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깊게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야 할까?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할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여야 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그 정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깊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위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후자인것 같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든 뭐라도 더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다

Contra Mundum

  1. Contra Mundum이라는 라틴어는, 세상에 대항하여라는 뜻이다.
    대학생때 처음 Francis Schaeffer 책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접했다.
    그리고 나도 역시 그렇게 세상에 대항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2. 대학생이던 시절로부터 30년 이상 지난 지금,
    Contra Mundum이라는 모토는 여전히 내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세상에 저항하며, 세상에 대항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3. 그런데 이 Contra Mundum이라는 말은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라는 분이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타나시우스가 이 Contra Mundum이라는 말을 했던 상황은,
    그 당시 예수님이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을 했던 아리우스(Arius)의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이라는 삼위일체적 주장을 했던 아타나시우스가 부딛혔던 것이었다.
    그 당시 아리우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수였고, 아타나시우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소수였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에 대항하여’를 위치며 그 소수의견을 계속 지켜냈던 사람이다.
  4. 대학생때 내가 읽었던 Francis Schaeffer나, 4세기의 아타나이수스나 모두 Contra Mundum이라는 표현을 할때는 세상의 다수의견, 세상의 대세에 저항해서 기독교의 교리를 지켜내는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5. 20년, 30년 전의 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그때의 내게 ‘진리를 수호하는 전사’로서 Contra Mundum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했다.
    그러니 내가 처음 Contra Mundum이라는 구절을 접했을때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세상에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6. 지금 나는, 그렇게 진리가 수호되지도 않고, 그렇게 진리를 수호하려는 시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진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세가 Contra Mundum을 이야기하는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월터 브루그만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소비주의, 물질만능주의, 자기 중심주의 등등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것이 지금 기독교인들이 해야하는 훨씬 더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7. 20대에 생각했던 Contra Mundum과, 50대에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Contra Mundum은 꽤 다른것 같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동안 Contra Mundum이라는 모토는 계속 내 삶을 지탱해내고 있어왔고,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동안 내가 저항하며사는 그 자세로의 Contra Mundum의 내용이 많이 바뀌어 있는 것 같다.
  8.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세상에 대항해서 살아가려 하고 있다.

신난 강아지 같이…

이제는 개를 키운지도 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개는 하루 두세번 산책을 하는데도, 할때마다 신이난다.
마치 난생 처음 디즈니랜드에 가는 어린아이와 같이 좋아하곤 한다.

최근,
좀 먼 거리 비행기를 탔다.

나는 많이 다닐때는 일년에 100,000 마일을 탈 만큼 많이 비행기를 탔던 사람이다.
그러니 먼 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은 거의 지겨울만큼 많이 했었다.
그러니 비행기를 타면 어떻게 하는지 내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고,
뭘 어떻게 해야하나 허둥지둥하거나 잘 모르는 일들은 거의 없다.

나는 이번에도 단번에 내 자리를 찾아서,
늘 하던 루틴대로 척척 짐을 올리고, 충전 케이블을 꺼내고, 이어폰을 준비하고… 등등 모든 일들을 다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두명의 중년 여성이 나란히 앉았는데, 이 두분은 비행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자기 자리도 찾지 못해서 내가 내 옆자리라는 것을 알려줬고, 기타 여러가지를 앉은 후에도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승무원이 음료수를 줄때도, 어떤 것이 있는지를 몰라 전혀 엉뚱한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것들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아마 친구인것 같아 보였는데,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LA로 놀러가는 중이라고 한다. (전혀 이 두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의도가 없었지만 이 두분이 워낙 큰 소리로 신이나서 대화하는 바람에,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억지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행기에서 한가지 한가지에 다 신기해했다.
그리고 내내 신이나서 이야기를 했다.

반면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서, 이 별 의미 없는 시간을 때워보려고 그냥 내 전화에 담겨있는 podcast를 들으며 반쯤 졸면서 그렇게 가고 있었다.

그 두 사람에게 그 비행은 신나는 것이었고, 마치 강아지가 산책을 갈때와 같이 즐거운 것이었다.
내게 그 비행은 그저 의미 없는 것이었고,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야하는 것이었다.

….

나는…
내게 주어진 삶과 시간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짧은 시간속에서, 그것을 충분히 appreciate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