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육체

아니,
나는 무슨놈의 몸이… 이렇게 저질(!)인지. ^^

한 2-3일 운동 안하면 금방 배가 뽈록하게 나온다.
입술에 cold sore는 조금만 무리하면 틱 하게 생겨서, 거의 일년 내내 abreva를 끼고 산다.
감기에 한번 걸리면 그로부터 몇달씩 천식증상으로 고생하게된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철저하게 운동하고, 감기 걸리지 않으려고 관리하고, 조심하고, 체력을 자꾸만 키우고… 하게 되었으니…
반드시 그것이 저주라고만 할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

Kerygma와 Didache

Didache (윤리적 가르침, 교훈, 지혜)는 Kerygma(선포, 복음)에서 와야 한다.
Kerygma가 Didache로부터 올 수 없다.

Kerygma를 좀 더 잘 이해하려는 시도들 (변증, 연구) 역시 Didache의 영역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논리적 설득, 변증, 학문적 연구, 심지어는 성경연구 조차도 Kerygma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대 교회에서는 그러나,
Didache로부터 Kerygma를 이끌어 내려고 하거나,
Kerygma 없는 Didache만을 이야기 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Didache로 Kerygma를 대체하려는 일들을 많이 본다.

복음의 영광은,
Didache와 Kerygma의 관계를 명확히 할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패션 감각

아주 가끔,
내게 옷을 선물해주는 사람들이나 가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행한 사람들을 곧 많이 실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준 옷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나는 나름대로 매우 까다로운(?) 옷입는 방식들이 있다.

우선,
옷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멋이나 격식등은 늘 내게 이차적 고려대상이 된다.
그러다보니, 나는 일년중 약 360일 정도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는 패션감각(?)을 발휘하게 된다.
다림질을 하는 옷은 거의 무조건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
드라이 클리닝은 말할것도 없다.

그리고 또,
옷은 가능하면 검소하게 입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통 청바지는 15불-20불짜리를, 티셔츠는 10-20불 짜리를 사서 입는다.
신발은 조깅을 할때 신는 running shoes를 제외하고는 보통 20-40불 짜리를 사서 신는다.
그러다보니 대개는 약간 후줄근한 느낌을 주게 입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나는 내 패션이 내 삶의 performance에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치는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멋을 내야만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옷맵시를 뽐내게 된다. ㅋㅋ

이렇게 다소 까다로운(?) 옷입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보니,
내게 옷선물을 해주는 사람들 (주로 가족)은 내게 좋은 소리를 못듣는다.
심지어는 옷을 사주고 내 투정/불만을 받아야 하는 황당한 일들도 겪는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 나도 나이가 들고 있으니…
청바지에 티셔츠로부터 조금씩 벗어나야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괜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입는 주책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패션감각’이 뛰어나지도 않고,
옷맵시가 잘 나는 멋진 몸매를 가진것도 아니고,
옷을 멋지게 입어야할 필요가 있지도 않으므로…
그저 편하고 검소하게 입고 살겠다는 고집을 조금 더 피워보려한다.

911 이후에…

911 이후 미국은 거의 정서적 공황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 살고 있던 내게도 그 충격이 대단했는데, 애국심이 투철한 미국인들은 오죽 했으랴.

그 이후,
WMD가 있다면서 이라크를 공격하자는 의견이 나왔을때,
미국의 의회는 압도적으로 그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의 여론 역시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압도적 여론도, 의회의 결의도 모두 착오였음이 드러났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위 ‘just war’ theory에 따르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미국민들에게 있던 정서적 공황상태, 분노 등이 적절하지 못하게 인도된 것이었다.

아랍의 무슬림들이 왜 그렇게 미국을 증오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채,
거의 아랍권 무슬림 전체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기라도 하겠다는 nonsense가 정당화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조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들으며…
무엇이 북한을 그토록 코너에 몰아넣었는지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있기를 기도한다.
전쟁과 대립이 아닌 평화를 추구해야한다는, ‘인기없는’ 목소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오길 기도한다.
북한의 정권이 악한 정권인 것도 맞는 말이고,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규탄받아야할 일인 것도 맞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이나 탈레반이 악한 것도 맞는 말이고, 911 공격은 규탄받아야할 일인것 처럼)

그렇다고 무작정 감정적으로, 무력으로, 폭력으로, 전쟁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우려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지금 들고 있는 것과 마찬 가지로.)

평화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전략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라는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말을 깊이 되새겨본다.

facebook

최근에,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 facebook 친구를 신청해 왔다.
아마 한국에서 최근에 facebook이 유행인 듯 하다.

나는 facebook account를 만들고는, 그냥 친구 요청 들어온 것만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매우 ‘게으른’ facebook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20년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들이 message도 보내고 하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답을 하는 식의 매우 passive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한두주에 한번 정도 account에 들어가 친구요청 들어온 사람들중 내가 만난적이 있는 사람만 accept하는 방식으로 그저 연락처 update를 하는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다.

facebook 같은거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 같다. ^^
(아니면 내가 그냥 나이가 드는 건가. ㅋㅋ)

rejuvenated? spoiled?

Thanksgiving 휴가 기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때가 많았는데,
금년에는 가족과 함께 thanksgiving 휴가를 보내는 luxury를 누렸다.

정말 많이 쉬고, 많이 잤다!
하루에 9시간씩은 잤던 것 같다.

비록 휴가기간 중에도 거의 매일 회사에 가서 일을 해야하긴 했지만,
반나절 정도나… 그보다 좀 더 길게 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잠을 많이 자보니까, 이거 참 괜찮네.
괜히 내가 rejuvenated 된 것이 아니라, 잠을 많이 자는 쪽으로 spoil 된 것은 아닐지…

youth KOSTA/USA

이제 오늘부터 youth KOSTA 그 첫번째 집회가 열린다.
하나님께서 youth 모임도 신실하게 사용하여 주실 것을 기대하고 기도한다.
수고하는 우리 간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로 돌보아주실 집회를 기대하며…

복음

어제는,
저녁식사후 잠깐 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민우에게 복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
전혀 소망이 없는 우리에게 십자가가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망인가,
하나님께서 민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그 은혜를 얻은 사람이라면 죄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됨의 영광이 어떤 것인가.

나도 민우도,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어떤 아버지가 될까

민우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는 것이 좋을까.

잘 이해해주는 아버지,
함께 장난치는 아버지,
사랑 많은 아버지,
지혜가 많은 아버지,
힘센 아버지,
든든한 아버지,
존경스러운 아버지…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기도하는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자녀를위해 무릎꿇는 일을 쉬지 않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