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Malleable

새해엔 malleable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는 늘, 
복음안에서의 가치를 가지고 지켜내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사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Contra Mundum(세상에 대항하여) 이라는 구절이 삶의 모토가 되고,
전투적인 삶을 사는데 많은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많은 경우 공격적이고, 전투적인데다,
외부로부터의 영향력에 대해 방어적이다.
내 칼의 날을 날카롭게 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지만,
다른이가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데에 열려있지 못한 것 같다.
길에서 지나치는 작은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통해서도,
내게 천금보다 귀한 가르침이 있는 줄 알고, 
나 자신을 변형하기쉬운(malleable)한 사람으로 바꾸어 나갔으면 한다.
(얼마나 잘 될지는 자신 없긴 하지만… 어차피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Optimization

26년차 공돌이인 나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optimize 해가며 살려고 노력한다.
운전을 할 때에도, 출발하기 전에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을 가는 여러 가능성을 머리에 펼쳐놓고 각각의 장단점을 생각한 후에 path를 정하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가지 준비를 하는 순서, 옷을 입는 방식, computer를 켜고 login을 하자마자 하는 일련의 행동들, 회사에서 실험을 할때 multi-tasking을 하는 것, coffee maker로 coffee를 만드는 일 등… 거의 모든 일에 내 나름대로의 optimization process를 구동한다.
그 결과,
꽤 efficient(효율적인) 삶을 살게되긴 했으나…
두가지의 심각한 병에 들게 되었다.
1. 내 삶의 control을 내가 하려고 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에 대한 기대도 약하고, 그 가능성에 대해서 별로 열어놓고 있지도 않다.
2. 효율성에 올인하다보니, 그것에 거치는 모든 사람, 사건, 물건, 시간… 모든 것이 내게 ‘적’이 되곤 한다. 사람이 없는 메마른 사람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내 삶의 여러 영역들을 다스리자면, 효율성을 포기할수도 없는데…
효율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성 중독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을 찾아야 할지,
그렇지 않다면 효율성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효율성 중독을 과감하게 끊어야 할지…
“내 발의 등불”을 따라 “그분의 모습을 따라” 성숙해가는 일들을 계속해야 할 듯 하다.

New Year’s Resolution

새해에 새롭게 하는 다짐과 결심으로 어떤 것을 할까 지난 1-2주 생각을 해왔다.

워낙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인지라(^^) 여러가지 리스트가 떠올랐는데, 다음과 같은 내 상황이 대충 정리가 되었다.
현재 내 내면 깊이 있는 목마름, 
내가 서있어야하는 자리, 
40대 중반을 향해서가는 내 development에 대한 고려, 
이제 막 teenager로 접어들고 있는 딸아이의 성장, 
결혼한지 13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성숙의 여지가 많은 내 아내와의 관계, 
회사로 보아 중요한 stage에 있는 2011년에 내게 주어진 책임, 
섬기는 Christian ministry들에 대한 책임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하는 필요.
2011년에는 무엇을 새롭게 다짐해야 할까?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렵긴 한데…
“좋은 사람되기”
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꾸만 지나치게 나 자신을 functional unit으로 내 스스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자꾸 반복해서 빠지는 함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는 일은…
내가 to-do list를 accomplish 해나가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바라보고, 
이땅에서 내 삶의 목표가 doing에 있지 않고 being에 있음을 더 깊이 깨닫고 발견해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해보고 나니,
KOSTA/USA-2011의 주제인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가 내 새해 결심과도 참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2011년아, 이제 내가 간다! 기다려라~
이것이 보통 취하는 내 자세였다면…
2011년이어, 내게 오십시오~
이것이 내 자세가 아닐까 싶다.

Merry Chrstmas and Happy New Year

It is Christmas every time you let God love others through you… yes, it is Christmas every time you smile at your brother and offer him your hand 

– Mother Teresa
성탄과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내일부터 1월 3일까지, 블로그를 쉽니다.
내년에, 좀 더 성숙한 블로깅을 할 수 있으면 합니다. ^^
모두 사랑 가득한 성탄과, 은혜 넘치는 새해를 받으시기 기도합니다.

한해를 정리할때가 벌써 되었나?

지난주에 직장 동료 한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올 한해 제일 좋았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순간 완전히 당황했다.
왜냐하면…
올해는 어떤 일인지, 한해를 돌아보고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늘 이맘때면 그래도 한해를 곱씹어보면서 반성하기도 하고, 새해 계획과 결심도 세우고 그런 일들을 했었는데…
organized life를 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여간, 한해를 정리할 때가 정말 되긴 되었다.

T 아주머니

요즘 나는 회사에 있는 시간의 90%는 clean room에서 지낸다.

clean room에 들어가려면 방진복이라고 불리우는 옷을 입고 들어가는데,
왔다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침에 들어가면 점심 먹으로 나오고,
점심먹고 들어가면 퇴근할때까지 안나온다.
아예 그 안에 computer도 마련해놓고, 내 미니 office를 차려 놓았다. ^^
그러다보니, 계속 함께 clean room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될 기회들이 좀 있게 되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된 사람중 하나가 T 아주머니이시다.
이분은, 비교적 새로 들어오신 분인데,
베트남 출신이고, 나이는 50대 초반쯤 되시는 분이시다.
이분은 참 성품이 좋으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좀 고약한 사람들이어서, 많이 힘들 수 있는데도… 늘 웃는 얼굴로 대하시고, 가끔 한번씩은 케익을 집에서 구워와서, 나처럼 ‘어린 애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신다. ^^
아니, 이렇게 stress 많이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 정말 놀라울 때가 많이 있었다.
지난주엔가,
내가 혹시 베트남을 떠난 이후에 다시 베트남에 가보았느냐는 것을 물어보았는데…
그것때문에 참 여러가지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두려웠던 이야기,
비교적 부유했던 가정 출신으로, 공산통일이 된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던 이야기,
10대 후반에 목숨을 걸고 소위 “보트피플”이 되어 1달 넘게 바다에서 보낸 이야기,
형제 자매들이 그때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이야기,
난민이 되어 미국에 정착하게되기까지의 이야기,
그 와중에 부모님은 그냥 베트남에 남겨두고 와야만 했던 이야기 등등.
그러면서,
자신은 벌써 30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그때 그 악몽과 같은 기억 때문에 다시 베트남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예전에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 조차 감정이 복받혀서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까지는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 기억이 얼마나 악몽과 같았으면,
3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에도 조국을 찾을 생각이 전혀 없게 되었을까.
하나밖에 없는 딸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고,
남편과 단둘이 살면서 삶의 소소한 것에 재미를 누리고 있는데…
아 참, 이분은 독실한 캐톨릭 신자이시다. 일요일에 미사를 드리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하셨다.
기도문도 열심히 읽으시고…
어제는 나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꽤 오래 나누었다. ^^
10대까지 유복한 집안에서, 
좋은 장래를 꿈꾸며 살았던 베트남 소녀로부터,
공산군에 의한 강제노동자로,
보트피플, 난민으로,
낮선땅에 온 이민자로,
실리콘 밸리에서 테크니션으로 살게된 그분의 인생 여정을 들으며…
그리고 그 와중에 그분을 지켜주었을 그분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통해 그분에게 맺어진 열매들이 느껴지게 되었다.
내 삶의 여정을 통해서는,
내 인격에 어떤 열매가 맺히게 되는 걸까…
언젠가는….
그분이 남편, 딸과 함께…
10대에 떠나와야 했던 조국을 다시 방문해,
조국과 시대와 화해를 하고…
마음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하겠노라고 그분에게 이야기해드렸다.
그분은…
그저 조용히 웃으셨다…

쌤통이다 Yankees

최근,

Red Sox가 Adrian Gonzalez 와 Carl Crawford 두 사람을 모두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두사람 모두, potentially Hall of Fame 선수들인데…
자그마치 300 million dollar (3억불 = 3천 5백억원) 정도의 돈을 일주일만에 쓴 셈이다. -.-; (계산이 맞나?)
Boston을 떠난지 이제 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Red Sox fan으로 남아 있는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Red Sox가 어떤 선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하는 ‘소문(rumor)’들이 돌아다니는 사이트등을 방문하곤 한다.
이번 겨울에 특히나 더 통쾌한것은,
늘 돈으로 Red Sox를 눌러왔던 Yankees가 완전히 물을 먹은 것이다.
Cliff Lee를 데려오려고 작정을 하고 엄청난 돈을 제시하면서 유인했는데,
Cliff Lee가 훨씬 더 작은 돈을 받고 Philles로 간 것이다.
Yankees는 완전히 초 당황 상태일 것이다.
이번 off-season 반드시 영입해야 하는 선수로 생각했던 Cliff Lee를 놓쳤을 뿐 아니라,
만일 Cliff Lee를 데려오지 못했을때 plan B로 여길 수 있었던 Carl Crawford도 Red Sox가 먼저 찜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늘…
‘저 팀에서 얼마준다고? 우리는 그거보다 10 million dollar 더 줄께’ 뭐 그런 식으로 선수를 데려왔던 Yankees가 물을 먹는 것을 보는것은 정말 통쾌한 일이다.
그런데…
한가지 좀 찜찜하게 걸리는건,
내가 응원하고 좋아하는 Red Sox가… Yankees와 같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The Evil Empire라고 Yankees를 불렀었는데… 
물론 Red Sox는 Yankees만큼 돈이 많은 팀도 아니고,
또 Yankees와 같은 방식으로 무조건 돈 많이 주고 선수를 데려오는 것과는 다른 스타일로 팀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Yankees를 이기려면 Yankees가 되어라…는 식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보이는건… 정말 찜찜하다. ^^

인위적 부양책

공동체를 섬기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clear한 message를 전달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강조를 사용한다거나… 인위적인 boost-up을 사용하면,
반드시 그것에는 그것에 따른 부작용/반작용이 따르는 것 같다.
인위적 경제부양책이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 같아도 결국 그 경제 자체를 취약하게 만들수 있는 것 같이 말이다.
인간적인 열정은 반짝 빛을 보는듯 해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열매를 여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지난주말에…

지난 주말에, 

KOSTA 간사들중 몇명이 모이는 모임에 참석했었다.
아…
이제 나는 적어도 ‘간사’로서의 역할은 정말 끝났구나…
이제 기쁘게 그 짐을 내려놓아도 되겠구나…
아니, 오히려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이들에게 짐이 되겠구나…
이 사람들 사이에 살아있는 스피릿,
운동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주인의식,
그것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다루고자 하는 신중함,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는 기쁨…
—-
반면,
나는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질문’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주장’했던 것 같다.
더 많이 appreciate 하고, 더 많이 thankful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analytical했던 것 같다.

—

‘선배’로서 이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있다는/못했다는 무거운 자책을 느꼈다.
이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
돌아와보니,
아내는 감기에 걸려 지쳐있고,
이곳의 날씨도 왠지 무겁다.
—
정작, 내가 괜히 갔던 것은 아니었던가…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지 않았는데,

ㄱㄷㅇ 간사님의 강력한 권유/명령으로 이번 주말에 KOSTA 간사 모임으로 뉴욕에 가게 되었다.
KOSTA 간사들이 몇가지를 마음에 두었으면 하는 생각들을 최근 하고 있는데…
(뭐 KOSTA 간사들이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겠지만서도…)
–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보다는, 무엇을 위하여 전진하는 방향을 잡으면 좋겠다는 것.
지난 거의 10여년 동안, KOSTA의 간사진은, 늘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무엇을 거스르거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 처한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반대하느냐(what we are against) 하는 것 보다 우리가 무엇을 위하느냐(what we are for) 하는 것을 제시해야할 책임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 KOSTA 라는 framework 밖에서 KOSTA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우리 안에서 더 develop 되었으면 하는 것.
KOSTA의 운동성은 KOSTA 내부의 필요에의해 나오지 않고, KOSTA 외부의 필요에의해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KOSTA 라는 framework 밖에서 KOSTA를 바라볼 수 있지 않으면, 영적인 narcissism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 계승 발전시켜야할 내용들을 좀 더 명확히 define 했으면 하는 것.
가끔 젊은 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예전에 선배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들을 전혀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get the things done에 초첨을 맞추지 말고, (물론 그런 task가… 거의 daunting 하다고 느껴질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value, spirit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 선배들의 발자취에 너무 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
바로 앞에 쓴 내용과는 상치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 보일수도 있으나,
때로 역시 젊은 간사들이… 소위 ‘선배 간사들’을 지나치게 높게평가하고, 그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struggle과 부족한 것들은 자꾸만 무시되고, 그들의 ‘전설’만이 크게 남게 되는 것 같은데…
(물론 운동은 그런 선배들의 ‘이야기’가 계속 전수되면서 spirit과 value가 유지 발전된다고는 하지만…)
선배들의 발자취가 소중하게 지켜야할 가치로 인식되는 것은 중요하겠으나, 따라야할 모범으로 인식되는 것은 좀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만일 KOSTA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간사들이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
만일 KOSTA가 문을 닫게 된다면, 그것은 외부의 공격(?)이나, 신학적 지식의 부족이나, resource의 고갈등에 의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간사들이, 지켜야할 spirit과 value와 운동성을 지켜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런 절박함이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닌가 하는… 전형적인 “노인네의 생각”을 하게 된다.
……
이런 생각들 이외에, 며칠에 걸쳐 글을 나누어 쓸 만큼 많은 생각들이 있으나….
복잡한 머리속의 생각으로 나를 채우기 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나를 채우고 동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