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후기, 2018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은혜’라는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도대체 그 은혜라는게 무엇인지, 왜 은혜가 필요했는지, 은혜가 어떤 방식으로 주어진 것인지를 더 듣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그 내용을 몰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냥 그 이야기는 내 평생 반복해서 내 귀에 들려졌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평생 그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가 정말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은혜의 적용, 은혜의 consequence, 은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나눈 것 같은데, 은혜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나누어지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

그건 내가 너무 ‘구세대적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KOSTA 후기, 2018 (3)

보통 ‘은혜’라고 하면,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거의 바로 따라나오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은혜의 개인적(personal)인 성격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의 주어는 ‘나’이다. ‘세상’이나 ‘우리’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죄에대한 강조가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에서 주어지는 은혜는 자연스럽게 뜨거운 감사로 연결되게 된다.

그런데,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는 죄의 개인적 차원에서의 강조는 그렇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녁 설교에서 좀 언급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사람들로부터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 보여졌다. 내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관찰이었다.
그런데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메커니즘은 이렇게 보여졌다.

– 세상이 망가져 있다.
– 나도 그 망가진 세상의 일부이다.
– 망가진 세상의 일부로서 그 망가진 모습의 피해를 내가 당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망가진 세상의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나를 건저내시는 분이시다.
– 물론 당장 직접적으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궁극적이면서도 영속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 그러므로 감사하다.

나는 이런 방식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다른 어느 책에서나, 다른 어느 설교등에서 접해본 기억이 없다.
(혹시 아는 분이 있으면 내게 말씀을 해주시길…^^)

전통적으로 은혜는 개인적, 서정적이었다면,
이번 KOSTA에서 이야기된 은혜는 공동체적, 서사적이었다.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 이루어진 여러가지 presentation은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KOSTA 후기, 2018 (2)

어제 쓴 글을 약간 더 부연설명 하자면,
냅킨전도/true story의 gospel presentation 방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글 비디오
영어 비디오

개인의 죄에대한 강조를 통해서, 그 개인이 복음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이야기하는 대신에,
세상이 죄로인해 망가져있다는 강조를 하고,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개인과 더 나아가서 세상 전체를 회복하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narrative를 생각해 보았을때,
또 하나님 나라 신학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더 align이 잘 되는 gospel presentation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깨어진 것인 ‘세상’이라는 강조를 주로 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이 죄로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

나는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 이야기된 은혜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런 true story 식의 gospel presentation과 잘 align이 되어있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나라 신학의 관점과 더 잘 align되긴 하지만,
은혜의 개인적 영역에 대한 강조가 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KOSTA 후기, 2018 (1)

10년이 조금 더 지난 일이다.
처음 ‘냅킨전도’ 혹은 ‘true story’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는 마음이 불편했었다.
내가 예전에 배웠던 gospel presentation과는 다른 접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죄’에 대한 개념을 너무 약화시키고, 죄의 개인적 측면에 대한 강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복음이 복음답게 전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처음 내가 가졌던 거부감과는 달리, 실제로 그런 접근법은 ‘젊은 세대’에게 꽤 relevant하게 전달되는 경험을 개인적으로 했었다.
지금은 내가 흔히 하는 gospel presentation에서도 그래서 냅킨전도식의 이야기를 많이 차용한다.
(물론 거기에 죄의 개인적 측면에 대한 강조를 나름대로 조금 더 넣으려고 노력을 하기는 한다.)

이번 KOSTA에서 다루어진 ‘은혜’라는 것이 내게는 다소 그렇게 느껴졌다.
전통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 다루어진 은혜 이야기는 뭔가 충분히 파야할 것을 파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수도 있다.
죄에대한 강조 없이 과연 은혜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내게도 그런 의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죄, 처절한 절망을 맞닥드리지 않는다면 은혜가 충분히 은혜로 다가오기 어렵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번 KOSTA 전체집회에서 나누어진 이야기들을 조금 더 refine 하면, 은혜에 대한 ‘냅킨전도식’ 접근을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은혜라는 개념은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변질되기도 하고, 일부 고루하게 여겨지기도 하면서… 더 이상 전통적인 개념으로 은혜를 이야기하는 설교등을 듣기가 대단히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은혜를 충분히 적실성을 가지고 present하는 것 자체도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fresh한 approach로 은혜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argue 할수도 있겠다.
나는 이번 KOSTA 전체집회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그런 가능성을 살짝 보았다.

나의 KOSTA 이야기 (2008년 글)

1.
내가 KOSTA 라는 것을 처음 들은 것은 91년.
당시 한국의 대덕 연구단지에서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대덕 연구단지의 특성상,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분들로 부터 KOSTA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송인규, 서재석, 방선기 같은 분들이 편집위원이었던 계간지 “그리스도인과 학업” 이라는 잡지도 참 흥미롭게 보았다.

92년엔가…
그 당시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에 KOSTA에 대한 기사가 실린 것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해야 그 기사를 몇부 copy해서 몇사람들에는 나누어주기도 했고… 나 자신도 잘 간직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그 KOSTA를 섬기게 될 줄이야…

2.
95년 8월20일에 난생처음 미국땅을 밟았다.

나는 스스로 ‘학생사역자’라고 자처하고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참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참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녔던, KOSTA 초기 시작에 연관이 있으셨던 어떤 유학생 출신 선배님이 보스턴에 가면 자신이 섬기던 성경공부인 Gate Bible Study 라는데를 한번 가보고 섬겨봐라, KOSTA에도 가면 좋겠다 는 말씀을 하셨다.

솔직히 나는 KOSTA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어쩌어찌하다가 Gate Bible Study도 그 당시에 바로 join하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보낸 첫 일년, 많은 감사한일들이 많았지만, 영적으로는 참 고갈되는 느낌이 있었다.
뭔가 자꾸 내가 진이 빠지는 것과 같은 교회 청년부 섬김, 나의 얄팍한 신앙의 깊이 등등의 이슈가 내게 있었다. 그리고 참 영적으로 외로웠다. 동역자를 잘 찾지 못한채 많이 지쳤다.

그러던중 96년 여름에 처음 참석한 KOSTA 집회는 내게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96년 집회에 참석하기 전, 당시 내가 많은 신앙의 도움을 주던, 내 믿음의 형이자 동역자인 팽동국 형과 함께 미리 집회를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주제를 미리 묵상하면서 관련된 이야기들도 나누고 그랬다.

일주일간의 집회 내내 거의 한순간도 그치지 않고 울었다.
나의 부족함이 답답해서 울고, 외로움이 서러워서 울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울고, 여전히 나와 이 시대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격해서 울고, 이렇게 많은 동역자들이 있구나 하는 사실에 흥분해서 울었다. 아예 전체집회 장소에는 큰 세수수건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것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이것이 내가 KOSTA를 처음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3.
96년 집회 이후,
내 안에는 정말 ‘불덩어리’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 한시간씩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회복하시도록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도하였고… 정말 지치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시작하고 말씀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도 참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도무지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이 변화되었고, 모임에 생명력이 급속히 생겨났다.
불과 15명 남짓 되는 모임이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70명 수준의 모임으로 커졌고, 사람들이 모임에 참여하는 표정이 달라졌다.

아침에 학생들이 새벽기도를 하러 모이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나는 새벽기도 밴 운전을 했고, 그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 중에는…
팽동국 교수,
박성호 목사,
이용규 선교사
등등이 있었다.

모임을 섬기면서, 나의 부족함에 답답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간장종지같이 부족한 내 믿음에…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쏟아지는 은혜에 감당할 수 없어 정말 많이 울었다.

97년에는 몇몇사람들이 바람을 잡아…
내가 섬기던 교회에서만 60명 정도의 사람이 함께 시카고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 후, 섬기던 청년부는 더 생기를 얻었다.

4.
함께 같은 교회에 다니던 분중,
지금은 인하대 교수로 가신 송순욱 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이분은 DC의 지구촌교회 출신이었고, 당시 워싱턴 지구촌교회는, KOSTA 운동을 주관해서 섬기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던 교회였다.

이분과 연결이 되어서 “Boston 팀”에서 KOSTA VOICE를 맡아서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KOSTA newsletter인 KOSTA VOICE를 만드는 일에 1997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집회 중에 발간되는 KOSTA VOICE와, 집회 전후로 발간되던 KOSTA VOICE update 라는 두종류의 newsltter가 있었다.

99년이었던가… 98년 이었던가에는…
그 KOSTA VOICE update 라는 것을 web에서 띄워서 web에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자고 정하고.. html로 딱 한페이지를 만들어서 web에 띄웠었다. 이것이 지금 eKOSTA (http://www.ekosta.org) 의 시작이다.

98년에는 KOSTA에서 처음으로 ‘지역 리더쉽 훈련 program’이라는 것을 시도한다고 했다.
Boston이 첫 대상이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그 일에 연관이 되었다. (이것이 제 1회 gpKOSTA 이다.)
내가 집에서 가지고 있던 ink-jet printer로, 그당시 전 참석자의 교재를 print하고… 하나씩 바인더로 만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Boston에서 황지성, 강동인, 지금은 한국에 가신 이동헌… 이런 분들과도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98년에는 그 당시 총무간사로 섬기던 황지성 간사님이 내게 전체집회에서 ‘코스탄의 현장’ 간증을 해 줄것을 요청했었다. 나는 깊이 고민하였는데… 지도교수가 허락을 하지 않아서 결국 그해에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때 딱 한번 빠졌다. ^^)
너무 죄송해서… 그때 황간사님에게 직접 이야기했는지… 내가 속으로 생각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이 한몸 부서지도록 열심히 대신 노가다라도 할께요…” 그랬다… (뭐 사실 그 ‘결심’은 현실화 되었고… ㅋㅋ)

나의 KOSTA 섬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
KOSTA를 섬기면서 나는 정말 말할 수 없는 blessing을 경험했다.

우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에 편승해서… 거의 최전선에서 그것을 목격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섬기고 있는 사람들, 특히 훌륭한 선배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통찰과 인격, 신앙과 꿈들을 매울 수 있었다.

함께 잠을 자지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때로는 콩크리트 바닥에서 쪽잠을 자면서 그렇게 섬기는 내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전우들, 동료와 후배 간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한 blessing을 또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KOSTA를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되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renew하고, 생명의 빛을 얻고, 삶의 방향을 정비하는 일들이 있었다. (사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내가 평생 KOSTA에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나는 KOSTA에 큰 빚을 졌다. 내가 몇년씩, 몇십년씩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이 KOSTA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이제 내일이면 또 KOSTA 집회를 섬기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지난 10년여간 KOSTA를 섬기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신 그 은혜를… 내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KOSTA를 섬기고 집회를 섬기지만… 매년 내게 그 빚은 늘어만 간다.

이제는, 내가 그 빚을 갚을 생각 자체를 포기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예쁘게 보아주셔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것을 뻔뻔스럽게 누리기로 했다.

또 직장을 옮길까? (6) – 마지막

여기에 직장 옮기는 것에 대해 쓰니까,
옮기는 쪽으로 마음이 정해진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그런데 마음이 정해진건 없다. 아직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여러번 직장을 옮겼지만,
여태껏 내가 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긴 것은 딱 한번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니던 회사가 망하거나 해고를 당해서 옮겨야 했었다.
그리고 Apple에서 나올때는 정말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어서 부랴부랴 나왔기 때문에 옮기면서 그냥 thank you! 하고 옮겼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좀 제대로 해야할 고민들을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다.

대충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켜보기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1. 돈이 움직이는 제일 큰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2. 그렇지만 어느쪽도 큰 가치의 선호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만일 옮긴다면 새 직장으로 옮기면서 소득수준이 떨어지는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3. 이 과정에서 어느쪽에도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을 하지는 않는다.
4. 양쪽을 오가며 내 몸값을 올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 몇주동안 인터뷰 잡고 어쩌고 하게될 것 같다.
지금 하는 일 계속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서 원칙을 잘 지켜나고 싶다.

또 직장을 옮길까? (5)

Amazon의 C 하고는 지난주에 점심을 같이 먹었다.
C의 걱정은… 너 지금 하는일 재미있어 보이는데, 우리 그룹에 와서 너 재미없으면 어떻게하냐? 는 것이었다.
나는 너랑 일하는게 좋으니까, 아마 거기 가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C는, Amazon에서는 hiring manager의 decision making power가 크지 않다면서 만일 네가 interview를 하더라도 다른 누가 딴지를 걸면 아마 안될거라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interview를 해서 거기서 offer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offer를 받았을때 내가 지금 다니는 이 편하고 좋은 직장을 때려치고 거기 가게될까 하는 것에 확신이 없기도 하다.

아마 이렇게 interview를 진행시키다가 어떤 순간에는 내가 그냥 안하겠다고 이야기하게될지도 모른다.
물론 interview를 해서 안될수도 있겠고.

현재 그냥 기도하면서 드는 내 주관적인 생각.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 방식은 그냥 딱 하나 길이 있을때 그걸 열어주신 방식이었다.
아마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하신게 아닌가 싶은데…

혹시 여기 interview 해서 offer가 어느정도만 reasonable하게 되면,
그냥 그게 열어주시는길인가부다 하고 저쪽으로 옮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한다.

또 직장을 옮길까? (4)

박사를 마치고 postdoc을 같은 그룹에서 했다.
그런데 말이 postdoc이지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받는 돈도 정말 얼마 안되었고.
그러나가 어느 순간에는 그것도 끊겼다.
처음에는 아내가 있는 Boston지역에서 job을 구하기 위해서 resume를 한 50개는 근처에 뿌렸다.
다 안되었다. -.-;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지혜롭지 못하게 job search를 했다. 조금만 trick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거기서 job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HP labs에 있던 친구가 내게 그 그룹에 자리가 있다고 관심 있느냐고 물어서 인터뷰를 보았고, 정말 후다닥 job을 잡고 3-4주 후에 나는 HP에 출근을 했다! 완전 속전속결이었다. 여러군데 중에 딱 하나 된 것이다.

두번째 직장은 첫번째 직장이 망할즈음, Apple의 recruiter가 연락을 해왔다. 관심있느냐고.
사실 다니던 직장이 거의 망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다들 뭔가 잘 닿지를 않았다.
그런데 Apple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하고 후다닥 offer를 받았다.
여기도 딱 한군데 인터뷰봐서 딱 한군데 된 것이다.

세번째 직장은 내가 일본에 출장 가 있을때 Lenovo의 recruiter가 또 연락을 해왔다. 관심있느냐고.
나는 Apple에 다니는게 정말 싫었기 때문에 무조건 관심있다고 했다.
그 역시 후다닥 인터뷰하고 후다닥 offer를 받았다.
딱 한군데 인터뷰봐서 딱 한군데 된 것이다.

네번째 직장은 Lenovo에서 layoff되고 여러군데 resume를 넣고 인터뷰도 봤다. on-site interview는 세군데 했는데 그중 Verily (그때는 Google이었다)만 offer를 받았다.
여기도 내가 apply를 했다기 보다는 Google의 recruiter가 마침 그때 연락을 해와서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딱 한군데 연락왔고, 거기 인터뷰해서 딱 한군데 offer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일 잘 하고 있는데,
Amazon의 recruiter가 연락을 해왔다. 관심 있느냐고.

나는 많은 곳에서 나 오라고 불러서 튕겨가며 회사를 옮긴적도 없고,
여러개 offer를 받아서 negotiation을 해서 내 몸값을 불려볼 기회도 한번도 없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길을 열어보려고 한건 쭉 안되었고, 길이 열리면 그냥 그쪽으로 가는 선택만 했었다.

나도 한번쯤은 좀 튕겨도 보고, hard negotiation도 해보면 좋겠는데…^^

또 직장을 옮길까 (3)

신명기 6:10-25 QT 나눔
(우리 교회사람들과 나눈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거기에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당신들이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당신들이 파지 않았지만 이미 파놓은 우물이 있고, 당신들이 심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가끔은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직장 잡고 이렇게 돈 벌고 있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sense of entitlement가 나를 지배합니다.
내가 그래도 이정도는 벌어야지. 내가 그래도 이정도 집에는 살아야지. 그래도 이정도 휴가는 보낼 수 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부할 수 있는 재능,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 어쩌다 한국이라는 ‘선진국’에 태어난 것…
이런 것들 모두가 제가 노력해서 얻은게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도 했고, 일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제가 노력해서 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나는 어느 학교 졸업했고, 이만큼 커리어 쌓았으니 이정도는 받아야지… 이정도 차는 타야지… 식의 생각이 사로잡습니다.

내가 파지 않은 우물을 당연하게 여기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들은, 당신들 가까이에 있는 백성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에,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따라가지 말라는 겁니다.
약속의 땅이 주는 안정감과 풍요, 그에 따른 sense of entitlement,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탐욕이나 야망까지도…
그런 거짓 신들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라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독점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데… 나는 자꾸만 하나님 말고 다른 무엇을 더 추구하곤 합니다.

약속의 땅이 주는 security는 거짓 신인데요…

최근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상사가 근처의 다른 회사로 옮겨서 저보고 자기 팀에 join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오고 있습니다.
과연 거기 가는게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가면 돈은 더 받을까. 등등을 막 생각하다가…
가나안의 언어로만 제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오승아, 날좀 봐라. 나와 exclusive한 관계를 맺고 살자’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파지 않은 우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과의 독점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제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만족을 가져다주는데요…

얼마나 제가 미련한지요…

또 직장을 옮길까? (2)

나는 월급 조금 더 많이 주는 거 가지고 쪼로록 직장 옮기는걸 그렇게 찬성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치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내 첫 직장 HP 에서 나는 꽤 ‘행복’했다.
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그 직장에서의 여러 성과들 때문에 나는 학회 invited talk도 다니고, 그룹에서 주는 상도 공동으로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직장은 망했다. -.-; 그래서 직장을 옮겨야 했다.

두번째 직장 Apple은 무지하게 잘 나가는 회사였다. (지금도 그 회사는 무지하게 잘 나간다.)
거기서 꽤 중요한 일들을 많이 했고, 첫 직장에 비하면 돈도 훨씬 더 받았지만…
나는 정말 너무너무 그 직장이 싫었다.
내가 보기엔 합법적이지만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함게 일하는 사람들과도 잘 맞지 않았다.

세번째 직장 Lenovo는 살짝 급이 좀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일은 참 재미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누군가로부터 배우기 보다는 주로 누군가를 챙겨야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는 lay-off를 당했다. -.-;

지금 직장이 네번째 인데,
여기는 해오던 일들과는 아주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평생 생각도해보지 않았던 medical device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job을 찾았기 때문에 negotiation을 하기에 좋은 position은 아니었다.
결국 원래 내가 와야하는 것보다는 한단계 낮은 직책으로 왔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기도 명목상으로는 start-up이니까, 내가 하는일 자체는 아주 재미 있고… 실제로 내 level에 비해서는 꽤 큰 일들을 기획하고 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무지 똑똑하고, 잘났고, 대부분 아주 nice하고 reasonable 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옮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