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이고 감칠맛 나는 음식과 은은한 건강식

이제는 70대 후반이 되신 아버지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정말 나는 우리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외모도 더 닮아가는 것 같다. 머리 숱이 적어지는 것을 물론 포함해서 ^^)

우리 아버지는 꽤 다혈질이시다. 그리고 대단히 열정적이시고.

늘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을 따지기 좋아하시고, (물론 그 판단이 항상 옳으신건 아니다. ^^) 

당신 생각에 잘못된 것은 잘 참아내지 못하신다.

아, 난 이런게 정말 우리 아버지를 꼭 닮았다. (나는 다혈질이라기보다는 담즙질이긴 하지만…)

이런 성격은 좋은점이 많이 있다.

웬만해선 이런 사람들을 막을 수 없다. ^^

늘 열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그 열정이 쉽게 삭아들지도 않는다.

많은 일에 높은 효율을 확보할 수 있다.

특별히 여러 세팅에서, 내 안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자주 리더로 만든다.

우리 장인 장모님과 함께 한국 돌아오기 전날, 

안성 근처의 어느 한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이 음식점은 인공 조미료 전혀 쓰지 않고, 건강한 채식만을 맛갈나게 요리해서 내는 집이었다.

청국장을 시켜 먹었는데, 자극적이어서 강한 인상을 주는 음식이라기 보다는, 은은한 맛이 오래 입안에 남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 음식점에 오가는중, 자동차 앞자리에 두분이 앉아서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장가든지 14년이 지났는데, 난 왜 우리 장인 장모님께서 이렇게 말씀 나누시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을까…)

이분들의 대화는, 매우 interactive 했다. 서로의 말을 잘 경청하고,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기 보다는 부드럽게 생각을 던지는 스타일의 대화였다. 특히 장인어른께서는 더 그러셨다.

마치 함께 먹은 그 한식집의 청국장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우리 아버지를 닮은 나의 대화는 상대방을 설득하려/가르치려 하는 것이거나,

대화 상대와 서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논쟁이거나,

혹은 대화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하는 의도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표현은 많은 경우 참 자극적이다. 때로는 강조를 하기 위해 과장도 사용한다.

강한 자극의, 매운탕이라던가, 낙지 볶음, 순두부 찌개 뭐 그런 스타일의 음식에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장인 장모님의 대화를 보면서,

나는 내 아내의 대화법을 다시한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아내는 어려서부터 꽤 부드러운, 정죄하지 않는, 은은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모범생으로 자란 딸이다.

따라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자극적이고 격렬한 표현이나 어투, 혹은 논리 전개등이 다소 overwhelm하거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심지어 내 아내는 내가 이런식으로 분석해서 해법을 찾고자하는 이런 시도도 자주 불편해한다. 그렇지만 나는 분석을 통해 해법을 내는 방식의 생각과 논리 전개, 언어구사가 편하고 그것 이외에 다른 대화법을 잘 모른다.

강한 자극의 음식만을 반복해서 먹으면,

위장병이 생긴다거나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듯,

나와 같은 생각과 언어 사용만을 하면 자칫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궤양’을 일으킬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내 자신이 겪는 ‘궤양’이 제일 심하긴 하지만, 나는 본인이니까 그러려니 하며 살기도 하고 알아서 견디고 치료도 하고 그렇게 지낼 때가 많지만,

나와 가까이 있는 – 내 아내와 같이 – 사람은 매운 낙지볶음만 하루 세끼 계속 몇개월 먹은 것과 같은 그런 부담감이 있을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으로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성경의 방법이라면,

나는 너무 자주 사랑을 잊은 채 진리를 이야기하는 오류를 자주 범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진리 자체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나… 그런 반성을 해본다.

감칠맛나는, 나물류의 반찬, 생두부에 간장을 살짝 얹은 건강식 등을 좀 즐겨봐야 겠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내 모습

출장 + 휴가 삼아서 시간을 좀 보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시간을 좀 보낼 수 있기도 했고.

한가지… 다소 새롭게(?) 발견한 것은,

내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는 몹시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거의 항상 많이, 정말 많이 게을러지고,

다른이들에게는 표현하지 않을 불편한 마음을 드러낼 때도 있고,

따로 기도를 한다거나 말씀 묵상을 하는 등의 시간도 거의 내지 않는다.

그야말로, 많이 망가진다.

왜 그럴까?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편해서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신앙이,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내 모습까지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졸업과 함께 부모님 곁을 떠나 계속 살아온 나로서는,

부모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나 자신을 제대로 positioning 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

블로그 잠시 쉽니다. (8월 6-15일)

회사일 + 휴가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15일까지 블로그를 쉬려고 합니다.

(내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오래 블로그를 쉬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글을 쓰고 싶은 내용이 산더미 같지만,

마음이 분주해서,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

갑자기 블로그 방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히, 김교신(金敎臣) 선생의 성서통신(城西通信)/성조통신(聖朝通信) 공개일기를 본받아,

매일 하루에 15분씩 시간을 들여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2008년 초 였던 것 같은데,

매일 글쓰기, 벌써 4년 반이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 가운데,

제 블로그를 읽고 계신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하는데요,

아니… 이런 허접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니…

블로그 방학 기간에도 혹시 ‘필’이 꽃히면 하나씩 써볼 수 있겠지만,

웬만하면 자제하려고 합니다. ^^

모두들 건강한 여름 보내시고,

16일에 뵙겠습니다.

목수의 졸개 올립니다.

걱정 많은 사람

나는, 천성적으로(?) 걱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ㅎㅎ

게다가, 어릴 때부터 소위 ‘공부 잘 하는 아이’였으므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사실 그렇게 사는 것이 네게 주어진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뭐랄까… 어릴때부터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일도 적었고, 그렇게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것은 나와 관계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나서 보니,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세상에서 제공하는 안정성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이 그 중요한 부분임을 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공하는 안정성을 무조건 거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안정성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때, 나는 이것이 참 힘들었다.

나는 세상에서의 안정성을 가지고 살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인데…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남들 놀때 공부해가면서 그걸 이루려고 했는데… 

(난, 정말… 정말…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었다!)

그것이 모두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라니…

복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 후,

지난 20년간 내 삶 속에서 싸워야 했던 가장 큰 싸움은 내 재능에 근거해서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내 안정성의 기초를 두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Start-up company를 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심하게 불안해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데…

예전의 나 같으면 지금쯤 나도 역시 많이 힘들어야 당연한 것을,

그래도 지금과 같이 이렇게 힘도 내고, 다른 사람들 격려도 해 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깊은 곳으로부터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지난 2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며…

때론 뼈가 부스러지는 것처럼 힘들게 받았던 훈련들이,

참 값진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이 노력이 성공을 거두게 될지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아직 말과 경주해도 이길만큼 잘 다듬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와중에 평안을 잃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내게 뭔가 상을 하나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서,

어제 저녁에는 혼자 떡볶이를 거하게 차려 먹었다!! ^^

20대의 기도, 40대의 기도

20대 초중반,

아직 대학생일때…

기숙사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한국 교회를 책임져야 한다’며 결의를 다졌던 것이 기억난다.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을수도 있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

그래도, 그때는…

앞으로 20년 후면, 우리가 한국 교회를 책임져야하는 사람들인데, 그 준비를 지금부터 부지런히 해야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40대 초중반,

이제는 그로부터 정말 20년이 지난 나이가 된 지금,

내 기도는 내가 혹은 우리가 한국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떻게하면 지금 20-30대가 한국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워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니,

무언가 중간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물론 지금 20-30대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그것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저 공허한 외침이 된다는 자각이 훅~ 하고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