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전문가? (3)

나는 복잡한 일이 터지면 무조건 상황을 단순화한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게 우선 잘 처리되도록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출장은 대개 내게는 stress가 높아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출장을 갈때면 일에 관련된 것들은 철저하게 준비하되, 나머지 것들은 아주 가장 효율적으로 정리해서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노력중 하나로 나는 가방을 단촐하게 가지고 다닌다.

웬만해서는 나는 짐을 check-in 하는 일이 없다.
이번에 두주 줄장을 다녀올때도 나는 당연히 carry on luggage만을 가지고 갔다.

큰 짐을 가지고 가지 않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나는 대채 출장을 다닐때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야하기 때문에 큰 짐을 가지고 다니는게 힘이들때가 많다. 큰 짐을 가지고 지하철을 탄다던가, 계단을 올라간다던가 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커다란 짐을 들고 정장을 하고 열몇명이 쭈루룩 앉아있는 도쿄 중심가의 office에 들어가는게 좀 폼이 안나기도 한다. ^^
또한 큰 짐을 들고, 어느 좁은 식당에 가서 밥이라도 한번 먹으려고 하면… 이거 완전 힘들다.

2. business travel을 할때는 business class를 탈때가 많아서 괜찮지만, personal travel을 할때는 당연히 제일 싼 비행기 티켓을 구해서 탄다. 그러다보면 어떤 티켓은 짐을 부치는데 돈을 내야할때도 있다. carry on 만을 가지고 가면 돈을 절약할 수 있다.

3. 출장을 다닐때 시간에 쫓겨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부지런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 짐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완전 짱이다. 짐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productive한 일을 할 수 있다.

4. 생각보다 자주… 항공사에서 짐을 제때 올리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제 최근(?) 들어서는 이것도 bar code scan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error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사고는 발생한다. 특히 direxct flight이 아니고 connection이 있는 항공편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 커진다.

출장 전문가? (2)

이번 출장은 좀 빡쎘다. -.-;

한국에 오랜만에 간김에 거의 8년만에 건강검진한번 받아보려고, 출장중에 이틀은 아예 sick leave(병가)를 썼다.

그래서 시간 보낸것 말고는 전반적으로 꽤 stressful한 출장이었다.
(그래서 무단으로 거의 두주 가까이 블로그 업데이트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는 California의 home office에 좀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웬만하면 출장을 cancel하거나 연기했어야 했는데…. 일본과 한국에서 잡혀있는 미팅들 역시 중요한 것들이어서 쉽게 cancel하거나 연기하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두주 내내 낮에는 현지 일을 하고, 밤에는 home office일을 챙겨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새벽 1시, 5시 등등 conference call이 잡히기 일쑤였고,
그 와중에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도 하나 있어서… 일본에서는 또 유럽과도 conference call을 해야 했었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home office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도 내게 미안해하지도 않고, 내 시간으로 새벽 1시~5시에 video conference를 잡아놓기도 했고,
낮에 일하고 밤에 돌아오면 수십개씩 밀려있는 이메일들과 여러가지 request를 처리해야했다.

내가 아무리 출장 전문가라 하더라도, 이런걸 깔끔하게 처리하는 전문가는 아직 못되는 것 같다. -.-;
집에 돌아 왔는데…
출장 중에도 california 일하는 시간에 일을 많이 해서… 시차 적응에 별 무리가 없다. ㅎㅎ

출장 전문가? (1)

나보다 훨씬 더 출장 많이 다니는 사람들도 물론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나 정도면 출장을 많이 다니는 편에 속하지 않나 싶다. ^^

이번에도 또 출장이다.
여행을 늘 즐기고, 모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출장가는걸 좋아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이런걸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나는 얼마전부터는 출장을 갈때 꼭 그 안에서 ‘재미있을만한’ 것들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아주 신박한(!) 껀수가 생겨서 그걸 질러버렸다.

San Francisco에서 Tokyo를 거쳐서 ICN을 거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인데,
일본의 다음 주말이 연휴이고, (9/17 월요일이 휴일이다.)
한국의 그 다음주말은 추석연휴이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도 비행기표가 무지 비쌌다.
회사에서 살 수 있는 비행기표 한도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액수를 맞추려고 인터넷을 부지런히 뒤졌더니 아주 괴상한 비행기표가 나왔다.

SFO에서 몬트리올까지 가서 거기서 Narita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것이다.
세상에, 미국 서부에서 Tokyo 까지 가는데 자그마치 몬트리올에서 갈아타다니. 이런 생 노가다가 있나!
그런데 어쩌랴. 그게 싸게 나온거다. 허억.

그게 몬트리올이 아니라면 당연히… 야 이게 무슨 개소리냐… 일본 가는게 하루는 더 걸리잖아! 하면서 그냥 조금 더 비싼걸 끊었겠지만,
아니, 몬트리올이라니!

잠깐 고민해보고 바로 끊었다.
원래는 몬트리올까지 red-eye flight으로 갔다가 6시간 layover하고 일본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그래, 이렇게 하면 1~2시간은 잠깐 동생네를 볼 수 있겠구나 싶어 그냥 그렇게 끊었다.

그런데 그렇게 끊고나서 사정상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을 조절해야하는 일이 생겼다.
(왜 그런지는 다음에 다른 글에서 조금 더 설명을 해 볼지도…)
그래서 return flight을 바꾸는 김에 몬트리올까지 가는 비행기도 왕창 더 일찍가는 걸로 바꿨다.
그래서 동생네에서 자그마치 거의 20시간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생겼다.

간김에 조카에게 작은 선물도 사고,
가서 조카랑 장난도 치고…
작은 놈 재롱도 조금 더 보고.

그래, 이 정도의 행복이라면 왕창 돌아가는 이런 비행기 탈만하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오진이네와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었고,
우리 예쁜 조카들 많이 뽀뽀도 해 줄수 있었다.

회사돈도 아끼고, 동생네도 보고…

진짜 나름대로 마음이 soft해지는 진짜 좋은 시간 보내고, 지금은 몬트리올 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출장을 가게 되어서 감사한 일이다. ^^

음악을 들으며 (4)

그래도 지난 주말 이후에 아주 뜬금없이 닥치는대로 음악들을 들었다.
– 8090 발라드들
– 동물원
– 김건모
– 비발디
– 사이먼과 가펑클
– 레너드 코헨
– 마이클 잭슨
– 빅뱅
– 악동뮤지션
– 손승연
– 헨델의 메시아
– 힐송의 찬양들
– 조유진의 최신 앨범

허, 참 완전 잠탕으로 이것 저것 들었는데,
그중 내가 제일 많이 반복해서 들었던 것은 이것이다.
아마도 내겐 이런 ‘웃음’이 많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원곡

합창

신박한 편집

음악을 들으며 (3)

Classical music을 연주자별로 작은 차이를 분석해내고, 곡의 해석에 관해서 논하고 할 정도로 잘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한때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classical music mp3이건 CD이건 뭐를 산적이 한번도 없던 것 같다. 듣는것도 두어달에 한번씩 어쩌다 하나 들을까 말까.

Classical music은 가요등과 비교해서 특별히 좀 더 제대로 시간을 떼어놓아야 잘 즐길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곡이 대개 훨씬 더 길기도 하고, 어쩌다 헨델의 메시아같은 대곡은 들어보겠다고 한다면 몇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아… 그런데 진짜 그럴 시간은 없다. -.-;
아니 시간이 없기 보다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해야할까.
아니, 그런 마음의 여유없음을 건너 뛰어서 classical music을 들을만큼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즐길만큼 classical music을 잘 알고 즐기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교때까지는 그래도 어쩌다 한번씩 바이올린을 꺼내서 혼자 켜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할때도 있었는데…
시간 속에서 나는 classical music을 잃어버린 듯 하다.

지난 주말과 같은 여유를 다시 찾아야만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classical music을 즐길 수 있게 될까.
지금과 같은 lifestyle을 가지고 있는 한, classical music을 즐기는건 어려운 일일까.

다음에 DK를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음악을 들으며 (2)

주말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가요’였다.
예전에 나는 가요를 참 많이 들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나는 +/- 5년 간에 대충 유행했던 가요의 모든 가사를 다 욀 수 있었다.

그런데 가요를 들으면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내가 미국으로 온 95년까지의 가요들은 여전히 내게 익숙한데, 96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가요는 내가 잘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가되면 다시 좀 익숙하게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95년에 미국에 오면서 나는 한국의 media와 단절이 되었다. 그 당시엔 인터넷으로 가요들 듣고 하는것도 안되는 때 였으니…
그리고 인터넷의 여러 경로로 음악을 듣는 것이 다시 어느정도 가능해진 2000년대 초반이 되기까지 나는 한국의 가요를 많이 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좀 촘촘히 살펴보니,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한국의 가요는 꽤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것 같다.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던 때였고, 소위 밀리언 셀러들이 쭈루룩 등장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한국의 각종 예능프로그램등에 나오는 사람들이 등장한 때가 그 때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한국 가요를 예전처럼 잘 듣지도, 좋아하지도, 따라가지도 못한다.
나는 그게 그냥 내가 나이가 들어서려니… 라고만 생각했는데… (물론 그렇겠지만)

그것 이외에도 내가 중간에 전체 흐름 자체를 뚝 짤라서 놓쳤기 때문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1)

Long weekend에, 참 오랜만에 여러가지 음악을 많이 들었다.
예전엔 늘 음악을 귀에 달고 살았다. 그게 어떤땐 classical 음악이었고, 어떤땐 가요였고, 어떤땐 복음성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삶 속에서 음악이 없어졌다.

그건 음악이 싫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음악 듣는걸 좋아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있자면…
아니 이 시간에 내가 음악을 듣고 있어도 되나 싶어 얼른 다른걸 하게 된다.
운전을 하던가 하여간 무슨 시간이 잠깐 나면 나는 그 시간을 뭔가 productive하게 보내려는 시도들을 한다.
많은 경우 강의를 듣거나, audiobook을 듣거나,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음악을 듣는 사치를 누릴 여유가 내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서 음악을 빼앗아간 가장 큰 범인은 podcast와 오디오북이다.

뭔가를 더 배워야한다는, 더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나로부터, 그런 매체들은 음악을 빼앗아 가 버렸다. -.-;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음악을 들었다. 참 오랜만에…

KOSTA 후기, 2018 (21)

KOSTA를 오래 섬기면서 나를 붙들었던 가장 큰 가치는,
KOSTA를 섬기는 것이 내게 아무런 개인적인 유익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KOSTA에서 그렇게 섬기면서 몸에 밴 ‘정신’은 사실 내 전반적인 삶의 자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KOSTA를 다녀보면 여전히,
KOSTA를 섬긴것이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KOSTA 섬김의 핵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모습은 더 자주 보게 된다.
아니, 이게 뭐라고 여기서 뭐 한게 그렇게도 대단한 거라고…

어쩔수 없이 나는 어찌 하다보니 KOSTA에서 꽤 오랫동안 소위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 섬겨왔다. 솔직히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서 섬기는거야 뭐 하라면 할 수 있는데… 그게 일종의 ‘권력’이나 ‘명예’가 되어버리는 모습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런 것이었다.
KOSTA에서 무엇무엇을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한에는,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고)
KOSTA의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 더 nobody가 되어야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욕조의 작은 drain과 같이,
그 가장 핵심이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nobody가 되어야만,
운동의 건강함이 계속 지켜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영광을 다 받으셔야 하지만,
혹시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KOSTA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수를 받는 것도 강사들과 다른 섬기시는 분들이 많이 박수를 받고,
inner circle의 사람들은 기둥 뒤에 숨어서 그저 KOSTA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했다는 것이 유일한 reward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KOSTA를 좌지우지해온것처럼 떠벌리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소위 KOSTA 간사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nobody가 되는 그런 spirit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에 이렇게 길게 KOSTA 이야기를 쓰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야 뭐 들어와서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다수가 KOSTA ‘관계자’들이므로… 이렇게 편하게 써본다.

(아마 조만간 관련된 글을 쓰겠지만, 사실 최근에,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의외의 사람들이 이 블로그를 follow 해서 내 ‘동태’를 살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이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사실 쓰고 싶은 말들이 아직 더 많긴 하지만,
이걸로 벌써 한달 가까이 코스타 컨퍼런스 관련된 글만 쓰고 있어서…
일단 이 정도로 금년에는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나는 금년에 집회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번 내 결심과 헌신을 점검해본다.
나는 KOSTA에 헌신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헌신한 것이다.
그래서, KOSTA에 헌신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많이 기쁘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많이 눈물이 난다.
이번에 나는 어떤 사람들의 헌신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KOSTA 후기, 2018 (20)

목요일쯤 되니까 여러가지로 힘이 많이 떨어졌다.
특히 목요일날 아침에 LGS를 마치고 나니, 이번엔 잘 하질 못했구나… 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기도 했다.
목요일에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저녁시간에 입맛이 없었다.
그냥 몸과 마음이 좀 늘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저녁에 헌신과 기도를 인도해야하는데 힘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잠깐 들었는데, 주변에 빨간조끼를 입은 간사들이 몇명 서 있었다.
많이 피곤해 있는 상태여서 그랬는지 뭔가 비몽사몽 비슷하기도 하고, 뭔가 정신이 clear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
내가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축 늘어져 있는데, 그런 나를 빨간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갑자기 힘이 났다. 웬지 모르겠는데 정말 갑자기 힘이 났다.

감사하게도 그래서 무사히 저녁 기도 인도를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잠깐 피곤했었고, 그런데 옆에 간사들이 서 있는걸 보고 힘을 얻었다… 이건데…
나는 이 그림이 유난히 계속 머리 속에 남는다.

우리 간사들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늘…
짠하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장하다. 자랑스럽다. 등의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뭐라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금년의 이런 경험은 아마도 내가 코스타에 참석하는 자세나 간사들을 대하는 자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KOSTA 후기, 2018 (19)

작년 가을에는 버지니아의 어느 학부생 모임의 수련회에 강사로 갔었고,
금년 봄에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어느 대학원생/포스트닥 모임에 수련회 강사로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모임 사람들을 엄청 많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 물론 그 모임들은 모두 다 KOSTA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분들이 인도하는 모임들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그 이전에 내가 강사로 갔던 다른 수련회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 후에 꾸준히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에 ‘예전에 저희 교회 오셨을때 뵈었어요’라며 와서 아는척 하는 사람들도 또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떻게든 이렇게 비슷한 spirit을 공유하는 여러 모임들을 KOSTA 차원에서 더 support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런 모임들을 효율적으로 묶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임들이 서로 더 큰 힘을 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비슷한 spirit을 가진 모임들을 더 많이 찾아서 발굴하고, 그 그룹들을 함께 어떻게든 엮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아직 다 죽지는 않았다.

1942년 성서조선에 김교신 선생이 쓴 “조와”라는 글이 떠올랐다.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다. 층층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연못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연못 속에서 솟아나 한 사람이 꿇어 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이다.

 

이 반석 위에서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크게 기도하고 간구하고 찬송하다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연못 속에서 바위의 색깔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 속에 큰일이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새로 온 손님에게 접근하는 친구 개구리들. 때로는 5,6 마리, 때로는 7,8마리.

 

늦가을도 지나서 연못 위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하더니 개구리들의 움직임이 날로 날로 느려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연못의 투명함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고막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소식이 막힌 지 무릇 수개월 남짓!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 틈의 얼음 덩어리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아보았더니 오호라, 개구리 시체 두세 마리가 연못 꼬리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연못의 적은 물이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얼어죽은 개구리의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연못 바닥에 아직 두어 마리가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