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6)

그런데,
나는 사실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 배우는 것이 많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갈등하면서,
때로는 화도 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하는…
이런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나는 나와 세상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면서 많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그 생각을 더 정리하고, 발전시키기도 한다.
그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여러가지 책들을 읽으며 생각을 더 깊게 만들어 나기기도 한다.

그런데,
은퇴를 하면 그런 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아마 내 사색의 깊이도 얕아지고,
내 생각의 폭도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독서를 통해서 내 좁은 삶의 경험들이 일부 상쇄될 수 있을까?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
아마도 은퇴를 하면,
점점 내 생각의 무뎌지고, 그래서 몇년 후에는 성경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친다거나,
강의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도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아마 은퇴 이후 최대 5~10년 정도 어느 정도의 sharpness가 유지되려나….

어쩌면 그 이후에는 조금 더 새로운 발견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더 깊게 들어가야 할 것 같긴 한데,

내가 그렇게 더 깊게 들어갈만한 충분한 자료와 자원들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사는 생각을 해보면… probably not.

어느정도까지 가능할지, 어느정도까지 내게 허락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힘을 내서 직장을 다니며 경험과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은퇴 (4)

아내와 이야기하긴 했는데, 아예 온라인 성경공부를 한주에 3~4일씩 할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몇년동안은) 작년 봄까지만 하더라도 한주에 3일 저녁 온라인 성경공부 class를 했었는데, 그것도 조금 더 신경써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블로그에 하루 글쓰는데 들이는 시간이 보통 한 5~10분정도쯤 된다.
그러니 내 거친 생각들을 적는데에는 적절하지만, 조금 더 싶은 생각을 잘 정리해서 다듬어진 글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조금더 시간을 들여서 블로그의 질도 높이고, 조금 더 정리된 글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또, 나는 전문적인 설교자가 아니지만, 아주 가끔… 내 설교 듣는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한주에 한편씩 나름 혼자서 연구한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해서 archive하는 작업도 해볼만 한 것 같다. 이건 뭐 막 넓게 공개할만한 것은 아니고, 주로는 내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그런 format으로 정리해서 놓는 용도고. 또한 어쩌면 나중에라도… 민우가 아빠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료로 남겨우기 위해서.

나는 책을 내거나 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건 그게 가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책을 쓸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줍잖은 내 생각을 그런식으로 남겨두지는 않을 것 같다.

은퇴 (3)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은퇴를 하면 개를 키우고 싶다. ^^
아주 어린 강아지는 좀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
나이가 좀 있는 개를 쉘터에서 입양해서 한 7~8년 정도 키우다가 떠나보낼 정도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도 나이가 들면 지나치게 활동적인 개를 매일 돌보는게 부담스러울수도 있으니.

그런데 개를 키우는게 돈이 좀 들어서… 그런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개를 키우기 위해서 악착같이 몇년 더 일해서 돈을 더 모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외엔, 별로 돈을 많이 쓸 계획이 없다.
아마 책을 사는데 돈이 좀 들 것 같긴 하고…

아내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많이 여행을 할 것 같지도 않다.
일년에 한번 정도 좀 맘먹고 2~3주 정도 할 수 있을까.

비싼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마 은퇴하면 나는 내가 음식을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요리라고 할건 아니고, 그냥 끼니 때울 수 있는 건강한 음식들.

사실 지난번 layoff 기간동안에, 나는 그렇게 먹으면서 살도 뺐다.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

은퇴 (2)

지난 가을 layoff이후에 말하자면 나는 강제로 은퇴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
나름 괜찮았다.

아주 규칙적으로 살았고,
많이 사색했고,
책 읽을 수 있었고,
시간나면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밥도 하고,
나름 혼자서 성경 본문 연구도 좀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나면 그때 그때 완전히 엉뚱한 공부들을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differential equation을 혼자서 풀어보다가 완전 좌절하기도 했고,
유대교쪽에서 하는 학문적인 강의 등을 듣기도 했고,
상대성 이론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그건 듣다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
나는 python을 잘 몰라서 그걸 좀 배워 보려고 시도도 했고…

나 같이 관심이 난잡한데다 배우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 인터넷에 유명한 대학교의 많은 강의들이 그냥 다 한학기 분량이 다 올라와 있어서…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그런게 배우는 것도 재미있으니 아마 나는 은퇴를 하면 그런데 시간을 많이 쓰게 되지 않을까싶다.

은퇴 (1)

지난번 layoff를 당했을때,
나는 내가 다시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내 전문 분야로부터 나는 이미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고,
내가 해오던 일에 어떤 전문성을 내가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 같은 Hardware쪽을 하는 사람들은 기회가 적어도 이 동네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고.

그러다가 당연히 이대로 직장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말하자면 강제로 은퇴를 당하는 것 같은 시나리오라고 할까.
우리가 저축해 놓은것을 따져보고, 내가 뭐 uber 운전이나 doordash 같은 거라도 하면서 조금 더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조금 더 살아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고.

그래서 지난 가을 내린 결론은,
무지하게 아껴서 살면, 그리고 짬짬이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
지금 ‘은퇴’가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직장을 잡았고, (감사하게도!)
어쨌든 당분간은 이 직장에서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감사하게도!)

그렇지만 지난 가을부터, 나도 조금 더 심각하게 내 은퇴에 대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쯤 까지 일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은퇴 할 수 있을까. 은퇴 한다면 이 지역에서 살 수 있을까… 등등.

뒤져보니 인터넷에서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은퇴 계획 소프트웨어들이 꽤 있다.
이렇게 저렇게 숫자를 넣어보면서 은퇴 생각을 더 해보고 있다.

Christmas Tunes (4)

이곡은 이번 성탄 전까지는 별로 많이 듣고 불렀던 곡은 아니었다.
물론 교회에서 부른적도 있었고, 당연히 많이 듣기도 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매일 듣고 있는 Become New podcast에서 최근 John Ortberg가 자기가 매일 짧게 노래를 하고, 피아노 연주도 하면서 몇개의 성탄 관련 노래들에 대한 해설을 했다.
그런데 이날의 비디오는 뭐랄까… 뭔가 확실하게 한방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냥 이 노래 가사를 쭉~ 읽어가며 설명해주었는데 뭔가 확~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날 운동을 하면서 이걸 들었는데, 그래서 그날의 비디오는 한번 더 들었다. 뭐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나 싶어서.

그런데 두번째 듣고서도 별로…
그런데 딱 한구절만 빼고.
(이건 John 목사님의 개인적인 어떤 부분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 내용은 아니므로… 내가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그 구절에서는 이 분이 개인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살짝 스치듯 나타나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 John 목사님 같은 분에게도 이 노래에 있는 것 같이 구주가 나셨다는 이런 소식이 참 좋은 소식인거구나.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더 예수님을 닯아 사는 것에 앞서 가 계신 것 같은 분인데도 이분에게도 그렇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중요하구나…

그리고는 이 노래 가사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정말… 내가 어쩌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소망이 여기에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Merry Christmas!

John Ortberg의 노래 해설(?)
영어 찬송
한국어 찬송

1 Hark! the herald angels sing,
“Glory to the newborn King:
peace on earth, and mercy mild,
God and sinners reconciled!”
Joyful, all ye nations, rise,
join the triumph of the skies;
with th’angelic hosts proclaim,
“Christ is born in Bethlehem!”

Refrain:
Hark! the herald angels sing,
“Glory to the newborn King”

2 Christ, by highest heaven adored,
Christ, the everlasting Lord,
late in time behold him come,
offspring of the Virgin’s womb:
veiled in flesh the Godhead see;
hail th’incarnate Deity,
pleased with us in flesh to dwell,
Jesus, our Immanuel. [Refrain]

3 Hail the heaven-born Prince of Peace!
Hail the Sun of Righteousness!
Light and life to all he brings,
risen with healing in his wings.
Mild he lays his glory by,
born that we no more may die,
born to raise us from the earth,
born to give us second birth. [Refrain]

(1)천사 찬송하기를 거룩하신 구주께 영광 돌려
보내세 구주 오늘 나셨네 크고 작은 나라들
기뻐 화답 하여라 영광 받을 왕의 왕 베들레헴
나신 주 영광 받을 왕의 왕 베들레헴 나신 주

(2)오늘 나신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와 처녀 몸에
나셔서 사람 몸을 입었네 세상 모든 사람들
영원하신 주님께 영광 돌려 보내며 높이 찬양
하여라 영광 돌려 보내며 높이 찬양 하여라

(3)의로우신 예수는 평화의 왕 이시고 세상 빛이
되시며 우리 생명 되시네 죄인들을 불러서
거듭나게 하시고 영생하게 하시니 왕께 찬양
하여라 영생하게 하시니 왕께 찬양 하여라 아멘

Christmas Tunes (3)

이 곡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Marry Did you Know

내가 알기로 이 곡은 약간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마리아를 높여서 생각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불편하게 느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는 Pentatonix라는 그룹이 부른 2014년 버전을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자그마치 Kenny Rogers가 Wynonna Judd와 함께 1996년에 불러서 발표한 노래였다.

하지만 내게는 이 가사가 참 여러가지로 마음에 닿았다.
어쩌면 이제 막 태어난 어린아이를 아마도 teeanager였을 마리아가 안고 있었을 장면을 상상하면서,
온 세상의 창조주가 한 여인의 손에 들려있게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한국어로도 번역을 해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이 노래를 많이 부르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게 기독교 음악으로 처음 나왔다고 보기는 좀 어렵고, 불렀던 사람들도 소위 CCM 가수들이 아니니 살짝 포지션이 좀 애매하긴 했다.

그럼에도 가사를 잘 곱씹어볼만 하다.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walk on water?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save our sons and daughter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come to make you new?
This Child that you delivered
Will soon deliver you.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give sight to the blind ma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calm a storm with His hand?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Has walked where angels trod?
And when you kiss your little baby
You’ve kissed the face of God?
Mary, did you know?
Oo, Mary, did you know?
The blind will see
The deaf will hear;
The dead will live again!
The lame will leap
The dumb will speak
The praises of the Lamb!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Is the Lord of all creation?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ill one day rule the nations?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as heaven’s perfect Lamb?
And the sleeping Child you’re holdin’
Is the Great I Am!

Christmas Tunes (2)

작년 쯤 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난히 많이 듣고 교회에서 부르기도 했던 노래가 있다.
O Come All Ye Faithful (한국어로는 참 반가운 성도여)

O Come All Ye Faithful – 영어 버전
참 반가운 성도여 – 한국어 버전
O Come All Ye Faithful – 교회에서 최근에 불렀던 버전

성탄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는 이야기는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그나마 요즘은 그런 소리를 별로 못듣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심지어 설교등에서 많이 이야기하기도 했고, 글로 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성탄이 되면 한편 마음이 들뜨거나, 한편 괜히 싱숭생숭해져서 내 감정에 휩쓸려 성탄을 보내기 되기 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면서는, 성탄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경배를 받으셔야할 분인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천사의 외침이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이 찬송을 부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오신 것을 생각하며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하는건데….

1. 참 반가운 성도여 다 이리와서 베들레헴 성 안에 가봅시다
저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보고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

2. 저 천사여 찬송을 높이 불러서 이 광활한 천지에 울리어라
주 하나님 앞에 늘 영광을 돌려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

3. 이 세상에 주께서 탄생할 때에 참 신과 참 사람이 되시려고
저 동정녀 몸에서 나시었으니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

4. 여호와의 말씀이 육신을 입어 날 구원할 구주가 되셨도다
늘 감사한 찬송을 주 앞에 드려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

1 O come, all ye faithful, joyful and triumphant,
O come ye, O come ye to Bethlehem!
Come, and behold Him, born the King of angels!

Refrain:
O come, let us adore Him;
O come, let us adore Him;
O come, let us adore Him, Christ, the Lord!

2 God of God, Light of Light,
lo, He abhors not the virgin’s womb;
very God, begotten not created; [Refrain]

3 Sing, choirs of angels; sing in exultation;
sing, all ye citizens of heav’n above!
Glory to God, all glory in the highest![Refrain]

4 Yea, Lord, we greet Thee, born this happy morning;
Jesus, to Thee be all glory giv’n!
Word of the Father, now in flesh appearing! [Refrain]

Christmas Tunes (1)

내가 몇년동안 제일 좋아했던 성탄 음악은 O Come O Come Emmanuel 이었다. (한국어로는 곧 오소서 임마누엘)

O Come O Come Emmanuel – 영어 찬송가
곧 오소서 임마누엘 – 내가 좋아하는 한국어 버전
O Come O Come Emmanuel – The Piano Guys라는 사람들이 연주한 연주곡

이 곡이 좋았던 이유는 성탄을 맞이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잘 녹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성탄은 그 분위기가 밝고 들뜬 것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성탄은 안타깝고 힘든 세상 속에서 소망을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오신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해 졌다.

그러다보니 이런 tone과 가사의 성탄 음악이 내 마음에 훨씬 잘 담기는 것이었다.
성탄은 충분히 우울할 수 있다. 성탄에 충분히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아직 세상이 망가져 있기 때문에.

1.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2. 곧 오소서 지혜의 주 온 만물 질서 주시고
참 진리의 길 보이사 갈길을 인도하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3. 곧 오소서 소망의 주 만백성 한 맘 이루어
시기와 분쟁 없애고 참 평화 채워주소서
기뻐하라 이 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원래 영어의 버전은 훨씬 길다. 자그마치 7절까지 있는데,
영어로도 7절까지 교회에서 다 불러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참 가사가 좋다.

1 O come, O come, Immanuel,
and ransom captive Israel
that mourns in lonely exile here
until the Son of God appear.

Refrain:
Rejoice! Rejoice! Immanuel
shall come to you, O Israel.

2 O come, O Wisdom from on high,
who ordered all things mightily;
to us the path of knowledge show
and teach us in its ways to go. Refrain

3 O come, O come, great Lord of might,
who to your tribes on Sinai’s height
in ancient times did give the law
in cloud and majesty and awe. Refrain

4 O come, O Branch of Jesse’s stem,
unto your own and rescue them!
From depths of hell your people save,
and give them victory o’er the grave. Refrain

5 O come, O Key of David, come
and open wide our heavenly home.
Make safe for us the heavenward road
and bar the way to death’s abode. Refrain

6 O come, O Bright and Morning Star,
and bring us comfort from afar!
Dispel the shadows of the night
and turn our darkness into light. Refrain

7 O come, O King of nations, bind
in one the hearts of all mankind.
Bid all our sad divisions cease
and be yourself our King of Peace. Refrain

Status Update (18)

이번에 나름 내 경험을 이렇게 쓴것은,
내 경험을 뭔가 거창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뭐 사실 얼마나 대단하게 포장할 것이 있겠나!)

오히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내가 조금 더 성숙했는지
그러나 얼마나 더디게 성숙하고 있는지 쓰려고 했다.

나름 예수님을 믿고 꽤 열심히 믿는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내가 하는 일들을 모두 성실하게 하려고 애썼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기 위해 그래도 공을 들였다.

그러나,
세상에… 긴 시간을 이렇게 왔는데도 아직 나는 이만큼 밖에 오지 못했구나.

그리고,
그럼에도 내가 조금씩 조금씩 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내 공로가 아니라 은혜구나.

대충 따져보면 이렇게 저렇게 내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이 한 100여명쯤 되지 않나 나름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그렇게 내가 쓰고 있는 이 ‘공개 일기’에 관심을 갖고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보고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쓰게 되었다.

아직… 나는 갈길이 멀다.
(이상 보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