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부르심에 대한 아땅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

어제 내가 쓴 글에, 아땅님께서…

‘왜 당신은 전임 말씀사역자/목회자를 하지 않느냐’ 

는 질문과 함께…

소명, 성직자로의 부르심 등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졌다.

이에 따른 대답을 댓글로 달려다가… 좀 길어지는 것 같아 아예 오늘은 그 답을 여기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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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주 난해한 질문이시군요. ^^

음… 사실 뭐… 저는 제가 전임 말씀사역자, 전임 목회자로서 아주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요, 저는 teaching에는 관심도 많고 나름대로 어느정도 재능도 있지 않나 싶긴 한데요, pastoring에 감이 많이 떨어진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제가 전임 목회자가 되겠다고 나서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제 재능의 유무에 따른 것은 사실 아닙니다.

저는,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은사’ 혹은 ‘부르심’의 개념이 현대에 많이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은사, 부르심 등의 개념이 자아실현의 방편으로 인식되고 이해되고 있는데요…

그 원래 단어의 뜻을 생각해보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맡겨진 function이 은사(gift)이고, 어떤 일을 하도록 명령을 받은 것이 부르심(calling)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보다는, 공동체, 하나님의 원대한 plan 이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이지요.

가령… 

음대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떤 공동체가 있다고 합시다.

당연히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에서, 재정관리를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한데 할 사람이 없다면, 음악적 재능이 많은 사람중 어떤 사람은… 그 음악적 재능을 살리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는 거의 무관한 재정관리의 일을 섬겨야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 사람의 은사는 음악이 아니라 재정관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람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요… 공동체를 세우기위한 function으로서의 은사는 재정관리가 되는 것이지요.

아… 물론 이게 그냥 무대뽀로 아무나 이거 해라는 식으로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나마 그중에서 그쪽을 그래도 제일 잘 할만한 사람이 하긴 해야겠죠. ^^

이게 현대에 와서는…

은사라는 것을,

공동체를 세우는 일, 더 크게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과 무관하게…

‘내가 가진 재능’ 이라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다보니…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대개 20대의 학생들과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람들이 제일 불안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극대화해서 살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내게 최상의 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뭐 그런 것 비슷하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네 삶을 최적화(optimization)하지 못해도 괜찮다… 라고 이야기해줍니다.

지금 네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위해 나름대로 최상의 것을 찾아 헌신하면, 그것이 그 재능을 최대로 발휘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공학도로서의 재능을 두고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무직을 선택할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가정 주부를 할수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고요.

저는,

제가 전임 목회자로서 ‘재능’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지는 않습니다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제가 처한 이 상황 속에서는 목회자보다는 공학자로서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공학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더 제대로 말하자면, 목회자보다는 공학자로서 사는 것이, 제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한국교회, 한인 디아스포라, 복음주의, 세속사회, 그리고 ‘나’ 라는 여러 item들을 관통하여 설명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학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험하는 것 보다 성경공부 하는 것이 더 좋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제 부르심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을 하라고 시키신 것,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은 적어도 현재는 공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말 죽어라고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 ^^

그런데요, 가령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패션모델을 해봐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제게 시키실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저는 외모가 그렇게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패션감각이 아주 꽝이기 때문이죠. ㅋㅋ

뭐 그래도 정말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 그렇게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 뭐 그냥 그것도 열심히 땜빵(!!) 하며 살수도 있겠죠. 쩝…. 아아… 그런데 그건 상상도 하기 싫다… 

소위 ‘성직자’로서의 부르심 역시,

내가 가진 재능,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끄신다는 느낌,… 물론 이런 것들이 무척 중요하지만요,

공동체 혹은 하나님 나라 라는 관점에서 이것을 풀어내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는지 하는 것을 함께 보면서 말이죠.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명목 하에, 자아실현의 방편으로 clergy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편만한(?) 시대에…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가정주부가 되기로 선택하는 어떤 이의 선택이 훨씬 정말 더 거룩한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