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쓰실때만 주셔

1.
이번에 볼티모어에서는,
참 오랜만에 P 형을 만났다.
그 형의 roomate(ㅎㅎ)인, K 누나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는게 참 반가웠다.

말씀을 읽다가, 
한 구절에서 다가오는 깊이와 무게가 너무 커서… 그저 몇 시간씩 다음 구절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무게에 압도당하는 경험,
기도를 하다가,
그 기도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대단해서,
그저 그 앞에 엎드려 한마디도 꺼낼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은 경험.

그 형과 나는 그런 경험을 꽤 많이 공유하고 있다.

P 형에게 물었다.
요즘도 그런 경험이 자주 있느냐고.

그 형이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필요 있을때만 주셔…

그 형의 말로는,

성경공부를 준비하는데 그 말씀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경우와 같이…
그 깊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이, 그 말씀을 다른이들에게 나누는데 도움이 될때만 주신다는 것이었다.

정말…. 나도 요즘 그런데…

4.
역시 볼티모어에서,
우리 동네에서 간 동생 한명이,
내가 예전에 썼던 글 하나를 감명깊게 읽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사실 그 글의 내용이 무었이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글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음….
뭐 글 솜씨가 좋은 글은 분명히 아니었지만,
그 글의 내용이 살아 있었다.

그 글을 쓸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무언가를 주셨던게 분명하다.

5.
그 후,
가만히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몇개 읽어 보았다.
물론 아주 아주 많이 허접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ㅎㅎ
가끔은, 지금 내가 읽어도, 내가 썼다고 믿어지기 어려운 내용이 담긴 글이 있었다.

그 글을 썼을때,
하나님께서는 꽤 간절하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셨던 것이었구나…

6.
한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뛸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내게 여러가지 힘을 주시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살았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께서는 왜 나만을 위해서는 그 깊은 감동을 잘 주시지 않는 거지?
권오승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냥 도구로만 사용하시는 건가?

그냥,
나만을 위한 깊은 말씀 한구절,
아주 shallow 하게 이야기하는 마와다식의 구절이 아니라…
정말 그 한 구절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담기는 그런 한 구절…
그런것을 나만을 위해서는 왜 잘 주시지 않는 거지?

예전에는 그런 경험들이 훨씬 자주 있었는데,
왜 요즘은 그런 경험이 많이 뜸한걸까?

그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열 사람이 열 걸음을, 백 사람이 한 걸음을

지난번에 한국에 출장을 갔을때,
오랫동안 K 운동을 함께 섬겼던 친구이자 동료인 C를 만났다.
미국에 있을때, 우리는 죽도 잘 맞았고, 서로 구박도 많이 했었는데… ㅎㅎ

그런데,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기가 K 간사를 처음 하던 시절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우리는,
열 사람이 열 걸음 앞으로 전진하는 것보다는,
백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더 추구한다.

백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것은,
혼자서 열 걸음, 백 걸음 앞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열 사람이 열 걸음 가는 것은, 백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것보다 쉽다.
한 사람이 백 걸음 앞으로 가는 것은 그것 보다 더 쉽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걸 듣고 보니,
내가 K 운동을 하면서는 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선명한 아젠다를 많이 진행시키는 것보다는,
그것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사람이 그 방향으로 트는 것을 많이 기뻐했던 것 같다.

열 사람이 열 걸음을 가는 것은,
그냥 좀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데…
백 사람이 한 걸음을 가는 것은,
정말 뭔가 특별한 모멘텀이 생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 모멘텀은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일수도 있겠다.

늘,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 한 것에 대한 꿈을 꾸었고,
그러나 그것을 위해 몸을 던져 섬겼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고,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을 보며 벅찬 감격에 휩싸였었다.

늘 잘 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안될 영역을 열어놓으려고 노력했고,
정말 너무나도 자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넘치게 채워주셨다.

지난번 간사 수양회에서,
문득 생각이 나서,
후배 몇 사람과 이 이야기를 다시 나누었다.

후배들이 새롭게 열어나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길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란다.

건강한 신학이 신앙을 설명할 수 없을 때

나는 매우 자주,
‘건강한 신학’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할 때, 답답함 혹은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입장에 대부분 동의하기도 하고,
그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도 공감하는데…
그분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어떤 신앙의 개념들을 나누는 단계에 가면,
더 이상 대화가 쉽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그러면,
그런 분들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저 신학적 공감에 대한 것 뿐이다.

그런데,
어떤 분과는, 심지어는 구체적인 신학적 입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깊이 있는 신앙의 대화가 가능하다.
그분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은혜, 죄, 하나님 나라, 사랑, 세상 등등에 대하여 정말 가슴과 가슴을 오가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신학이 신앙을 설명해 내는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너무 자주…
신앙인들과, 동역자들과, 신학적 대화만을 하곤 한다….

 

가끔은… 내 설교를 듣는다.

지난 주말,
DC에 가면서 동네 동생 한명과 함께 공항에 갔다.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하나는… “나는 내 설교를 반복해서 자주 듣는다”는 얘기였다.

음… 좀 뭐랄까… 말하기 좀 머시기 하긴 하지만,
사실 그렇다.

나는 뭐 어차피 전문 설교가가 아니므로,
어쩌다 설교나 아니면 기독교 강의 같은걸 하는 기회가 아주 많지는 않다.
일년에 그저 몇번 정도.
그리고 그중 일부는 녹음이 되어서 내가 설교를 다시 들어볼 수 있는데…

나는 내 설교/강의를 적어도 3-4번 이상 반복해서 다시 듣는다.

우선은, 내가 뭘 잘했고 뭐 못했고 하는 것을 모니터 하면서, 잘못된 것을 improve하기 위한 의도가 크지만,
때로는… 그저 그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

100% 언제나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개 설교를 준비할때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영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흔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내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끔은..
도무지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설교나 강의에 ‘마음’이 담길 때가 있다.

그러면 대개 그 설교를 준비하면서 많이 울게 된다.
때로는 감격해서, 때로는 비장함에, 때로는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가끔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깨닫게 해 주셨던 그것을 다시 듣고 싶어서,
민망하지만 내 설교를 다시 듣는다.

내 설교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내 마음에 가득한 그 무엇을 받게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ㅎㅎ)

적어도 나는 그 설교를 다시 들으며, 다시 한번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게 Narcissism으로 흐르면 안되는데… 싶어 뜨끔 하다가도,
하나님께서 늘 내게 말씀과 깨달음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므로…
그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 것을 다시 곱씹어 보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마이너리티가 될 듯…

지난 주말,
볼티모어에서 열린 K 간사 모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참 반가웠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K 간사들 전반의 생각과는 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구나”

아마도,
나는 K에서 마이너리티가 될 듯 하다.

참 오랫동안 내 마음과 정성과 눈물과 땀을 쏟았던 K 운동에서…
이제는 정말 이제와는 다른 role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 마음이 살짝 무거웠지만,
한편 어깨가 가벼워졌다. ^^

또 한번 출장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또 한번 출장을 가게 될 것 같다.

원래는 일본을 거쳐, 한국, 홍콩, 심지어는 태국까지 들렸다 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깐 휩싸였었으나… 

다행히도 아시아쪽 2개국, 5-6개 도시를 두주 남짓한 기간동안 찍고 오는 일정이 될 것 같다.

이번 주말에 DC쪽에 며칠 다녀와야 하고,

화요일에 돌아와서 며칠 있다가 비행기를 타야한다.

내 매니저는 토요일날 함께 떠나자고 조르고 있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최소한 주말은 보내고 가야 한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다. 

뭐 아마도 잘 하면 주일 아침에 출발하는 것으로 합의보게 될 것 같은데…

그중 두번은,

일본에서 밤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하는 상황인데…

한번도 가보지 못한 일본의 도시들를, 자정이 넘어서까지 움직여가며 다녀야 한다.

나는 일본말도 못하는데… -.-; (Thanks God for Google Translator!)

그나마 나는 좀 낫다.

내 매니저는, 두주동안 5개국을 다녀야 할 것 같다. 그중 나와는 두개의 도시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불쌍한… -.-;

작년에는 7만5천마일 정도 다니는 수준에서 선방을 했는데…

아무래도 금년에는 10만마일이 넘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그래서 새해에 출장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몇가지 결심을 했다.

1. 출장이 한 회사에 3일 이상 될 경우, 적어도 하루는 7시 이전에 퇴근해서 주변을 좀 둘러보겠다.

2. 최소한 두번 이상 같은 도시에 가는 경우, 그 도시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관광명소 한군데는 가보겠다.

3.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은 정말 아주 다급한 경우가 아니면 일하지 않겠다.

4. 호텔방에 돌아와서는 일하는 시간을 2시간 이하로 제한하겠다.  혹시 시간이 남으면 호텔 앞쪽에 나가서 동네 산책을 한다거나 구경을 차라리 하겠다.(as far as it’s safe. ^^)

이것도 역시,

좀 일을 덜 열심히 하겠다는 내 결심의 일환이다.

내 경험상, 어떤 새로운 변화가 내 삶 속에서 제대로 일어나려면, 

최소한 3-4번의 new year’s resolution이 필요한 것 같다. ㅎㅎ

다시 말하면, 3-4년동안 계속 같은 new year’s resolution으로 밀어 붙여야 겨우 실제 내 삶 속에서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출장과 관련한 새해 결심 역시,

새해에 바로 지키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ㅎㅎ

좀 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위해 약간 enforce 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생태계? 쉽지 않을 것 같다…

복음주의 운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소위 ’87년형 복음주의’.

그건, 4인방 복음주의 목회자들, 학생 선교단체, 해외 선교단체, 기독교 사회운동, 게다가 기독교 기업까지… 

그렇게 여러 body가 함께 어울어져 만들어낸, 한국의 복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볼때,

그 시대는 정말 대단했다.

회심자는 늘어났고, 교회는 성장했고, 복음의 가치는 세상을 정복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복음주의의 산물로 생겨난 여러 사람들이 각종 사회운동, 통일운동 등등에 헌신하는 것도 보았고,

복음의 가치로 견고해 보이던 세상의 악한 고리를 끊어내는 성과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생태계가 시효를 다했고,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나는 그 진단에는 깊이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런데,

그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

87년형 복음주의 생태계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생태계가 처한 상황은 대단히 다르다.

80년대에는,

소위 ‘복음적 가치’라고 여겨졌던 정의, 정직, 윤리 등등의 가치가 세상에서 환영을 받았다.

뭐랄까…. 세상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정직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어. 나도 그 일부로 살 수 밖에 없고. 그러나 이건 아니야. 이건 잘못이야. 누가 이 고리를 좀 끊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때 등장한 한국판 신복음주의는,

사람들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신복음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세상에서 환영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복음이 맞닥드리고 있는 세상에서는…

복음이 이야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에,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심하게 어그러져 있는 것은…

결국은 물신주의, 성공주의, 쾌락주의 등등이다.

그리고 복음은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극복해내는 voice를 내어야 하고, 그것을 극복해 내는 대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물신주의, 성공주의 등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거나 그것에 대해 충분히 회의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복음이 세상을 향해,

돈이 주인 되는 세상,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라고 외쳤을때,

충분히 호응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물신주의, 성공주의등의 폐혜가 더 드러나고,

그 상처가 더 많이 깊어지면,

결국 세상도, 세상의 대중도 그것을 뒤늦게(?) 깨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단기적으로 그런 새로운 흐름이 생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또한,

80년대, 정의, 정직, 윤리 등의 개념은, 사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개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과연 기독교인들이, 소위 복음주의 진영에서, 물신주의, 성공주의, 자기 중심주의 등등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적'(enemy)로 identify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적으로 identify할 능력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조금더 suffering 하는 시대를 거쳐서…

세상도, 교회도, 더 성찰하고 꺠달은 후에 모멘텀이 생길 수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최소한, 지금은 아직 그런 흐름이 크게 형성되기엔 어려운 토양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새로운 생태계를 생각한다면,

macro eco-system이 아니라, micro eco-system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생각할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한편 생태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흐름을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어설픈 전문가 흉내

지난 주말에,

한 친구가, 애플과 삼성 중 어느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좋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뭐 나는 주식투자 이런거랑은 거리도 멀고… (ㅎㅎ)

해서 그냥 내가 알고 있는 대로 기술적인 관점에서 몇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 이건 좀 민망한 사실(?)인데, 내가 박사과정때 소위 ‘부전공’을 business school에 가서 했다. 그래서 finance, investment 이런쪽 과목 몇개랑, technical innovation 뭐 그런 쪽 과목 몇개를 sloan school에서 들어애 했었다.) 


1. 

iPhone 6가 잘 팔리긴 하지만, 그건 안드로이드를 쓰던 사람이 애플로 넘어와서 그런거라기 보다는 오래된 iPhone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한꺼번에 upgrade를 해서 그런 것 같아 보인다.

내가 그런 부류의 분석 article들을 몇개 읽은 것이 있었는데, 당장 찾아보니 다음 것 하나 찾을 수 있었다.

http://www.cnet.com/news/only-5-percent-of-android-users-will-switch-to-iphone-6-says-survey/

사실 iOS와 Android 사이에는 이미 꽤 견고한 진영이 형성된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웬만해선 서로 넘어가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미국에서 살다보면, 4-5년된 iPhone 4을 계속 쓰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한국처럼 2년후에는 무조건 바꿔야 하는 것 같이 인식되지 않는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2. 

그런의미에서, 삼성의 경쟁상대는 애플이라기보다는 레노보, 샤오미, 화웨이, LG 등등이다.

삼성이 최근 고전하는 것은 애플이 잘나가서가 아니라, 중국 회사들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3.

애플은 계속 premium brand로 남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대로라면 그렇다. ^^

애플에서는, 전체 소비자의 5%가 발견해 낼 수 있는 작은 흠결(?) 하나를 잡기 위해서, 엄청난 resource를 사용한다. 사용하는 부품이나 재료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말도 안되게 비싼걸 쓰기도 한다.

따라서 완성도도 높고, 내구성도 좋지만, 가격은 비싸다.

high margin을 유지하는 premium brand로 계속 갈거다.

그런 의미애서, 애플이 점유율 50%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작전을 편다던가 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하는 순간 premium brand라는 자리를 내어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iPhone 5c로 그런 일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사실 실패였지…)

4.

그렇다면… 핸드폰은 대충 그렇게 진영이 형성되어 있고, 

애플은 애플 대로,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이드 대로 가는데, 다만 안드로이드 내에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구조인 것이다.

삼성은 과연 레노보, 화웨이, 샤오미 등등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건 사실 아직은 잘 모른다. 좀 더 두고봐야…

5.

핸드폰은 그렇다 치고,

그럼 그런 회사들이 경쟁하는 다음의 battle field는 어디일까?

한때 tablet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별로 그런것 같지 않다. (enterprise tablet으로 가면 좀 치열해지려나… apple하고 ibm하고 손잡고 하는 것 같은…)

어떤 사람들은 wearable 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wearable이 제대로 작동하고 팔리려면, 결국 internet of things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겨우 시계랑 전화 두개만 연결하는 것으로는 big hit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령, 시계로 전화도 걸고, 필요하면 self-driving car도 parking lot에서 불러내고 (최근 BMW가 CES에 그런 거 하나 보인 것으로 아는데..), 집 security도 control 하고 (집에 열쇠 없이 들어가는거지..), 등등… 뭐 그런게 종합적으로 되면 훨씬 더 모양새가 잡히는 것 같다.

(그리고 당연한 거지만 wearable이 반드시 시계일 필요는 없다. ㅎㅎ)

google이 NEST도 사고….. 뭐 꽤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 internet of things의 처음 흐름은 iOS쪽에서 많이 나올 것 같다.

사실 Home Depot 같은데 가서 전화로 집을 잠그는 security system같은걸 보더라도, iOS는 지원되는데 Android는 지원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가령 KEVO 같은 
http://www.kwikset.com/Kevo/Default.aspx

그리고 apple에서 apple TV (그냥 스트리밍 디바이스가 아니고, 진짜 TV)를 내놓으면서 좀더 inter-connectivity를 높인다면 그런 trend를 더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사실 TV가 internet of things의 hub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apple에서 TV를 낸다 하더라도, 역시 high-end의 premium product일 것이다.

그래서 internet of things가 좀더 보편화 되면서는 Android가 iOS를 catch up 하는 형식이 될 것 같다.

6.

그런데 문제는 이 internet of things는, 

그냥 cell phone만 열심히 만들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종의 eco-system을 만드는데 contribute 하거나 lead해야 하는데…

나는 중국의 회사들이 그걸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레노보는 약간 예외 – 그건 내가 다니는 회사여서가 아니라… 사실 레노보는 중국회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international 하다. IBM의 legacy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motorola도 사고……  샤오미나 화웨이와는 달리… 양질의 computer를 만드는 회사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internet of things trend로 넘어가면, 삼성이나 심지어는 LG가 중국 회사의 추격을 조금 더 뿌리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의 높은 분이 최근 internet of things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뭐 당연히 그분들은 그런 쪽으로 drive 하려고 할거다.

나는,

삼성이나 LG 같은 회사가 apple이나 google 같이 정말 innovative하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기본 역량에서 중국에서 복제폰 만들어 파는 회사들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7.

그래서 결론은,

순전히 이런 기술적인 차원에서 보면,

여러가지 변수가 있긴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삼성보다는 애플이 좀 더 치고 나갈 가능성이 있고,

그렇지만 삼성의 중장기 positioning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뭐 그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뭐 이런 얘기를 그 친구에게 해 주었다.

이상 어설픈 전문가 코스프레 끝 ㅎㅎ

교회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어요….

지난 금요일에,
교회의 한 자매가 나누어 주었던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아서 맴돌고 있다.

예전 교회에 다닐때,
교회가 답답해서 숨이 막혀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모든 내용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교조적인 모습과 환경과 분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나 같은 사람은,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이어서,
사실 살아있는 신앙보다는 종교를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그저 반복되는 행위를 반복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에 관심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define 되어 있는 것이 사실 훨씬 편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명력있는 신앙으로부터 자꾸만 drift away 해서 종교적 생활로 빠져버리는 잘못을 너무 자주 범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수님 잘 믿는게 체질은 아닌 듯 하다. ^^

그렇지만,
금요일의 그 자매와 같이,
딱딱한 종교의 억압이 불편한 사람의 경우에는,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이 다다르기 대단히 어려운 하나님과의 관계의 친밀함을 누릴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떤 공동체의 생명력을 가늠하는 잣대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 억압과 폭력을 피해온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죄악된 본성과 싸움 vs. 성령님의 작은 음성에 귀 기울임

때로는,
내가 매우 건강한 동기를 가지고 꼭 하고 싶은 일 조차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경우가 있다.

상황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막히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때로는 그야말로 성령님께서 gentle nudge를 해가며 그것을 막으시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막히는 경우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마음의 이끌림으로 막으시는 경우,
내가 그걸 그냥 무대뽀로 진행시키면, 물론, 일이 진행이 되어버린다.
하나님께서 내 무대뽀 고집에 양보를 해주시는 것이다.

무엇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도 먹었고, 그게 옳다고 생각도 되는데,
막상 계속 마음 속에서 질질 끌면서 나로 하여금 그렇게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 때…

정말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것을 내 ‘악한 게으름’이라고 생각하고,
그 ‘질질끄는’ 성향과 싸우려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혹시…
내가 그렇게 하는 와중에,
성령님께서 ‘gentle’하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동안은,
내 안에서 조용히 내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도 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을 참 즐기기도 했었는데…

문득,
그렇게 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 내 감정의 이끌림, 내 선호 등등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sinful nature가 대단히 tenacious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사실 내가 강한 선호를 가지게 될때, 일단 그 선호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성향과 싸우려는 시도를 더 많이 한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 성령님의 작은 음성을 듣는 일을 함께 잊고 산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