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s Normal Till You Get To Know Them

최근, Everybody’s Normal Till You Get To Know Them 이라는 책을 읽었다.

우리 교회의 담임 목사님인 John Ortberg가 지은 책이다.

그냥 책 제목만 보고서도…

아… 이거 뭐 다 아는 얘기…

이렇게 생각했었고,

역시 읽어보니… 역시 다 아는 얘기 였다. ^^

그.런.데.

그 ‘다 아는 얘기’가 그렇게도 깊이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내가 얼마나 정상이 아닌 사람인가… 

그 책에 나와 있는 대로 as-is tag이 붙어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내가 역시 다른 이들을 그렇게 바로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한동안, 책, 강의, 기사, 심지어는 설교까지도…

내가 다 아는 얘기를 하는 것은 내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은… 

너무나도 자주…

내가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내 마음 깊이 안착시키는 일을 더 많이 해야할 때도 있는데 말이다.

한동안 조금 더,

“내가 다 아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쿨~ 하기 어려운…

어제 글에서,

정치에대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어조의 글을 쓰긴 했지만,

현재 5:50am. 크게 실망스럽다. -.-;

한편으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국민에게 무엇을 바라랴…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

도무지 대안세력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야권에게 무엇을 주기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당연하다…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결과를 새누리당이 얻어내는 것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유시민이 그랬던가.

우리나라는 정치지형이,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진보쪽은 기울어진 아래쪽에 골대가 있고, 보수쪽은 위쪽에 골대가 있는.

정말 그말이 맞는 것 같다. -.-;

별로 쿨~하게 이 아침에 생각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이성을 회복하면서 더 쿨~ 해지겠지…

정치에 대해서 갖는 기대

복음을 알기 전에, 나는 참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내 앞길 잘 열리도록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복음에 눈을 뜨고 나니… 

이 망가진 세상 속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소위 87 민주화 항쟁 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 마침내 독재정권이 굴복하고 민주주의가 세워지는 역사적인 해였다. 그런데 그때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렇게 시끄럽게 하는 것이 참 불편하게 느끼지기까지 했다. 비록 지방 단과대를 다녔지만 (^^) 그곳에서도 나름대로 시험 거부도 하고 뭐 그런거 했었는데…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제대로 치루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하는 것이 참 꺼끄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후에 내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깊이 후회한 것 가운데 하나는,

내가 그때 세상을 보는 눈이 정말 형편없이 편협하고 이기적이었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그때 역사의 현장에서 시위에 한번이라도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참 부끄러웠다. 

지금도 나는 여러가지 정치적 사안에 대해 관심도 많고, 신문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하는 편이다. 나름대로 정치적 입장도 꽤 뚜렷한 편이고.

그런데, 

87년 시민항쟁으로 얻어진 기회를 독재자의 후계자에게 그냥 넘겨주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92년 삼당합당이라는 반민주적인 (지금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야합을 통해서 다시 왜곡이 발생하고 기득권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서,

97년 드디어 민주 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그 정권이 결국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면서,

2002년 큰 기대를 가지고 태어난 노무현 정권이 후반에 ‘실패한 정권’으로 사람들에게 여겨지고, 결국 2007년 이명박이라는 뽑지 말아야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한국 국민을 보면서…

소망과 좌절을 나름대로 참 많이 경험했다.

예전에는 92년 대통령 선거였던가… 그때는 정말 예배당 한 구석에서 소리를 꽤 높여가며 김영삼이 당선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기억도 난다. ㅎㅎ

그런데,

한편 아직도 나는 내 나름대로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물론 내 신앙이라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더 이상 ‘정치적 변혁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은 포기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은 내가, 한국 사회에서 청산 혹은 극복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박정희 공화당 – 민정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에 어떤 소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민주진영 혹은 진보진영에 대한 기대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나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내가 힘이 가능한대로, 필요한대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을 지지하기는 하겠지만, 그들에게 궁극적 희망을 두게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로 꽤 시끄러운 것 같다.

정말 제발… 청산되어야 할 사람들이 물러나게 되고, 뽑히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뱃지를 떼게 되는 일이 생기길 바라지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금년 후반의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 없게되길 정말 바라지만… 

나는 그 대안 세력에 소망을 두기 보다는 그 모든 것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지는 하나님의 손길에 더 주목을 해보고자 한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정치에 대해서 갖는 기대도, 또 그것이 실패했을때 갖게되는 좌절도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함께 살며 성장하고 싶다.

내가 늘 마음에 가지고 있는 burden은, ‘후배들을 키워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관심의 대부분이 그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최근에, 그리고 특히 부활절을 지내면서, 그것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을 키워내는 것 이외에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는 바람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그저 함께 하면서 잘 해보자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길을 걷고 싶다는 바람이라고나 할까.

나름대로… 개인적으로 그래도 감격에 젖은 부활절을 보냈지만, 그 celebration을 다른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 계속 허전함으로 남아 있다.

함께… 살며… 성장하고 싶다.

부활절 묵상

빈 무덤은,
내게 매우 오랫동안 그저 멋진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사용되는 좋은 배경음악과 같은 것이었다.
스토리 전개에서 그것이 없으면 섭섭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그것이 핵심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

그런 예수의 부활이 내게 깊이 의미있게 다가오게 된 것은, 93년 부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시작한 첫 직장생활에서 실패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것에대해 idea가 없었고, 직장 상사와 맞지 않아 정말 많이 힘들었다. 유학을 가야한다는 압박과 정말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등이 나를 누르고 있었고, 일주일에 100시간 가까이 일을 해야하는 환경 속에서 나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 지치고 있었다.

기도할때마다 참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었다. 매일 아침, 그저 회사에 나가는 것이 힘들고 싫어서 거의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기도를 하고 가야할 정도였다.

그 고난주간, 나는 금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주일동안 아침과 점심 금식을 하고, 금요일에는 하루종일 금식을 하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지 않으므로, 시간이 남아서 나는 주차장에 혼자 가서 찬양도 듣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 고난주간의 묵상은 복음을 받아들인지 3-4년정도밖에 되지 않는 내게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이 풍성함을 가져다 주었다. 혼자 기도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회사 뒤쪽 야간 같은 곳에서 점심시간에 그야말로 목놓아 울기도 하였다. 

나는 그저 내 문제로 힘들다고 이러고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이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이 가슴이 깊이 다가왔다. 아… 나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그렇게 했지만,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다고, 여전히 나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나는 내 문제에만 함몰되어 있는데… 그런데 이렇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가 돌아가셨다니…

기도를 하면서… 마치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과 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십자가 아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게 남는 것은 이것이었다. 아니,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이렇게 힘이드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돌아가셔서 내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나는 이렇게 힘든데… 가슴이 답답해져서 계속 그렇게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부활절, 나는 내 눈이 새롭게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만일 주님께서 정말 부활하셨다면… 정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인간의 그리고 나의 궁극적 문제인 죽음의 권세가 껶인 것이라면…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인내를 가지고 그렇지만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망을 가지고 견디어 낼 수 있겠다… 하는 깨달음이었다.

글쎄… 그때의 깨달음이 대단히 신학적으로 깊은 것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부활이라는 명제 앞에서 소망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붙들 수 있었던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 이후에 성경공부등을 통해서 그 부활의 깊은 의미에대해 catch up 하는 데에는 그후로도 몇년이 더 걸렸다.

그 부활절이 왜 그렇게 내게 특별한 것이었을까?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내게 그런 eye-opening experience를 하게 하신 것이기도 했겠지만…
예수께서 겪으셨던 처절한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 고난과 내 어려움을 동일시(?)할 수 있었고… 그래서 부활의 아침에 내게도 소망이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말하면, 예수의 고난에 대한 묵상이 깊었기 때문에 부활의 기쁨이 컸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번 부활절 예배에서도, 나는 부활의 찬송을 부르며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 정말 부활하셨다. 어둠이 깊을수록, 그 부활의 소망과 기쁨은 선명하기만하다. 어둠과 깨어짐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부활의 소망이 더둑 빛나고 있다.

Christ is Risen. He is Resin indeed!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4)

마태복음 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라고 누가 썼다면,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그 첫 구절을 가지고 노래 전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맨 끝자락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대학 때 소위 ‘대동제’라는 곳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풍경도 생각이 나고,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는 clip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것도 기억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래의 첫 구절은 그 노래 전체를 떠올리게 하고, 그와 동시에 그 노래와 얽혀있는 여러가지 사건, 사상,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구절은 시편 22편의 첫 구절이다. 

시편 22편은 그 내용을 읽어보면 처절한 고통 속에 있는 시편 기자가 절규하는 내용,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내용, 그리고 궁극적으로 승리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예수께서 이 시편의 첫 부분을 인용하셨던 것은, 지금 그 시편 22편의 첫부분 즉 극심한 고통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악(원수)에 대한 궁극적 심판이 곧 있게 될 것과, 예수께서 이루실 승리, 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어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기억하며… 그리고 궁극적인 악에대한 심판과 승리를 곱씹을 수 있는 방법으로서는… 어쩌면 이렇게 시편 22편을 곱씹는 것 만큼 좋은 다른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 예수의 외침을 듣고, 엘리야를 부른다고 이야기를 하는 등…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성경이 그리고 있다.

십자가의 예수는… 정말 그렇게 고통스럽게, 외롭게, 그러나 소망을 생각하며 십자가에서 바짝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일과 놀이

세상에는  네종류의 사람이 있다.

1. 일하는 것이 놀이이고, 노는 것이 일인 사람

2.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모두 일인 사람

3.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모는 놀이인 사람

4. 일하는 것은 일이고, 노는 것은 놀이인 사람

그냥 써놓은 것으로만 보면 당연히 4번의 사람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 

적어도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1번유형이다. ㅎㅎ 

나는 솔직히 노는게… 꽤 ‘일’이다. 그래서 꽤 힘들다. -.-;  일하는 것은 즐겁게 할 수 있는데…

반면 우리 딸내미는, 3번 유형인 것 같다. 얘는 공부도 숙제도 늘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뭐 늘 그렇긴 어렵겠지만…)

하는 모든 일에 stress 만빵 받아가면서, 놀이도 일도 심혈을 기울여서 해야만하는 사람도 상상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고, 주변에서 찾기도 쉽다.

음… 정말 내가 비정상인건가? ㅋㅋ

unChristian & You Lost Me

JK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Barna Group의 President인 David Kinnaman이 쓴 두권의 책을 최근 끝냈다.

하나는 젊은 비기독교인이 바라본 기독교에 대한 책 unChristian 이고,

또 하나는 교회를 떠난 기독교인/혹은 신앙 자체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책 You Lost Me 였다.

아…

정말 이 책들을 읽으며 얼마나 많이 탄식을 터뜨렸는지!

비록 미국의 젊은 세대가 왜 기독교를 떠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지만,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도 많은 부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책을 읽는 것도 좋은 일일 수 있겠지만,

정말 이런 material들을 접해야 하는 사람은, ‘목회자’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가령 이런 내용을 당장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가끔 만나게되는…) 소위 중-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소개하면 어떤 반응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괜히 나 혼자 마음이 더 많이 답답해졌다.

그렇지만, 곧 이어…

이렇게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든 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마음이 힘들어 졌다. -.-;

결국 이 두권의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은 미국 복음주의권의 문제나 한국 교회의 문제, 혹은 목회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 부끄러운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KOSTA/USA-2012 등록

매년,
KOSTA/USA conference 등록을 시작할때면,
이 블로그에 그 감회를 올리곤 했는데,
금년엔 사실 정확하게 언제 등록을 시작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이젠 ‘실무진’이 아닌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수준이 된 듯 하다. ^^ 

어쨌든,
그래도 이 멋진 올해의 포스터도 내 블로그에 한번 올려야 겠기에…

KOSTA/USA-2012 conference 등록이 시작되었다!!!!!!!

 

계절 타기

어린시절, 나는 계절을 참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
물론 천식 때문에, 가을부터 봄까지는 기침을 달고 살긴 했지만…

그것 말고도, 막 봄이 되면 괜히 기분이 들떴고,
가을엔 괜히 외로워지고 센티멘탈해지곤 하였다.

지난 주 후반에는,
허억.. 일하기가 싫었었다!
특히 지난 금요일에는 오랜만에 날씨가 맑고 좋았는데…
그래서 괜히 회사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얘기만 많이 하고 (물론 그게 다 일과 관련된 얘기이긴 했지만 ^^)
막상 실험실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몇시간 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 계절을 타는 건지,
아니면 그냥 좀 피곤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난 주엔 특히 잠을 제대로 잘 못잤다.)

오랜만에 봄이라고 괜히 긴장이 풀리는 경험을 했던 것은,
왠지 신선했다!

그렇지만 이번주엔 그렇게 느긋해지면 안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