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종교 (5)

나는 결국 각자가 자신을 책임져야한다는 원론적 우파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은혜’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사회,문화,시대,상황,제도의 탓이라고 이야기하는 주장에도 동의할수는 없다.

기독교를 약자의 종교로 이해하는 어떤 사람들은,
상황이 힘든걸 어떻게 하느냐, 시대가 어려운데 어떻게 하느냐,
심지어는 나는 기질이 그런걸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단기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두려움등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산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몇년이 지나도 조금도 그분의 성품을 닮은 일에 그 사람에게 진보가 없다면 그 안에 정말 생명이 있는냐는 질문을 해보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네가 예수를 믿었으니 세상을 바꾸어라라는 차원에서 힘을내라고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네가 예수를 믿었으니 네 자신이 바뀌어야한다는 차원에서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점에서는 어떤 진보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약함이 괜찮다는 약함에 대한 긍정만으로는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약자의 종교 (4)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신 구원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달려갈 길이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고 그걸 계속 뇌되이면서 그냥 그자리에 앉아있는 그림이 아니라,
목표를 행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그림이 성경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기독교를 약자의 종교로만 이해하면,
자칫 그렇게 끊임없이 목표를 행해가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내가 끊어야하는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와 싸워야하는데,
그냥 내가 약하다는 이유로 타협해버리거나 심지어는 후퇴하기까지 하는 거다.

아… 나는 너무 사랑이 없어, 나는 너무 사랑이 없어… 그렇게 반복해서 되뇌이면서,
막상 그 사랑없음과 어떻게 싸우는 모습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사랑이 없으니까 그건 못하는 거야… 나는 그런 면에서 약한거야..
그러면서 주저앉아버리고, 그리고 결국은 뒤로 drift away해가는 것이다.

그냥 하면되는데, 그걸 안하고 자신이 약하다는 핑게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이 너무 많이 나타난다.

약자의 종교 (3)

기독교를 이렇게 약자의 종교로 이해하면, 그러나, 몇가지 문제들이 생긴다.

우선, 약함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칭송받을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기독교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승리, 권능, 영광등에 대한 찬사가 넘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그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다만, 그런 승리와 힘과 영광이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주어지거나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늘 그 백성들을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마침내 약함으로인해 받았던 서러움을 ‘신원’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약함과 그로인해 겪는 어려움은 궁극적으로 극복해야할 상태라고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약함을 너무 쉽게 후다닥 해결하려고 달려드는 것에대해 기독교/성경에서는 반복해서 경계하고 있다.
그것은 자칫 하나님 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우상’으로 귀결되거나 지나치게 단기적인 승리를 추구하는 승리주의와 같은 모습으로 왜곡되기 쉽다.

그러나 약함이 궁극적으로 머무를 지점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성경에서는 매우 신비로우면서도 역설적인 방법을통해 그 약함이 결국은 극복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약자의 종교 (2)

기독교가 약자의 종교라는 근거는 성경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견된다.

우선, 하나님께서 주로 소통하시는 사람들이 약자였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냥 세계사의 파워의 관점으로 보면 상당히 찌질한(?) 민족이었다. 아주 좁디좁은 땅에서 강대국 사이에 끼어 빌빌대는 시간을 길~게 보내다가 강대국에 의해 멸망/지배 당하고 계속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뭔가를 해주시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수님도 약자의 모습으로 오셨다. 피지배민족의 가난한 지역에서 사생아 취급을 받으며 성장하셨다.
그리고 약자의 모습으로 무력하게 처형당하셨다.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바울은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약할때 하나님께서 그 약함을 통해서 그 사람을 만나주시는 일들을 흔히 여러 간증을 통해서 많이 듣는다.

나는 이것들이 모두 다 옳고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으로보면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인 것 같아 보인다.

약자의 종교 (1)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일까?
아마 5년전쯤에 내게 누가 이 질문을 했다면 나는 100%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내 대답이 훨씬 더 불분명할것 같다.

여전히 나는 기독교가 약자에 대한 최고의 compasison을 가진 종교라고 생각을 하지만,
기독교의 주체가 약자일까, 기독교가 그리는 이상적 인간형이 약자일까 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엇갈린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요즘은 기독교가 그리는 이상적 인간형은 대단히 ‘강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보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를 약자의 종교로만 이해했을때 생기는 모순들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분명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기독교가 약자의 종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논의의 의도 자체가 치우쳐져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의 더 큰 관심은 약자 vs. 강자의 구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번의 글을 통해서 요즘 내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5)

내가 생각하기에,
학벌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급한 해결책은,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나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 보다는,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룰을 완전히 공정하게 하는 것은 결국 결코 완전하게 이룰 수 없다.
어디에선가는 늘 불합리하게 느끼는 어떤 그룹이 있기 마련이고,
어느 구석에서는 덜 공정한 상태로 지속되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하자고 해서 여러가지 인위적인 장치들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룰을 복잡하게 만들고,
룰이 복잡해지면 그 룰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구조가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알기론 한국의 대학입시가 지금 그렇다고…)

지금은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소득 격차가 너무크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밀어넣는 사회 구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살기 위해서 죽어라고 악이 받혀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사회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경정하게 된다.

한번쯤 실패한 사람들에게 숨통이 조금 트이면,
오히려 게임의 룰 자체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기의 의견을 악악대며 주장하는 것이 조금 잠잠해 질 테고,
그러면 오히려 조금 더 자연스룹게 게임의 룰을 간단하면서도 공정하게 만들 여유가 생기게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4)

내가 뜬금없이 학벌 이야기를 쓰는 것은,
이번에 한국에서 ‘조국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공정하지 못한 것에 정말 많이 분노하는것을 다시한번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데 그것이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일까?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이것이 그냥 그야말로 ‘정의’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같은 나이의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어느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수입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되었다. 많이 돈을 버는 사람은 아주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정말 적게 벌게 되었다. 똑같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수입의 차이가 두배이상 나기도 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아니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이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이 버는 돈이, 미래를 희망있게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돈을 모아도, 집을 마련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소박한 꿈을 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박한 꿈 조차도 꿀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버린 것이다.

나는 한국 사회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은 내가 미국에서 경험하는 것 보다는 그 경쟁이 공정하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는 게임의 룰이 공정하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게임에서 뒤떨어진 사람들이 살만하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더 나은 직장에 가는 것이 그저 ‘nice to have’인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쟁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목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게임의 룰이 공정한가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3)

좀 난잡하게 글이 쓰여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하여간 내 포인트는,
적어도 미국에서 내가 경험하기로는 좋은 학교 나온 것이 아주 영양가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그 사람이 얼마나 실력이 있느냐, 일을 잘하느냐가 결국은 드러나서, 그 사람의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내가 실리콘 밸리에서 경험하고 있는 바,
학벌때문에 실력도 없는데 괜히 인정을 받는일은 정말 거의 없고, (적어도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고)…
좋지 못한 학교 나온 실력 있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꽤 공평하게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그럴까?
글쎄… 나는 한국의 상황을 잘 모르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국은 내가 이곳에서 경험하는 것 보다는 왜곡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나는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첫번째 글에서 언급한 대로 실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구조가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실력 없는 사람이 도태되는 구조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실력 없는 사람이 도태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2)

내가 학벌 때문에 답답하게 느끼는 유형은 다음의 몇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실력은 별로 없는데 자기 어느 학교 나왔다는 것 가지고 계속 떠드는 사람이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별로 많이 보지 못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보긴 하는데,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
커리어 초기에 그런 사람들이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은 그냥 도태되는 것 같다.

두번째,
실력은 진짜 좋은데 학벌이 별로 좋지 않아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역시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역시 그런 사람들을 별로 많이 보지 못한다.

세번째,
실력은 진짜 좋은데 출신 학교가 좋지 않아서 주눅이 들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게 제일 안타까운 경우인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학벌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닌가 싶다.
사실 주변에서 역시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접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그냥 실력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사람들은 내가 느끼는 것 보다 더 많이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주변에서 보면,
출신학교는 그냥 2nd tier, 3rd tier 학교들인데도, 함께 일을 해보면 완전 시원시원하게 또릿또릿하게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전 직장에서 내가 참 좋아했던 엔지니어중 한 사람은, Associate degree만을 가지고 있다가 (2년제 대학), 나중에 동네 학교에서 4년제 학위를 딴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늘 즐거워했다.
주변에 완전 일류 학교 박사들도 있었지만, 이 사람만큼 시원시원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으냐하면….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 혹은 한국 사람들 속에서 경험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내겐 꽤 있으니까.

아, 물론 내가 경험한 범위에서는,
좋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거의 대다수는 정말 일을 잘 했다.

이런 내 제한된 관찰은, 미국의 silicon valley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라면 이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현장에서 느끼는 학벌 (1)

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니,
그냥 내가 경험한 미국의 상황에서 좋은 학교 나온것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써보려고 한다.

아주 결론적으로 말하면,
좋은 학교 나온 사람이 일을 잘 할 확률이 확실히 더 있다.

그리 좋지 못한 학교 나온 사람 중에서도 놀랍도록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물론 있고,
좋은 학교 나온 사람중에서도 일을 완전 답답하게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졸업한 학교의 랭킹과 일을 잘하는 수준에는 분명히 꽤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한 사람 뽑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때,
그 한 사람을 뽑으면 해고하기가 어렵다면…
사람은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risk를 줄이기 위해서 졸업한 학교 랭킹을 보고 사람을 뽑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위 학벌주의가 문제라고 특히 한국에서 더 그렇다고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그때 늘 따라붙는 이야기가 학벌이 아니라 실력으로 뽑아야 한다는 식의 말이다.
나는 그러면 대개는 그냥 더 랭킹 높은 학교 졸업한 사람 뽑는 것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
랭킹 낮은 학교 나왔지만 일을 잘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사람에게 모험을 걸어볼 수 있으려면…
내 생각엔 해고가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해고가 쉬워지는 것을 원하는지?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