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상태

두가지가 주로 감지된다.

첫번째로, 뭔가 click이 되었다.
예전에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계속 뭔가 잘 맞지 않아 서로 헛도는 느낌이 있었다면,
요즘은 자꾸 그 성령님께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을 느낀다.
자전거 체인이 헛돌다가 철컥 하고 톱니가 맞아 돌아가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연초에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2011년 KOSTA 주제 묵상을 하면서… 
내 부족함에 대해 안타까움을 더 깊이 가지면서…
내게 일어난 현상이다.
이렇게 click된거…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두번째로, 뭔가 약간 부족하다.
뭐라고 딱 찝어 얘기하긴 좀 어려운데…
뭔가 내 전투력이랄까 에너지 레벨이랄까 그런게 좀 떨어진 느낌이다.
첫번째에서 내가 언급한 현상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건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때 빵빵한(?) 전투력을 발휘하던 모습으로부터 많이 위축된 느낌이다.
‘불 받아야’ 할 때일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좀 조용히 더 다루시고 계신 걸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명확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데,

어떤 결정을 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내게 소위 ‘상담’ 이라는 것을 요청해 오는 사람들에게 아마 100번도 넘게 이야기해주었던 것을 다시 곱씹어 본다.
요즘,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일꾼’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며…
과연 하나님께선 우리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해보는데…
하나님께선, 신비의 미소만을 짓고 계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

정말 좋은 말인데, 
이 멋진 말을 예전에 한국에서… 엉뚱한 사람이 사용하면서 완전히 좋은 말을 버려놓았었다.
이번에 간사모임에 다녀오면서,
그 멋진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열릴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많이 갖게 되었다.

리더쉽의 defect

리더는… 그 사람의 결정과 방향이 많은 이들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차원에서 그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
그 사람이 위대하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위탁된 영향력의 nature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떤 리더쉽이든,

그 리더쉽이 사람인 이상, 한계와 결점(defect)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리더쉽의 결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증폭되어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간사모임에서 나는,
내 리더쉽의 단점이 가져다주었던 나쁜 영향들을 매우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참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후배들의 몸부림과,
그 움직임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으로 나를 돌려놓는다면,
나는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KOSTA와 간사들을 섬길 수 있을까?
내게 다른 setting에서 주어지는 리더쉽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거운 부담과 미안한 마음, 
소망과 감사가 뒤섞여 집에 돌아왔다.

또 한번의 간사모임

오늘은 또…

KOSTA 간사모임을 위해 비행기를 탄다.
내일 하루종일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이 고민하고 많이 기도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일 만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복음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볼 수 있을 생각에…
기대가 크다.

새해 결심 – 나머지 잡동사니 총 정리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기

내 잘못을 인정하기 – 미안하다는 말을 생활화하기
급하게 서두르지 않기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지 않기 – 과장없이 이야기하기
말 소리(volume)를 줄이기
말을 적게하기
죄는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성령님의 작은 음성 듣기를 즐기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기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QT 빼먹지 않기
부정적인 말 하지 않기
….
아직 한참 더 많은데…
이제 ‘새해’라고 이야기하기 민망한 때가 벌써 되어서,
내 새해 결심은 이정도에서 정리해본다.
올 한해를 지내며 많은 묵상과 경험을 통해 열매를 맺혀갈 수 있으리라.
@ 그나저나, 지난주에 쓰기도 했지만, 새해의 내 결심이 올해 KOSTA/USA의 주제와 align이 잘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하나님께서 센스있게 그렇게 나를 이끄시는듯. ^^

착한 어린이 되기

“심술꾸러기 어린이가 되지 말고 착한 어린이가 되자”

민우도 하기엔 너무 어린이 같은 결심인데,
내 새해 결심의 일부이다.

“**야, 얼른 숙제하고 놀아야지”
“싫어, 나 숙제 안할래”

“**야, 친구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해, 얼른”
“싫어, 쟤가 먼저 나 놀렸단 말이야”

심술꾸러기 어린이가 핑계를 대면서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은 모습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심술꾸러기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오승아, 직장 동료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되지”
“싫어요, 쟤가 얼마나 jerk인지 아시잖아요?”

“오승아, 먼저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해야지?”
“싫어요, 제가 얼마나 바쁜지 아세요?”

“오승아, 겸손해라”
“이정도면 괜찮찮아요, 다른 애들은 훨씬 더한데요 뭐!”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말씀에,
토를 달면서 자꾸만 빠져나가려는 모습으로부터 좀 더 벗어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 결심 글이 길어져서… 이러다간 새해결심만 한달 하게 생겼다. -.-;)

Red Letter Christian

내가 참 좋아하는 Tony Campolo가 주도하는 일종의 운동인 

Red Letter Christians Movement 라는 것이 있다.
이 운동이 주장하는 것은,
보통 성경에 ‘빨간 글자’로 쓰여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제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radical Christian’의 모습으로 살자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국 Anabaptist의 아이디어와도 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또,
한때 내게 참 많은 영향을 주셨던 분 중에 윤종하 총무님이라는 분이 계시다.
대학때 처음 뵈었었고, 미국에 와서는 보스턴에서 더 자주 뵐 기회가 있었었는데…
이분이 하셨던 말씀중에 아주 인상깊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바울 서신을 바탕으로 바울신학을 세워놓고 거기에 복음서와 그곳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끼워맞추려 한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바울서신을 끼워맞추는 것이 제대로된 순서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을때 부터,
그저 폭탄과 같이 내게 다가왔던 산상수훈과 같은 말씀들,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Christian lifestyle에 대한 정말 급진적인 말씀들…
새해엔 좀 더 그 말씀들을 글자그대로 지켜보는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Red Letter Christian이 되는 셈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어릴때부터 모범생으로 자란 나는, 

나에대한 다른이들의 기대 (특히 부모님의 기대였겠지)를 충족시키는데 내 유년-청소년 시절을 다 보냈던 것 같다.
가령,
길거리를 가다가 떨어진 휴지를 집어오느라 내 주머니가 더러워지는 적도 많았고,
횡단보도 선을 조금이라도 넘어서 길을 건너지 않기 위해 직각으로 꺾어서 길을 건너는 때도 많았다.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때,
내가 그 짐을 지고 있는 것이 문득 무겁게 느껴지게 되었다. 
좀 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일탈을 시도할수도 있었겠느나,
지극히 소심한 나는 그저 속으로 앓았을 뿐이었다.
복음을 만났을때,
나는 마침내 내가 다른 이들을 만족시키는데 내 모든 것을 던져가며 살 필요가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얼마나 내게 큰 자유를 가져다 주었는지 모른다.
더 이상 다른이들이 보는 나에 나를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이전의 lifestyle이 뿌리 깊게 내게 박혀있었던 차라,
나는 그것을 끊어내는 연습과 훈련을 참 많이 반복해야만 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다른이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시각으로부터는 참 많이 자유로와졌는데…
문제는 다른이들이 나를 ‘look up’하는 시각으로부터 내가 자유롭지 못한 것을 참 많이 발견한다.
영적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 일거수 일투족이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게되자,
나는 내가 다른이들에게 비추어지는 모습이 내가 속한 공동체, 내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계산을 하며 살게 되었던 것 같다.
동기가 악한 것이라고 볼수는 없으나,
복음이 이야기하는 자유는 분명 아니다.
내가…
다른 이런 관점에서,
다른이들의 시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와야 할지,
혹은 어떤 타협점이 있는 것일지,
아예 과감한 어떤 결단이 필요한 것일지…
좀 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가 가리키는 그분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내 목적일진대,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지금의 모습은 분명 많은 distortion을 안고 있는 것 같다.

Humbleness

겸손함이란, 

자신의 힘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늘 전투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내가 가진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가장 열정을 다해서 사는 성실함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와 타인과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것을 연습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때,
나는 다른이들로부터 받는 인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 고리로부터 나를 끊고자, 효율적인 사역이라는 goal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했던 적도 있었다.
다시,
그런 정신을 되살려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