에 반응하여 눈물 그렁그렁 담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옆에서 나도 역시 마음에 눈물 가득 담는 시간이었다.

2019년 KOSTA 후기 (3)

코스타라는 세팅은 내게 늘, 내가 무언가를 contribute해야하는 장이었다.
막 기도하고, 묵상하고, 부지런히 이것 저것을 잘 채우고 준비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그것을 쏟아 내어야 하는 일이 늘 있다고 느꼈다.

내가 실무간사의 역할을 떠난 것이 꽤 오래 전인데도, 그냥 늘 내겐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도 많이 있었다.
잔치 안에 들어가서 주목을 받으며 즐기는 사람보다는, 그 잔치를 베풀고 뒤에서 support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나를 사용하시는 경험을 하곤 했다.

집회를 준비하면서 쏟아지는 여러 생각들과, 묵상의 결과들은…
대개 집회중에 만들어지는 음식을 위해 사용되는 재료가 되는 일이 많았다.
어떤때는 그렇게 사용되는 재로를 만들기 위해, 죽어라고 더 기도하고 묵상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놓은 재로는, 그냥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냥 그 재료 상태 그대로 내것이 된 것이 아니라…
집회 중간 중간에 내 재료위에 여러가지 더 맛있는 것들이 올려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더 멋진 음식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해 그 음식을 주는 일도 별로 없었고… 그냥 내가 그 음식을 맛있게 즐겼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내 나름대로 가지고간 재료가 있었는데,
집회 도중에 보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 재료를 잔치상에 올려놓은 것을 보기도 했다.
아… 내가 아주 엉뚱한것을 준비해온 것은 아니었구나.

2019년 KOSTA 후기 (2)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코스타를 섬기면서,
나는 늘 고질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코스타 컨퍼런스 기간 동안에,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도 주제에 대해서 풀어내지 못한다는 목마름이었다.

나는 생각과 지식이 깊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닌데…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만큼도 여러 설교나 강의 등에서 풀어내어지지 못한다는게 기가막힐때가 많았다.

그런 한계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설교와 강의들을 제대로 코디네이트하지 못한 ‘주최측’의 문제도 늘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한국 교회 내에서 그런 주제를 대중성있게 이야기할 사람들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코스타의 network 안에 있는 사람들 안에는 그랬다.)
그냥 한국 교회 (주류) 가 가지는 신학의 부재, 그것에 따른 컨텐츠의 빈약함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몇년전 부터는,
코스타 컨퍼런스에서 담아내는 내용에 정말 깊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 이 정도면 정말 주제가 다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최근에 와서는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머리 속에서 그릴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멋진 그림들이 그려지게 되었다.

집회의 저력이랄까 그런게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왜 그럴 수 있게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그중 어떤 것은 이 블로그에서 공개적으로 쓰기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어낼 수 있는 강사 pool이 잘 확보되었고,
그분들이 집회를 실행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루게 되었고,
그것을 코디네이트하는 역량있는 핵심적인 사람들의 자율권이 잘 확보된 것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지금 60~70대가 되어 있는 한국 신복음주의 1세대들은 개척자들이긴 했지만 이들이 가진 컨텐츠가 빈약했는데,
이제 40~50대가 되어 있는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그 전 세대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깊이있는 컨텐츠가 나오고 있다는 느낌도 최근에 많이 받는다.

이번에는 30대의 강사들도 꽤 있었는데, 그것도 대단히 고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