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발흥 (3)

이 책에서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여러가지 data를 바탕으로 confirm해주는 것도 있지만,
예전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 생각을 확~ 뒤집어놓는 논지도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초기 기독교의 계급기반이 ‘하층민’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기독교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급 수준의 사고력이 필요했을 수 있고,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라는 거다.
그것을 support하기 위해서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들을 예로 들어서 개종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을 분석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에서도 초기 기독교가 하층민을 배제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하층민을 주된 target으로 하는 종교였다면 이렇게 발흥할 수 없었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논리들을 펴고 있다.

이건 내겐 참 흥미로는 관점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초기 기독교인들이 하층민일 것이라는 상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기독교는 하층민에게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기독교의 핵심 가운데 하나를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층민에의해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는 거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대로, 기독교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아니었다.

이건 정말 내가 몇년동안 꾸준하게 다시 곱씹어야할만한 큰 숙제를 내게 던져 주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행동해왔던 큰 줄기 가운데 하나를 수정해야할만큼 클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의 발흥 (2)

기독교의 발흥을 아주 흥미롭게 읽고 있다. 하루에 한장정도 읽고 있었는데 지난 고난주간에는 책 읽는 시간등을 줄이고 좀 자숙(?)하는 바람에 진도가 좀 덜 나갔다.

1장에서는 기독교인이 증가하는 형태가 exponential curve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역사 자료등을 바탕으로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들을 해 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가 어느순간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같아 보이는 이유는, 어느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기 보다는, 기독교가 증가하는 방식이 exponential curve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건 요즘 COVID-19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친숙한 개념일 것 같다.
기독교의 증가세가 10년당 40%정도 증가했다고 가정했을때 대충 역사자료들과 일치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독교인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그 증가세가 매우 낮은 것 같다가, 어느이상 되면 똑같은 증가율(10년당 40%)를 가지고도 폭발적인 증가인 것 같이 보이게된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흥미로운 argument였다!
혹시 기독교인들이 ‘부흥’이라고 부르는 현상들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
한국기독교의 성장 그래프를 이런 방식으로 그려보면 어떻게 나올까?

하여간 여러가지 흥미로는 생각을 갖게 했다.

기독교의 발흥 (1)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듯이 최근 기독교의 발흥 (The Rise of Christianity)”를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읽는 번역서여서 살짝 초반에 좀 고생을 했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니 그래도 좀 읽을만하다.

아직은 초반 몇장밖에 읽지 못했지만, 이거 정말 완전히 내 취향의 책이다!
영어책의 부제는 “How the Obscure, Marginal Jesus Movement Became the Dominant Religious Force in the Western World in a Few Centuries”인데 아주 적절하다.

이 책은 3세기 정도까지 기독교가 어떻게 그렇게 융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사회학적 가설도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도 제시하고, 또 자신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도 이야기하기도 한다.

거의 매 챕터마다, 아… 내가 생각했던것과 정말 다르구나… 그런데 읽어보니 정말 그렇구나… 싶은 내용들이 많이 넘쳐난다.

보나마나 꾸준히 속도를 내서 읽기 어려울테니, 그리고 읽다가 중간중간 더 공부도 해야할 것 같고 해서, 이거 다 읽으려면 2~3주는 걸리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확~ 하고 깨닫게되거나 더 알게되거나 생각할 거리가 던져진 것들을 좀 여기에 종종 써보려 한다.

성공 (11)

원래 이걸 이렇게 길게 쓰려고 했던게 아닌데, 쓰다보니 길어져버렸다.
독자들중 어떤 분이 얘기해주신 것을 조금 더 담다 보니…

결국 하려던 이야기는 이거다.

  • 성공은 매우 다양한 재능과 상황이 모두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 지금 성공의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하다.
  • 성공에 목매어 사는 삶은 건강하지 못하다.
  •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의 resource를 성공에 모두 투자하여 살지 말아야 한다. – 사랑할 여유를 남겨두고 살아야 한다.
  • 나 개인적으로는 성공병에 걸려있어서 자족하는 것이 부족하다.

성공에대해 이렇게 쓴 글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치라고 여겨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곳 실리콘 밸리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를 스스로도 계속 점검하며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계속 나누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되긴 한다.

지극히 실리콘밸리의 환경에 적용될만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성공 (10)

나는 여러가지로 성공에 대한 욕심이 큰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욕심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을 해야한다.
내가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

내가 중학교때, 우리학년이 한 1천명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반에 70명씩 14반쯤 되었나…)
순전히 중학교 수준에서는 성적 잘나오는게 성공 기준의 대부분이었다.
우리때는 전교 석차가 중간고사/기말고사 끝날때마다 교무실 앞에 붙었었는데…
그때 내 기준으로는 내 이름이 맨 위에 있지 않으면 실패였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성공을 했었다.
그러니 그때 내 기준은 내 동년배의 0.1%안에 드는 성적의 수준이 성공이었던 거다.

나는 그냥 그때 그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거지, 우리집이 상위 0.1%안에 드는 부자였거나 그런건 당연히 아니었다.
내가 상위 0.1%안에 들만큼 잘생겼거나 운동을 잘했던것도, 내 성격/인격이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뛰어난것도 아니었다. 남자애들끼리 이야기하는 반에서 짱먹고 그런것과는 정말 거리도 멀었다.

그 후 공부를 하면서는, 나름대로 꽤 좋은 대학교에서 거의 한번도 과수석을 놓치지 않을정도였고,
꽤 알려진 학교로 유학가서도 거기서 공부로 밀린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때로… 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나의 전반적인 성공도 그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불합리한 기대를 갖는 경우가 있었다.
어릴땐 정말 그랬고, 나이가 꽤 든 지금도 가끔 그런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시리즈의 앞글에서 썼듯이, 성공이라는건 그저 학점 얼마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합적인 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내가 ‘왕년에’ 공부 잘했다는 것이 지금 그만큼 성공하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는 정당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게다가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특권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모두 얻었다고 이야기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능, 건강, 태어난 환경, 그리고 성격까지도…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성공의 정도에대해 내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사는건 때로 나를 게으르지않게 지켜주는 역할을 해줄때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나를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Grumpy“로 만들어 준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grumpy한 난장이의 이름)

성공에 대해서, 적어도 나는, 자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더 배워야하는 것 같다.

성공 (9)

내가 박사과정을 할때였다.
내 지도교수는 그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몇 사람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학회에서 무슨 발표를 하면 그 사람의 제자라는 이유 만으로 내 발표에는 사람들이 꽉꽉 찼다. 발표를 끝내고 나면 사람들이 와서 말도 많이 걸고, 질문도 많이 했다.

내 바로 옆에 있던 대만에서 온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이 쓴 논문 하나가 그야말로 ‘떴다’
정말 그쪽 분야에서 완전 스타가 되었다.
학회에 갈때마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다른 그 분야 대가들도 이 친구의 결과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data를 설명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완전히 그 분야의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을 바로 내 옆에서 목격한 나는,
아니…. 쟤보다 내가 못한 것도 없는데. 나도 한번 해봐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완전히 떠서 스타가 되는게 너무 가까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 분야의 완전 break-through가 되는 연구는 사실 약간의 ‘운’도 따라줘야하고…
그게 쉽게 휙~ 되는게 아니다.
그리고 내가 부족하기도 했을 테고.

나는 그렇게 왕창 떠서 성공하는 것을 너무 가까이에서 봤고,
정말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나도 그렇게 성공할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박사과정 후반부를 보냈다.

그런데…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때 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런 성공에 내 모든 것을 던져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로인해 나는 매우 고통스럽게 내 망가진 모습을 자각하고 많이 회개했던 기억이 난다.

내 논문은, 결과가 나쁘진 않았지만 그 친구만큼 내가 수퍼스타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성공에 목매어사는 삶을 살지는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나름대로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성공 (8)

삶에는 성공말고도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아니, 성공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있다.

기독교인들에게있어 그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사랑’이다.

성공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조금 더 나아가…
사랑하기 위해 성공을 희생해야 한다.

성공을 향해 미친듯이 질주해가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가진 능력의 100%를 발휘해서 성공을 추구하지 말고,
늘 삶 속에 어떤 여력을 두어 그것은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오를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덜 오르려는 의도적 결정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에 내 삶의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버리기 때문이다.

내 재능, 시간, 재물, 노력, 정성, 관심을 100% 사용하지 말고,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것의 100%만큼 성공하지 말고,
성실하고 충성된 모습으로 살 수 있을 만큰 살면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럼 어느정도 성공 이외의 영역에 여유를 두고 살아야 하는냐…
그건 정말 상황이나 사람에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의도적 결정을 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성공이라는 우상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성공 (7)

좁은 성공의 기회를 보며 그것을 향해달려가는 욕망은,
그 사람을 통채로 집어삼키게 된다.
정말 산채로 꼴딱 집어삼킨다.

만일 성공이 인생의 지고지순한 목표라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성공에 이르는 것이 옳은 삶의 길이겠지만,
성공은 인생 전체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어떤 것이 내 삶을 투신할 만한 것인가를 따져볼때 사용하는 판별식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가령,
내가 인류평화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물론 인류평화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있지도 않고, 아마도 그렇게 죽지도 않겠지만, 그게 논리적으로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인류평화라는 개념은 내 자신보다 큰 개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보다 더 큰 대상이나 가치를위해 나를 헌신할때 나는 그 삶의 가치를 갖게된다.

그러나,
내 성공을 위해서 내가 죽을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질문을 떠나…
그냥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성공은 성취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오르고자 하는 것인데, 내가 죽는다면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성공은 투신해서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 (6)

신자유주의 이전에는 성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었다.
그때는 대학 졸업해서 월급받는 삶을 살면 그럭저럭 생계걱정없이 사는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하다보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고…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열어놓은 세상은,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켰다.
부자는 엄청난 부자가 되지만, 막상 부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비율은 더 줄어들었다.
대중은 중간이 되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간이 되면 그럭저럭 생계 걱정없이 사는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빈익빈 부익부는 돈에 대해서만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대박이 터지게 성공한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했다고 이야기할만한 사람의 비율이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나는 그래도 대단히 운이 좋게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학교들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거기 졸업하고 박사받고 하면 당연히 성공된 삶이 거의 보장되다시한다고 여겨질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그렇지 않다.
내 동기 선후배들을 보더라도 아주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어렵게된 사람들도 많다.

성공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특혜는 날이갈 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 그 성공을 바라는 강한 사람들의 욕망은 계속 커져만 가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성공에 목을 맨다.
그렇지만 그 성공에 다다르는 사람들은 더 소수가 되었다.

성공은 정말 쉽지 않다.

성공 (5)

내가 주변에서본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렇다.

완전 똑똑하다. 자기 전문분야가 아니어도 한 30분만 듣고서도 그 개념과 내용을 파악해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것에대해 꽤 전문적인 조언이나 가이드라인을 주기도 한다.

진짜 열심히 일한다. 티를 내기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에게 있어 주말은 최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다. 하루에 15시간 일하는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체력이 장난아니다. 하루에 6시간도 못자면서 지내도 끄덕없다. 해외출장을 가서 새벽비행기로 다른 나라에 도착하더라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일하러 달려간다. 그리곤 저녁에 비지니스 디너까지도 다 하고나서 잠자리에 든다. 그 다음날 새벽 5시면 호텔 주변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다음날에도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는다. 그래서 필요하면 어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로 그 사람을 설득하기도 하고, 어떤땐 공감을 표시할줄도 안다. 이런 능력은 결국 주변의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얻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협상을 능수능란하게 잘 하는 것이다.

멘탈 갑이다. 원만해서는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어렵다. 아주 심한 비판도 이 사람들은 잘 받아들인다. 그게 말이되는 것이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말도안된다 싶으면 그냥 싹 무시할줄도 안다. 기분이 나빠서 일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일은 웬만해선 없다.

끊임없이 돌진한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나 싶게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계속 더 높은 goal을 세워서 그것을 향해 돌진한다. 주변에서 높은 goal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더 높은 goal을 세워서 돌진한다. 지칠줄모르는 중단없는 전진이다.

대개는 이중 하나라도 빠지면 정말 그게 그 사람의 큰 약점이 된다.
그래서 결국은 그 사람이 더 성공하는것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정말 성공하는 사람들은 때로 거의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수학도 잘하고, 언어도 잘하고, 예술도 알고, 역사도 알고, 철학도 알고, 스포츠도 잘 알고, 운동도 잘 하고, 예술에 소질도 있고, 언변도 뛰어나고, 심지어는 잘생기기까지…

대개 이런 모든 면들을 얼마나 골고루 빠짐없이 잘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그 그룹 내에서 얼마나 성공하느냐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