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직장을 옮길까? (5)

Amazon의 C 하고는 지난주에 점심을 같이 먹었다.
C의 걱정은… 너 지금 하는일 재미있어 보이는데, 우리 그룹에 와서 너 재미없으면 어떻게하냐? 는 것이었다.
나는 너랑 일하는게 좋으니까, 아마 거기 가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C는, Amazon에서는 hiring manager의 decision making power가 크지 않다면서 만일 네가 interview를 하더라도 다른 누가 딴지를 걸면 아마 안될거라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interview를 해서 거기서 offer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offer를 받았을때 내가 지금 다니는 이 편하고 좋은 직장을 때려치고 거기 가게될까 하는 것에 확신이 없기도 하다.

아마 이렇게 interview를 진행시키다가 어떤 순간에는 내가 그냥 안하겠다고 이야기하게될지도 모른다.
물론 interview를 해서 안될수도 있겠고.

현재 그냥 기도하면서 드는 내 주관적인 생각.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 방식은 그냥 딱 하나 길이 있을때 그걸 열어주신 방식이었다.
아마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하신게 아닌가 싶은데…

혹시 여기 interview 해서 offer가 어느정도만 reasonable하게 되면,
그냥 그게 열어주시는길인가부다 하고 저쪽으로 옮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한다.

동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 vs. 동기와 열정이 잘못된 사람

동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과 동기와 열정이 잘못된 사람…
이 두 부류의 사람중 어떤 부류가 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

만일 그 사람을 쉽게 쳐낼 수 있는 회사라던가… 사회 조직의 경우에는 잘못된 동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의 해악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잘라낸다 하더라도 그 ‘열정’에 악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그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공동체라면,
그리고 사랑과 신뢰에 기반을 둔 공동체라면…
동기와 열정이 없는 사람을 보고 있는것이 훨씬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냥 요즘 내 머리를 채우는 생각중에… 한조각.

또 직장을 옮길까? (4)

박사를 마치고 postdoc을 같은 그룹에서 했다.
그런데 말이 postdoc이지 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받는 돈도 정말 얼마 안되었고.
그러나가 어느 순간에는 그것도 끊겼다.
처음에는 아내가 있는 Boston지역에서 job을 구하기 위해서 resume를 한 50개는 근처에 뿌렸다.
다 안되었다. -.-;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지혜롭지 못하게 job search를 했다. 조금만 trick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거기서 job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HP labs에 있던 친구가 내게 그 그룹에 자리가 있다고 관심 있느냐고 물어서 인터뷰를 보았고, 정말 후다닥 job을 잡고 3-4주 후에 나는 HP에 출근을 했다! 완전 속전속결이었다. 여러군데 중에 딱 하나 된 것이다.

두번째 직장은 첫번째 직장이 망할즈음, Apple의 recruiter가 연락을 해왔다. 관심있느냐고.
사실 다니던 직장이 거의 망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다들 뭔가 잘 닿지를 않았다.
그런데 Apple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하고 후다닥 offer를 받았다.
여기도 딱 한군데 인터뷰봐서 딱 한군데 된 것이다.

세번째 직장은 내가 일본에 출장 가 있을때 Lenovo의 recruiter가 또 연락을 해왔다. 관심있느냐고.
나는 Apple에 다니는게 정말 싫었기 때문에 무조건 관심있다고 했다.
그 역시 후다닥 인터뷰하고 후다닥 offer를 받았다.
딱 한군데 인터뷰봐서 딱 한군데 된 것이다.

네번째 직장은 Lenovo에서 layoff되고 여러군데 resume를 넣고 인터뷰도 봤다. on-site interview는 세군데 했는데 그중 Verily (그때는 Google이었다)만 offer를 받았다.
여기도 내가 apply를 했다기 보다는 Google의 recruiter가 마침 그때 연락을 해와서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딱 한군데 연락왔고, 거기 인터뷰해서 딱 한군데 offer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일 잘 하고 있는데,
Amazon의 recruiter가 연락을 해왔다. 관심 있느냐고.

나는 많은 곳에서 나 오라고 불러서 튕겨가며 회사를 옮긴적도 없고,
여러개 offer를 받아서 negotiation을 해서 내 몸값을 불려볼 기회도 한번도 없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길을 열어보려고 한건 쭉 안되었고, 길이 열리면 그냥 그쪽으로 가는 선택만 했었다.

나도 한번쯤은 좀 튕겨도 보고, hard negotiation도 해보면 좋겠는데…^^

또 직장을 옮길까 (3)

신명기 6:10-25 QT 나눔
(우리 교회사람들과 나눈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모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거기에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당신들이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당신들이 파지 않았지만 이미 파놓은 우물이 있고, 당신들이 심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가끔은 지금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직장 잡고 이렇게 돈 벌고 있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sense of entitlement가 나를 지배합니다.
내가 그래도 이정도는 벌어야지. 내가 그래도 이정도 집에는 살아야지. 그래도 이정도 휴가는 보낼 수 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부할 수 있는 재능,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배경, 어쩌다 한국이라는 ‘선진국’에 태어난 것…
이런 것들 모두가 제가 노력해서 얻은게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도 했고, 일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제가 노력해서 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나는 어느 학교 졸업했고, 이만큼 커리어 쌓았으니 이정도는 받아야지… 이정도 차는 타야지… 식의 생각이 사로잡습니다.

내가 파지 않은 우물을 당연하게 여기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들은, 당신들 가까이에 있는 백성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에,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따라가지 말라는 겁니다.
약속의 땅이 주는 안정감과 풍요, 그에 따른 sense of entitlement,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탐욕이나 야망까지도…
그런 거짓 신들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라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독점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데… 나는 자꾸만 하나님 말고 다른 무엇을 더 추구하곤 합니다.

약속의 땅이 주는 security는 거짓 신인데요…

최근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상사가 근처의 다른 회사로 옮겨서 저보고 자기 팀에 join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오고 있습니다.
과연 거기 가는게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가면 돈은 더 받을까. 등등을 막 생각하다가…
가나안의 언어로만 제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오승아, 날좀 봐라. 나와 exclusive한 관계를 맺고 살자’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파지 않은 우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과의 독점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제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만족을 가져다주는데요…

얼마나 제가 미련한지요…

또 직장을 옮길까? (2)

나는 월급 조금 더 많이 주는 거 가지고 쪼로록 직장 옮기는걸 그렇게 찬성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치때문에 직장을 옮기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내 첫 직장 HP 에서 나는 꽤 ‘행복’했다.
하는 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그 직장에서의 여러 성과들 때문에 나는 학회 invited talk도 다니고, 그룹에서 주는 상도 공동으로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직장은 망했다. -.-; 그래서 직장을 옮겨야 했다.

두번째 직장 Apple은 무지하게 잘 나가는 회사였다. (지금도 그 회사는 무지하게 잘 나간다.)
거기서 꽤 중요한 일들을 많이 했고, 첫 직장에 비하면 돈도 훨씬 더 받았지만…
나는 정말 너무너무 그 직장이 싫었다.
내가 보기엔 합법적이지만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하도록 강요받았고, 함게 일하는 사람들과도 잘 맞지 않았다.

세번째 직장 Lenovo는 살짝 급이 좀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의 일은 참 재미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누군가로부터 배우기 보다는 주로 누군가를 챙겨야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는 lay-off를 당했다. -.-;

지금 직장이 네번째 인데,
여기는 해오던 일들과는 아주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평생 생각도해보지 않았던 medical device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job을 찾았기 때문에 negotiation을 하기에 좋은 position은 아니었다.
결국 원래 내가 와야하는 것보다는 한단계 낮은 직책으로 왔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기도 명목상으로는 start-up이니까, 내가 하는일 자체는 아주 재미 있고… 실제로 내 level에 비해서는 꽤 큰 일들을 기획하고 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무지 똑똑하고, 잘났고, 대부분 아주 nice하고 reasonable 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옮겨야 하나?

또 직장을 옮길까? (1)

최근 이 근처의 어떤 회사의 recruiter가 연락을 해왔다.
보통 그렇게 recruiter가 연락을 해 오면 대부분 무시하는데…
이번엔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Amzaon lab126의 리크루터다.
너 C 알지? 나 C 그룹에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관심있니?

C는 내 첫 직장의 boss 였다.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고, C도 나를 참 좋아한다.
함께 start-up을 하면서 완전히 쫄닥 망하기까지 끝까지 살려보려고 함께 애썼고…
그 후에 어디서든 만나면 언제나 즐겁고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참 좋은 ‘친구’이다.
C가 동부에 있을때 나는 내가 있는 회사로 C를 불러오고 싶어서 노력을 하기도 했었고,
1년 반 쯤 전에는 C가 자기 그룹에 opening이 있다면서 내 관심을 떠보기도 했다.

그런데 C가 사람을 뽑는다고!

나는 완전히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 직장에 나는 그래도 꽤 만족하고 다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배경보다 큰 사람

자신의 학벌, 집안 등 배경을 자랑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배경보다 작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배경을 통해서 자신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게 하고 싶은 것이다.

반면,
큰 사람은, 자신이 배경을 더 훌륭하게 만든다.

세상의 성공의 기준은, 자신보다 큰 배경을 취득하는 것이지만…
건강한 성공의 기준은, 자신이 배경보다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Silicon Valley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질때

가끔은, Silicone Valley에 있다는 것은,
창기(prostitute)가 되는 것과 같다고 느껴질때가 있다.

더 멋진 옷과 화려한 화장을 하고 더 높은 값을 쳐주는 사람에게 몸을 파는 것이나…
더 많은 교육과 경력을 쌓아 더 많은 돈을 주는 회사에 모든 것을 던져 헌신하는 것이나…

이런 TED talk은 정말 내가 그런 창기와 같은 사람은 아닌가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한다.

부흥의 시기와 침체의 시기 (10) – 마지막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울어야 한다.
그저 맹숭맹숭하게 살아갈 수 없다.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같은 눈물이 있어야 한다.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결코 깊어질 수 없다.
좋은게 좋은거지… 식의 신앙은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독이된다.

침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냉소적이 되는 것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
외향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패배가 아님을 인식하고,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침체의 시기가 길어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오래 버텨야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하박국의 기도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

부흥의 시기와 침체의 시기 (9)

침체의 시기에 충분히 깊어지지 않으면 부흥의 시기가 활짝 꽃피기 어렵다.
침체의 시기에 다듬어진 깊은 신학과 성찰은 부흥의 시기를 발현시킬 뿐 아니라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침체의 시기에 너무 쉽고 빠르게 부흥의 시기로 넘어가기위해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침체의 시기에 해야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 침체의 시기에 아주 훌륭한 insight를 주는 성경은 예레미야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침체의 시기를 침체의 시기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는 선지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침체의 시기에 충분히 망가지지 않으면 다시 세워질 희망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글들은 70년이 지난 후에 다니엘이 읽게되고, 그 다니엘의 삶과 기도와 경험은 어쩌면 예수님 시대를 여는 아주 중요한 key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