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논의를 할때면 늘 ‘공부’를 하는 자세로 접근하게 된다.
나는 것이 현대 기독교가 갖고 있는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 공부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도 역시 열심히 공부하려고 늘 나름대로 노력하고, 사람들에게도 늘 공부하라고 이야기한다. ㅎㅎ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공부의 대상만은 아니다.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에는 여러가지 공부가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신문을 보다가 분노해서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일,
가기 싫은 군대에 끌려가는 일,
지지하는 후보가 다른 사람과 침튀기는 토론을 하다가 언성을 높이는 일,
축구 한-일전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일,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충격을 경험하는 일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의 국민됨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뭔가를 ‘경험’해보자… 이웃을 돕는 event를 한번 해보고… 이런 싸우려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나는 현대 기독교는 21세기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기독교는 21세기에서 유효기간이 지난것 같이 느껴지기 까지 한다.

이것을 돌파해내는 중요한 key는 평신도들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러니까 일상을 소소하게 잘 살자… 그런 멜랑콜리한 이야기를 하는게아니다.
실제로 세상에 대항해서 살면서 하나님나라 백성됨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기도하고,
세상에 의해 정복당할것만 같은 두려움 속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경험을 하고,
강력한 세상의 시대정신에 대비해 기독교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절망감도 경험해보고…
이런 과정을 삶 속에서 겪어내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contents가 된다고 생각한다.

속죄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백성이었다. (아니,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계속 출애굽의 민족이다.)
출애굽이 지난지 몇천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무교병을 먹으면서 그것을 기억한다.

우리로 말하면, 단군 고조선 보다도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을… 매년 빼먹지 않고 기억을 하는 것이다.
반복해서 서로에게 그것을 기억시키고, 자녀에게 그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어제 했던 이야기와 비슷하게,
나는 현대 교회에서 이 속죄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설교를 거의 듣지 못한다.
학문적인 적확성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을 포함할수도 있다.)
이 속죄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라고, 내 이야기라고 가슴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교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소위 ‘하나님 나라’의 narrative가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축소시킨채 이야기되는 것이 나는 대단히 안타깝다. 하나님 나라 narrative에서 속죄가 빠져버리면 그 전체가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이것은 old vs. new의 세대대결이나 신학대결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는,
절망적인 죄를 사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핵심 가운데 핵심이다.

타락, 죄

나는 타락이 역사적 사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나 아담/하와의 존재 역시 역사적 사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경의 narrative의 beginning은,
우리의 상태가 타락한 모습이다 라는 다소 abrupt한 선언이 거의 처음에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창조는 주로 창조주의 속성과 그 창조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에 등장하지만,
타락의 전단계로서 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 타락, 죄의 문제는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이 타락과 죄의 문제를 보수 기독교와 진보 기독교 모두에서 더 이상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에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히…
어떤 형태가 되었건… 죄와 타락의 상태가 얼마나 절망적인 것이었나 하는 이야기를 거의 아무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타락과 죄의 narrative가 빠져 버리면 기독교의 존재 이유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죄와 타락에 대해서 제대로 설교하는 설교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죄와 타락을 정말 말로 다 할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죄를 자꾸만 쉬운 언어로 설명해버리는 (explain away) 시도들이 넘쳐난다.

나는 현대 기독교가 shallow 해진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죄와 타락을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창조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의 핵심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다음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1. 창조주
내가 생각하기에 기독교에서 창조를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조주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화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 작품을 살펴보는것과 같이, 창조주를 이해하기위해 그분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나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자연보호, 환경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대단히 합당하고 반드시 해야할 일이지만,
자칫 그 과정에서 피조세계 자체를 너무 높은 위치에 두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기독교 써클에서, 특히 진보주의적 기독교 써클에서 이야기하는 환경보호에 대한 argument는 범신론처럼 들릴때가 있다.

2. 조화와 질서
나는 창조주가 모든 것을 창조했다,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개념등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생각에 좀 의문이있다.
흔히 창조주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무로부터의 창조를 언급하는 하는데…
기독교 창조의 핵심은 조화롭고 질서있는 창조에 있다고 본다.
특히 그 조화와 질서는, 선한 유일신이 그 창조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고대 근동지방의 다른 창조설화들과 비교해보았을때, 혹은 다른 세계관이나 종교등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와 비교해보면… 기독교 창조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조화롭고 질서있는 창조라는 것이다.

3. 출발점
기독교의 창조는 돌아가야할 실락원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창조-타락-구속의 세계관을 이야기하면서 창조질서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구속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적어도 구속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기독교는 창조를 돌아가야할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 기독교에서 histical Adam을 꼭 그렇게 붙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창조를 돌아가야할 실락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장 후기 (8)

내가 중학교때 나는 늘 반장이라는걸 했었다.
나는 그리 좋은 중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 반에는 정말 좀 껌을 좀 씹는 그런 애들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포크를 들고 그걸 흉기삼아 서로를 찌르는 싸움을 교실에서 본적도 있었다.

자습시간에 선생님이 “야 반장. 애들 조용히 시키고 있어” 라고 이야기하고 나가면 반장인 내가 조용히 시키는 역할을 했었다.
뭐 그런데 중학교 애들이… 반장이 조용히 하란다고 되나. 당연히 애들이 장난도 치고 떠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들어오면 애들은 금방 후다닥 자리에 앉았고, 나는 애들을 조용히 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혼자서 엉덩이를 대걸레자루로 맞았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 반장. 너 맞고 싶지 않으면 네가 애들을 이렇게 때려. 알았지?”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아니, 같은반 친구를 때리라고 선생님이 이야기하는게 말이 되나…

그래도 옆반 반장은 진짜 자기반 애들을 때렸다.
자기가 맞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겠지.

나도 정말 그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때도 있었다.

그때 나를 붙들어 준 건 우리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오승아,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 자기 반 친구에게 맞는 자기 아들을 보는 그 엄마가 보면 그 엄마 눈에서는 피눈물이 날거다.”

이렇게 벤더(하청업체들)을 만나기 전에는,
내 어머니가 내게 해주셨던 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업계에 있는 친구들을, 내 지위를 이용해서 때리는 몰지각한 일들을 하지 않게 된다.

반장이 자기반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 처럼,
큰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를 못살게 구는 것 역시 정말 말이 안된다.

이번 출장을 다니면서는 그러나…
내가 그렇게 대걸레 자루를 휘두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장 후기 (7)


Grossmünster라고 불리는 예배당 건물이다. 종교개혁자 쯔빙글리가 여기서 설교를 했다고 한다.


어제도 올렸던 사진이지만 강 건너편에서도 Grossmünster가 잘 보인다.


그 옆에는 이렇게 쯔빙글리의 동상도 있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제는 더 이상 기독교적이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스위스인들에게 쯔빙글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중세 유럽의 종교개혁은 사실 종교개혁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개혁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은 쯔빙글리를 종교개혁자라기 보다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나 사회개혁자로 해석해내고 있을까?

배덕만 교수가 짧게 설명한 쯔빙글리

출장 후기 (6)

난생 처음 가본 스위스.
이번에는 비교적 널럴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여유를 가지고 사진도 찍어보려고 노력을 했다. ^^


취리히의 중심부는 이렇게 엄청 좁은 길에 사실상 보행자만 다닐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많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런 예배당 건물도 많았고


중간에 전차같은 것이 다니는 광장도 있었다.


중간에 강이 흐르고, 그 강변으로 옛날의 건물들이 서 있는데, 그 건물들이 대단히 화려하지는 않았다.


대충 섭씨 10도 정도의 날씨였는데, 길 옆 음식점이나 카페에는 이렇게 나와서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많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거의 한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많은 것 같았다.


이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찍은 것인데, 내가 갔던 공장들이 이런데 막 있었다. 주변에 완전 멋진 산이 있거나, 푸른 초장이 있고… 그 그림같은 경치 옆에 그냥 ‘공장’이 있었다. -.-;

출장 후기 (5)

이번에 예전에 이용하지 않았던 항공사들을 몇개 이용하면서 business class 비교를 좀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태껏 내가 International business class를 타 보았던 항공사는

United
Korean Air
Asia (old configuration)
ANA
Air Canada (old configuration)
Swiss Air

이중 Asiana와 Air canada는 몇년전 바뀐 new business class가 아니고 옛날 configuration이다.

1. Seat Comfort
ANA, United, Korean Air, Asiana, Air Canada, Swiss Air 순서

적어도 내가 타본것 중에서는 ANA의 boeing 787의 business가 제일 좋다.
자리의 privacy도 좋고, 모든 seat이 isle access도 있고, 주는 침구류도 질이 좋고…
그리고 United가 의외로 자리는 편하다. 서비스나 음식은 별로이지만. ^^
Swiss Air는, 내가 타본 business class 중에서 제일 불편했다. 자리는 뻑적지근하게 생기긴 했는데 실제로 편하지는 않않고 많이 좁았다.

2. Food
ANA, Korean Air, Asiana, United, Swiss Air, Air Canada

이것도 ANA가 짱이다. 여기서 Japanese meal을 시키면 무슨 코스 요리 비슷하게 주는데 퀄리티가 장난 아니다.
그리고 중간에 라면을 시키면, 컵라면이나 심지어는 봉지라면 수준의 라면이 아닌… 진짜 제맛이 나는 일본 라면을 가져다준다.
United의 economy는 완전 terrible한데, business class는 음식이 꽤 괜찮은 편이다. 디저트까지 꽤 좋은 퀄리티가 나온다.

3. Service
ANA, Korean Air, Asiana, Air Canada, Swiss Air, United

사실 ANA나 Korean Air나 Asiana가 비슷한 수준으로 좋다. ^^
솔직히 말하면 살짝 불편할 정도의 과잉친절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런데 United의 서비스는 정말 완전 꽝이다. 어떤땐 거의 불쾌할 정도로 나쁘다…

4. Lounge
Asiana, Korean Air, ANA, Swiss Air, Air Canada, United
이건 각각 그 나라에 위치한 라운지를 기준으로 삼은 거다.
ANA는 일본 하네다와 나리타, Asiana와 Korean air는 인천공항, Air Canada는 Toronto, Swiss Air는 Zurich, United는 SFO

아시아의 항공사들은 비슷한 수준으로 다 좋다.
다만 United는 그 수준이 비교할수 없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아시아나 유럽쪽의 항공사들은 라운지에 샤워가 있다. transit을 할때 짧게 샤워를 할 수 있으면 참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따로 일할 수 있는 자리도 더 좋고, 음식 selection도 좋은 편이다.
United는… 음…. 나는 어떤땐 그냥 United lounge에 들어갈 바예야 밖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는게 낫다고 생각될때도 있다.

앞으로 Lufthansa, British Air, JAL, Asiana (new configuration), SAS 등등을 더 타게될 가능성이 있는데…
다음부터는 사진도 찍고 본격적으로 리뷰를 한번 해볼까 생각중이다. ^^

출장 후기 (4)

이번에 다니면서,
회사 하나가 이 조건을 거부하고 버텼다.

그 회사의 기술도 꽤 괜찮고, 거기서 받은 sample도 꽤 괜찮은데..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에 대한 지적소유권(IP: Intellectual Property)는 자신들이 소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걸로 나는 그 회사랑 무지 싸웠다. -.-;
너희는 이 업계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그걸 왜 못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거냐, 지금 우리가 너희 말고도 다른 회사랑 이야기하고 있는걸 모르냐. 이렇게 하면 너희 회사는 불리한거다….

결국 이 회사는 자기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에이씨, 이놈의 회사 안되겠구만…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생각하면 그 회사의 입장도 사실 꽤 reasonable한 것 아닌가.
자기 회사에서 물건을 만들면서 새로 알게된 지식은 자기들의 소유로 하겠다는 것인데.

다만 그게 이 업계에서 통상 이루어지는 계약조건과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삐걱거리는 것 아닌가.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그쪽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주장할만 하지 않은가.
어쩌면 그 작은 회사는, 업계의 불평등한 갑-을관계를 이런 식으로 맞닥드려 저항해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결국 이 회사는 이렇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계약을 맺지 않게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회사들이 다 불평등한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데… 우리 회사 입장에서 일부러 상대방에 더 유리한 조건을 선택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마치 불평등한 갑질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이랄까 그런게 내겐 계속 남아 있다…

출장 후기 (3)

대개 이쪽 바닥에서 Contract manufacturer (CM)들과의 계약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 우리 회사가 design을 주면 CM에서 그 design을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서 공급한다.
– 그 과정에서 그 product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process development는 CM에서 이루어진다.
– design에 대한 특허, process development를 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특허 등등은 모두 우리 회사가 소유하게된다. (CM은 어떤 특허도 새로 가지지 못한다.)

가령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내가 떡볶기 recipe를 새로 만들었다고 하자. 그리고 이 떡뽂기를 recipe대로 만들 CM을 찾는 거다.
그러면 내가 떡볶기 recipe를 그 CM에게 주고, (물론 그 recipe는 다른 회사에게 누출하면 안되는 거다)
CM이 그 떡볶기를 만들어서 내게 판다. 그러면 나는 그걸 다시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CM이 떡볶기를 만들면서 당연히 새롭게 알게된것들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불세기를 한 1분 정도 왕창 쎄게 했더니 떡의 질감이 더 좋아졌다거나… 뭐 그런.
그러면 이렇게 새롭게 알게된 “마지막에 쎈불 1분”에 대한 특허는 내가 갖는 것이다. CM은 그 지식을 다른 사람의 떡볶기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CM에게 꽤 불리한 계약조건이다.
Design은 내가 제공하지만 사실 그것을 만드는 조건은 CM에서 다 조정해서 정하게 되는데… 그 만드는 조건에 대한 지적소유권 마저도 다 내가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뭐 이 바닥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practic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