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며 (3)

Classical music을 연주자별로 작은 차이를 분석해내고, 곡의 해석에 관해서 논하고 할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한때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classical music mp3이건 CD이건 뭐를 산적이 한번도 없던 것 같다. 듣는것도 두어달에 한번씩 어쩌다 하나 들을까 말까.

Classical music은 가요등과 비교해서 특별히 좀 더 제대로 시간을 떼어놓아야 잘 즐길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곡이 대개 훨씬 더 길기도 하고, 어쩌다 헨델의 메시아같은 대곡은 들어보겠다고 한다면 몇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아… 그런데 진짜 그럴 시간은 없다. -.-;
아니 시간이 없기 보다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런 마음의 여유없음을 건너 뛰어서 classical music을 들을만큼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즐길만큼 classical music을 잘 알고 즐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때까지는 그래도 어쩌다 한번씩 바이올린을 꺼내서 혼자 켜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할때도 있었는데…
시간 속에서 나는 classical music을 잃어버린 듯 하다.

지난 주말과 같은 여유를 다시 찾아야만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classical music을 즐길 수 있게 될까.
지금과 같은 lifestyle을 가지고 있는 한, classical music을 즐기는건 어려운 일일까.

다음에 DK를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음악을 들으며 (2)

주말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가요’였다.
예전에 나는 가요를 참 많이 들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나는 +/- 5년 간에 대충 유행했던 가요의 모든 가사를 다 욀 수 있었다.

그런데 가요를 들으면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내가 미국으로 온 95년까지의 가요들은 여전히 내게 익숙한데, 96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가요는 내가 잘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가되면 다시 좀 익숙하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95년에 미국에 오면서 나는 한국의 media와 단절이 되었다. 그 당시엔 인터넷으로 가요들 듣고 하는것도 안되는 때 였으니…
그리고 인터넷의 여러 경로로 음악을 듣는 것이 다시 어느정도 가능해진 2000년대 초반이 되기까지 나는 한국의 가요를 많이 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좀 촘촘히 살펴보니,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한국의 가요는 꽤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것 같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던 때였고, 소위 밀리언 셀러들이 쭈루룩 등장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한국의 각종 예능프로그램등에 나오는 사람들이 등장한 때가 그 때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한국 가요를 예전처럼 잘 듣지도, 좋아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한다.
나는 그게 그냥 내가 나이가 들어서려니… 라고만 생각했는데… (물론 그렇겠지만)

그것 이외에도 내가 중간에 전체 흐름 자체를 뚝 짤라서 놓쳤기 때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1)

Long weekend에, 참 오랜만에 여러가지 음악을 많이 들었다.
예전엔 늘 음악을 귀에 달고 살았다. 그게 어떤땐 classical 음악이었고, 어떤땐 가요였고, 어떤땐 복음성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삶 속에서 음악이 없어졌다.

그건 음악이 싫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음악 듣는걸 좋아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있자면…
아니 이 시간에 내가 음악을 듣고 있어도 되나 싶어 얼른 다른걸 하게 된다.
운전을 하던가 하여간 무슨 시간이 잠깐 나면 나는 그 시간을 뭔가 productive하게 보내려는 시도들을 한다.
많은 경우 강의를 듣거나, audiobook을 듣거나,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음악을 듣는 사치를 누릴 여유가 내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서 음악을 빼앗아간 가장 큰 범인은 podcast와 오디오북이다.

뭔가를 더 배워야한다는, 더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나로부터, 그런 매체들은 음악을 빼앗아 가 버렸다. -.-;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음악을 들었다. 참 오랜만에…

KOSTA 후기, 2018 (21)

KOSTA를 오래 섬기면서 나를 붙들었던 가장 큰 가치는,
KOSTA를 섬기는 것이 내게 아무런 개인적인 유익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KOSTA에서 그렇게 섬기면서 몸에 밴 ‘정신’은 사실 내 전반적인 삶의 자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KOSTA를 다녀보면 여전히,
KOSTA를 섬긴것이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KOSTA 섬김의 핵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모습은 더 자주 보게 된다.
아니, 이게 뭐라고 여기서 뭐 한게 그렇게도 대단한 거라고…

어쩔수 없이 나는 어찌 하다보니 KOSTA에서 꽤 오랫동안 소위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 섬겨왔다. 솔직히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서 섬기는거야 뭐 하라면 할 수 있는데… 그게 일종의 ‘권력’이나 ‘명예’가 되어버리는 모습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런 것이었다.
KOSTA에서 무엇무엇을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한에는,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고)
KOSTA의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 더 nobody가 되어야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욕조의 작은 drain과 같이,
그 가장 핵심이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nobody가 되어야만,
운동의 건강함이 계속 지켜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영광을 다 받으셔야 하지만,
혹시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KOSTA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수를 받는 것도 강사들과 다른 섬기시는 분들이 많이 박수를 받고,
inner circle의 사람들은 기둥 뒤에 숨어서 그저 KOSTA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했다는 것이 유일한 reward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KOSTA를 좌지우지해온것처럼 떠벌리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소위 KOSTA 간사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nobody가 되는 그런 spirit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에 이렇게 길게 KOSTA 이야기를 쓰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야 뭐 들어와서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다수가 KOSTA ‘관계자’들이므로… 이렇게 편하게 써본다.

(아마 조만간 관련된 글을 쓰겠지만, 사실 최근에,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의외의 사람들이 이 블로그를 follow 해서 내 ‘동태’를 살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이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사실 쓰고 싶은 말들이 아직 더 많긴 하지만,
이걸로 벌써 한달 가까이 코스타 컨퍼런스 관련된 글만 쓰고 있어서…
일단 이 정도로 금년에는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나는 금년에 집회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번 내 결심과 헌신을 점검해본다.
나는 KOSTA에 헌신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헌신한 것이다.
그래서, KOSTA에 헌신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많이 기쁘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많이 눈물이 난다.
이번에 나는 어떤 사람들의 헌신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KOSTA 후기, 2018 (20)

목요일쯤 되니까 여러가지로 힘이 많이 떨어졌다.
특히 목요일날 아침에 LGS를 마치고 나니, 이번엔 잘 하질 못했구나… 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기도 했다.
목요일에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저녁시간에 입맛이 없었다.
그냥 몸과 마음이 좀 늘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저녁에 헌신과 기도를 인도해야하는데 힘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잠깐 들었는데, 주변에 빨간조끼를 입은 간사들이 몇명 서 있었다.
많이 피곤해 있는 상태여서 그랬는지 뭔가 비몽사몽 비슷하기도 하고, 뭔가 정신이 clear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
내가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축 늘어져 있는데, 그런 나를 빨간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갑자기 힘이 났다. 웬지 모르겠는데 정말 갑자기 힘이 났다.

감사하게도 그래서 무사히 저녁 기도 인도를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잠깐 피곤했었고, 그런데 옆에 간사들이 서 있는걸 보고 힘을 얻었다… 이건데…
나는 이 그림이 유난히 계속 머리 속에 남는다.

우리 간사들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늘…
짠하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장하다. 자랑스럽다. 등의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뭐라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금년의 이런 경험은 아마도 내가 코스타에 참석하는 자세나 간사들을 대하는 자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KOSTA 후기, 2018 (19)

작년 가을에는 버지니아의 어느 학부생 모임의 수련회에 강사로 갔었고,
금년 봄에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어느 대학원생/포스트닥 모임에 수련회 강사로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모임 사람들을 엄청 많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 물론 그 모임들은 모두 다 KOSTA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들이 인도하는 모임들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그 이전에 내가 강사로 갔던 다른 수련회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 후에 꾸준히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에 ‘예전에 저희 교회 오셨을때 뵈었어요’라며 와서 아는척 하는 사람들도 또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떻게든 이렇게 비슷한 spirit을 공유하는 여러 모임들을 KOSTA 차원에서 더 support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런 모임들을 효율적으로 묶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임들이 서로 더 큰 힘을 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비슷한 spirit을 가진 모임들을 더 많이 찾아서 발굴하고, 그 그룹들을 함께 어떻게든 엮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아직 다 죽지는 않았다.

1942년 성서조선에 김교신 선생이 쓴 “조와”라는 글이 떠올랐다.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층층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연못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연못 속에서 솟아나 한 사람이 꿇어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이다.

 

이 반석 위에서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크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찬송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연못 속에서 바위의 색깔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 속에 큰일이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새로 온 손님에게 접근하는 친구 개구리들. 때로는 5,6 마리, 때로는 7,8마리.

 

늦가을도 지나서 연못 위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하더니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날로 날로 느려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연못의 투명함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고막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막힌 지 무릇 수개월 남짓!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 틈의 얼음 덩어리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아보았더니 오호라, 개구리 시체 두세 마리가 연못 꼬리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연못의 적은 물이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얼어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KOSTA 후기, 2018 (18)

LGS를 마치고 개인적으로와서 성경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도움을 달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후에 이메일등으로 연락을 해서 성경공부에 도움을 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 모임에 나를 초대해서 성경공부 방법론에 대해 물어보는 조들도 있었다.

내가 LGS에서 했던 건 대단한건 아니고,
그냥 전후 문맥을 가지고 성경본문을 이해하는 연습을 짧게 했을 뿐인데,
그리고 내 생각엔, 그건 너무 간단하고 쉬운 것이어야 하고, 왠만큼 교회에 다녔으면 당연히 접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신박하다면서 와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가슴이 아팠다.

KOSTA conference 후에 따로 이메일을 해오신 어떤 분은,
그동안 말씀을 보는게 많이 dry 했는데 성경을 보는 새로운 excitement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전에 했던 여러가지 강의 녹음, 설교 등을 몇개 급히 찾아서 보내드리면서 꼭 성경공부 잘 해보시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걸 보면 어떤땐 상당히 화가 난다.
아니, 왜 교회에선 성경공부를 시키지 않는 걸까.
아니, 왜 이렇게 성경을 보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게 하지 않는 걸까.
성경을 조금만 풀어주면 이렇게들 좋아하는데, 도대체 설교에서 왜 성경을 풀어주지 않는 걸까.

KOSTA 후기, 2018 (17)

성경공부를 인도해보면 그것에 반응하는 몇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크게 나누어서는 3부류, 그리고 거의 만날 수 없는 한 부류의 사람들)

첫번째, KOSTA에 참석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느정도 있는 지식이 왜곡되어 있거나 약간만 파고 들어가면 그게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는 지식이라기 보다는 그냥 들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이야기했을때, 그 내용에 대해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가서 질문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대개 이런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종교적’이다.
본문과 거의 무관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종교적인 대답을 내어 놓는다.

두번째, 실제로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을 하고, 신앙의 연차가 좀 된 사람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서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사실 가만히 보면 요즘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한다거나 성경을 읽는다거나 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많은 청년부는 찬양집회후에 짧은 설교, 그리고 ‘교제’를 나눈다.
그나마 많은 설교들은 그냥 종교적인 terminology만을 쏟아놓으며 종교적 열심을 더 내라는 내용이다.
성경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설교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렵다.
그러니 교회에 다니는 일반 대중이 무식해질 수 밖에.

그러나 세번째 부류는,
실제로 성경공부에 관심도 있고, 성경 공부를 시도도 했으나 잘 안되어서 고민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성경을 더 알고 싶은데 어디서 배울데도 없고, 교회에서는 그 필요가 공급이 안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꽤 많다고 느낀다. 내가 제일 한편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교회에선 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건가!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사실 내가 거의 만나지 못하는데…
성경연구에 대해서 나와 맞장떠서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성경연구의 경험도 있고, 신학적인 어느정도의 background도 있어서…
실제로 성경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왠만하면 거의 만나질 못한다.
내가 제일 답답한 것은… 아니, 기본적으로 적어도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같은 교회 지도자들은 나같은 ‘근본없는’ 평신도 보다는 성경을 좀 더 알아야 하는거 아닌가?
나처럼 하루 종일 죽어라고 직장생활 하면서 성경공부하는 사람들보다, 매일 죽어라고 성경연구를 해야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더 모른다면 그건 좀 문제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 좀 암울하게 느끼기도 한다.

KOSTA 후기, 2018 (16)

이번에 LGS를 인도하면서 다소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내가 맡았던 그룹은 이제 막 결혼을 한, 90년대생 신혼부부로부터, 60대이상의 어르신까지를 포함하는 그룹이었다.
그 그룹 전체를 하나의 discussion group으로 삼아 성경본문 공부를 인도해야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다.

게다가 내 그룹에는 소위 ‘신학조’라고 KOSTA 내부에서 명명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로 이루어진 소그룹들이 모두 들어오도록 배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discussion을 독점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이많은신 분들이 때로는 그분들의 의견을 다소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일들이 좀 있었다. 그중 어떤 목사님은, 내게 “성경을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으로 읽어야지, 그렇게 세속적으로 앞뒤 문맥 봐가며 역사적 맥락 봐가며 그렇게 읽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살짝 꾸짖기도(?) 하셨다. ^^
참여하셨던 어떤 목사님들은, 평신도인 내가 성경공부를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좀 불편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모든 분들의 참여를 discourage 하지 않으려고 그분들의 의견을 끊지 않고 계속 받아드렸는데, 그게 어떤 다른 젊은 참석자들에게는 bother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아예 session이 끝나고 나서, 그렇게 ‘딴지’를 거시던 목사님(?)에게 가서, 우리는 좋았는데 왜 그렇게 딴지를 거느냐고 오히려 항의를 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아마 내년 LGS에서는 이런 것들을 잘 감안해서 더 잘 design 해봐야 할 것 같다.

KOSTA 후기, 2018 (15)

LGS 역시 나는 스스로 back-up plan이었다.
작년에 LGS에 대한 feedback이 좋았고, 좋은 인도자들이 잘 개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분들이 잘 하실 수 있도록 내가 facilitate을 해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 황 형님께서 full time 애보는 일에 뛰어드시는 바람에 LGS 인도를 못하신다고 하셨고,
작년에 LGS 인도자중 두분이나 이번에 참석을 못하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후보선수인 나도 뛰어들게 되었다. (#이게_다_아땅님_때문이다)

이게 KOSTA에 참석하는 나의 어떤 일관된 자세이기도 한데,
LGS역시 역시 내가 소위 ‘인도자’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하는게 좀 불편하고 어색하다. ^^
나는 기둥 뒤에서, 다른 인도자들이 잘 섬기시는 것을 보면서 응원하는 역할을 정말 더 하고 싶은데…
게다가 LGS는 현재까지 개발된 인도자들을 full로 잘 활용하면 그분들로 충분히 잘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일 기혼그룹 LGS를 ‘비공식 그룹’이나’ 임시 그룹’이 아니라… 정규 커리큘럼(?)으로 포함시킨다면,
아마 그쪽에 적어도 2명 이상의 좋은 인도자를 투입시켜서 그분들이 활약하실 수 있는 장을 잘 열어드리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감사한 것은, LGS 인도자 그룹은 정말 이분들 사이의 chemistry도 좋다.
인도자들이 모두 말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으시고, 이 말씀을 우리 KOSTA 참석자들에게 나누고자하는 순수한 열정도 많으신 분들이시다.

그래서 LGS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KOSTA 전체 프로그램중에서 참석자들의 feedback 점수가 가장 높은 program을 자리잡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