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s Resolution (5)

내가 존재하지 않고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내게 일어난 현상은,
말씀을 양식으로 먹지 않고 도구로 활용하고 있게 되었다.

나는 말씀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씀을 양식으로 섭취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성장과 성숙이 이루어졌던 시기들을 돌이켜보면 그 기간의 대부분은 말씀이 꿀처럼 달게 느껴지는 경험으로 가득찼던 시간이었다.

요즘 내게 말씀은…
달기보다는 재미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예전에 양자역학을 공부할때와 딱 비슷하다.
그때 양자역학을 공부했던것이 달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말 재미는 있었다.

그렇다면 말씀을 양식으로 먹어야겠다고 내가 결심을 하면 뭔가 내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말씀이 달기보다는 재미있는 것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내가 존재하지않고 기능하고 있는 내 현상태에의해 만들어진 결과인지,
아니면 내 현상태의 원인인지 잘 모르겠다.

음… 굳이 현재로서의 내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내 생각엔 말씀이 달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기능자(functional unit)으로 작동하고 있는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말씀을 꿀처럼 더 달게 묵상하고 노력해야지…. 이런 방식으로 고쳐지지 않는 다는 말이다.

New Year’s Resolution (4)

그래서 나는 내게 하도록 주어진 것을 무작정 다 하려고 하기보다 정말 내가 부르심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맞추어서 살기로 결심을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그 부르심과 잘 align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no 하는 일들이 더 많아야 할 것 같다.
가령, 나는 더 훌륭한 커리어를 만들기위해서 살지 않기로 예전부터 결심해왔다. 그러므로 성실함이나 책임의 수준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오버해서 일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고, 계속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성실하게 해야 하겠지만, 그 목적이 소위 ‘커리어 관리’나 ‘커리어 growth’는 아닌 것이다.

나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성실함과 열심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하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게 만나고 발견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내겐 훨씬 더 소중한 경험이다.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공급해 주셨다.
그것을 감사할줄 알고, 그 주신 것들이 나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다.

New Year’s Resolution (3)

내가 존재하지 않고 기능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내게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진단을 했다면,
내 존재보다 기능을 더 우선하면서 살게된 원인을 찾아야 하겠다.

그건 아마도,
내가 너무 많은 기능을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말 내 ‘부르심’에 합당하게 내 삶의 영역들을 잘 정렬(align)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텐데,
때로는 꼭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는 것에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것에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며 20대를 보냈었다.
예수님을 믿고나서 공부를 하는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는 것을 찾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학교 공부보다 성경공부가 재미있어서 이러다 신학교를 가야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한적도 많았다.
그냥 열심히 하면 어느정도 할 수 있으니 대학때 뭣 모르고 선택한 전공으로 계속 공부를 하기는 했으나…
내게 제일 딱 맞는 전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내가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것이었다.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면서, 그 속에서만 unique하게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여러가지로 묵상도 하고 생각도 하고,
또 성경이나 신학등 여러가지로 공부도 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발견해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름대로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고, 열심히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미 해답을 가지고 그 해답을 적용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그 해답을 찾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있다.

New Year’s Resolution (2)

왜 내 성장/성숙이 멈추어졌을까?

내 결론은, 내가 ‘존재’하지 않고 ‘기능’하며 지내왔기 때문인 것 같다. ㅠㅠ

나름대로 꽤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들 하는 여러가지 social media도 하나도 하지 않고, 다들 많이 보는 TV 드라마나 netflix 드라마도 뭐 하나 제대로 본게 없다. 내가 TV 시리즈를 제대로 본건 3년전엔가 응답하라 1988이 가장 최근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정말 시간이 없다. ㅠ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할 것들이 1.5배쯤 많다고 늘 느끼면서 살다보니,
난 그냥 살면서 늘 쫓긴다.

그렇게 해야하는 일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좋은 그리스도인 되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성경공부도 하고, 주말에 조금 이라도 시간 나면 TV 드라마 보는대신 책읽으며 공부하고… 그러는 거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을, 그것을 이루기위해 하는 일들로 쪼개어서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니,
나는 계속해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New Year’s Resolution (1)

매년 새해들어 내 새해 결심을 정리해서 이곳에 적어보았었는데,
금년에는 이제야 키보드 앞에서 새해 결심 정리를 하게 되었다.

내 새해 결심은,
“Grow up” 이다.

보통 다른 사람에게,
Grow up!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발 좀 철좀 들어라. 혹은 나이갚 좀 해라. 그런 뜻으로 사용된다.

나는 복음을 이해해가는 깊이가 깊어지면서 나름대로 꽤 많이 성숙/성장하는 과정을 거렸었다.
매일, 매주 단위로 내 성숙과 성장이 그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1년 혹은 2~3년 단위로 끊어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어떤 면에서라도 조금씩
‘아, 그래도 내가 이건 좀 성숙/성장 했구나’ 싶은 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난 3년여의 기간을 돌이켜보면 그런 성장이 매우 더디어졌거나 거의 멈춰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년전 내 모습을 기억해서 떠올려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보다 더 성장/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음… 이건 분명히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새해 내 결심은 “Grow up”이다.

Paul and the Gift (5)

그리고 나서 실제로 이 책의 거의 절반 정도는 이렇게 설명한 은혜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앞의 내용보다도 이 뒤의 내용때문에 이 책을 살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 갈라디아서부분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는데… 음…
어렵다. ㅠㅠ

하루에 한시간 남짓 겨우 시간내어서 공부하는 것으로는 이게 영 진도도 잘 나가지 않고, 이해도 어렵다.
그래도 어쨌든 연말까지는 적어도 갈라디아서부분만이라도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리고 또한,
아직 정확하게 이 책이 어떻게 New Perspective를 박살내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을 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는,
New Perspective에서 유대교도 은혜의 종교로 보았기 때문에 바울이 경계한 것이 유대교 자체가 아니라 유대교의 율법주의적/자민족중심주의적 경향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건 ‘은혜’라는 개념을 너무 획일적으로 하나도 보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 정도 대충 이해를 했는데,
뭔가 착~ 달라붙게 이해가 덜 되고 있다.

갈라디아서 본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실제로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이런 것도 누가 좀 잘 이해하고 공부한 사람이 나 같은 비전문가에게 쭈욱~ 설명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ㅠㅠ

Paul and the Gift (4)

그리고나서 저자는 아주 긴~ 부분을 할애해서,
2차 성전기의 주요 문서들에서 선물/은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The Wisdom of Solomon (솔로몬의 지혜서)
Philo of Alexandria (필론)
The Qumran Hodayot (쿰란 호다요트)
Liber Antiquitatum Biblicarum (성서고대사)
4 Ezra (에스라 4서)

음.. 이건 워낙 분량도 많고, 읽어도 잘 모르겠는 것도 많고…
뭐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엔 앞에서 설명한 선물/은혜의 개념을 2차성전기 문서들에 적용하면서 읽어보는 일종의 ‘연습문제’쯤 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Paul and the Gift (3)

그 다음에 저자는 소위 “Perfection”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오는데…
한국말로는 이걸 ‘극대화’라고 번역을 한 듯 하다.

Perfection 이라는 말은…. 음… 그러니까… 좀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서 부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은혜/선물’에는 여러가지 다른 특성/측면들이 있는데, 각각의 측면이 강조하는 모습들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1. Superabundance (초충만성)
    은혜는 대단한 것. 엄청난 선물
  2. Singularity (단일성)
    선물을 주는 사람이 순전한 선의를 가지고 주는 선물. (일종의 unversality를 함의할수도)
  3. Priority (우선성)
    선물을 받는 사람이 무엇을 하기 전에 선물을 주는 사람이 먼저 주는 것.
  4. Incongruity (비상응성)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는 것
  5. Efficacy (효과성)
    선물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 선물을 줌으로써 받는 사람에게서 그 의도한 효과/변화/결과가 나타나는 것
  6. Non-circularity (비순환성)
    선물을 주고 그 댓가를 전혀 바라지 않는 것.

저자는 이 여섯가지의 perfection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어거스틴, 루터, 캘빈, 칼 바르트, E P 샌더스 (New perspective) 등의 관점들이 각각 어떻게 다르게 은혜를 이해했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소위 Old Perspective와 New Perspective가 모두 다 Priority와 Incongruity를 강조하는데,
New Perspective에서는 Ethinc Incongruity를 강조하고, Old Perspective에서는 Moral Incongruity를 강조한다.

Paul and the Gift (2)

저자는 이 책에서 ‘Grace’ / 은혜라는 단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연구해서 바라보았다.
실제로 바울 당시에 은혜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여러가지 그 당시 문헌등을 사용해서 연구해보았다.

실제로 저자는 ‘선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그 당시에 이해되었는가를 찾아보면서 은혜의 개념을 정리했다.
우리는 흔히 선물이라고하면 특별히 댓가 없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울 당시에 그리고 고대시대에 선물은 선물을 주고 받는 두 당사자가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러니 선물을 줄때는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선물을 받는 것도 그냥 받고 감사합니다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쉽게 선물받고 ‘생까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사회였다. 특히 저자는 바울 당시의 그래코-로만 사회에서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선물이 ‘관계’를 형성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벌써 여기까지만 들어도, 음… 은혜가 그러니까 일종의 댓가를 요구하는 거라고?? 하는 생각이 확~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위 값싼 은혜 cheap grace를 아주 학문적으로 자근자근 밟아버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Paul and the Gift (1)

요즘 ‘Paul and the Gift’라는 John Barclay 책을 공부하고 있다.
음… 정말 ‘공부하고’ 있다는 말이 딱 맞다.
빡쎈 공부다. ㅠㅠ

이게 대중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고, 그야말로 학술서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완전 빡빡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게다가 양도 많아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정말 화려하다. 20세기 이후 성서신학 분야 최고의 책이라는 평가도 있고, 이 책으로 New Perspective가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SBL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 성서학회)에서 John Barclay와 N T Wright이 공개적으로 토론이 붙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참석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토론은 Baclay가 사실상 이긴 분위기 였다고 ㅋㅋ)

이제 대충… 아주 대충… Baclay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살짝 이해가 될 듯 하다.
살짝… 신박하다! ㅎㅎ

좀 새로운 개념을 접했으니 당분간 Barclay가 이야기하는 개념을 염두에두고 성경을 읽게되지 않을까 싶다. ^^

현재 계획으로는,
연말까지 Barclay가 이야기하는 갈라디아서를 이해하는데까지 이해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혹시 내가 어느정도 이해했다고 판단이 되면, 내년 봄에는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서 아마 자연스럽게 이곳 블로그에서도 내가 공부한 것들도 조금씩 적게 되지 않을까.

참고로,
아주 아주 쉽게 설명한 한국어 강의
아주 아주 쉽게 설명한 영어 책 요약 <– 참고로 이 사람의 youtube channel은 구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