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적 삶

어제 저녁에는,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한 선교사님 부부가 우리집을 방문하셔서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어서(거의 5년만이었던 것 같다) 반갑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참 신선하고 좋았던 것은…
이분들이 사시고 계신 ‘사도행전적 삶’을 직접 듣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다가 경험하게되는 하나님의 기가막힌 인도하심,
때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라고 질문할 수 밖에 없는 일을 겪으시면서도… 그 질문을 16년동안이나 마음에 품고 그거 기도만 하시다가 나중에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묘한 섭리를 깨닫는 이야기,
인간적으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기뻐하면서 소망을 잃지 않는 모습…

참 감사하고 좋았는데….
한편 드는 생각은,
나는 이곳에서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내가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지만,
정말 온 맘을 다해서 선교자적 삶을 살고 있다면….
나도 그분들과 같이 그렇게 자신의 삶을 던져 risk-taking을 해가며, 하나님의 결정적인 인도하심을 구하고 (인간적인 노력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나고), 그 열매를 보며 정말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기뻐하는…
그런 것을 정말 경험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사로잡혀,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삶을 사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던가.

Don’t Look At Me

14:11 무리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서,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13 성 바깥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두 사람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다.

14 이 말을 듣고서,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는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가운데로 뛰어 들어가서 외치면서,

15 이렇게 말하였다. “3)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16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세대에는 이방 민족들이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18 두 사도는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사하지 못하게 겨우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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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일하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마음이 급해지면,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주목해서라도 좀더 성숙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실수를…
정말 많이 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성실하게 섬겼던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점차 거치는 걸림돌이 되어 후배들의 길을 막게 되는 것 같다.

키가 더디 큰다고 성장 홀몬을 잔뜩 주입해서 동물을 키우면 각종 부작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겠다.
더디 크더라도, 자연식을 먹으며 키워야 건강하게 크는데 말이다.

내 실수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Leadership is an ART

“Leadership is an art”

Herman Miller의 CEO를 지냈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는 Max DePree의 책 제목이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여러 leadership을 경험하면 할수록,
내가 leadership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practice 하는 경험을 갖을 수록…
정말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방법론을 잘 풀어준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이 IQ가 300쯤 되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의 행동을 바로 바로 control 할수도 있고,
순발력도 대단하고….
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가르쳐서 될 수 있으려나…

마치,
운동신경이 상위 0.000000001%에 들도록 좋고,
체격 조건도 1세기에 나올까 말까 하게 좋고,
100m를 8초에 뛰고,
폐활량은 돌고래를 능가하고,
게다가 순간 판단력도 좋고,
자기 관리 철저하고,
머리도 엄청 좋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이론적으로 수영과 같은 운동하는 방법을 설명해서 그 사람이 운동을 잘 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사람은 사실상 없으므로…
Leadership은 art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리더는 정말 길러질 수 없고 타고나는 것인가.
내 conviction은 점점… 리더는 길러질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리더를 주시도록 더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목이 곧은…

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다른이의 표현을 이해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 ‘자신’이 너무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
이야기하는 사람의 원래 의도를 곡해하거나 오해하여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해서 원래 의도를 변경시키거나 희석시키기도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정도의 곡해나 오해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그러한 점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미성숙한 사람은,
그렇게 오해/곡해한 것을 너무 쉽게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겸손이 전제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대화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명절과 어머니

우리 아버지쪽 가계는 매우 전통적이다.
소위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말은, 선조로부터 서자가 한번도 끼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런 가계가 사실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와 서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의 차이를 논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내 어릴적 자장가는 소학이었다는 전설(?)을 전해 듣는다.

그런 집안에 우리 어머니께서 시집오셨다. 혈혈단신 그리스도인으로.

소위 4대봉사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함)를 하는 집안에서…
그리스도인 며느리로서 제사때마다 명절때마다 제사상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물론 육체적으로도 힘드셨겠지만, 정신적으로 당하셨을 어려움은 내가 다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께서 봉사손(제사를 지내야하는 맏아들, 그 맏아들인 나도 사실은 봉사손이다.-.-;)이시므로 어머니의 부담은 더 심하셨다. 그렇게 4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오시면서, 집안 어른들로부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멸과 수모를 당하시기도 하셨고…

아직도 우리 집에는 명절이면 수십명의 가족(extended family)가 다녀간다.
특히 우리 아버지께서 꽤 넓은 범위의 extended family 중 최고 어른이시기 때문에…

내 어머니도 이제 “칠순 노인” 이신데…
그 많은 손님을 치루어 내시며, 그리고 그 차례상, 제사상을 아직도 차리시면서…
그렇게 고생을 하신다. 아들 둘이 모두 해외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 모든 부담이 다 어머니의 몫이다.

한번 명절이 지나고 나면, 손발이 모두 퉁퉁 부어 며칠씩 고생을 하시고,
그야말로 거의 일주일 정도는 몸져 누우시는 일을 매년 반복하신다.

그렇게 하시면서 어머니의 일관된 말씀은 이것이다.
“이 제사를 내 대(代)에서 끝내겠다. 너희 대까지 넘기지 않겠다”

명절때면 그렇게 “영적싸움”을 하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저 그 어머니의 희생을 멀리서 누리고만 있는 내 모습이 매년 한없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그 어머니의 그 희생과 눈물과 기도로, 삼남매는 모두 그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만일….
perseverance 라는 단어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감히 내가 믿는 신앙의 그 어떤 열매를 내 삶에서 맺었다면…
내 어머니께서 후에 천국에서 받으실 칭찬의 몫이 적어도 그중 절반은 된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만일….
내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생명을 갖게 되었다면…
이번 설에도 하나님 사랑과 자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그 부담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계신 어머니의 모범 때문일 것이다.

올해 설에도…
힘드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큰아들은…
마음이 무너진다.

현학적이지 않은 신앙

언제부터인가,

내 신앙적 고민을 설명하려면 늘 매우 긴 배경지식을 설명해야 했다.



일종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설명,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 대비되는 사조에 대한 설명 등등.



그러다보니,

내가 길게 설명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 고민 자체를 꺼내어 놓는 것이 힘들게 되어버렸다.



내 신앙의 여정에서…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시켰던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자크 엘룰, 김교신, 마틴 로이드-존스, 톰 라이트, 스탠리 하우어워스…



이분들로부터 배운 insight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학적이지 않은 신앙을 유지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직은… 참 갈길이 먼듯 하다.








State of the Union

어제 저녁,

화요일에 성경공부 때문에 듣지 못한 State of the Union speech를 들었다.
What a speech!
몇년전엔가… 
미국의 무슨 정치 관련 site에서 내가 가진 정책적 입장과 가장 비슷한 정치인을 골랐더니
Dennis Kucinich 라고 나온 적이 있었다. (허억…-.-;)  
따라서, 나는 Obama의 정책이 늘 답답하다고 느낄 만한 사람인데… ^^

그러나…
Obama 대통령에게… 그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연설로 낼 수 있는 것 만큼이나…
결국 힘을 집결시킬 수 있는 리더쉽이 나오길 기도한다.

빌립보서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2001년 시카고 집회에서,
오전 성경강해를 담당하셨던 장평훈 교수님께서,
목요일 오전 본문 말씀으로 이 말씀을 사용하시면서,
이 말씀은 함께 일어나서 읽자고 하셨었다.

이 본문은,
지난 금요일 내 QT 본문이었다.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어제는,
구석진 clean room 실험실에서,
실험장비를 돌려놓고는…
혼자 이 말씀을 서서 낭독했다.

이런 말씀은,
정말 서서 낭독해야할만한… 그런 말씀인 것 같다.

KOSTA 주제 묵상

언제부터인가,

KOSTA 주제가 내 일년동안 묵상의 theme을 제공해 왔다.
아무래도 신경도 쓰게 되고,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되어서 인지 모르겠으나,
어떤땐 내가 의도하지 않는 데도 주제를 묵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금년에도 예외없이, 주제에 관련된 묵상들을 참 많이 하게 되고 있는데… 
다음의.. 어쩌면 당연한 몇가지가 최근 몇주동안 내 마음에 머물고 있다.
성화는 회심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
회심 (혹은 예수와의 만남)의 clear 한만큼 성화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것
성화의 과정이 멈추었다고 느낄때, re-start 할 수 있는 point는 골고다 언덕과 빈 무덤.
성화는 성령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
내주시하시는 성령께서 끊임없이 nudge 하시는 것을 잘 따르는 것이 key.
어느순간 종교생활에 익숙해져, 끊임없이 나를 이끄시는…. ‘수줍으신 하나님’ 성령님을 무시하는 순간 나는 off-track이 되어버림.
성화가 privatize 되는 길을 걷는다면, 이미 상당한 분량만큼 잘못된 길을 간 것이라는 것.
성화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
성화의 주체를 지나치게 하나님으로 보는 입장도, 지나치게 사람으로 보는 입장도 건강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으로 보는 입장을 더 많이 강조해야 할 듯.
성화는, 즐거운 과정이라기보다는, 때로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으나…
그 열매가 행복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영광’ 이라는 것.
그렇게 때문에 고통을 통한 영광이라는 path를 embrace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