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SOX!

Boston에 오래 살았던 나는,
이제 정말 도저히 Red Sox로부터 벗어날 수 없나보다.

지금은 spring training이 한창인데,
매일 아침 Red Sox의 spring training에 관한 기사를 정리해서 본다.

아직도 Yankees는 타도해야할 Evil Empire이고,
Red Sox에 관계된 것이라면 거의 뭐든지 다 좋다. ^^

도저히 이런 mentality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Fever Pitch라는 영화를 한번 보시라!
New York 출신인, 극중 열혈 Red Sox Fan 역할을 맡았던 Jimmy Fallon은 
이 영화를 찍고 나서  Red Sox fan이 되었다!

가치와 체제

체제에 헌신한 사람은 그 체제 안에 갖혀있게 된다.
그러나 체제에 헌신하기 보다 그 체제가 담고 있는 가치에 헌신한 사람은,
그 체제의 흥망성쇠 여부에 관계 없이 자신의 건강한 헌신을 이어갈 수 있다.

나는 가치에 헌신한 사람인가… 체제에 헌신한 사람인가.
나는 KOSTA에 헌신했는가… 하나님 나라에 헌신했는가.

내 정치 성향

최근,
내 정치적 성향을 test 해보는 몇가지 web site를 찾아서 test 해 보았다.

나는 전반적으로,
시장 자유에 대해서는 좌파적 입장을,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의 색깔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궁금하신 분들은 스스로 한번씩 test 해보시라. ^^

여기   혹은    여기(영어)   아니면   여기(앞의 링크를 한글로 번역한 것인듯)

그런데 재미있는건…
맨 마지막 한겨레 신문의 링크에 따르면 우리 나라 정치인의 대다수가 ‘좌파’였다. -.-;
허걱… 그럴리가…

이런것에 대해선 비전문가인 나보다도… JH 같은 사람의 분석과 생각을 좀 들어봤으면…

지난 주말을 지내며

지난 주말에는,
인디애나주의 한 campus town에 있는 교회의 대학부 수양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만난 학생들의 ‘평균 생일’이 대충 89년생쯤 된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참석했는데…

참 오랜만에 학부생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참 많은 생각이 있었다.

첫째,
“어린 학생들이 소망이다” 라고 내가 정말 오래동안 주장해왔으나… 한동안 focus를 잃어버렸던 그 믿음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할까 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내가 그들의 나이일때 내 마음을 흔들었던 생각들과 가치들을 다시 review하게 되는 과정에서 얻어진 blessing 이었다.

둘째,
내가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communicate 하는 감(!)을 많이 잃어버렸음을 발견했다.
그 친구들의 상황과 고민, 성숙과 아픔, 기쁨과 감성등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실제 그 나이에 develop되고 있는 sophisticated growth process를 간과하고 있는 내 arrogance도 볼 수 있었다.
물론… 내 농담이 쉽게 먹히지 않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

셋째,
내가 그들과 20년 나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저녁,
다들 수면부족인 학생들을 배려해준다는 차원에서 저녁 설교를 다소 짧게 했다. (그래도 거의 80분짜리였다!)
그리고 나서 구원 및 헌신 초청 기도를 하고, 그 후에 기도의 밤 시간을 약간 짧은 듯 하게 진행을 했다.
너무 다들 피곤해서 집중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에서 였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그렇게 끝나고 나니까 아쉬워서 어쩔줄 몰라했다.
결국 자기들끼리 찬양을 하며 기도모임을 그러부터 1시간 반이나 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까지 방방 뛰면서 찬양을 1시간 반 이상 더 하는 것이었다!
내가 2 AM 경에 수양회장을 나올 때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부는 그 밤에 족구 비슷한걸 하기도 하고.
허억…

내 안에 있었던,
오래된 소망을 다시 되새기며 내가 정말 심하게 매너리즘에 빠져있음을 부끄럽게 발견했던 주말이었다.

스가랴 1:1-17

스가랴 1:1 다리우스 왕 이년 여덟째 달에, 주님께서, 잇도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인 스가랴 예언자에게 말씀하셨다.

2 “나 주가 너희 조상들에게는 크게 화를 내었다.

3 그러므로 너는 백성들에게 알려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간다. 만군의 주가 말한다.’

4 너희는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아라. 일찍이 예언자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너희의 조상에게, 악한 길과 악한 행동을 모두 버리고 어서 돌이키라고 외쳤다. 그러나 너희 조상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5 너희의 조상,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 때의 예언자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느냐?

6 내가 나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서 너희 조상에게 명한 나의 말과 규례를 그들이 듣지 않더니, 마침내 형벌을 받지 않았느냐? 그제서야 그들이 돌아와서 고백하기를, 만군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온 것과 우리가 행동한 것을 보시고서, 결심하신 대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내리셨다고 하였다.”

7 다리우스 왕 이년 열한째 달에, 곧 스밧월 스무나흗날에, 주님께서 잇도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 예언자에게 말씀하셨다.

8 지난밤에 내가 환상을 보니, 붉은 말을 탄 사람 하나가 골짜기에 있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 사람 뒤에는 붉은 말들과 밤색 말들과 흰 말들이 서 있었다.

9 그래서 내가 물었다. “천사님, 이 말들은 무엇입니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였다. “이 말들이 무엇을 하는지,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그 때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그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들은 주님께서, 온 땅을 두루 다니면서 땅을 살펴보라고 보내신 말들이다.”

11 그리고 말에 탄 사람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주님의 천사에게 직접 보고하였다. “우리가 이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살펴보니,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였습니다.”

12 주님의 천사가 주님께 아뢰었다. “만군의 주님,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렵니까? 주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신 지 벌써 칠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13 주님께서는 내게 말하는 천사를 좋은 말로 위로하셨다.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일러주었다. “너는 외쳐라.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몹시 사랑한다.

15 그러나 안일한 생활을 즐기는 이방 나라들에게는, 크게 화가 난다. 나도 내 백성에게는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데, 이방 나라들은 내 백성을 내가 벌주는 것보다 더 심하게 괴롭힌다.

16 그러므로 나 주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으로 이 도성에 돌아왔다. 그 가운데 내 집을 다시 세우겠다. 예루살렘 위에 측량줄을 다시 긋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17 너는 또 외쳐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 성읍마다 좋은 것들로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다시 한 번 시온을 위로하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내가 택한 내 도성이 될 것이다.'”

(새번역)

1:1 In the eighth month of the second year of Dariu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the prophet Zechariah son of Berekiah, the son of Iddo:

2 “The LORD was very angry with your forefathers.

3 Therefore tell the people: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ys: ‘Return to me,’ declares the LORD Almighty, ‘and I will return to you,’ says the LORD Almighty.

4 Do not be like your forefathers, to whom the earlier prophets proclaimed: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ys: ‘Turn from your evil ways and your evil practices.’ But they would not listen or pay attention to me, declares the LORD.

5 Where are your forefathers now? And the prophets, do they live forever?

6 But did not my words and my decrees, which I commanded my servants the prophets, overtake your forefathers? “Then they repented and said, ‘The LORD Almighty has done to us what our ways and practices deserve, just as he determined to do.'”

7 On the twenty-fourth day of the eleventh month, the month of Shebat, in the second year of Dariu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the prophet Zechariah son of Berekiah, the son of Iddo.

8 During the night I had a vision–and there before me was a man riding a red horse! He was standing among the myrtle trees in a ravine. Behind him were red, brown and white horses.

9 I asked, “What are these, my lord?” The angel who was talking with me answered, “I will show you what they are.”

10 Then the man standing among the myrtle trees explained, “They are the ones the LORD has sent to go throughout the earth.”

11 And they reported to the angel of the LORD, who was standing among the myrtle trees, “We have gone throughout the earth and found the whole world at rest and in peace.”

12 Then the angel of the LORD said, “LORD Almighty, how long will you withhold mercy from Jerusalem and from the towns of Judah, which you have been angry with these seventy years?”

13 So the LORD spoke kind and comforting words to the angel who talked with me.

14 Then the angel who was speaking to me said, “Proclaim this word: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ys: ‘I am very jealous for Jerusalem and Zion,

15 but I am very angry with the nations that feel secure. I was only a little angry, but they added to the calamity.’

16 “Therefore, this is what the LORD says: ‘I will return to Jerusalem with mercy, and there my house will be rebuilt. And the measuring line wilh be stretched out over Jerusalem,’ declares the LORD Almighty.

17 “Proclaim further: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says: ‘My towns will again overflow with prosperity, and the LORD will again comfort Zion and choose Jerusalem.'”

(NIV)

KOSTA/USA-2010 주제문

복음, 민족, 땅끝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사 60:1~3)”
 
KOSTA/USA가 시작된 지 어언 25년이 되었다. 지난 25년 동안 KOSTA/USA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돌이켜보면, 그 안에 있었던 소중한 만남과 추억, 그리고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에 우리는 감격하게 된다. 무엇보다 KOSTA/USA를 이끌어왔던 ‘복음, 민족, 땅끝’이라는 모토가 한국 복음주의권에 시대적인 영향력을 끼쳤음을 감사드린다.
 
복음, 민족, 땅끝(삶과 신앙의 통합)은 지난 25년 전 KOSTA를 시작할 때부터 KOSTA 운동을 이끌었던 핵심가치(core value)였다. KOSTA/USA가 시작되었던 1986년의 상황을 돌이켜 보자. 당시 KOSTAN들은 유학생으로서 고된 삶 가운데 있었고, 암울했던 조국의 상황을 그저 멀리 타국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들은 “1980년대를 사는 한국인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복음이 진정으로 한국 민족에게 소망이 되고, 그 소망을 세상에 선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엄숙한 소명이었다. 복음이 삶으로부터 괴리되고 신앙이 종교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당시 기독교 현실의 이원론적인 폐쇄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KOSTA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KOSTAN들은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단했다. 이런 고민과 결단은 지난 25년간 KOSTA/USA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25년 이 지난 지금, ‘복음, 민족, 땅끝’은 여전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일까? 처음 KOSTA를 시작했던 선배들의 치열한 고민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우리는 올해 KOSTA/USA를 통해 ‘복음, 민족, 땅끝’의 주제가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먼저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25년 전 복음이 우리 선배 KOSTAN들에게 소망이었듯, 여전히 복음이 우리의 소망임은 분명하다. 복음은 창조주의 선한 창조의지에서 벗어남으로 인해 파괴되었던 인간성이 회복될 길이 마침내 열렸다는 선포이자, 끊을 수 없는 죄의 악순환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얻었음을 알리는 선포이다. 하지만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적인 구원에 국한되지는 않으며, 자연, 사회, 문화, 학문 등 피조세계 전체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우주적 선포인 동시에, 어그러진 이 세상에 빛의 역할을 하게 될 새로운 언약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예수께서 세우셨다는 공동체적 선포이기도 하다. 즉, 복음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궁극적 목표이자, 민족과 땅끝의 기초가 되는 포괄적인 가치인 것이다.
 
민족이라는 가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음을 믿는다. 특별히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 가난과 독재 등의 고난 속에서 우리를 전세계에 디아스포라로 흩으신 목적이 있음을 믿는다. 다만 25년 전 우리 선배들은 한국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조국을 섬기는 일을 통해 발현시켰다면, 이제 우리는 자민족중심주의나 국가주의와 같은 폐쇄성에 빠지지 않고, 타국에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우리에게 부여된 탤런트와 성품을 사용해 우리 조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 유익을 끼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폐쇄적이거나 이기적이기보다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섬김’의 정체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땅끝이라는 가치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민족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국수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에게 허락하신 복음의 복(blessing)을 전 세계의 모든 이들과 나눌 것을 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땅끝은 선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가치이다. 그러나 땅끝의 의미는 단지 선교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복음은 언제나 우리가 정해놓은 경계(boundary)를 넘도록 요청한다.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편안한 종교행위로 신앙생활의 전부를 채우고자 하는 우리에게, 복음은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이야기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종교적 영역에서만 우리의 주(Lord)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가정, 사회, 문화, 인간관계, 직장 등 삶의 전 영역(sphere)에서도 역시 우리의 주로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5년 전 우리 선배들의 통찰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적용된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세속화 및 혼합주의(syncretism)의 도전 또한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명목으로 세상과 대화하려는 시도가 자칫 세속화나 혼합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삶과 신앙의 통합을 위해 이원론 및 혼합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피조세계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선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2010년, KOSTA/USA 25주년을 맞는 이때에 우리는 복음, 민족, 땅끝의 세 단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또한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도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복음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 민족에게 주신 복음의 사명이 어떤 것인지, 선교적인 의미로서의 땅끝의 가치, 또한 피조세계 각 영역의 복음으로서의 땅끝의 가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뒤틀려진 이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유대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과의 언약으로 하나님이 여전히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심과 궁극적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신실하심을 표현하셨으며, 그 언약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어그러진 세상 가운데 빛으로 부름받은 새로운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나는… 전사(fighter)인가?

나는 원래 매우 겁이 많았다.
어렸을때 세발자전거도 무서워서 타지 못할 정도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교 시절에도, 두려움은 나를 지배하는 가장 커다란 부정적 압박이었다.

그런데,
요즘 나를 잘 관찰해보면,
극복해야하는 어려움이나, 맞닥드려야하는 도전, 싸워야 하는 적(enemy), 지켜야 하는 가치 등등이 분명히 들어날때 내 안에서 피가 끓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러한 내 모습의 배후에는 내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겁장이이지만,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전사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Big Compliment

지난주에,
내 아내가 내게 해준 아주 큰 compliment.

막 결혼했을때와 비교해서, 내가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내 긍정적인 변화에 대하여 듣는것만큼 큰 칭찬이 또 있을까.

나의 장점

다른이에게 듣는 나의 장점들이 있다.
그런 장점들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듣는 내 장점은,
내 성품에 관계된 것이라기 보다는 내 능력에 관계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functional unit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한가지 감사한것은,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일하는,
나와 알고 지낸지 25년이 좀 넘은 친구가 지적해준 내 장점은…
“passion” 이었다.
약간 위안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