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7)

성공/번영하고자 하는 욕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치중립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몇가지의 이유가 있다. – 성공의 동기가 결국은 강한 자기애(self-love)에 기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100%이다. –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의 성공은 그 성공의 그림자로 인해 어떤 사람들에게 … Continue reading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6)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을 참기 힘들어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볍게는, 무엇을 먹고 싶다 (craving)을 참는 것을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심각하게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어떤 lifestyle을 가지고 싶다는 것을 포기하는 … Continue reading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5)

죄와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아주 큰 사명이자 특권이다. 사회적 죄와 싸울뿐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와도 계속해서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형태로 내 안에 들어있는 왜곡된 욕망을 잘 발견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불편한 confrontation을 피하지 말아야 하고, 그 과정을 … Continue reading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4)

그런데 교회에서는 흔히… 종교적 언어로 사탕발림된 욕망을 긍정해준다.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을, 주님의 비전을 찾는다는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때, 목사나 교회의 자도자들은 그 사람이 정말 주님의 비전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 역시, 속으로는 그래서 그 사람이 … Continue reading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3)

그런의미에서, 이런 왜곡된 욕망의 긍정은 좀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뽀대나는 직장에 다니고 싶은 욕망이 있을때, 그것을 내세우는 것이 뭔가 쑥쓰러워서… 주님의 뜻을 찾는다… 라던가, 비전을 주시옵소서… 기도 한다거나…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나는 … Continue reading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2)

교회에서 흔히 ‘기도제목을 나눈다’는 표현을 한다. 난 이 표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 기도를 요청한다, 내가 기도하는 내용을 나눈다 등등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일텐데 말이다. 하여간, 각설하고… 그렇게 교회에서 ‘기도제목을 나눈’ 리스트를 쭉 보면… 결국 자신이 처해있는 … Continue reading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1)

몇년전에 ‘욕망해도 괜찮아’ 라는 책을 읽었다. 아주 재미있었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내게 아주 깊이 공명이 있었다. 당연히 그 책은 내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두식 교수가 그 책을 썼던 이유를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대로 정리하자면… 욕망을 규범적 자세로 억누르기만하면 그것이 왜곡되기 때문에, … Continue reading

하나님 나라 신학 진영에 딴지 걸어보기 (11)

나는 하나님 나라 신학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 전체를 꿰뚫는 어쩌면 가장 확실하고도 중요한 theme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하나님나라 신학 진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것이다. 내 말이 옳다고 해서, 저쪽의 말이 반드시 … Continue reading

하나님 나라 신학 진영에 딴지 걸어보기 (10)

앞에서 조금 언급한 것과 다소 겹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기독론이 결여된 하나님 나라 신학은 자칫 비인격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죄를 극복해야할 현상으로 본다거나, 하나님을 의의 화신정도로 이해한다거나, 예수께서 하신 일이 통치를 선포하는 것이라는 강조에서는 기독교의 인격성이 빠지기 쉽다. 하나님께서 … Continue reading

하나님 나라 신학 진영에 딴지 걸어보기 (9)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 나라 신학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에 중심을 둔 신학 전개이다. 별로 학문적으로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그리고 나는 학문적으로 깊이 고민해볼 역량이 없기도 하다 ^^) 내가 보기에… 현대 하나님 나라 신학이 꽤 많이 갖추어진 형태로 정리된 것은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라고 …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