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2)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내가 복음과 기독교에 대해서 눈을 뜨고 예수님을 알게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체계를 알게되기 전이었다.

그렇지만 말하자면 일종의 ‘회심경험’을 하게된 20대 초반,
혼자서 에베소서를 읽으면서 받았던 일종의 충격이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백성이 만들어내는 세상에는 다른 질서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어렴풋이 처음 접하게 된것은 그런 것이었다.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 세상과는 다른 세상.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과는 달리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안적 방식.

그때 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후 이어질 많은 생각의 시초가 되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에베소서에서 발견했던 그 ‘비전’은 내가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1)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즉 Already but not yet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이다.

처음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접한 것은 내가 대학생 때였다. 아마도 1990년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 나라의 이해’라는 책이었다.

그 이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들을 탐닉하듯 읽었고, 역시 80-90년대 한국에서 막 유행(?)이 시작되었던 기독교 세계관 관련된 책들을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면서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 매료되었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그랬다.

그후 몇년이 지나서…
가난한 나라에 선교사로 가 있던 아는 형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는지, 이메일등으로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하 열을 내서 이야기하니, 그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네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쩌면 부유한 나라에서는 통하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있는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나는… 그 형의 그 이야기가 충격이었다.
그 형은 선교사로 가기 전 하나님 나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던 형이었는데…
그 형이 그렇게 이야기하는건 정말 다소 충격이었다.

정말 내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저 선진국에서나 이야기할만한 걸까?

성경공부 고민 (11)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성경공부 고민의 뿌리는 결국 지역교회의 붕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건강한 지역교회들이 감당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필요의 빈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찾고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우선은 지역교회들이 갖고 있는 건강한 신학과 신학적 자세의 부족함이다.
그건 성경에 대한 건강한 자세와 시각, 그리스도 안에서의 균형잡힌 인격적 성장, 하나님과 나를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관심과 고민 등등이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이런 허접한 성경공부에도 그렇게 사람들이 참여해서 어떻게든 그 필요를 채워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 더 큰 문제는,
지역교회가 공동체로서 작동하는 일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동체에서 충족받아야할 정서적 교류,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유대감, 서로의 아픔과 고민에 참여하는 공감 등등이 지역교회에 건강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교회 밖에서 찾으려고 하니 이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나 같이 별로 영향력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 이 시대의 문제를 혼자 끌어안고 싸울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시대 지역교회들의 붕괴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나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고 하는 것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저런 성경공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다른 접근도 조심스럽게 해보려고 할 것 같고.

그런데 그 많은 것을, 내가 생업을 감당해가면서 다 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성경공부 고민 (10)

매번 성경공부를 하면서 많이 하는 이야기이는…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정답이 아니고,
그저 내가 바라보는 본문에 대한 내 입장이라는 것.

그런데 나는 상대적으로 많이 성경공부를 위한 준비를 해서 가는 편이다. 보통 적어도 한주에 3~4시간, 많으면 한주에 6시간까지 그주의 성경공부를 위한 본문 연구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분들중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으니…아무래도 준비를 더 많이 한 내가 더 많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무래도 여러가지 공부와 사색을 더 많이 해온 내가 하는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면 성경본문을 놓고 마치 내가 정답을 쭈루룩 이야기하는 방식이 되어버려서….
정말 흥미로운 토론이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 결국 사람들이 내 스타일로 성경을 읽고 고민하게 되는데…
내 스타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은 혹시 성경을 읽는 것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잘 맞는 성경읽기와 묵상의 방법을 각자 잘 찾아서 삶의 습관으로 가지게되면 좋겠는데….
내가 우다다닥 이야기를 많이 하는 세팅에서는 그런 식의 발전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성경공부 고민 (9)

성경공부를 하는 기간 중에는 아무래도 그것에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기 때문에,
나 혼자서 조금 더 깊게 말씀을 연구한다거나…
조금 무게가 있는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무래도 쉽지 않다.

지난번에 은퇴에 관한 글을 쓰면서 살짝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 자체를 참 좋아하는 편이다.
책을 읽고, 모르던 것을 배우면서 조금씩 나를 채워나가는 것이 참 좋다.

그게… 그냥 그걸 좋아하는 것 뿐 아니라,
나는 사실 그게 내 신앙생활의 중요한 방식이자,
일종의 내 부르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가지 공부와 사색과 묵상등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 삶의 여러 경험속에 그 생각의 열매들을 통과시켜,
내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를 더 발견해 나가는 것.

물론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더 잘 읽도록 도움을 주는 것 역시 좋은 일이지만,
그건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성경공부 고민 (8)

이번학기 성경공부에서 더 드러난 문제인데…
내가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심을 보이게 되기도 하였다.

내가 어떤 신앙 경험을 했는지, 내 생각이 어떤지 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일들도 좀 더 있었다.

내가 온라인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나와 성경공부를 한두번 한 사람들이 성경공부에 재미를 들이게 되어서, 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성경공부하는 습관과 재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와 오래 성경공부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뭐랄까… 따뜻한 국밥 한그릇 대접한다는 심정으로, 그 국밥 먹고 힘내서 각자 삶 속에서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혹시 어떤 사람들이 내게 의존적이 되면 그건 내가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사람에게도 별로 좋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 정말 별로 해답이 없는 고민이다.

성경공부 고민 (7)

성경공부에 참석하는 분들중에는,
신학생, 목회자도 있고, KOSTA 간사들도 있는 반면,
성경공부 자체를 깊이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그저 가능한 시간대별로 신청을 받아서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적절한 수준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난이도 레벨별로 몇개의 다른 그룹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아… 나도 생업이 있고, 시간이 많이 않으니…
다른 내용의 여러 성경공부를 준비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작년 봄이었던가…
세 그룹을 했는데, 각각 다른 내용으로 한적이 있었다.

완전 뻗는줄 알았다.
계속 세가지 다른 내용을 매주 준비하면서 그 세가지 다른 내용의 discussion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하느라 어엄처엉~ 힘들었다. ㅠㅠ

한번은 조금 쉽게 했다가 한번은 조금 어렵게 했다가…
이렇게 난이도를 계속 바꾸어가면서 할까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이것도 역시 고민이다.

성경공부 고민 (6)

또 하나의 고민은, 성경공부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이게 뭐 잘난척하려고 하는게 아니고,
그냥 좀 깊은 신학적 이슈들을 본문과 함께 다루게 되기도 하고,
어쩌면 성경공부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접하기 쉽지 않은 방식으로 성경공부를 하게되다보니,
성경공부의 진입장벽이 좀 있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했거나,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성경공부에서 살아남는 경향이 있다.

내 나름대로는 그래도 성경공부 시간에 나누는 수준은 입문용 주석에 서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하려고 많이 노력하곤 하는데…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꽤 많다.

나는 어떻게든 사람들이 성경읽고 공부하는 재미를 좀 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하는 성경공부 스타일을 좋아할수는 없겠지만 이런 스타일의 성경공부가 click되는 어떤 사람들이 나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들여서 평생 성경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소수의 덕후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되지 않도록 잘 조정해가며 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성경공부 고민 (5)

성경공부가,
온라인에서 본문 연구를 하는 dry한 모임이 아니라,
정서적 교감을 더 깊게 하는 모임이 되면…
그걸 준비하는 내 입장에서는 일종의 그 사람들을 ‘목양’해야한다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실제 삶의 영역 속에서의 문제들에 더 들어가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정서적 감성적 involvement를 더 하게 된다.
이건 본문을 열심히 준비해서 나누는 것과는 급이 다른 노력이 된다.

과연 깊게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그룹을 지금 내가 한주에 두세그룹 하는것이 가능할까?
그 각자의 상황을 살피고, 일일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렇게 내가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한 주에 한 그룹 정도로 줄이고 대신 그 그룹에 그렇게 더 신경을 쓰면서 (유사)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는 것을 조금 더 허용하는 방향으로 성경공부를 바꾸는 것이 좋을까?

글쎄…

사실 지난 몇년간 계속 성경공부를 더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한주에도 세 그룹씩 열어서 성경공부를 해 왔는데, 그 사람들의 요구를 그냥 무시한채 적은 수의 사람들만 조금 더 깊게 fellowship을 가지는 쪽으로 선회를 하는 것이 좋은 결정일까?

잘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쪽의 생각이다.

성경공부 고민 (4)

이번 봄학기에 했던 성경공부에서는, 내가 조금 ‘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경험, 내가 묵상한 내용, 내 삶의 여정 속에서의 하나님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각자의 삶 속에서 모두 그렇게 말씀을 가지고 좀 씨름하라고 격려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몇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 열어서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학기에는 특별히 참석한 사람들이 일종의 ‘친밀감’같은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말하자면 성경공부가 조금 더 ‘감성적’이 되었다.

이건 정말 내게 많이 고민이 된다.

어떻게든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고 그것을 삶 속에서 가지고 들어가서 씨름하는 경험을 많이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다보니 이게 의도하지 않는 끈적끈적한 친밀감, 정서적 교감 등이 더 이루어지는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성경공부를 마치면서 어떤 분들은 그런 것을 더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의도하고 계획한것과 매우 다른 것인데…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내가 조금 다른 자세로 접근해서 준비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